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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교양도서 3권_사회주의 현장활동 시대를 열어나가자!
 사노련  | 2009·11·11 23:41 | HIT : 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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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3권 '노동자, 세상을 움켜쥐어라'에 실린 글입니다.)

    사회주의 현장활동 시대를 열어나가자!

    오연홍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투쟁하며 토론해온 노동자들이 이렇게 묻곤 한다. “더 이상 노동조합 간부 활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겠다. 나도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고 싶다. 그런데 과연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답게 활동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규칙적으로 사회주의 조직과 관계를 맺고 활동해왔던 동지들도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사회주의자로서 현장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우리의 원칙과 구체적인 활동 방법을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를 느낀다.”

    이런 질문이 거듭 던져진다는 것은 아직 사회주의운동이 현장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주의운동이 뿌리를 내린 이후일지라도, 그 운동이 커져가고 새로운 노동자들이 합류할 때마다 동일한 질문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사회주의자의 현장활동

    우선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측면부터 토론해 보자.

    지금 사회주의운동에서 전망을 찾으려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투쟁의 경험을 갖고 있다. 성공적인 노동조합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더 자신감 있게 급진적 전망에 이끌리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려면 이런 대규모의 성공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체로 노동자들은 승리보다는 오히려 패배를 겪으며 새로운 전망을 갈망하게 된다. 만약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모든 문제에 대해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아마 사회주의라는 전망 자체가 등장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초보적인 수준에서 노동자를 단결시키고 투쟁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 점에서 노동조합은 분명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애초에 사회변혁을 위한 도구로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 즉 임금삭감 반대투쟁, 정리해고 반대투쟁, 노동강도 완화투쟁 등 부분적 요구의 쟁취를 목표로 노동조합은 조직된다. 이러한 투쟁은 우리가 마땅히 지지하고 함께 참여해야 할 투쟁이다. 그러나 어떤 목표 아래 이러한 투쟁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투쟁의 양상과 결과가 달라진다.

    우선 통상적인 노동조합운동에서는 임금, 고용과 같은 당장의 요구만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기 때문에, 당장의 요구가 달성되면 더 이상 투쟁동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원하는 것을 쟁취했으니 더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우리는 노동조합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노동자투쟁에 밀려 진지를 빼앗긴 자본가들은 반드시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고 착취율을 높여 손실을 보상받으려 한다. 한 손으로 내준 양보를 다른 손으로 슬그머니 도둑질해간다. 그래서 노동조합들은 ‘당장의 요구’조차도 거듭 반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동조합 임단협의 작동방식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 중 일부는 노동조합 투쟁만으로는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에서 개선할 수 없다는 결론을 깨닫는다. 자본가들이 방향타를 쥐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체제 자체를 바꿔야만 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여전히 노동조합 틀 속에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 자본가들이 경쟁과 착취를 강화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적절한 양보와 거래’ 그리고 ‘회사의 번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후자의 사고방식과 실천방식이 굳어버린 경우를 두고 우리는 조합주의 경향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조합주의 경향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팔아넘김으로써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양상이 너무나 광범해진 나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정규직과는 절대로, 아무것도 같이 안 한다’는 또 다른 편향, 또는 비정규직 내의 더 열악한 층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는 또 하나의 조합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그들을 쫒아내자고 주장하는 일부 노동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당하며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남성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 투쟁하지 않는 것 역시 조합주의의 한 표현이다.

    이 모든 양상이 지금 노동자운동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조합주의는 노동자투쟁을 정규직 대 비정규직으로, 취업노동자 대 실업노동자로, 정주노동자 대 이주노동자로, 남성 대 여성으로, 원청 대 하청으로 분열시킨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일자리만 지키면 된다는 식으로 노동자의 의식을 타락시킨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투쟁의 잠재력을 영원히 잠들어 있게 묻어버린다.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이러한 분열을 막고, 계급적 단결투쟁 속에서 노동자의 자기해방 투쟁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현장 즉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투쟁하는 곳에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핵심은 간단하다. 모든 부분적인 투쟁들 속에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현재의 운동 속에서 미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현장활동에서 제1의 원칙이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전개되는 투쟁대열 ‘바깥에서’ 팔짱을 낀 채 훈수를 두는 데 그치거나, 또는 그 대열에 파묻힌 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는 안 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헌신적으로 함께 하면서,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운동의 미래를 위해 독립적인 사회주의자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모든 정치활동의 기본이다. 이런 관점을 갖지 못할 경우, 투쟁에 대한 환멸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예언적인 진단이 아니라, 현실 투쟁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가령 한국에서 90년대 말 이후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기존 운동의 관료적 구조와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았던 이 투쟁들은 매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고, 때로는 정규직화 쟁취라는 부분적 성과물을 획득하기도 했다. 한 사업장에서 장기간의 파업 끝에 이런 승리를 얻어냈는데, 노동조합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아주 성공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창 투쟁을 전개할 무렵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양상이 정규직화 쟁취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장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통해 정규직화를 쟁취한 일부 노동자들이 투쟁의 기억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과거 자신에게 설움을 안겨줬던 정규직의 배타적 태도를 점점 닮아가고(“나도 이제 정규직이야”), 투쟁 동지들을 멀리하며(“잘못 걸려들면 또 투쟁 때문에 고생할거야”), 오히려 관리자들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모습을 보였다(“고생 안 하려면 사람을 잘 사귀어야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전개했던 또 다른 일부 노동자들은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우리가 투쟁했던 것인가?” “다른 비정규직을 무시하기 위해 정규직이 되려고 했던 것인가?” “또 다른 분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조합 단결투쟁을 했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되새기며 괴로워한 노동자들이 있다.

    이런 노동자들 중 일부는 환멸을 이기지 못한 채 투쟁대열에서 멀어졌다. 또 다른 일부는 환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비정규직 투쟁은 매우 중요하고 절박하며 필수적이지만, 결코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 즉 일부 노동자의 부분적 요구투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체제를 문제 삼는 전체 노동자의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항상 이 투쟁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를 결코 잊지 않을 때에만 투쟁의 엔진이 도중에 꺼져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모색하는 투사들은 항상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한다. 나는 지금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앞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일부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가?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않고 있는가, 아니면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고 있는가?

    2. 쇠퇴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현장활동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성장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전환점이었다.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를 분석한 과거의 혁명가들은 ‘기생성’과 ‘부패성’을 이 시기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으로 지적했다.

    “현재 자본주의가 붕괴 해체되는 시기, 즉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더 이상 배부른 노예 생활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시기를 맞이하면서, 파산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 수단으로 수행해야 할 평화적 개량이라는 낡은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을 내걸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는 의식적으로 노동자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 “쇠퇴기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인간적 생활조건을 보장할 아무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등이 제국주의, 즉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의 기본 결론이다. 이런 시기에 점진적 변화를 꿈꾸는 개량주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노동조합에도 영향을 미친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이 오르게 되는 첫 번째 시험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던져진다. “노동자의 혁명적 단결투쟁 기구로 발돋움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 지배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것인가?” 즉 노동조합이 개량투쟁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지고, 오히려 노동조건 악화를 통해서만 자본가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가혹한 상황이 도래했다. 이제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든가, 아니면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혁명적 투쟁으로 나아가든가 하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태가 됐다.

    노조관료들은 자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스스로 임금동결을 선언하거나, 아니면 노동조건에 관한 일체의 결정권을 자본가들에게 갖다 바치거나, 노사화합 선언을 하면서 회사 살리기 운동으로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의 등을 떠민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관료적 통제를 뚫고 투쟁이 솟구치면 오히려 그 투쟁이 번져나가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갖가지 협박, 무시, 거짓 약속, 시간 끌기, 심지어는 물리력까지 동원해서 ‘자본의 경제경찰’ 노릇을 한다. 자본가들은 당연히 이런 노동조합 지도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며, 언론사들을 동원해 이들이야말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희망이라고 한껏 칭찬해줄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변화는 지난 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뒤늦게 본격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시작한 이 나라는 제국주의 체제의 틈새에서, 특히 미국 자본가들이 펼쳐준 우산 아래서 급격한 성장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성장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틈새’에서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80년대 말의 3저 호황을 끝으로 더 이상의 번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 자본주의도 여지없이 정체기에 접어들었으며, 세계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쇠퇴 흐름에 동조화되었다. 90년대 중반 신문의 경제기사들은 철강, 자동차, 고무, 유리 등 여러 영역에서 ‘과잉생산과 시장포화의 위협’을 떠들어댔다. 한국 자본주의는 급격하게 성장기를 거친 만큼, 아주 급격하게 쇠퇴의 길로 빨려 들어갔다. 97년 IMF 사태가 그 분기점이었다.

    그 이후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다. 광주 캐리어공장에서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구사대가 되어 난동을 부렸고, 한국통신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정규직 노조는 같은 시기에 파업에 들어갔으면서도 단결투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현대중공업노조 집행부는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해고자들을 ‘청산’했으며, 박일수 열사투쟁 시기에도 대의원들을 앞세워 영안실에 난입하는 행패를 부렸다. 그리고 지금은 가장 선두에서 자본의 착취강화 앞잡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반대로 투쟁의 길을 선택한 노동조합들은 여지없이 국가권력의 탄압에 직면했다. 투쟁의 일선에 선 노동자들은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폭력에 이마가 깨지고, 피를 흘리며 감옥으로 끌려갔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소박한 요구만을 내걸지라도, 자본가들은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흉포하게 발길질을 해댄다. 그 이름조차 소박했던 코스콤 노동자들의 농성장 ‘희망마을’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파괴당했다. ‘노동자의 소박한 요구’에 대해 자본가들이 취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은 이제 아무런 안정성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노동조합의 점진적이고 순탄한 발전이란 꿈같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규모 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조차도 끊임없는 노동조건 하락을 수용하는 한에서만 노동조합 명패를 유지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은 그보다 몇 배 이상의 불안정함을 강요당한다.

    그 결과, “상황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둘째 치고 일단 노동조합을 안정화시키고 보자”는 점진주의적 생각이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런 생각이 가장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운동의 여명기에, 그리고 자본주의가 아직 치명적인 위기국면으로 치닫지 않은 시기에는 혁명적 전망을 곧장 들이대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노동조합운동이 위기를 겪는 것은 ‘시기상조의 혁명적 전망’을 제시해서가 아니다. 정반대로, 바로 지금 필요한 혁명적 전망을 한사코 거부하는 조합주의적 태도가 오히려 노동조합운동을 답이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는 노동조합운동에서는 다른 대안이 나올 수가 없다. 설사 아무리 투쟁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존재 기반인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노동조합주의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가!”라는 자본가들의 협박 앞에 노동조합주의는 ‘일단 회사는 살리고 보자’는 노사 협조주의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혁명적 전망을 가질 때에만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협박에 위축되지 않으며, 자본의 노예이기를 멈출 수 있다. 우선 노동조합 활동부터 제대로 하자는 주장은 그 의도가 어떤 것이든 결국 노동자들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장 내일 아침에 노동자계급이 직접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떠벌이는 것이 아니다. 사고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회주의자만이 그런 생각을 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대중이 그런 결론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 시기의 당면 투쟁과 혁명적 전망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요구들 즉 이행강령으로서 대중행동강령을 제시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위해서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납득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이행강령의 관점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은 쇠퇴기 자본주의, 특히 체제 위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장 필수적이다. 이 관점을 거부할 때, 우리의 현장활동은 개량주의 수준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조합운동이 겪게 되는 갈림길 앞에서 많은 노동조합들이 종종 무기력하게 패배한다는 사실로부터 곧장 노동조합에 등을 돌리는 태도를 끌어내는 것 역시 우리는 거부해야 한다. 그런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대중적인 사회주의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 짐이 될 뿐이며, 그런 조직이 있다면 망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든, 그리고 위기가 격화되면 될수록, 소수만의 혁명적 깃발을 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반격을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소비에트와 같은 더 훌륭한 혁명적 대중투쟁기구를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투쟁의 주요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운동이 아직 그런 수준으로 발돋움하지 못했을 때에는 반드시 현재의 운동 속에서 미래를 향해 발돋움할 수 있는 씨앗들을 뿌려가야 한다. 새 우물을 찾기도 전에 낡은 우물에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

    만약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에 등을 돌린 채 마음에 맞는 사람들만을 상대한다면, 결코 대중투쟁을 조직할 수 없을 것이다.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더욱 반동화되고, 자본가들의 공격은 거세진다. 인류 전체가 야만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공격을 격퇴하고 노동자계급이 직접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새로운 사회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다. 이 임무에 실패했을 때 노동자계급은 형벌을 받는다. 그것이 파시즘이다.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모든 시도는 패배와 노동자운동의 끔찍한 궤멸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시도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여기에서도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점진주의, 개량주의, 사회민주주의의 관점과 활동을 한없이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쇠퇴기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우리는 과연 대중 속에서, 노동조합 속에서 어떤 관점을 제공하고 있는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대중의 시야를 코앞에 가둬놓는 점진주의적 활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계기를 붙잡고 대중행동강령에 기초한 혁명적 전망을 제공하고 있는가?

    3. 당 건설을 향한 정치활동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는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 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있는 곳, 그곳이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런 의미의 본격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 즉 수백만의 대중과 대화하고 대중으로부터 배우며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활동을 위해서는 계급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혁명정당이라는 도구가 필수적이다. 명실상부한 계급투쟁 전술이란 곧 당의 전술일 수밖에 없다. 이 관점을 거부하는 경우를 두고 우리는 ‘비당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면 당이 없는 시기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시기에도 물론, 당의 전술까지는 못 되더라도, 사회주의운동은 나름의 전술을 구사하며 활동해야 한다. 그것은 곧 당 건설의 기반을 다지며 당의 등장 시기를 앞당기는 전술일 수밖에 없다. 당이 없는 시기에 모든 전술은 당 건설을 촉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 관점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거부하는 것 역시 비당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당 건설 운동을 강화하고 당의 실체를 내용적으로 준비해가는 세 가지 초점이 있다. 응집적 요소, 대중적 요소, 중간적 요소가 그것이다.

    첫째, 당의 응집적 요소는 계급투쟁에 지도력을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각각의 시기마다 노동자투쟁이 방향을 잃지 않고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정치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신속한 전술적 전환이 요구될 때마다 당을 재무장시키고 운동을 혁신할 수 있는 힘이 요구된다. 이 힘의 근원은 강령적 명확함에 있다. 그런데 강령적 명확함이란 단지 이론적 탐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역사와 교훈을 체득하고 공유하는 것, 그 과정에서 강령의 생명력을 실제로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강령을 확립하기 위한 집단적 토론과 더불어 계급투쟁 속에서 스스로 훈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강령적 슬로건들은 반드시 현실의 투쟁이라는 시험대 위에 올려져야 하며, 그 검증을 이겨내는 것만이 강령으로서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령적 명확함과 응집력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현장 활동가들, 노동자투사들과의 정치적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당의 대중적 요소는 계급투쟁 전술을 수행하는 데에서 기본 동력을 형성하는 부분이다. 일상적인 현장 활동과 더불어 공동전선전술을 통해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 전반적으로 계급투쟁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그 사례를 1919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산업 중심지 토리노, 거기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대열이 집중해 있던 피아트 공장의 자본가들은 노동운동의 전투적 부위를 분쇄하기 위해 분열책동을 구사했다. 상위직급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과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이들과 미숙련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했다. 지금으로 치면 현장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분할하고 이들 사이에 차별과 배타성을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시에 활동했던 ≪신질서≫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이런 분열의 골이 메워져갔다. 상위직급 노동자들이 미숙련 노동자들의 요구를 기꺼이 지지하고, 미숙련 노동자들은 충분히 반발심을 가질 수도 있었던 상위직급 노동자들과 단결하기를 선택했다. 이러한 단결 경향은 우선 공장 내에서 내부위원회로 표현되었으며, 나아가 공장평의회운동으로 상승하면서 계급적 단결투쟁의 힘으로 분출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계급투쟁이 활성화되었을 때 비로소 당은 그 이름에 값하는 실체적 역량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당의 역할이다.

    셋째, 응집적 요소와 대중적 요소를 연결하고 밀착시킬 수 있는 중간적 요소를 만들어내기 위한 투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통상적인 노동조합 투쟁에서도 이 중간적 요소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주요 간부층이 취약할 때, 한편으로는 지도부의 투쟁 지도력이 대중에게 적절하게 미치지 못함으로써 기층의 단결력과 투쟁 에너지를 흩어놓을 위험이 있다. 반대로 대중의 에너지를 단일한 지도력으로 수렴하는 데 실패하고 지도부가 지도부로서 역할하지 못하거나 붕괴할 위험도 있다. 정당 역시 지도부와 대중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중간 지도력이 탄탄하게 형성되어야 각각의 부분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신문을 통한 체계적인 선동을 수행하는 것,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우리의 구호를 확산시키는 것, 이를 중심으로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정치규율과 조직규율을 만들어가는 것 등이 중간적 요소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 과제들이다.

    이렇게 해서 응집적 요소, 대중적 요소, 중간적 요소 각각이 충실하게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도 파괴되지 않을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 각 부분 사이의 총체성과 균형을 확립하는 것, 이를 위해 구체적인 조건에서 관심과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조직화의 핵심 고리를 움켜쥐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가이드라인이어야 한다. 당 건설의 세 요소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러한 활동이 바로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매일의 현장활동과 투쟁을 거치며 항상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우리의 활동과 투쟁이 강령적 명확함과 응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활동과 투쟁이 계급투쟁을 활성화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전위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도록 돕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활동과 투쟁이 이후 당의 중심 역량이 될 선진노동자들에게 정치적 전망과 지도력을 제공해주고 있는가? 이런 활동이 충분히 균형 있게 전개되고 있는가?

    4. 현장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펼치기 위한 수단들

    (1) 혁명적 강령

    사회주의 현장활동의 첫 번째 무기는 강령이다. 강령이란 기본강령 즉 사회주의강령과, 이 강령으로 노동자계급 대중을 인도하는 가교로서 이행강령, 즉 대중행동강령을 중심축으로 한다. 강령은 우리의 집단적이거나 개별적인 활동을 철저하게 원칙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강령 없는 정치활동은 깃발 없는 행진과 마찬가지이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춘 임기응변으로 굴러 떨어진다.

    대공황의 습격과 점차 격렬해지는 체제위기의 먹구름 속에서, 다시 한 번 혁명적 강령의 전통을 세워내야 할 책임이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선전을 통해 근본적인 사회주의 전망을 제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부분적인 노동조합 투쟁과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을 연결시킬 가교 즉 이행강령을 모든 일상 활동에서, 노동조합 투쟁에서, 신문에서, 구두선동에서 적용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2) 전략과 전술

    전략의 핵심은 강령으로 표현된다. 전략은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따라서 한 시대가 제기하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한 그것은 변경될 수 없다. 가령 소비에트 전략은 노동자계급이 직접 국가권력을 장악해야만 체제위기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고통을 일소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한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전투의 방침으로서 소비에트에 관한 당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 전 단계이자 부분적 형태인 공장평의회운동 그리고 일상 시기부터 소비에트 전략의 정신을 제기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과정으로서 노동자 산업통제요구 및 평조합원 운동에 대한 태도 등이 강령에 표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비에트 전략이 다루어지지 않은 강령은 근본적인 사회변혁에 관심 없는 개량주의자들, 의회주의자들의 강령일 수밖에 없다.

    전술은 이 전략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세력을 모으고 훈련시키는 수단이다. 전술은 구체적 정세를 배경으로 한다. 계급들의 배열 상태와 세력관계 즉 정세가 질적으로 바뀐다면 전술 역시 즉시 바뀌어야 하며, 정세가 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전술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가령 현 정세의 골격은 자본가계급의 반동화가 나날이 증폭된다는 것,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유주의 야당세력은 여전히 노동자대중을 기만하려고 애쓰며 자본가정부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조직노동운동의 다수(노동조합 지도부와 개량주의 정당들)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반이명박 전선을 만들려고 애쓰면서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사수하고 투쟁전선을 복구하기 위해 정치적·조직적으로 철저하게 독립적인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것은 곧 혁명적 노동자당, 사회주의 정당일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이다.

    이 정세에서 필요한 전술은 곧 당 건설에 직접 기여하는 전술, 당의 실체를 견고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들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곧 위에서 다룬 세 요소 즉, 강령적 명확함을 기초로 응집적인 부위를 만들어내는 것, 계급투쟁의 활성화를 통해 노동자대중의 일부를 우리 편으로 끌어당기는 것, 응집적인 부위와 대중적 부위를 연결하기 위한 중간층을 형성하는 것 등이다. 이 각각의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사회주의 조직들과 개인들에게 공동의 강령적 토론을 제안해 왔으며, 대중행동강령의 관점에 근거한 노동자 공동투쟁전선을 주장하고, 사회주의 당 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공동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들이 곧 현 시기의 일차적인 전술이며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당면 내용이다. 사회주의 정치활동에서 요술 방망이 같은 것은 없다. 적극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서의 전술적 개입이란 바로 이 각각의 과제들을 실제로 쟁취하는 것,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만이 당 건설운동의 다음 단계로 가장 신속하게 전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3) 현장에 기반을 둔 조직과 현장신문

    사회주의운동을 위한 기본적인 도구는 조직이다. 도구란 모름지기 쓸모 있어야 한다. 따라서 조직이라는 도구 역시 우리 활동에 유용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위한 도구로서 조직은 당연히 현장의 노동자들과 접촉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한다. 즉 조직의 근간을 현장에 둠으로써 조직이 노동자계급의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보증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운영은 정기적이며 규칙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대중적인 사회주의 현장활동의 규율은 반드시 무너진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현장세포(또는 현장분회)라고 한다. 현장세포가 사회주의 조직의 일부로서 활동하려면 당연히 기본적인 정치활동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장에 사회주의자들이 아주 많다면, 다른 수단 없이 이들의 직접적인 구두선동과 선전만으로도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아닌 이상, 다수의 현장노동자들과 규칙적으로 대화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 수단의 가장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바로 현장신문이다.

    현장신문은 노동조합 신문과는 달리 사회주의자의 신문임을 분명히 밝힌다. 일반적인 유인물과는 달리 특정한 사업장의 특정한 노동자들을 향해 규칙적으로 발행한다. 어쩌다 한 번 공장 앞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했다며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이나 격주 단위로 발행의 정기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억압의 구체적인 형태를 빼놓지 않고 폭로하며, 이에 항의하고 규탄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다. 현장신문이 발행되는 사업장은 더 이상 자본의 철옹성일 수 없다.

    현장신문을 발행하는 활동은 결코 소수 필자들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인 현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짧은 편지를 쓰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또는 최근에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사실 현장신문에 대한 이런 지지와 협력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현장에서 사회주의자의 관계망을 짜나가는 가장 기초적인 활동이다. 현장신문에 의한 폭로가 이루어짐으로써 은폐될 수 있었던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성공하거나 중요한 투쟁을 조직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적극적인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과 동지적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장과 관리자들은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선명한 대립선이 그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 선명한 대립선이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의 현장활동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이다.

    이처럼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대중과의 대화를 펼치며,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활동에 현장의 가장 적극적인 노동자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현장신문이다. 그래서 현장신문 없는 현장세포는 무장 해제당한 조직이다. 적어도 아직 자신만의 고유한 무기를 갖지 못한 조직이다. 지금 현장신문을 발행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최대한 빠르게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획과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4) 정치신문과 이론지

    각각의 현장과 지역에서의 활동 및 투쟁은 당연히 전국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모든 활동 및 투쟁의 내용, 양상, 결과, 교훈을 교류하며 서로 배울 수 있도록 조직하는 노력이 없다면 사회주의 정치활동, 나아가 당적 활동이란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물론 조직 그 자체일 것이며, 그 매개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신문이다. 정치신문에 글을 보내고, 읽고 토론함으로써 한 사업장에 갇힐 수 있는 시야를 보다 넓게 확장할 수 있다. 전국적이고 전 계급적인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곧 당적 시야를 갖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지금 정치신문은 노동자투사들이 당 건설 투쟁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수단이 된다.

    이론지는 정치신문보다 깊이 있게 현실을 분석하고, 투쟁의 경험과 전통을 이해하도록 도우며,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가능케 하는 비중 있는 수단이다. ‘현실 투쟁의 급박함’ 때문에 이론은 종종 경시된다. 하지만 훌륭한 이론이란 현실을 설명함으로써, 즉 현실의 원인을 밝게 드러냄으로써 미래를 전망하고 해결책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실천뿐만 아니라 이론으로 무장하지 못한 조직은 가망이 없는 조직이다. 새로 합류한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이론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조직은 절대로 역사를 개척해가는 주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기껏해야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정세에 밀려다니거나, 아무런 일관성 없이 무기력하게 뒤쳐질 것이다.

    5. 사회주의 현장활동은 사회주의자로서 대중과 관계 맺는 것

    사회주의 현장활동을 펼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중심 기준이 있다. 현장의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는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사회주의를 떠벌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회주의자답지 않은 활동가들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만나고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우리를 통상적인 노동조합 간부 내지 아주 열심히 활동하는 헌신적인 노동조합 간부로만 이해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현장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일단 노조 간부의 자격으로만 맺어지면, 그것을 나중에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 노조 간부로서만 대중과 관계를 맺어오다 뒤늦게 정치적인 주장, 사회주의적인 주장을 제기하려고 한다면 십중팔구 스스로 부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노조 활동만 했는데 갑자기 혁명적 정치를 제기하면 상대방이 도망갈지도 몰라.’ 이런 예측을 하며 스스로 자신을 규제하게 된다. 상대방 또한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숨겨왔던 사람’의 말에 신뢰를 보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장에서의 사회주의운동 전망은 완전히 틀어진다. 대중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하고 독불장군 외톨이가 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완연한 조합주의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자기 생각을 고집스럽게 숨기거나, 반대로 사회주의자라며 떠벌이고 다니는 것 대신, 각각의 주어진 상황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입장을 분명하게 제기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조직하는 것이 첫 단추다. 심지어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직접 드러낼 수 없는 경우에조차도, 분명히 해야 할 말을 감추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경우 일시적으로 고립되거나 외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과 실천이 옳다면, 시간의 검증을 거치며 대중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로서 침묵하지 않고 원칙을 제기했다면, 대중은 자기 경험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제공한 원칙적인 판단의 잣대를 떠올릴 것이다. 반대로 사회주의자들이 침묵하고, 원칙을 외면하고, 노조 지도부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대중은 처절한 투쟁의 경험을 거치더라도 사회주의적 전망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일시적인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주의자로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 그것이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복무하는 투사들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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