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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을 건설하자 : 교양도서 3권_노동자는 왜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하며, 혁명정당을 건설해야 하는가?
 사노련  | 2009·11·11 23:39 | HIT :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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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3권 '노동자, 세상을 움켜쥐어라'에 실린 글입니다.)

    노동자는 왜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하며, 혁명정당을 건설해야 하는가?

    양효식

    1. 정치투쟁은‘불온한’ 것?

    “불법 정치파업 엄단”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을 떠난 정치투쟁으로 변질”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면 정부와 자본가단체, 언론 등으로부터 거의 항상 듣는 게 위와 같은 말이다. 이런 엄포와 협박이 하도 상투적이고 허구헌 날 듣는 얘기라서 여기에 겁을 집어먹고 투쟁에서 도망갈 노동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노동자들의 의식 저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를 노리고 이런 언사를 지속한다. 정치투쟁은 뭔가 순수하지 않은 것, 정치투쟁을 하는 것은 애초의 목적을 벗어난 불온한 의도를 품는 것이라는 생각을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 악법 등의 노동법 개악 저지나 한미FTA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를 내건 파업은 “노조의 탈선”이라고 비난하여 임단협 이외의 다른 사안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노조의 본분을 이탈한 것”이라는 생각을 노동자들이 내면화하도록 만들려는 것인데, 이러한 자본의 노림수는 일정 부분 성공한다. “왜 노조가 조합원들과 상관없는 문제를 가지고 파업을 하느냐?”며 힐난하는 조합원들이 나온다. 자본의 논리를 받아 적는 어용들은 이러한 일부 조합원들의 정서를 기반으로 삼아 자본의 악선전을 조합원 대중들 속에 유포한다. 당장의 엄포와 협박보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라 임금과 노동조건 같은 사안을 가지고서 투쟁하더라도 그 투쟁이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정신을 띠고서 전개된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요구가 아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분쇄’를 위해 금속 노동자들이 단위 사업장 울타리를 뛰어넘는 연대투쟁을 벌이거나, 공기업 임금삭감 및 반납에 맞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벌일라 치면 어김없이 저들은 이런 엄포와 비난을 퍼붓는다. 이런 연대투쟁이나 공동투쟁이 그 자체로 아직 계급투쟁은 아니지만1),  이 같은 자본가계급의 행태를 보면 자본가들이 “정치투쟁”을 비난하면서 경계를 하고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다름 아닌 ‘노동자가 의식적으로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것, 하나의 계급으로서 계급적 자각 하에 투쟁하는 것’이다. 즉 투쟁의 요구가 정치적인가 여부를 떠나 (전체 자본가)계급 대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띠는 투쟁인가에 자본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라는 명제의 의미를 영악한 자본가들도 알아채고 있음을 말해준다. 내 부서, 내 사업장의 투쟁을 다른 부서,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과 분리시키는 태도, 남의 투쟁으로 여기는 태도가 노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속에서는 투쟁이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서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으로 확대될 수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두려워하는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자본가들로서는 노동자가 이런 단사주의적 부문주의적 태도에 갇혀 있지 않고, 한 단사에서의 투쟁일지라도 이 투쟁을 전체 노동자와 전체 자본가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 적대에 기초한 더 큰 투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게 되는 상황이 끔찍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노동자가 국가권력의 계급적 본질을 보게 되고 자본가계급의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상황으로 쉽게 발전한다. 그래서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라는 것이다.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과 자본가계급의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투쟁은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 정리해고 저지, 구조조정 반대 등 경제적 요구를 내건 파업에 대해서도 그 파업이 위력적으로 전개되어 자본가의 생산에 타격을 가하고 산업을 마비시키면 어김없이 국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경찰병력, 심지어는 군대까지 투입되어 파업 파괴에 나선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선 일자리를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파업을 사수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공권력과 정면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이 노동자들의 전국적 연대파업으로 확대되면 방어적인 투쟁이 공세적인 투쟁, 즉 자본가 국가에 도전하며 정치권력 투쟁에 나서는 상황으로 발전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경제투쟁(생산, 산업 투쟁)과 정치투쟁은 분리될 수 없다.

    이와 같이 결합되어 있는 경제와 정치를 자본가계급은 분리시키고자 애쓰는데 노동자가 이런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작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노동자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깨고 임금노예제 자체를 철폐하기 위해 정치권력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이다.

    전(前) 자본주의 체제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물론 착취 메커니즘이 투명했고, 경제적 착취와 정치권력 간의 연관성이 직접적이었던 노예제나 봉건제 사회 같은 이전 사회들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시장 교환을 통해 매매되고 국가는 여기서 마치 중립적인 외관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제와 정치가 영역상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자본가 국가는 노동자 투쟁이 전면적인 계급투쟁으로 발전하면 이 중립적인 가면을 주저없이 벗어던지고 그 계급적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때는 경제와 정치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투쟁 속에서 도달하게 된 노동자들의 이러한 의식을 지워버리기 위해 일상 시기에 자본가계급은 경제와 정치가 별개라는 의식을 노동대중들에게 주입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노동자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것, 정치권력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자본가 국가는 온갖 언론매체, 교육기관 등의 이데올로기 기구들을 총동원하여 노동자들 사이에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켜 보는 의식이 자리 잡도록 조장하고, 정치투쟁을 불온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이 당장 정치권력 쟁취투쟁을 벌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정치투쟁 사상에 도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투쟁 시에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 포화를 퍼붓는 것이다. 파업투쟁 시에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보라.

    “근로조건과 상관없는 정치파업은 불법”
    “노조원들은 이제 정치투쟁이 아니라 순수한 노조원들의 권익을 원하고 있다.”
    “노조 활동이 정치투쟁이 아닌 조합원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파업이 아닌 조합원들의 실리를 지키는 경제적 요구에 한정되는 노조 본래의 원칙에 충실하라”
    “우리 일터가 불법 정치파업의 볼모가 돼서는 안 된다.”
    “‘정치투쟁 이제 그만’ 등 돌린 현대차 조합원들”
    “노동조합 운동이 근로자 복지 향상보다는 정치투쟁화 하면서 현장의 조합원과 멀어진 것이다.”
    “정치투쟁과 임단협을 연계하려는 노동계의 하투(夏鬪 )전략”
    “파업이 정치파업으로 변질되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기업의 생산현장을 볼모로 한 정치파업을 철회하라”

    2. “정치/경제를 분리시켜라!”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이나 또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맞서 일자리나 단협상의 복지 조항 등의 이미 획득한 성과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대해서도 결코 물리적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같은 경제투쟁에 대해서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온시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랬다간 오히려 경제투쟁/정치투쟁을 분리시켜 내기가 더 어려워지고 더 잘 결합하여 투쟁이 확대 발전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투쟁이 정치투쟁과 결합하고 정치투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경제투쟁에서 정치적 뇌관을 떼어내고 솎아내서 결합의 고리를 끊어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운동 내에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전략에 호응하거나 이데올로기 공세에 휘둘려 굴복하는 기회주의 경향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실리적 조합주의나 경제주의가 바로 그러한 경향들이다. 이러한 세력들이 나서서 투쟁을 제한하려 하고 투쟁의 맥을 끊어놓으려 한다. 정치 문제는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노동운동의 임무는 노동대중의 처우 개선에 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유포하여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킨다.

    자본가계급의 정치투쟁 분리전략은 노동운동 내부의 이러한 경향들을 매개로 해서 보다 용이하게 관철된다. 그래서 노동해방 혁명가 레닌은 이 같은 실리적 조합주의나 경제주의는 부르주아지에게 노동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노예화 시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레닌은 “개별 고용주들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 전체와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를 겨냥해서 투쟁에 착수할 때야 비로소 노동자 투쟁은 계급투쟁이 된다”고 말했는데, 실리적 조합주의나 경제주의는 바로 노동자 투쟁이 이렇게 계급투쟁이 되는 것을 운동 내부로부터 차단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하는 세력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본격화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처음에 이 같은 실리적 조합주의나 경제주의가 발붙이기 쉽지 않았다. 임금인상 투쟁이나 노조 민주화, 민주노조 설립을 위한 투쟁으로 시작했어도 여기에 투쟁을 제한하지 않았다. 군사독재의 탄압에 직면하여 ‘전두환,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정치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을 경제투쟁에 제한시키려 하고 정치투쟁에서는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게 주도권을 넘겨줌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을 그들의 꼬리로 전락시키려 하는 기회주의 경향들이 운동 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투쟁하는 대중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퇴장하고 절차적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민주노조운동도 합법화 제도권화 되고, 그에 따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려는 경향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기회주의 경향들은 새로운 옷을 걸치고 등장했다. 개량주의와 관료주의가 그것이다. 이 노동운동 내 합법 개량주의 정치세력들과 관료적 노조 지도부들은 노동자의 정치투쟁 사상 그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며, 진보정당 건설을 주창하였다. 그 동안 경제적 요구를 둘러싼 전투적 파업투쟁과 전투적 조합운동은 소모적이며 집단 이기주의로만 비칠 수 있으니 이제는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제도 개선과 “정치·정책적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치투쟁은 대중투쟁이기보다는 노동대중을 대리하여 의회 내에서 전문 정치인들이 하는 활동이다.

    정치투쟁 개념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대중투쟁이 아닌 이러한 식의 정치투쟁, 제도권 내로 제한되는 정치투쟁이라면 자본가계급으로선 전혀 경계할 필요가 없다. 진보정당이 의회와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집권하겠다는 것이라면 전혀 두려울 것 없으니 얼마든지 해보라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내심 환영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의회주의 진보정당 운동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투쟁을 내부로부터 순치시키고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알아서 차단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량주의 정치세력들과 노조관료들은 정치투쟁은 당이, 경제투쟁은 노조가 각각 분리하여 떠맡는다는 이른바 양날개 전략을 유포하면서 다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였다. 정치투쟁은 대중투쟁과 분리된 의회활동과 선거운동으로 제한되고, 경제투쟁은 자본가 정치권력에 대한 도전을 회피하는 조합주의 운동으로 제한되는 그러한 노동자운동을 만드는 것이 바로 양날개 전략이 지향하는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부정하는 이러한 전문가, 엘리트 중심의 대리주의 정치는 개량주의적인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전형적인 것인데 진보정당운동은 바로 이러한 사민주의를 민주노조운동에 도입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개량주의 정치세력들과 노조관료들은 당시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노동자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열망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여 의회주의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해서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이 아직 이런 식으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완전하게 분리되지는 않았던 1996년 말~97년 초에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이 ‘노개투 총파업’은 정치총파업으로서 당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통과시키려던 김영삼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자본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위력적인 총파업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동력이 계속 불어났고, 전 민중적인 지지를 끌어내고 투쟁의 저변을 넓히면서 미조직 대중들로까지 투쟁의 불길이 거대하게 번져나갈 기세를 보였다. 투쟁을 더욱 확대하여 노동법 개악을 완전 철회시키고 정권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파업 중단을 선포하여 투쟁 확산에 찬물을 끼얹고 정권과 협상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 국회의원 1명만 있었더라도 노동법 개악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진보정당 건설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위력적인 정치총파업이 1명의 국회의원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하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대중투쟁과 분리된 의회주의 대리주의로 왜곡, 변질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3. 노동자의 집단적 힘과 조합주의 정치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체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체제다. 그래서 이 자본가 체제의 힘은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데서 오는 경제권력에만 의지하고 있지 않다. 국가기구, 경찰,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통해 행사되는 정치권력이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권력의 한 부분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데올로기 권력, 즉 언론매체와 교육제도 등을 통해 우리의 생각까지 지배하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대리주의 정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부정하고 선거로 의회 의석을 늘려나가는 점진적인 방식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해 나간다는 개량주의를 기본 노선으로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특히 서유럽에서 개량주의 정당들은 지금까지 여러 번 집권하기도 했다. 오늘날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이러한 ‘점진적인 사회주의’조차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로 더욱 더 우경화했지만, 과거에 집권한 사민주의 정당들은 개량주의적인 방식으로나마 진보적, 좌파적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경향이 보일 때는 이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정치·이데올로기 권력이 가차 없이 작동하여 이 선출된 진보정부, 좌파정부를 무력화시켰다. 선거로 선출된 정부라는 사실은 이러한 권력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 도피를 통해 이러한 정부들의 경제 정책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이러한 정당 내에 좀 더 좌익적인 인사들에게 언론 매체를 통해 색깔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대중적인 반감을 조장하여 고립시켰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인 것인데, 1970년대 칠레에서 유혈 군사쿠데타를 통해 아옌데 정권을 전복한 데서 보듯 아예 군부가 나서서 선출된 정부를 무력으로 짓밟고 수십만 명을 학살하여 자본주의 침해에 대한 피의 보복을 가했다.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이러한 권력들을 그대로 놓아둔 채 자본주의를 개혁해 나가겠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할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하기까지 한가를 엄중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개량주의 정당에 의한 대리주의 정치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과연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가계급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적하고 나아가 그 권력을 분쇄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한 힘은 존재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과의 일상적 전투를 치르는 데서 만들어 나가는 집단적 조직화에 바로 그 힘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가 창조되는 생산 과정에서 바로 노동자들의 그 힘이 만들어진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공장, 사무소, 병원, 마트, 철도 등등과 같은 큰 단위로 함께 모아 놓는다. 이러한 단위들에서 우리의 노동이 대규모로 조직된다. 과거 자본주의 이전에는, 가령 탁자를 하나 만든다고 할 때 그것은 한 사람 내지는 두 사람의 노동으로 만든다. 오늘날 가구회사가 탁자를 만드는 데는 한 20명 정도의 노동이 들 것이다. 나무를 베는 벌목 노동자로 시작해서 가구를 디자인하는 노동자, 다듬고 조립하는 노동자들을 거쳐 스프레이를 뿌려 광택을 내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을 거친다. 탁자 같은 단순한 생산물이 아니라, 수백 가지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 명이 조직화 되어 집단적으로 노동하며 대규모로 협동 작업을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착취한다. 사회적 협동과 분업의 기초 위에서 노동과정이 조직된다. 자본주의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한테 거대한 집단적 힘을 부여한다. 이 힘은 공장과 매장과 병원과 운송체계 등등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그들의 목적을 위해, 즉 이윤을 위해 이 힘을 통제하고 사용하는 속에서 창조한다.

    그러나 공장을 돌아가게 하는 데 사용되는 집단적 힘은 공장을 멈추게 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나아가 자본가가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공장을 돌리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 거대한 경제적 힘을 사용하려면 집단으로 행동해야 한다. 파업에 돌입하여 기계를 멈추는 데서 연대와 단결은 결정적이다. 파업은 단지 사장에 타격을 입혀 임금을 인상하도록 강제하는 소극적인 힘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모든 파업은 그 파업의 목표와 요구가 아무리 제한된 것일지라도 그 안에 사회주의의 싹을 틔운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그것은 사람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집단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경쟁과 맹목적이고 광기 어린 이윤 추구의 포로가 되는 것을 대신하여 공동의 선을 위해 함께 협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거대한 협동적 집단적 힘이 이윤 확대에 눈 먼 지배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와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주적으로 조정되고 발휘될 것이다.

    사회주의는 사상으로는 좋지만, 사람들이 이기적이라서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들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파업을 통해 고양되는 경험을 맛보지 못한, 운이 없는 사람들이다. 파업을 통해 가장 의식적으로 발휘되는 이러한 협동과 연대의 힘은 사회주의가 단순히 책 속의 이상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들에 의해 현실에서 운영될 수 있는 체제인지를 맹아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파업노동자들이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여 파업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파업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결된 집단행동만이 유일한 보증물이다. 노동자의 이러한 집단성과 협동성은 다름 아닌 바로 자본주의가 조직해 놓은 결과물이다. 생산에서의 집단행동, 투쟁에서의 집단행동이라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위치가 만들어내는 이러한 ‘논리’는 우리를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인도한다.

    임금 인상이든 노동조건 개선이든 투쟁의 목표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노동자가 일단 투쟁에 나서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결하면 머릿속의 생각과 사상도 바뀌기 시작한다. 더 이상 저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내 행동의 주인이고 나와 내 동료들의 집단적 힘을 의식하게 되며 무엇인가를 변화시켜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게 된다. 파업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경험은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충돌한다.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하는 정부를 더 이상 중립적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투쟁 속에서 노동자는 변화한다.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배운다. 또한 집단적 조직화와 집단적 행동의 힘으로 사회가 노동자에게 적대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도전하여 바꿔낼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이 힘은 거대한 대중파업으로 발전하여 자본가 체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개별 사업장의 투쟁들이 전국적으로 연쇄적인 파업 물결을 이루면서 정권과 체제를 위협하는 거대한 집단적 힘을 만들어냈다. 또한 1996~97년 총파업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자본가 정부를 겨냥하여 전개한 정치파업으로서, 노동자의 집단적 힘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권력에 대적할 수 있는 대체 권력의 유일한 잠재적 원천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이 집단적 힘이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자본주의를 패배시킬 수 있을 만큼 완전히 발휘될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만으로는 -- 아무리 전투적인 노조운동일지라도 -- 결코 충분하지 않다.

    한 때 세계노동운동사에서는 ‘정치투쟁’을 배제하고 오직 생산과 산업에 타격을 가하는 노동조합의 전투적 투쟁만이, 고용주들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만이 계급투쟁이라고 보는 경향이 존재했다. 생디칼리즘(전투적 노조주의)이라고 불린 이러한 운동경향은 20세기 전반 유럽에서 노동자 정당이라고 하는 당들이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동원하는 것을 기피하고 ‘정치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의회주의·대리주의 정치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 정당한 반감을 가지고서 등장했다.

    그러나 의회주의·대리주의 ‘정치투쟁’에 대한 정당한 반대가 정치투쟁 일반에 대한 반대로 부당하게 확대되면서 정치권력 투쟁을 기피함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효과적인 도전을 조직하는 데 무능함을 노정했다. 총파업 같은 대중투쟁 속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결합하고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우러져 전체 노동자계급을 결집시키면서 계급 대 계급의 투쟁으로 확대 발전하고, 이로써 자본가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체권력―노동자평의회 같은―을 만들어나가는 대중파업의 논리를 생디칼리즘은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총파업으로 경제를 마비시켜서 자본주의 체제를 타격하고 무너뜨릴 수 있다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전략으로 인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분리를 조장하는 데 일조했고, 결국은 의도와는 달리 의회주의·대리주의 정치를 강화시키는 역할만 했다.

    이러한 생디칼리즘과 조합주의가 흔히 같은 것으로 혼동되고 있는데 둘은 서로 다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합주의는 정치를 배제하지 않으며, 조합주의에 고유한 정치를 발전시킨다. 조합주의는 노동자 정당운동이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조합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혁명적 노동자 정당운동과 혁명적 정치세력화이다.2)

    조합주의 정치는 대중투쟁에서 분리되어 ‘제도권 진출’로 특화된 정치이다.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선거운동과 의회활동을 담당할 정당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정당의 임무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대리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왜곡시킨다. 이와 같이 경제전선에서는 노동조합이, 의회 정치전선에서는 정당이 담당한다는 식으로 분업을 이뤄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차단하고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상층 교섭으로 대체한다.

    이런 식의 왜곡된 정치/경제의 분리는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것을 억제하는 주요 기제가 된다. 레닌이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 “정치는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다. 정치는 의회와 선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힘 대 노동자계급의 힘에 관한, 즉 계급권력에 관한 것이다. 국가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4. 왜 혁명정당인가?

    노동자의 집단적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이 힘이 내부로부터 차단되지 않고 노동자계급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뻗어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이 같은 왜곡된 조합주의 정치를 대체할 완전히 다른 정치가 필요하며, 그것의 구체화된 표현으로서 의회주의 정당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한 당은 계급의 전위부대로서 혁명적 노동자당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직 이러한 전위에 의해 인도되는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이 스스로를 하나의 계급으로 의식하고, 개별 고용주만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계급과 그 계급의 정부를 겨냥한 투쟁에 착수할 때에만 완전한 의미의 계급투쟁이 된다.

    노동자계급 속에서 선전과 선동을 수행하고 노동자계급을 조직하여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투쟁을 전체 계급의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노동자계급 전위의 임무다. 이것은 자생적인 투쟁을 목적의식적인 노동계급 정당의 투쟁으로, 즉 자본가 국가의 타도와 노동자 권력의 수립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목표를 위한 당의 투쟁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노동운동사는 노동자계급이 조합주의 정치를 넘어 혁명적 노동자당의 지도 아래 자본가계급의 정치권력을 타도하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한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과 이 노동자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당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러시아 혁명에 앞서 역사상 처음으로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맹아적인 노동자 국가가 수립된 일이 있었다. 파리코뮌이 그것이다. 1871년 3월에 파리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부를 세웠다. 이 파리코뮌이 취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상비군과 경찰을 해산하고, 이를 인민의용군으로 대신한 것이었다. 모든 관리는 직접 선출되고, 평균적인 노동자 임금을 받았다. 나아가 그들은 언제든 즉각 소환 가능했다.

    파리코뮌은 얼마 안 가 프랑스 정부에 의해 분쇄당했다. 코뮌에 참가했다고 하여 2만여 명의 남녀가 학살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 국가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모델을 남겼다. 지금까지의 모든 국가들은 소수 착취자가 부와 권력을 틀어쥐는 것을 보장해주는 수단이었다. 노동자 국가는 노동인민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다.

    ‘코뮌 국가’는 러시아에서 1905년과 1917년 혁명에서 다시 출현했다. 그러나 파리코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생산에서 노동자가 갖는 집단적 힘을 반영하면서도 조합 조직의 한계를 넘어서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표현하는 대중투쟁기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소비에트가 그것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다. 소비에트는 처음 공장 대표자 평의회로 1905년 10월에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처음 출현했다. 소박한 임금인상을 요구한 인쇄 노동자들의 파업위원회로 처음 결성된 소비에트는 페테르스부르크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로 성장했다. 이 정치적 대표기구는 직종이나 업종 등 노동조합 조직의 부문적 분할을 가로질러 현장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장 조직의 힘에 기반했기 때문에 그 어떤 노동자 조직도 넘볼 수 없는 계급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다.

    1905년 혁명은 분쇄되었지만, 소비에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거대한 규모로 다시 출현하여 짜르 전제정을 무너뜨렸다. 이번에는 이 평의회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1차 대전에 연루된 러시아의 전쟁 지속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수백만 병사들을 포함하였다. 이로 인해 소비에트는 직접 국가권력의 궁극적 원천인 무력 독점에 도전하였다. 평의회는 많은 병사들의 능동적인 지지를 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노동자 의용군, 적위대 등을 창설하였다. 짜르를 대체한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이러한 맹아적인 노동자정부와 대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중권력 상황은 불안정한 체제다. 왜냐하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자평의회를 공격하여 자신들의 무력 독점을 회복하든가, 아니면 평의회가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스스로 권력을 쥐든가 둘 중의 하나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10월에 볼셰비키가 이끄는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잡았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생적으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고 이중권력 상황을 창출할지라도 이러한 조건들만으로 노동자권력을 성공시키는 데 충분치는 않다는 것을,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1923년 독일 혁명은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 노동자평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보통 개량주의 정당들이다. 노동자들이 그 같은 평의회를 창조해냄으로써 과거와 단절할 때조차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기존의 많은 전통을 함께 가지고 온다. 특히 과거에 자신들을 이끌었던 세력에 대한 충성심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1917년 2월에 러시아에서 양대 개량주의 정당인 멘셰비키 당과 사회혁명당은 소비에트에서 다수파를 이루었다. 즉 과반수의 자파 대의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비슷하게 1918년 11월 독일에서 출현한 노동자·병사 평의회도 개량주의 사민당과 독립사민당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 두 혁명은 서로 다른 결말로 나아갔다. 독일에서는 자본주의 지배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형태로 회복되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았고, 성공적인 노동자혁명이라는 결말을 가져왔다. 이러한 차이를 빚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러시아에서는 혁명 시작 때부터 혁명적 노동자정당이 존재한 반면, 독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볼셰비키 당은 레닌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인자들의 조직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1903년에 창건되었다. 볼셰비키 당은 1905년 혁명에 참가하였고, 혁명이 패배한 뒤에 거의 해체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레닌을 중심으로 중핵이 결집하여, 1906년에서 1912년까지의 힘든 기간 동안 조직을 유지해 나갔다. 1912년에 레나 금광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에 대해 분노의 물결이 일면서 러시아 노동자투쟁의 고양이 시작되었을 때 볼셰비키 당은 준비되어 있었고, 그들의 반합법 신문인 프라우다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광범한 청중을 확보했다.

    이 조직은 1914년 8월에 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뒤이은 탄압에도 살아남아, 전쟁과 전제정의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명확히 대변할 수 있었다. 이것이 1917년 2월 혁명으로 터져 나왔다.

    볼셰비키 당은 처음에 소비에트에서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러나 레닌의 지도 아래 이 당은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임시정부 타도라는 목표 쪽으로 획득한다는 과업을 떠맡았다. 볼셰비키 당은 단지 소수 지지만으로 권력을 잡는다는 생각을 거부했고, 제2차 혁명이 필요함을 “참을성 있게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끈질긴 설득과 전술의 올바름을 통해 볼셰비키 당은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이 혁명, 즉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는 또 한 차례의 혁명이 필요함을 납득시켰다. 1917년 늦여름과 초가을에 이르러 볼셰비키 당은 소비에트에서 다수파를 점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레닌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당에 설득시키느라 거듭되는 긴 당내 논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10월 25일 임시정부는 타도되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어땠는가? 독일의 혁명적 좌파에는 레닌에 견줄 만한 탁월한 지도자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었다. 그들이 결여한 것은 당이었다. 로자와 그녀의 지지자들인 스파르타쿠스단은 개량주의 사민당의 일부로 남아 있었는데 이 사민당이 1차 세계대전을 지지한 뒤에도 남아 있었다. 그들은 1917년에 제명되고 나서야 그 당을 떠났다. 그 뒤 로자는 볼셰비키 당을 모델로 하여 독일공산당을 창건하였는데, 이 때는 이미 혁명이 발발하고 난 뒤인 1918년 12월이었다.

    이 때는 너무 늦었다. 개량주의자들이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지배했다. 사민당 출신 총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독일군 총참모부와 거래하여 혁명적 좌파를 분쇄했다. 혁명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급진화 되었지만, 어떤 효과적인 지도부도 갖고 있지 못했다. 우익의 도발에 넘어가 1919년 1월에 때 이른 봉기를 일으켰다가 스파르타쿠스단원들은 우익에 학살당했다. 로자는 봉기에 반대했지만, 결국 이 학살의 주 희생자가 되었다.

    혁명정당은 모든 성공적인 혁명에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나 무엇이 혁명정당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당은 노동자계급의 대용품이나 대리자가 아니다. 스탈린이 맑스주의를 왜곡시킴으로 인해 생겨난 최악의 것이 바로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당’이라는 이미지다. 노동자계급을 ‘위해서’ 혁명을 하는 당이라는 이미지다.

    이 같은 당 개념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맑스의 사회주의 개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혁명적 상황을 낳는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당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 운동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에너지를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한다는 목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의 주요 지도자였던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면, “지도 조직이 없다면 대중의 에너지는 피스톤 박스 속에 압착되지 않은 스팀처럼 그냥 흩날려버릴 것이다. 그러나 물체를 움직이는 것은 피스톤이나 박스가 아니라 스팀이다.”

    혁명정당 건설과 관련하여 과거 혁명들의 경험으로부터 끌어내야 할 한 가지 중대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기 전에, 그것도 한참 전부터 혁명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적 상황 전개를 보고 나서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레닌이 로자와 구별되는 것은 일찌기 1903년 무렵부터 당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당 건설투쟁을 전면화했던 데 비해 로자는 개량주의 사민당과의 결별을 끝까지 주저하다가 혁명이 터지고 나서야 혁명정당 건설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볼셰비키 당은 14년간에 걸친 노동자운동의 상승과 하강으로부터 전략·전술과 조직상의 통일적인 경험과 훈련을 갖춰나간 데 비해 스파르타쿠스단은 허약하고 분열되고 지리멸렬한 그룹으로서 적의 역공에 매우 취약하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불리하더라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에 ‘지금’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오늘의 정치투쟁

    - 혁명당 건설투쟁에 나서자!

    오늘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은 공황의 고통을 전가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발악적인 공격과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금 개별적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투쟁이 전체 계급의 투쟁으로, 전국적인 정치투쟁으로 확대 발전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정면 도전할 때만이 이러한 공황의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지금 이러한 길에 가로놓인 내부 걸림돌이 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개량주의 정치세력과 노동조합 관료 지도부들이 노동자운동에 미치고 있는 투항적인 反노동자계급적 지도력이다. 노동자투쟁을 부르주아 의회정치 속으로 가두려 하고 나아가 민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갖다 바치려 하는 개량주의 노동자당, 그리고 계급투쟁 대신 끊임없이 계급협조와 양보·타협의 길을 찾고자 하는 노동조합 관료들의 잘못된 지도력은 노동자투쟁의 발전을 곳곳에서 끊어놓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전투적 활력이 가로막히지 않고 거침없이 뻗어나갈 수 있게 하려면, 선진노동자들은 대담하고 공세적인 노동자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과 함께, 개량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이 노동자운동에 미치고 있는 지배적인 힘을 타격하면서 혁명적인 지도력을 그 대안으로 세워 나가는 투쟁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도 지금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에 나서야 하며 당 건설투쟁을 전면적으로 펼쳐야 한다.

    ‘노동자는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명제는 지금 우리에게 이와 같은 혁명정당 건설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구체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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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다고 계급투쟁과 무관하다는 얘기가 아니고, 단지 계급투쟁의 맹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위의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이나 한미FTA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을 내건 투쟁도 그 자체로 계급투쟁은 아니다. 정부를 겨냥하여 법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정부 정책 변화를 강제하려는 이 같은 투쟁들도 정치투쟁이긴 하지만, 노동자계급 정치권력 쟁취투쟁으로의 발전 전망을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한 그 투쟁들은 노동조합적 정치투쟁을 넘어서지 못한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왜냐하면 계급투쟁, 즉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은 자본가 권력인가 노동자 권력인가 하는 권력을 건 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2) 과거 레닌이 비판했던 러시아의 경제주의도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정치활동 자체를 배제하진 않았다. 그 정치활동이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반정부 운동을 지지하고 이들의 주도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종속적인 정치활동인 한에서는 적극 찬성했다. 경제주의가 반대한 것은 정치활동 일반이 아니라 독자적인 노동계급 정치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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