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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방향타 : 교양도서 3권_파업은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다!
 사노련  | 2009·11·11 23:37 | HIT : 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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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3권 '노동자, 세상을 움켜쥐어라'에 실린 글입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다!

    강진관

    파업이란 무엇인가? 파업의 의의는 무엇인가? 진정한 파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파업의 승리를 위해 어떤 원칙과 전술을 갖고 싸워야 하는가? 파업이 끝나면 다시 무엇을 예비해야 하는가? 파업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질문들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노동자들이 왜 파업에 나서게 되는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을 때, 노동자들의 파업이 얼마나 정당한지를 확신할 수 있으며, 파업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내가 왜 파업을 하는지, 왜 파업에 나서게 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결의와 자신감은 쉽게 꺾기지 않을 것이다. “왜 자본주의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지는가?”

    1. 파업이란 무엇인가?

    1) 왜 파업에 나서는가?

    노동자들은 왜 파업에 나서는가? 노조가 지침을 내려서인가, 아니면 노동자로서 파업의 정당성을 굳게 확신하기 때문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자!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조짐을 보이면 자본가와 정부는 방송과 신문을 동원하여 파업을 비난한다. 마치 파업이 노사화합을 거부하는 일부 “강경파” 때문이거나,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의 개입 때문에 벌어지는 것처럼 거짓으로 선전한다. 곧이어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게 되면 자본가들은 경찰들을 불러와 공장과 사업장을 봉쇄하고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 검찰은 지도부와 노동자투사들을 수배·구속하고 법원은 형을 때려 감옥에 가둔다. 경찰의 폭력, 검찰의 구속, 법원의 판결과 감옥행은 ‘파업이 부당하다’는 점에 초점을 잡는다.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파업기간 동안에 노동자들은 엄청난 어려움과 고난이 뒤따른다는 점을 알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의 고통,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피로, 물리적 충돌에 따르는 부상, 경찰과 검찰의 연행·수배·구속 등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것은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떠들어댄다. “우리 자본가들은 엄청난 손실을 야기하는 파업을 바라지 않으며. 평화롭게 공장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오직 투쟁만을 외치는 강경파들과 외부세력이 파업을 조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제부터 우리는 자본가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웃기는 소리인가를 알게 될 것이며, 노동자들의 파업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확실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무엇이 파업을 부르는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자본가들은 오로지 돈벌이, 즉 ‘이윤’을 뽑아내려고 노동자들을 고용해 공장을 가동한다. 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긁어모아 부의 성채를 높이 쌓는 구상뿐이다. 구상이 끝나면 우선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내리려고 싸움을 걸어온다. 또한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노동 강도를 높여서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짜려 한다. 심지어 회사가 어렵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며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실업자로 만든다.

    자본가들의 끝없는 착취욕은 노동자들을 몹시 화나게 하여 행동하도록 자극한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정면충돌한다. 본래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꺼리지 않을 각오가 돼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도둑질하고 장시간 노동과 극심한 노동 강도를 강요하는 행위를 최고의 윤리로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알게 된다. “자본가가 이익을 많이 내려고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의 이익은 점점 줄어들어 생존을 위협 당한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질수록 자본가의 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피할 수 없다!”

    이처럼 노동자의 생존권 사수와 자본가의 이윤추구 사이에 평화는 없다. 오직 대립과 투쟁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일 자본가의 거짓 논리와 협박에 못 이겨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자본가에게 맡기고 투쟁하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겨우 죽지 않고 일할 정도만 임금을 지급할 것이다. 노동시간은 계속 길어질 것이다. 작업량도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파업에 나서지 않았던 암울했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쥐꼬리만큼 임금을 받으면서도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작업장에서 소처럼 일만 해야 했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와 하루 종일 기계를 돌리고,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청난 생산량을 쳐내기 위해 쌩쌩 돌아가는 라인속도에 얽매여서 파김치가 되도록 전쟁 같은 노동을 강요당했다.

    사태가 이리 돌아가는데 어떤 노동자가 ‘아~ 옛날이여!’를 외칠 수 있겠는가! 어떤 노동자가 자신이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할 것이고, 과도한 노동에 혹사당해 생명까지 위협받는 비참한 상황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결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파업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능력을 유지하고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마저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본가의 부당한 횡포가 노동자들의 분노와 항의를 일으킨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조금도 양보할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노동자들은 집단적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일부러 불량품을 만들어 내거나 작업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래도 자본가가 계속 버티면 노동자들은 공장을 멈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계가 돌아가는 한 자본가의 금고에는 돈다발이 차곡차곡 쌓이고, 돈벌이가 잘 되는 한 자본가는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불타는 탐욕과 똥고집이 결국 공장을 멈추게 한다. ‘공장을 완전히 멈추는 것’, 바로 파업을 부르는 것이다.

    파업을 부르는 나팔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서로 대립하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파업을 부르는 나팔수는 이윤 착취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립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업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인내심 있는 노동자라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끝없이 쥐어짜고 부려먹으려 하는 한, 자본가정부가 온갖 악법을 만들어 자본가들이 더 많이 착취하도록 돕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한, 파업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파업을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운명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업이 없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본가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쥐어짜 긁어모은 이윤으로 온갖 부와 사치를 누리는 자본가들이 사라져야만 노동자들의 파업도 사그라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파업을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이며 자본가들은 파업을 재촉하는 산파이다.

    3) 파업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파업은 생산을 멈추는 것이다. 공장의 기계를 멈추는 것, 철도와 지하철과 버스를 멈추는 것, 유통매장의 상품판매를 중단하는 것, 공공기관의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이다. 모든 생산·판매·서비스를 중단해서 자본가와 정부의 이윤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정부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완강하게 버티는 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이윤착취의 심장인 생산을 멈추고,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을 멈춰 그들을 압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자본가와 정부는 이윤의 고리가 끊기고 공공기관이 마비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정당한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면 자본가들과 정부는 파업이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며 아우성친다. 그런데 파업의 권리란 ‘자본가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힐 권리’, ‘정부 관료들이 목에 힘주고 거드름을 피우지 못하게 할 권리’를 뜻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경제적 손실”, “사회혼란”을 운운하는 자본가들과 정부의 호들갑에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왜냐면 자본가들과 정부의 주장은, 남의 돈을 갈취하는 강도를 잡았더니 강도가 “왜 나를 잡느냐”고 따지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바로 파업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에게 결정적인 손실을 입혀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무기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설 때 자본가들의 경제적 손실을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파업은 자본가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이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지불능력은 있을까를 걱정한다면, 그 순간 파업의 위력과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진정한 파업은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손실을 주어 질겁하게 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게 강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절박한 요구를 기필코 쟁취한다는 결사적인 의지로 자본가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파업이 끝날 때까지 한 치 흔들림 없이 비타협적으로 파업대열을 유지하고 밀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파업승리의 지름길이다. 세차게 달리는 말에 올라탄 기수가 말의 고삐를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말에서 떨어져 죽게 되거나 큰 부상을 입게 된다. 파업의 고삐도 말의 고삐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는 생명줄과 같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자본가에게 심장이 멈출 정도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완강함을 유지하는 태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생산·유통·판매·공공서비스를 확실하게 중단시키는 파업, 자본가들의 이윤과 정부의 운영체계에 강력한 타격을 입히는 파업이 진정한 파업이다. 진정한 파업은 자본가들과 정부를 굴복시켜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할 수 있게 하는 위력적인 무기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노동자들 다수가 단결하여 파업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동자파업의 정당성과 진정한 파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파업 속에 숨어있는 ‘중요한 의의’들을 확인할 차례가 되었다. 자본가들은 파업을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게 만드는 “괴물”이라고 혐오스럽게 말하지만, 우리는 파업을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도록 훈련하는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라고 부른다.

    2. 살아 숨 쉬는 파업의 의의

    1) 파업은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드러낸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단 하나의 제품도 생산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물건도 운반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상품도 판매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가에게 단 한 푼의 이윤도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윤욕에 불타는 자본가들은 눈알이 뒤집혀 “당장 현장에 복귀하여 일을 하라!”고 지껄인다.

    왜 자본가들은 노동자파업에 광분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가들은 스스로 단 하나의 제품도 생산할 수 없으며, 단 하나의 물건도 운반할 수 없으며. 단 하나의 상품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노동자들이 생산을 하고, 운반을 하고, 판매를 하고, 재고조사를 하고, 통계를 내고, 회계를 처리해 왔다. 이러한 일들은 자본가들 없이도 노동자들이 아주 잘 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마자 자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파업은 이 사회를 움직이고 지탱하는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사회를 건설하고 움직이며 성장시키는 실제 주인공이 노동자들이라는 사실, 노동자들이 없다면 한줌밖에 안 되는 자본가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그동안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배를 채우고 공장과 사업장을 성장시켜 왔다는 사실을 노동자파업은 사실 그대로 증명한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 앞에서 자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심한 작태뿐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파업을 멈추라고 괴성을 지르는 일, 용역깡패와 폭력경찰을 불러들여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파업을 파괴하는 일, 언론을 매수하여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비난하는 추악한 꼬락서니를 세상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발악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더 큰 분노를 사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노동자들이 죽어라고 일하는 동안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짤 궁리만 하는 현실, 이 사회의 모든 물건들을 노동자들이 만들었지만 노동자들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자본가들이 모두 챙겨가는 현실, 물건을 만들고 운송하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이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생산과 분배에서 노동자들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임금과 고용에 한정된 요구를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의문과 자본가들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여기서 잠깐 일상 시기로 돌아가 보자! 일상 시기에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나, 모순덩어리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지 않는다. 투쟁하지 않는 일상 시기에 노동자들은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노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본가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 노동자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다른 자본가에게 고용되어야 하며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도 자본가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다시 해고되지 않으려면 자본가와 그 하수인인 관리자의 강압적인 통제에 눈 감아야 한다. 이 일 저 일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백 개를 만들라면 백 개, 이백 개를 만들라면 이백 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임금노예’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업에 돌입하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힘의 저울추가 반대로 움직인다. 공장을 멈추고 생산을 중단하면 힘의 저울추가 노동자들을 향해 움직인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파업대열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파업의 깃발을 든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본가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아니다. 자본가들에 맞서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하며 행동한다. 평소에 가진 것이라고는 ‘일할 수 있는 몸뚱이’뿐인 노동자들은 공장·기계·도구·건물·사무실·매장·차량 등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의 부당한 통제와 관리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파업과 동시에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자본가들의 부당한 통제와 관리를 거부하고 하나씩 깨뜨려 나간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서면서 당당하게 공장과 사회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행동으로 선언한다.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파업할 때 자유로움과 자신감을 느낀다. 파업을 통해 자신들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이제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이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변화시켜 가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슴에 품고 머리에 새기게 된다. 평소에는 그토록 거대해 보이던 자본가와 관리자들도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난장이에 불과하다.

    파업 속에서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된 노동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는 경제적 곤란과 제약들을 날려버리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패기와 용기를 갖는다. 강고한 단결의 패기와 투쟁의 용기를 갖게 된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더 이상 생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투쟁을 통해 자각한 노동자들은, 한줌밖에 안 되는 놀고먹는 자본가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이 뒤집힌 세상을 바꿔야 하며 그래야만 노동자의 처지와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해 간다. 이렇게 파업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고 실천하는 노동자투사로 도약해 간다.

    2)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단결과 연대를 배우게 한다!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의 굳센 단결이 단위사업장 파업을 성사시킨다. 반대로 단위사업장 파업은 더욱더 강고한 노동자들의 단결을 조직해낸다. 또한 단위사업장 노동자파업은 지역과 업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하나로 똘똘 뭉쳐 공동파업에 나서게 하는 강렬한 연대의 감정과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많은 노동자파업의 경험에서 진실임이 증명되었다.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그동안 자기만의 문제, 자기만의 임금, 자기만의 고용에 한정되어 있던 생각들을 떨쳐버리는 과정을 겪는다. 노동자들은 어떤 고난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노동자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에 나선 동지들 모두를 생각하게 된다. 파업이 장기전에 돌입하면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고통, 굶주림의 위협, 참혹한 물리적 법적 탄압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업대열에서는 동지들을 배신하며 자본가에게 투항하는 행동은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일상 시기에 작은 이해관계로 동료들과 경쟁하고 다투던 노동자들도 파업의 한 복판에서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단결이라는 대의’ 아래 하나로 용접되어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구호를 자연스럽게 외친다. 파업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고립된 개인이었지만,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단결이 곧 생명’이며, 우리 모두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집단적 정신을 깃발로 삼는다. 이렇게 강고한 단결과 생동하는 노동자의식의 변화가 진정한 파업의 힘이다.

    더 나아가 단위사업장의 강고한 파업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정신적 영향력을 넓게 퍼뜨린다. 정신적 영향력이란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폭넓게 불러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분열되고 고립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단결하는 것처럼, 한 공장에서 벌어지는 파업은 그것을 알게 된 이웃 공장,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어 사기를 드높여준다.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단호하게 파업에 나선 동료 노동자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이웃 공장 노동자들에게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우리도 저렇게 싸워보자!”는 용기와 확신을 갖게 한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진정한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강렬한 정신적 영향력을 전파한다.

    평소에 노동자들은 이웃에서, 지역에서, 전국에서 벌어지는 파업을 보면서 ‘저것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평상시의 감정들은 파업에 나서면서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공장 담벼락 안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여러 사업장의 동지들이 어떻게 투쟁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투쟁과 파업이 어떤 요구를 걸고,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서로 교류한다. 이러한 관심과 교류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지역이든, 어떤 업종이든 노동자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기 사업장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과 업종에서 동일한 요구와 목표를 내걸고 파업에 나선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한 사업장에서의 단결의식을 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의식과 연대의식을 키워나간다. 이러한 노동자의식의 확장이 행동으로 연결되면서 지역연대파업, 전국적 동맹파업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 힘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며, 그 위력적인 힘은 자본가와 정부에 맞장을 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거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하다! 모든 노동자파업이 정신적 영향력을 훌륭하게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력하고 불철저한 파업은 이웃 공장과 지역과 전국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여주기보다는 회의감을 준다. 또한 노동자의 원칙과 대의를 저버리고 소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업은 전국노동자들에게 패배의식을 준다. 그래서 파업의 불길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회피하고 단위사업장 파업으로만 고립시킨다면 결코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연대파업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묻혀버리게 된다. 하나의 파업이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분기시키며, 강렬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파업을 단호하고 결사적인 방식으로 조직해야 한다. 작은 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단위사업장의 비타협적이고 결사적인 파업만이 지역과 업종의 노동자연대파업을 만들고, 지역과 업종의 연대파업이 전국적인 노동자총파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3) 파업은 투쟁의 진짜 표적과 노동자들이 의지해야 할 거대한 힘을 가르쳐준다!

    처음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요구와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투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단지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와 분노를 개별자본가에게 전달하고 최소한의 요구를 쟁취하려고 파업에 나선다. 이렇게 시작한 파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폭과 깊이가 더해지면서 노동자투쟁의 진정한 표적을 드러내게 한다.

    황제처럼 군림하며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자본가에 맞선 파업에서 최초의 표적은 당연히 자기를 고용한 개별자본가다. 그러나 개별자본가의 착취에 맞서 시작한 파업은 결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개별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하고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들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불러들인다. 이 사회에서 자본가의 형제자매들은 누구일까?

    첫 번째는 용역깡패들이다. 이들은 보안경비라는 합법단체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파업사업장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울산 효성파업에서 드러났듯이 용역깡패들은 식칼·전기봉·사제총 등으로 자체 무장하며, 심지어 헬멧과 방패를 갖추고 경찰 행세까지 한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도 수백 명의 용역깡패들이 공장을 유린했다.

    두 번째는 폭력경찰이다. 폭력경찰은 겉으로는 “공권력”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이들은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곤봉으로 치고, 방패로 찍고, 군화발로 걷어차는 폭력을 행사한다. 파업노동자들과 구사대·용역깡패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이들은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만을 골라 강제 연행해 간다. 지난 용산철거민 강제진압과정에서도 폭력경찰은 용역깡패들과 합동작전을 펼쳐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세 번째는 검찰·법원이다. 이들은 만인에게 평등한 법적용을 하는 것처럼 위장한 집단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파업지도부와 가장 헌신적으로 싸우는 노동자투사들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는 일이다. 파업의 현장에서 “법”이란 오직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수단일 뿐이다.

    네 번째는 자본가언론이다.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하는 일을 한다. 노동자들의 정당하고 사활적인 요구는 무조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다. 신문과 방송들은 용역깡패와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행패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불법폭력세력으로 둔갑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섯 번째는 자본가단체들이다. 개별자본가들의 “상급단체”인 전경련·경총·중소기협 등은 각각의 파업에 개입하여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자본가들의 이익을 철저히 관철하려 나선다. 심지어 파업에 직면한 어떤 자본가가 ‘나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이들은 모든 자본가들을 대표하여 강경한 원칙적 입장을 제기하고 나약한 자본가로 하여금 비타협적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한다.

    여섯 번째는 이 모든 형제자매들의 맏이로서 자본가정부다. 정부 역시 이른바 공권력과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는 대표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 국민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본가계급의 집행부로 행동할 뿐이다.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공기업 민영화,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등 실제 내용에서 노동자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온갖 악법들을 정부가 자본가정당들과 합세하여 선두에서 밀어붙인다.

    파업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편재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진짜 대상이 누구인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당장 맞서 싸우고 있는 개별자본가, 당장 눈앞에 나타난 용역깡패들뿐만 아니라 경찰·검찰·법원·언론·자본가단체·자본가정당·정부가 하나로 똘똘 뭉쳐 노동자파업을 짓밟기 위해 발광하는 모습이 그럼처럼 펼쳐진다. 이제 투쟁의 진짜 대상은 특정 자본가 개인이 아니라 그와 어깨 걸고 노동자파업을 파괴하려고 덤비는 “전체 자본가들”, 즉 자본가계급임이 분명해진다. 하나하나의 파업들은 개별자본가와 그 사업장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에서 시작하지만, 그 투쟁이 보다 확대되고 발전하면 결국 노동자계급 전체와 자본가계급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가들은 단 하나의 파업도 그들이 불러 모을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끌어 모아 대응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계급적 단결은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할 것’을 가르친다. 자본가들이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불러 모아 몸을 키우듯이, 노동자들 또한 모든 노동자들을 단결과 연대의 대오로 결집하여 몸을 키워서 거인을 만들어낸다. 노동자들에게는 천오백만 노동자부대가 있다. 천오백만 노동자들이 하나의 거대한 부대로 모이고 조직적으로 투쟁한다면 노동자들은 쉽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본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조차도 난장이로 보이게 할 “세상을 뒤흔드는 거인”이 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단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깨를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도 한줌밖에 안 되는 자본가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4) 파업은 노동자들이 의식을 깨우치고 전투를 배우는 학교다!

    지금까지 우리는 파업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살펴보았다.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파업을 조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파업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강력한 수단이면서도 노동자들에게 많은 중요한 것들을 느끼고 배우게 하는 훌륭한 학교라는 점도 이해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전투학교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들을 다시 요약해보자!

    첫째, 파업은 노동자들이 단결하도록 하며 단결했을 때에만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친다. 둘째,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모든 노동자들이 똑같은 처지에 있고, 자본가들에 맞서 똑같은 요구를 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점을 깨우쳐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셋째, 파업은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개별자본가에 맞서 싸우지만 나중에는 전체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부에 맞서 전체 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하여 투쟁하게 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한다. 넷째, 이러한 노동자들의 배움과 자각은 이 사회에서 자본가와 정부는 노동자들의 ‘적’일 뿐이며 이들을 물리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처지와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노동자의식을 갖게 한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파업은 노동자들이 전투를 배우는 학교”라 부른다. 파업이 노동자들에게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을 알고 있는 자본가들은 파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파업의 배후에는 혁명이라는 히드라(괴물)가 숨어 있다.” 노동자파업이 멀리 뻗어나가거나 확산되지 못하도록 자본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대로 노동자투사들은 온갖 탄압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을 노동자들의 훌륭한 전투학교로 만들려고 파업을 사수하고 파업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노동자와 자본가가 정면충돌한다. 그래서 노동자투사들은 자본가들의 파업파괴계획을 박살내고 파업을 명실상부한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로 조직하기 위해서 철저하고 계획적인 준비를 조직한다.

    이제부터는 명실상부한 파업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살펴볼 차례다. 가장 잘 준비한 병사가 전쟁에서도 가장 잘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길고 날카로운 쇠창을 들고 갑옷 입은 병사가 죽창을 들고 평상복을 입은 병사보다 더욱 잘 싸울 수 있는 법이다.

    3. 명실상부한 파업을 조직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파업에 나서기에 앞서 노동자들은 두 가지를 준비한다. 하나는 파업의 정신적 조건을 준비하며,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기술적 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파업이전 시기와 파업돌입 시기를 구분하며, 파업준비도 단계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경계한다.

    현실에서 많은 노조들이 전문적인 강사들을 불러놓고 교육과 토론을 열나게 시켜놓고 파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파업을 할 생각이 없는 관료적인 지도부의 경우, 노골적으로 교육이나 토론조차도 진행하지 않는다. 또한 진짜 파업에 돌입할 생각이 없지만 파업을 할 것처럼 큰소리치는 관료적인 지도부의 경우, 교육과 토론은 진행하는데 파업프로그램과 파업전술에 대해서는 전혀 토론하거나 준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결코 제대로 된 파업은 없다. 설혹 파업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몇 시간짜리 시한부파업, 1일짜리 부분파업이 전부다. 이 정도 흉내내기식 파업으로는 노동자들이 전투를 배우는 학교를 조직할 수 없다. 따라서 파업을 노동자들의 명실상부한 전투학교로 조직하려고 하는 노동자투사 지도부는 당연히 파업의 정신적 준비와 기술적 준비를 동시에 병행해서 진행한다. 이것이 올바른 파업준비방법이다.

    여기에 파업에 나서는 두 개의 노동자부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첫 번째는 파업의 정당성과 기본적인 요구만을 알고 파업에 나선 노동자부대이다. 두 번째는 파업의 정당성과 요구뿐 아니라 사전에 파업의 구체적인 전술과 조직운영, 파업전개양상까지 이해하고 파업에 나선 노동자부대이다. 생각해 보라! 어느 노동자부대가 더욱 확신에 찬 결의와 자신감을 갖고 투쟁에 임하겠는가? 첫 번째 노동자부대가 허름한 군복을 입고 총 쏘는 법만 배우고 전쟁에 나가는 학도병과 같다면, 두 번째 부대는 완전군장과 중화기로 무장하고 전쟁에 나가는 전투부대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차이를 잘 알고 있는 노동자투사 지도부는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파업에 돌입하게 한다. 이제 명실상부한 파업을 위한 준비항목을 검토하자!

    1)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의 확보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 파업이 옳고 정의롭다고 확신해야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 누가 옳지 않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는가?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성 확보는 파업이전 시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파업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자본가들이 심한 압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파업에 대한 자본가들의 비난과 공세는 강화된다. 자본가들은 정부·경찰·언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자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흠집 내려고 덤벼든다.

    철도노동자들이나 지하철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아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병원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자동차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수출을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는 귀족노동자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모든 노동자파업을 언제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자본가와 정부의 의지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도덕과 자본가의 도덕은 질적으로 다르다. 각각의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정당하고 도덕적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 파업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범죄적 행동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국민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를 운운하며 파업을 비난하고 폭력적 탄압의 근거를 쌓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위축되어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는 순간 노동자들의 당당함과 사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가와 정부가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노림수다.

    따라서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려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주장과 요구가 자신들의 절박함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표현해야 한다. 단 하나의 사업장파업도 그 요구가 전체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익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하자! 그래서 모든 노동자들 앞에 당당하게 선동하고 연대를 조직하자!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이 확고하게 서 있는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정부의 거짓 이데올로기 공세를 물리치며 파업을 단호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2)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의 정식화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요구가 계급적이어서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와 일치하는 경우와 계급적이지 않아서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경우가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파업을 완강하게 전개하고 더욱 확대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00~2001년 두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다. 하나는 이랜드노조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통신계약직노조였다. 이랜드노조의 경우, 비정규직 철폐를 핵심요구로 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하여 완강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도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를 걸고 비타협적이고 대담한 투쟁을 펼쳤다. 이 노조들의 파업은 관료화되고 퇴행하는 민주노조운동에 새로운 혁신의 방향을 제기한 모범적인 투쟁이었다. 당시 이 동지들은 “어떤 요구를 걸고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행동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는 흐름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는 흐름이 존재했다. “비정규직 철폐”와 “비정규직 차별철폐”는 단순히 문구의 차이가 아니었다. 이 요구들의 차이는 결사적인 투쟁의지의 차이, 확고함과 비타협성의 차이를 담고 있었다. “비정규직 철폐”는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책략을 전면 거부하고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반면 “비정규직 차별철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소해 나가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깊이 갈라진 분열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표현했다. 비정규직의 확대를 인정하되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에만 맞서겠다는 것은 곧 자본가들의 분열책동에 한쪽 무릎을 꿇는 것과 다름없었다. 과연 비정규직 철폐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가운데 어떤 요구가 전체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요구여서 대대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요구인가?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2008년에 자동차산업에서는 주간연속2교대가 핵심요구로 떠올랐다. 주간·야간 2교대로 10시간씩 노동을 하던 기존 체제에서, 주간에만 2교대로 8시간씩 노동을 하고 시급제를 월급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 요구였다. 주간연속2교대가 시행될 경우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 사내하청 노동자, 부품업체 1차·2차·3차 노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간연속2교대 쟁취투쟁을 전개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어떤 요구를 걸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서 두 개의 방향으로 갈렸다. 하나는 일단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부터 주간연속2교대를 시행하고 사내하청 노동자와 부품업체 노동자들은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방안을 찾으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품업체 노동자들이 공동투쟁본부로 결집하여 공동파업을 전개하여 모두가 동시에 8+8 노동과 완전월급제를 쟁취해야 하며 어느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총고용을 쟁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첫 번째 주장은 현대자동차 사만오천 노동자들의 요구로 협소화되는 반면, 두 번째 주장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전체 자동차산업 이백만 노동자의 요구로 전면화 되는 것이다. 어떤 요구와 주장이 진정 계급적인가? 어떤 요구와 주장이 진정 천오백만 노동자들의 이익과 일치하는가? 어떤 방식의 파업투쟁이 천오백만 노동자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가? 답은 두 번째다!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요구와 목표를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와 목표에 일치시켜 계급적으로 정식화해야 한다. 그 요구가 계급적이어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와 일치하는가, 계급적이지 못해서 일부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가는 투쟁의 방법과 전술에서도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여기 오만 명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부대와 천오백만 명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부대가 있다. 여기 노동자 오만 명만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부대와 천오백만 명 노동자들의 전체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부대가 있다. 어느 부대가 더욱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결사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겠는가? 어느 부대가 승리할 수 있겠는가?

    3) 노동자의식의 정립과 전투기술의 습득을 위한 정치교육

    우리는 파업이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라는 점을 앞에서 확인했다. 또한 모든 파업이 자동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강화시키고, 노동자의식을 성장시키는 진정한 학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다. 파업이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정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우선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들이 노동자의식을 높이고 굳센 결의를 다지도록 하는 교육이다. 파업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 그리고 계급적 요구를 결정한 다음에는 그것을 확고히 다지는 교육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왜 평화가 불가능한가?”,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고 자본가들의 이윤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법은 누구의 편인가?”, “노동자들의 연대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이웃 및 지역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선전선동을 진행할 것인가?”, “선배노동자들의 투쟁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용역깡패와 폭력경찰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공격하는가?”, “노동자들은 왜 노동해방을 꿈꾸어야 하는가?” 등등.

    다음으로 전투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이다. 이를테면, “공장과 사업장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용역깡패와 폭력경찰에 맞서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선봉대·규찰대·보급대 등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공장과 사업장을 어떻게 노동자 공동체로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 등등.

    노동자의식을 확고하게 세우고 전투기술을 습득하는 정치교육은 강의경험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강사나 노동자투사를 초빙하여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여기에 비타협적이고 영웅적으로 투쟁한 공장과 사업장의 파업영상을 상영하면 더욱 많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강의나 영상을 통한 교육과 더불어 보다 중요한 것은 파업과정에서 배우는 실질적인 경험을 통한 교육이다. 이것은 명실상부한 진짜 파업을 조직할 때에만 활짝 열릴 수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수많은 자각과 훈련의 기회들을 제공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자본가들이 숨기려고 하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적인 대립이 파업과정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노동자가 굳게 단결하여 파업하는 과정에서 자본가는 더 이상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숨기지 못하고 악랄하게 탄압한다. 공정성으로 위장하고 있는 언론사와 방송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본가들에게 봉사하는지, 공정한 법 집행의 구호 아래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지, 국민의 대표로 포장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가 어떤 식으로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기만하고 억누르는지 노동자들은 실제 경험 속에서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생생하게 교육받는다.

    이처럼 일상 시기에는 표면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자본가와 그 형제자매들의 교활하고 가증스러운 본성이 노동자들의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에 하나의 사례도 놓치지 않고 그날그날 교육과 토론을 통해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파업이 전개되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교육과 활동은 일상 시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노동자들을 빠르게 성장시킨다.

    따라서 정작 파업에 돌입했는데도 파업이 가져다주는 교육과 훈련의 기회들, 조직력과 투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노동자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실제로 동일한 주제로 교육을 하더라도 일상 시기와 파업 시기의 교육은 아주 큰 차이를 낳는다. 특히 일상 시기에 일할 때와는 달리 파업 시기에는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이, 보다 대규모적으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더 나아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행동을 통한 교육, 투쟁을 통한 교육을 배치해야 한다. 가령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다른 공장과 사업장에 연대투쟁을 갔는데, 그곳에서 선봉대의 투쟁을 보거나 선봉대와 함께 대열을 형성하여 투쟁했다면 그러한 무용담을 전체 파업대오 앞에서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교육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것은 전체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만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기구들을 다양하게 조직하여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선봉대·정당방위대·보급대·구급대·공단순회단·연대투쟁단·상경투쟁단·전국순회단 등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투쟁할 수 있는 대중투쟁기구들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면 파업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전투적인 기세를 갖고 지역과 전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4. 파업에서 사수해야 할 기본원칙들

    이제부터 우리는 파업의 기본원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파업의 기본원칙은 파업의 준비항목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 등장할 몇 가지 기본원칙들은 파업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투쟁에서 기필코 사수해야 할 규범이다. 파업의 기본원칙이 확고하게 세워진 파업대열은 쉽게 분열과 갈등에 빠져들지 않는다. 또한 파업의 기본원칙이 확고하게 세워진 파업대열은 파업전술을 운영하는 데서 전투적 비타협성과 유연성을 적절히 배합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이 점을 잊지 않으면서 파업의 기본원칙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1) 노동자민주주의 지키기

    노동자민주주의는 모든 노동자들의 활동과 투쟁에서 사수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은 소수의 임원이나 집행부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어떤 노동조합이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관료적인 노조거나 어용노조라 부른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자들의 민주적 참여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노동자민주주의가 정착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력과 생명력이 샘물처럼 흘러넘친다.

    우리는 노동자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노동자민주주의는 파업과정에서 더욱 사활적인 문제로 부각된다. 진정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를 형식적 절차를 밟는 정도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총회라는 형식과 절차를 통해 관철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회로까지 가는 과정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내용적 토론과 집단적 동의이다.

    노동조합의 활동과 파업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유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총회를 거쳤지만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면 노동자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노동자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 작동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지키려는 최선의 노력이 쏟아 부어져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가 작동되는 핵심은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다. 노동조합이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행동의 통일’이 필요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치된 목소리와 흐트러지지 않는 단결된 행동을 취해야만 노동자들의 투쟁력이 최대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다양한 노동자들을 결집하고 있는 조직이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모두의 생각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지금 파업을 해야 하는가 유보해야 하는가, 낮은 수위의 투쟁전술로 가야 하는가 높은 수위의 투쟁전술로 가야 하는가, 파업을 계속할 것인가 마무리할 것인가 등등 여러 문제들에서 노동자들의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왜냐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동지들 역시 노동조합의 한 주체이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의견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의견 차이를 그대로 방치해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만일 다양한 의견 차이를 무조건 방치한다면 그 노동조합은 결코 일사불란한 투쟁을 전개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다양한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여기서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 제기된다. 어느 누구든 다른 동지들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면 그것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의 입장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권리와 기회를 틀어막는 노조가 다름 아닌 관료적 노조거나 어용노조이다. 노동자들은 오직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만일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들이 단지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면, 그 노동조합은 더 이상 민주적인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 어용노조들도 말로는 ‘민주’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런 말뿐인 ‘민주’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키고 봉사하는 정치패거리들의 ‘민주’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떠한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대의원대회와 총회의 절차를 밟았다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민주주의는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다른 동지들의 의견과 비교하며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충분한 토론 없이 진정한 노동자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서둘러 표결에 부치고 다수의 의견을 확인하는 ‘절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실질적인 토론을 통한 통일성과 집단적 동의를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과 비판의 권리가 배제된 집단적 동의와 행동의 통일은 노동자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일 뿐이다. 자본가들에게 매수된 어용노조가 아니라면 노동자들은 동지적인 방식으로 차분하고 자유롭게 비판과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충분히 일치시켜 나갈 수 있다.

    때로는 최종적인 판단의 순간까지 의견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파업이 중대한 고비에 직면했다든가,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섞여 있으면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기에도 원칙적으로 토론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토론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 즉각 행동에 돌입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는 의견을 제시할 자유를 보장하지만 ‘완전한 행동의 통일’이 더욱 강조된다. 결정의 순간, 행동의 순간에는 다수 의견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행동을 통일해야 한다. 이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물론 소수 의견이 일방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소수는 다수의 결정에 흔쾌히 따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오면 다수파와 소수파는 어떤 관점과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 다수파의 의견이 전체 입장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견이 가장 올바르다는 점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다수파는 소수파에게 발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때 소수파는 행동의 통일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발언해야 한다.

    통일된 행동의 과정을 거쳐서 다수파의 입장이 올바르게 증명된다면, 소수파는 다수파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이다. 비난만을 일삼으며 꼬투리잡기 식으로 행동하는 반대파가 아니라면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에 다수파의 의견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면, 다수파는 다시 한 번 소수파의 주장을 경청하고 진정한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진솔하게 토론에 임해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정리해 보자! 첫째, (어용노조가 아니라) 민주적인 노동조합 안에서 행동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조직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렇게 노동조합의 단결이 무너지면 자본가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그 틈을 타고 자본가들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고 노동자들은 여지없이 밀리게 될 것이다. 둘째, 충분한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졌는데도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제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것은 다수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모두에게 실천을 통해 직접 증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자기 의견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수단이 된다. 만약 소수파의 의견이 정말로 옳은 것이었다면 그것은 실천 속에서 검증될 것이고, 강한 설득력으로 다른 동지들을 납득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동지들은 종종 이렇게 반문한다. “대안이 없다면 비판도 할 수 없단 말인가?” 물론 다른 동지들이 제출한 의견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대안을 제출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으면 발언하지 말라!”고 발언권을 제한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제출된 대안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 그것이 대안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최대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몸에 익숙해지려면 모든 노동자들이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대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단지 “이것은 나의 생각과 달라! 찬성할 수 없어!” 하고 반대를 표명하는 데 머문다. 이러한 반대는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하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만일 파업대열에서 “그것은 지도부가 알아서 하면 될 것 아닌가?”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파업은 희망의 빛을 잃어가는 파업이다. 왜냐면 그런 파업은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고, 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전투학교로서 실패한 파업이기 때문이다. 아직 특별한 대안을 찾지 못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서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파업대열 전체를 위해 동지적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소수 주장만을 내세우며 다수 의견을 무시하거나, 너희들이 알아서 해보라는 식으로 행동의 통일을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노동자다운 모습이다.

    파업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오랜 투쟁의 경험이 없고, 충분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부와 간부진을 갖지 못한 노동조합이 있다. 이 사업장에서 파업이 결의되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투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책들을 범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능력이 없다”며 지도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지도부가 어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충분한 투쟁경험을 통해 미처 지도력을 갖추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다른 방식으로 비판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만을 터뜨리고 다그치는 것에 머무르는 방식으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도부의 투쟁계획과 전술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 것인지 창조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지도부의 능력은 단지 ‘위로부터’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기발하고 창조적인 제안들이 지도부의 전술 감각을 풍부하게 하고 더욱 성숙한 지도력을 세워내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자! 노동자민주주의란 권리만큼이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럴 때에만 ‘다수결’이라는 형식은 말 그대로 형식적이고 생기 없는 절차가 아니라 행동의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방식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투쟁의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일정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토론하고 집단적인 동의를 모아내는 실질적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토론과 비판의 자유, 행동의 통일 없는 노동자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노동자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하는 것은 지도부만이 아니라 파업노동자 모두의 역할과 임무이다.

    2) 파업규율 사수하기

    규율은 노동조합의 일상 시기 활동과정에서도 중요하지만, 파업 시기 전투과정에서는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노동자들이 규율을 세우는 것은 단결력과 투쟁력을 사수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규율은 노동자민주주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규율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을 포함한다. 이러한 두 가지는 조건에 따라 비중이 달라진다. 토론의 자유는 일상 시기뿐만 아니라 파업 시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파업 시기에 직접적인 행동이 요구될 때에는 행동의 통일이 더욱 강조된다. 왜냐면 행동의 통일이 없이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부대’로서 단호한 파업을 전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파업 시기에 발생한 규율위반에 대해서는 일상 시기보다 좀 더 엄격한 관점과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군대에서도 동일한 ‘불복종’을 놓고 일상 시기와 전쟁 시기를 구별한다. 일상 시기에는 감옥에 집어넣는 정도로 처벌하지만, 전쟁 시기에는 총살형까지 한다. 그러나 파업을 전개하는 노동자부대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자발적인 결의에 따라서 파업규율을 세워낸다. 노동자들의 대의에 대한 분명한 자각, 투쟁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통일을 바탕으로 노동자 파업규율을 사수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파업규율은 관료적 명령과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는 자본가군대의 무자비한 규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렇게 규율을 세워내고 사수하는 방식은 달라도 확고한 조직규율, 전투규율을 확립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다. 노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파업규율을 세우고 사수해 나가는가? 일차적으로는 파업의 목표·수단·방식에 대한 풍부한 토론을 통해서 정신적 통일성을 확립한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다수 의견이 확인되고 결정되면 일단 다수 의견을 따라 행동의 통일을 이룬다. 파업파괴 행위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일단 파업대열에 합류하라고 ‘설득’한다. 이러한 노력이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주어진 세력관계 속에서 파업파괴자들(즉 자본가들에게 빼앗긴 우리의 동료들)을 되찾아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파업규율에 따라서 조직적인 징계조치를 내린다. 이러한 과정에 통해서 노동자들은 파업규율을 사수한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수적 약화를 지나치게 우려하면서 파업 시기에도 엄격한 규율적용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파업파괴자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할 경우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파업규율을 위반해도 징계당하지 않는다”는 풍토가 자라나면 규율을 위반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가 상황이 다급해져 규율을 적용하면 “왜 누구는 징계하고 누구는 징계하지 않느냐”는 형평성의 문제가 암암리에 퍼져나가 파업규율은 무너지게 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규율이 무지지고 힘을 잃게 되면, 파업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원칙을 배우고 훈련하는 전투학교가 될 수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기회주의적 심성에 빠져들게 된다. ‘나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생기면 투쟁을 호소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면 슬쩍 빠지며 조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파업대열의 전체 이익보다 지연과 학연, 부서와 직급과 같은 패거리주의를 만들어 파업대열을 분열과 혼란에 빠뜨린다. 이러한 참혹한 상황은 모든 노동자파업에서 노동자 파업규율을 명확하게 확립하지 못했을 때 반드시 발생하는 문제다. 관료적이고 어용적인 지도부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기회주의적 심성과 패거리주의를 묵인하면서 더욱 강력한 파업전술로 나아가는 것을 회피하거나 파업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무원칙한 단결의 이름으로, 또는 노동조합의 수적 약화를 우려하여 파업파괴자들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파업대열은 반드시 사면초가에 처한다. 파업 시기에 파업규율을 사수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강고한 파업규율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는 파업대열만이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사수할 수 있으며, 승리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다.

    3) 강고한 단결력과 투쟁력 유지하기

    앞에서 우리는 노동자민주주의와 파업규율을 확고하게 사수하는 것이 파업대열의 강고한 단결력과 투쟁력을 형성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어떻게 파업대열로 단결하는 범위를 최대로 넓혀서 투쟁력을 극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 가지 요점을 살펴볼 것이다.

    파업은 자본가들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전투다. 모든 전투가 그렇듯이 여기서도 ‘힘’이 사태를 결정한다. 파업에 돌입하여 승리를 쟁취하고자 노동자들이라면 최대한 다수 노동자들을 강철같이 단결시켜 내야 한다. 노동자들이 최대한 많이 모여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력하게 발휘해야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본가들은 더 큰 압박을 받아 양보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가를 완전히 무릎 꿇리고 통쾌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의 저항의지를 가차 없이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고한 단결력과 투쟁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첫째,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도록 조직하는 것. 다시 말해서 조합원인가 비조합원인가를 떠나 가장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합류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 비율이 어느 정도든 파업에 불참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왜냐면 비조합원뿐만 아니라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파업에 대한 이해 정도, 의식적 발전의 정도, 헌신성 등 여러 측면에서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에 자신의 영향력을 침투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다. 일상적 관리체계, 현장통제, 정신교육 따위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에 자본가의 정신을 유포한다. 그 결과 자본가들의 영향력은 노동자들 속으로 파고들어와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킨다. 일부 조합원들은 단결과 투쟁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타협과 굴종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 심지어 파업 시기와 같은 직접적인 행동의 시기에 동료들을 저버리고 바리케이드를 넘어가기까지 한다.

    대체로 자본가들은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개입 수단들과 재정적·조직적 무기를 갖고 있다. 노동자들이 투쟁의 경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적들도 탄압의 경험, 지배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그런 자본가들이 치밀하고 체계적이며 집요하게 책략을 부리는 한, 파업에 불참하는 노동자가 생기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나 많은 동료 노동자들이 파업대열로 합류할 수 있는지, 파업에 불참하는 동료의 발생을 어느 정도로까지 차단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정력적이고 철저하게 파업을 조직하는가에 달려있다.

    둘째, 조합원인가 비조합원인가, 한국노동자인가 이주노동자인가를 떠나 마지막까지 파업에 합류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최대한 파업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며 지지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 최소한 중립적 위치에 서도록 끌어당기는 것이다.

    파업과정에서 여러 차례 공방전이 벌어지고 일정한 기간이 지속되면 노동자부대와 자본가부대 양측이 각자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 초기에는 양측의 힘이 모두 대단히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최초의 격돌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두 개의 전투력’이 충돌하는 것이다. 양측의 힘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최초의 격돌에서는 아직 노동자부대와 자본가부대의 힘을 가름하는 균형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동자들의 일부가 아직 어느 편으로도 확고하게 결합하지 않고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부적 요인이고 외부적으로는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각자가 어느 정도로 연대를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있다.)

    여기서는 두 번째가 중요하다. 파업의 양상에 따라 단결의 범위가 달라지며, 파업대열의 사기 및 전투력도 달라진다. 그러나 일단 전투가 개시되고 치열해지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은 지속될 수 없다. 자본가들은 아직 파업에 합류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완전히 자기편으로 끌어당겨 구사대로 이용하려고 덤벼들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떤 관점과 전술을 적용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단호하게 원칙을 견지하며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술을 써야 한다. 왜냐면 파업노동자의 힘이 자본가의 힘보다 강하다는 점을 입증시켜야만 중간에서 주춤거리는 노동자들을 파업대열로 합류시켜 단결력과 투쟁력을 훨씬 강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업의 출발점에서부터 모든 노동자들을 미리 조직하는 것이다. 만일 사전조직화에서 실패할 경우에도 이들을 파업대열로 가깝게 끌어당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직접 파업에 합류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작업을 조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 쪽으로 넘어가는 비극적인 사태를 최선을 다해 저지해야 한다. 쉽게 포기해 버려서 한 번 파업의 주도권을 상실하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몇 배 이상 피와 땀을 쏟아 부으며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어떠한 상황에서도 파업의 기본원칙을 견결히 사수하며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사회주의투사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일상 시기, 파업이 예고되는 시기, 파업 시기 모두에서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사회주의투사그룹을 양성하는 일은 언제나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파업 시기에 노동자들 속에 사회주의투사그룹이 있느냐 없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사회주의투사그룹이 있어야만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앞에서 제기한 두 가지 과제―첫째,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도록 조직하는 것. 둘째, 조합원인가 비조합원인가, 한국노동자인가 이주노동자인가를 떠나 마지막까지 파업에 합류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최대한 파업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며 지지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를 끈질기게 수행할 수 있으며 강고한 단결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제를 잘 수행해 갈 수 있는 사회주의투사그룹이 있어야만 우유부단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공격전을 적절히 펼칠 수 있다.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공격전이 필수적이다. “항상 방어적 입장에 서 있는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 전쟁금언의 원리는 노동자파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파업대열이 공격전술을 갖고 그것을 결행할 수 있어야만 자본가들을 불의에 타격할 수 있는 순간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상호충돌 과정에서 드러나는 양상과 힘 관계를 파악하여 다음의 공격을 준비할 수 있다. 공격의 주도권은 완강한 투쟁력을 보장한다.

    노동조합의 지도부와 간부, 선봉대와 규찰대, 공장과 부서 등 모든 노동자들 속에 사회주의투사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흩어져 있으면서도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인 그룹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파업대열의 강고한 단결력과 완강한 투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4) 교섭을 투쟁에 종속시키기

    많은 노동조합들이 파업에 들어가면 임금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고용을 포함한 노동조건들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즉 ‘노동력 판매의 조건을 둘러싸고 자본가와 벌이는 교섭’에 집중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자본가들과 교섭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섭과 투쟁의 관계를 올바로 세워야만 교섭과 투쟁 모두를 제대로 전개할 수 있다. 교섭과 투쟁의 관계에서 기본관점은 교섭을 투쟁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투쟁을 중심에 두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자본가에게 교섭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활동가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파업에 들어가면 종종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지만, 파업대열이 교섭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투쟁을 강조하며 파업대열의 위력을 강하게 끌어올리고 자본가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면 그들은 제 발로 찾아와 교섭하자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교섭을 이유로 투쟁을 회피하거나 방기하고 기다리는 태도다. 이렇게 교섭을 강조하고 투쟁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태도, 더 나아가 교섭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투쟁을 취소하거나 봉쇄하는 태도야말로 큰 문제를 야기한다. 교섭을 하려고 투쟁을 취소하는 태도는 단위노조의 상층관료들에게 자주 나타나며, 교섭테이블에 들어가려고 단위노조의 투쟁을 봉쇄하는 태도는 상급단체 상층관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관료들의 태도는 파업대열의 힘을 즉각적으로 위축시킨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투쟁력, 조직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봉대, 연대투쟁단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기구들이 뒤로 밀려나고 이를 대신하여 협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소수의 교섭위원들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의 계기들이 축소되고 사라져서 결국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로서 파업의 의의도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섭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교섭의 힘은 협상전문가들의 말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파업대열 전체의 단결과 투쟁의 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교섭위원들이 제시하는 주장과 논리를 보고 자신의 입장과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조합 교섭위원 뒤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파업노동자들이 얼마나 결사적인 투쟁의지로 무장하고 있는가, 어느 정도로 확고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교섭을 회피하면 어떤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인가를 판단하며 태도를 결정한다. 관리자들을 보내 매일 파업현장의 동태를 파악하며, 파업노동자들의 사기·열정·적극성·행동력을 치밀하게 확인한다. 실제로 파업대열의 위력적인 힘이 느껴지는 상황이라면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교섭위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도 힘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파업대열의 투쟁력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라면, 노동조합 교섭위원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와 빼어난 말재주를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가들은 “저것은 허풍일 뿐”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설사 교섭에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교섭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으로 자본가들에게 치명적인 압박을 가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섭에 나와 어쩔 수 없이 양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교섭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라 조직력과 투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결사항전의 태세로 전투를 감행해야 한다.

    파업대열의 완강한 조직력과 투쟁력에 밀려서 자본가들이 교섭에 기어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교섭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요구를 제출하고 쟁취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교섭석상에서는 “징계를 최소화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차후 별도의 기구에서 협의한다” 따위의 문구들을 들이밀면서 마치 자신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처럼 떠벌인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약속일 뿐이다. 당장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노동자투쟁의 불길을 끄기 위한 덫일 뿐이다. 그것이 덫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판단하지 않고 경솔하게도 발을 내딛으면 발목을 붙잡히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징계를 최소화한다” 따위의 덫에 걸려들고 있다.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한 뒤에서야 이 덫의 실체가 들어나기 때문이다. 최소화는커녕, 수십 명 수백 명의 동료들을 징계하고 구속하며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교섭에서 각각의 사안들과 관련하여 도저히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쟁취한 투쟁의 성과물까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교섭에서 실패하지 않고 자본가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분명히 사수해야 한다. 교섭을 위해 투쟁을 회피하거나 봉쇄해서는 안 된다! 교섭은 철저하게 투쟁의 전진에 복무해야 한다! 교섭은 투쟁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섭내용은 지도부에서 평조합원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전체 파업노동자들의 토론과 동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지도부만의 직권조인은 절대로 안 된다! 중대한 사안들과 관련하여 총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라!

    5. 승리의 길을 열어주는 파업전술

    앞에서 우리는 파업을 명실상부한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로 조직하기 위한 준비항목과 파업에서 사수해야 할 기본원칙을 살펴보았다. 철저한 준비작업과 기본원칙들이 파업대열 내에 깊이 각인되고 있고 일사불란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그 파업은 이미 승리를 향한 8부 능선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고지를 향한 전진이다. 파업이 마지막 승리의 고지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파업전술이 필요하다. 승리를 향한 8부 능선에 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승리의 고지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승리의 길을 향해 전진하는 데 꼭 필요한 파업전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나씩 하나씩 진지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 파업전술의 계발과 운영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중토론

    구체적인 파업전술에 앞서 대중적인 전술토론 문제를 먼저 다루자. 이미 우리는 노동자민주주의가 파업대열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끌어올리는 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필요한 시기와 상황마다 때늦지 않게 분임조와 총회에서 활발하게 전술에 관한 대중적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관료적인 지도부나 많은 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관행은 파업전술은 소수의 머리에서 비밀스럽게 구상되고 명령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파업전술을 세우고 운영하기 위한 활발한 대중적 전술토론은 파업 시기에 더욱 자주 진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파업은 소수의 비밀스런 행동이 아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공공연하게 펼치는 행동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 전개하는 파업에서 요구·조직운영방식·전술 등 투쟁과 관련한 모든 중요한 사안들이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파업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주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파업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의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수단에 의존하여 투쟁해야 하는지, 어떤 전술과 방향을 갖고 싸워나갈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왜냐면 파업이란 자본가들이나 관리자들의 명령이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의 결의와 확신에 바탕을 둔 행동이기 때문이다. 파업노동자들이 투쟁의 방법과 전술을 이해하고 그 투쟁 속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파악했을 때에만 집단적 전투력이 높이 상승할 수 있다.

    둘째, 공장과 사업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하나의 파업대열 안에는 생산·사무·판매·서비스·물류 등 여러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합류해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동일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직접 속해 있는 현장의 특수한 상황과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은 파업전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투쟁의 전술과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이번 투쟁을 어떤 수위로까지 끌어올릴 것인지 등 여러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차이들을 극복하고 하나로 통일시키는 수단이 대중적인 전술토론이다.

    셋째, 파업이 전개되는 동안 미리 예상했거나 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닥쳐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제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대중적인 전술토론이 필요하다. 모든 노동자들의 활발하고 풍부한 전술토론은 현재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과 방법들을 쏟아낼 것이다. 이러한 풍부하고 다양한 전술과 방법들은 특정한 상황에 맞는 전술운영능력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그래서 파업대열이 비타협적이고 단호한 전술과 탄력적이고 유연한 전술을 종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대중적 전술토론이 없다면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자마자 파업대열은 동요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원칙에 입각한 종합적인 전술운영이 불가능해져 즉흥적인 대응만이 난무할 것이다. 파업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치밀성이 아닌 즉흥성’과 ‘집단성이 아닌 개별성’이다. 현실의 힘 관계를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와 관계들에 대한 치밀한 판단과 계획 없이 전개되는 즉흥적이고 개별적인 투쟁은 항상 자본가들의 덫에 걸려들어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한다.

    넷째, 매우 자주 활발하게 진행되는 대중적인 전술토론은 파업대열 안에서 지도력을 형성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지도부의 능력만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안에 대한 토론이 거듭될수록 간부진과 평조합원들 모두가 성장해 나간다. 열성적인 평조합원들은 간부의 수준으로, 간부들은 지도자의 수준으로 도약하면서 전체적으로 전술적 역량이 눈부시게 발전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파업대열은 자본가들의 탄압에 의해 조직적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대처하고 복구할 수 있는 강한 내구력을 갖춘다. 다음의 전쟁금언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지도부, 간부, 열성적인 평조합원이라면 다양한 파업전술을 세우고 운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활발한 대중토론을 결코 게을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병사는 자신의 배낭 속에 장군의 지휘봉을 갖고 있다.”

    2) 최초의 일격과 공격전

    파업이 개시되면 ‘최초의 일격’이 대단히 중요하다. 최초의 일격을 성공적으로 날리고, 그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정신적 우위와 자신감을 확보해야 한다. ‘수세에 몰리면 곧 죽음’이라는 각오로 최초의 접전을 단호하게 감행해야만 기선을 제압하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가 한 번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주도권 쟁탈전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접전들 속에서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최초의 승리를 통한 정신적 우위와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작더라도 매일 매일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작더라도 매일 매일 투쟁의 계기들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투철한 정신을 굳게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면 전면적인 파업의 시기에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그 기세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반전을 위한 전투는 보다 많은 피와 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쟁에서는 대치상황이 아닌 이상 주도권 장악을 지속하기 위해 공격전을 수행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쟁에서 항상 방어적 입장에 서게 되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러한 공격전의 원리는 파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노동자파업에서도 공세적인 투쟁으로 자본가들을 타격하는 전술이 수세적으로 자본가들의 공세를 기다리는 전술보다 더 유리하다. 또한 공격을 받고 뒤늦게 공세를 취하는 전술보다 선제적으로 공세를 취하는 전술이 훨씬 유리하다. 왜냐면 자본가들의 공세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들이 더욱 강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준비기간을 허용한다는 것이며, 공격을 받고 공세를 취한다는 것은 이미 파업대열이 약화된 상황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투’에서는 전진과 후퇴 말고 다른 선택이 없다. 상식적으로 후퇴는 어떤 식으로든 부대에 일정한 무질서와 전선 약화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서는 불가피하게 후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전진과 공격의 기세를 늦추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은 파업전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3) 힘의 집중과 결정적 타격

    전쟁의 기본원리 중 하나가 “적의 약한 부분에 우리의 힘을 집중하라!”이다. 이것은 공간적인 의미와 시간적인 의미 두 가지 측면에서 파업전술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선 공간적인 측면의 의미를 살펴보자! 공장점거 파업전술을 이해하면 힘의 집중에 관한 공간적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장점거 파업을 감행하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공장의 ‘핵심시설’을 움켜쥐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왜냐면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유리한 위치를 장악할 수 있으며, 핵심시설에 대한 위협을 가해야 자본가들을 거세게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장점거 파업은 중심거점 장악으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중요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곳, 그곳을 잡으면 모든 것이 정지되는 핵심라인, 위험한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다. 이러한 적재적소가 장악되면 자본가들이 함부로 파업대열을 침탈할 수 없게 된다. 핵심시설이 손상을 입을 경우 감수해야 할 막대한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무리하게 파업대열을 침탈하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일단 파국을 피해보자며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간적인 측면의 의미다. 이것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생산 및 판매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확한 시점에 파업을 개시하거나 공장을 점거해야 한다. 가령 유통판매사업장의 경우 명절 연휴를 전후로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 파업을 결정하거나 매장을 점거하는 것이 가장 높은 효과를 낳을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경우도 주문량이 많아져서 공장 가동률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에 파업에 돌입하거나 공장을 점거하는 것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전술운용과 관련하여 ‘힘의 집중과 결정적 타격’의 원리는 파업대열이 분산되지 않고 강고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파업대열이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고하게 유지하면 할수록 파업이 발휘하는 파괴력은 보다 강해질 것이다.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확한 때와 장소에 힘을 집중하는 능동적인 공세전술은 파업의 승리를 앞당기는 견인차이다.

    4)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

    앞에서 우리는 ‘힘의 집중과 결정적 타격’의 원리에서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을 간략하게 다루었다.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노동자들에게는 힘을 집중하여 최대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자본가들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혀 항복하도록 하는 노동자파업전술의 핵심임을 확인했다.

    여기서는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의 의의와 구체적인 내용과 운영방법을 다룰 것이다.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공황의 늪에 빠져들면서 미국·영국·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수개월 동안 공장과 사업장 점거투쟁을 전개하여 생존권을 쟁취하고 있다. 얼마 전 대우버스 노동자들도 부산공장 점거와 언양공장 봉쇄를 통해 정리해고를 철회시켰다. 이처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특별한 경우에 쓰는 전술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파업전술이다.

    우선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의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그것을 알게 된 모든 노동자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노동자들은 매일 자본가들에게 극심한 착취와 숨 막히는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당장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동료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한 감정을 느낀다. 하나의 공장과 사업장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단호한 점거파업에 들어가면 강렬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공장과 사업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굴복시켜 요구를 쟁취하고 승리하면 우리도 언젠가는 투쟁으로 떨쳐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둘째,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거점을 형성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하나의 투쟁이 승리하면, 자신들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반대로 패배한다면 의기 소침한다. 또한 노동자들은 점거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이 앞으로 있을 자신들의 투쟁에 활로를 열기 위해서라도 결사적으로 투쟁해 줄 것을 바란다. 그래서 점거파업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아낌없이 보낸다.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었지만 노동자들이 공장과 사업장을 점거하면 함께 만나고 투쟁할 수 있는 거점이 형성되므로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전국노동자들에게 음식물을 비롯하여 점거투쟁에 필요한 필수품들을 지원하고, 파업기금을 모금하고, 연대방문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진지 역할을 한다. 아울러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가족과 지역주민들까지 결합시켜서 이들로 하여금 파업노동자들의 요구를 널리 알리게 하여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 선전·선동의 역할을 한다.

    셋째,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은 자본가들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해 들어가며 공장과 사업장의 진짜 주인이 노동자임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파업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떤 것이든 노동자들이 공장과 사업을 점거하는 순간 평소에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던 자본가들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아 여지없이 무너진다. 점거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공장과 사업장의 모든 건물·기계·원료·물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공장과 사업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게 된다. 노동자들이 좀 더 단호하게 투쟁을 전개하면 공장과 사업장의 회계장부와 컴퓨터 기록들을 조사하고 공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지금까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착취당했는지, 착취당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자본가와 경영진에게 얼마만큼 흘러들어 갔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단호하게 공개되는 순간 점거파업을 전개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정당성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공장과 사업장, 기계와 원료, 생산된 모든 제품들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단 1시간도 일하지 않는 자본가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노동자의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공장과 사업장을 자신들이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정당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다음으로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의 구제적인 내용과 운영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점거파업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봉대는 파업과 동시에 (노동조합이 필요에 따라 개방한 출구를 제외하고는) 공장과 사업장의 모든 출구를 봉쇄한다. 만일 관리자들이 공장과 사업장 안으로 들어가 대체근로를 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몰아낸다.

    둘째, 선봉대는 또한 공장과 사업장의 정문·후문 등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모든 문을 장악하여 납품차량·경찰·노동부·기자 등의 출입을 통제한다. 동시에 공장 주변 전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확인할 수 있는 높은 지대(본관 옥상이나 굴뚝 등 비교적 높은 곳)에 선봉대를 배치한다.

    셋째, 선봉대가 장악한 각 거점을 전 조직적으로 사수하기 위해, 그리고 선봉대가 투쟁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신속히 규찰대·물품보급대·공장사수대·순회투쟁단 등을 조직하여 가동한다.

    넷째, 규찰대는 대의원 구역별로 분임토론을 통해 2~3명의 노동자들을 선발한 후 규찰조를 편성하여 돌아가면서 규찰을 선다. 규찰대는 주야간 순찰과 장악한 각 거점에서 외부감시 역할을 맡는다.

    다섯째, 물품보급대는 공장과 사업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로 구성한다. 그래야 신속한 집행력과 기동력을 살릴 수 있다. 물품보급대는 전기·수도·식량·침낭·투쟁물품 등 투쟁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신속히 보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섯째, 공장사수대는 임원·상집·대의원, 선봉대·규찰대·물품보급대 등에 속하지 않는 모든 노동자들로 편성한다. 공장사수대는 대의원 구역별로 운영하고 선봉대와 대의원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특히 폭력경찰의 침탈이 임박해지면 각 구역별로 구체적인 공장사수 임무를 하달하여 전체 노동자들이 일치단결하여 공장사수투쟁에 나서도록 한다.

    일곱째, 순회투쟁단은 공단 및 인근 지역의 민주노조 사업장들을 방문하여 점거파업소식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방문을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점거파업의 내용과 방법은 공장과 사업장의 조건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서 더욱 보강되거나 응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공장점거 투쟁사례를 한 가지 소개한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투쟁평가에 나온 글의 일부를 편집하여 인용한다.

    “금강화섬노조는 ‘공장의 주인은 8년 동안 기계를 돌리며 생산을 담당해왔던 노동자들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공장재가동과 3승계 - 노조·고용·단협 승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본가는 ‘공장 안으로 한 걸음도 들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실행하며, 공장을 노동자들의 해방공간으로 만들었다. 공장 안의 부속품과 물품을 사용하여 정문과 후문, 공장 곳곳에 높은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공장 정문 출입구에는 ‘투쟁하는 동지들만 출입가능’이라고 써놓았다. 회사 깃발이 내려진 자리에는 노동조합 깃발이 걸렸다. 정문 관리실은 노동조합 사무실이 되었고, 관리동(본관건물)과 노동조합 2층 사무실, 창고 등은 연대방문을 온 동지들의 모임공간과 숙소로 사용하였다. 가장 높은 굴뚝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쓴 현수막과 ‘세상을 바꾸자’라고 쓰인 붉은 깃발을 걸어놓았다. 누가 보아도 그 공장의 주인이 금강화섬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폐업투쟁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움켜쥘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공장이다. 자본가의 사적소유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본가에게 타격을 입히고 자본주의의 심장을 건드리는 것이 바로 공장검거다. 공장점거투쟁은 자본가와의 관계에서 노동조합이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금강화섬을 낙찰 받은 어떠한 자본가라도 노동조합과의 한판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공장에 발도 못 들여놓는 조건을 만든 것이다.

    경한자본―공장을 인수한 자본가―도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동자들과 피를 보는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의 진용이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문과 후문은 철거장비가 아니면 뚫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의 두꺼운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다. 노동자들은 기습침탈에 대비하여 요지마다 24시간 규찰을 서고 있었다. 그리고 적들이 침탈해 들어올 때 맞서 싸우기 위해 보호 장비와 무기를 곳곳에 준비해 놓고 있었다. 경한자본은 용역깡패들을 고용해 공장 주변과 야산을 돌면서 호시탐탐 침탈기회를 노렸지만 끝내 용역깡패투입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본가정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찰병력의 투입은 상황을 정리하는 카드는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이 정부가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는 반동 정부라는 점을, 이 정부가 이 공장을 이제까지 가동시켜왔고 운영해왔던 진정한 주인공인 노동자들을 짓밟으면서 단지 노동자의 피를 빨아 이윤을 모아왔던 한줌 착취자들을 보호할 뿐인 착취자의 정부라는 점을 명백하게 드러내야만 했다. 바리케이드가 강력하면 할수록, 지더라도 끝까지 맞붙어 싸우다가 지겠다는 결의가 노동자들 속에서 살아있으면 있을수록 자본가정부의 실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작업장 점거파업은 ‘공장과 기업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가’에서 노동자들이 우렁차게 선포하는 ‘공장과 기업의 주인은 바로 우리이다’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비록 작업장점거파업은 일시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언젠가는 이 작업장을 노동자계급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노동해방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노동자들은 공장을 움켜쥐고 싸우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장을 쥐고 싸운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소유권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되면 용역깡패는 물론이고 폭력경찰과 피 흘리는 싸움을 각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많은 경우 노동자들은 공장점거에 있어서 단호하거나 결사적이지 못하게 된다. 점거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되면서 결사적인 태세를 갖추지 못하면 ‘용역깡패나 폭력경찰 투입시기에 백기항복 할 것이냐 결사투쟁 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후퇴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공장을 내주게 되면 노동자들은 가장 큰 무기를 잃어버리게 되고 패배감과 후회가 대오를 휘어 싸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바리케이드의 설치와 점거투쟁 전술의 수립, 무기의 준비 등 금강화섬노조의 공장점거 경험들은 이후 공장점거투쟁을 결의하는 동지들에게 소중한 재산으로 남을 것이다.

    금강화섬노조의 공장점거투쟁은 투쟁의 안정적인 거점을 확보하게 했다. 1년 7개월 동안 노동자들이 항상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고 항시 지켜야 할 거점이 있었다는 점은 장기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해체되지 않고 단결력과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금강화섬 공장은 많은 연대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지역 노동자들의 모임, 지역투쟁문화제, 연대동지들의 수련회 등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가 공장 안에서 진행되었고 연대동지들은 금강화섬 공장에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었다. 공장은 연대동지들이 안정적으로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해 주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공장점거를 통해 매일같이 자신이 만들어냈고 작동시켜 왔던 공장·기계와 함께 하면서 ‘공장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이다’는 자존심을 살려왔다는 정신적 효과이다.”

    5) 노동자 연대파업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전술을 종종 잊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 연대’이다. 하나의 파업이 전국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솟구치려면 반드시 노동자연대가 필요하다. 노동자연대는 단위사업장 노동자파업을 전체 노동운동과 연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의 파업의 힘을 전체 노동운동의 힘에 결합시켜 보다 계급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투쟁을 더욱 완강하게 펼치는 것이다. 이렇게 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이 전국노동자들에게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을 불러일으켜 연대파업을 성사시켜야만 승리를 향해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노동자연대를 만들어내고 실질적인 노동자 연대파업을 성공적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노동자들이 지역과 업종, 사업장은 다르더라도 “동지들의 투쟁은 곧 우리의 투쟁이며, 우리의 투쟁은 곧 동지들의 투쟁이다!”는 확고한 동지의식과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노동자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으로 무장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연대의 정신과 실천은 일상 시기부터 훈련되어야 한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일상 시기에는 전혀 연대투쟁에 참가하지 않다가, 자기 사업장이 파업에 들어가면 부랴부랴 연대투쟁에 나서고 연대파업을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급조된 노동자연대는 결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일시적인 연대는 그만큼 효과도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노동자연대는 일상 시기나 전면적인 파업 시기나 꾸준히 펼치는 연대이다. 주어진 상황과 조건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노동자 연대정신을 훈련하고 일관되게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전면적인 파업 시기에 지역적이고 전국적인 노동자 연대파업을 신속하고 위력적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다.

    파업 시기에 노동자 연대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사활적이다. 노동자 연대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을 솔선수범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파업에 돌입하면 모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달려가서 연대투쟁 하는 것은 보다 쉬운 일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10~20여명 단위의 연대투쟁단을 조직하여 조별로 돌아가면서 연대투쟁을 전개하면 된다. 연대투쟁단이 지역과 전국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어깨 걸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담회나 토론 자리를 마련하여 파업의 요구와 상황을 공유하며 동지적 일체감을 만들면서 서로의 파업에 대한 적극적인 선전과 지지, 직접적인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 연대파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투쟁사업장뿐 아니라 공단, 지역, 전국의 민주노조 사업장들을 방문하여 점거파업 상황을 알리고 연대투쟁을 호소해야 한다. 역시 7~10여명의 지역순회단, 전국순회단을 조직하여 조별로 순회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단에 위치한 노동조합인 경우 전체 파업대오가 공단순회선동을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에서 노동자 연대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왜냐면 상급단체 회의구조에서 노동자 연대파업을 결의하는 것으로는 전체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의 파업결의를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거리 순회단의 운영은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의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우선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소규모일 경우에는 파업대열의 힘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순회단은 적절한 시점에 운영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자본가들과의 전투가 교착상태에 들어가는 국면에서 순회단을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점거파업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연대를 제대로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대규모일 경우에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연대투쟁단이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투쟁하거나 지역과 전국에 순회단을 파견해도 파업대열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적이고 공세적으로 연대투쟁단과 순회단을 운영하여 지역과 전국의 노동자들로부터 점거파업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노동자파업에서 고립전술을 쓰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고립은 최대의 적이다. 단위사업장에 고립되어 전개되는 파업이 어떻게 거대한 경제적 힘과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합동작전을 펼치는 자본가들과 정부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하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단위사업장의 벽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을 조직하고 확산시켜야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장을 뜰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면 그 파업은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로 자리매김하며 승리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6) 파업의 확산과 가두시위

    우리는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이 전국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전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지역과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을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연대투쟁단, 공단순회선동단, 전국순회단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대담하고 공세적인 파업전술을 능동적으로 사용한다면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달려와서 거대한 노동자부대를 이루고 투쟁하는 가슴 벅찬 광경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모든 파업은 항상 또 다른 파업을 이끌어내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파업들이 개별자본가에 맞서 임금·고용 등을 요구하는 경제파업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파업은 단위사업장을 넘고 지역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들과 전체 자본가들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발전해간다. 파업이 발전하는 모습은 마치 파도와 같다. 하나의 파도가 밀려오면 뒤이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듯 파업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노동자들의 경제파업이 정치파업으로 발전해 나가면 대립의 수위도 더욱 더 격렬해진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내걸어야 할 요구와 조직해야 할 세력의 규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 경제파업이든 정치파업이든, 단위사업장 파업이든 전체노동자들의 총파업이든 노동자들이 굳게 의지해야 할 힘의 원천을 이해해야 한다.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경찰·검찰·법원·노동부·정부·언론·국회의원들은 모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의 한 패거리이다. 그런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그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투쟁전술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반드시 단절해야 할 가장 불합리한 행동이다. 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동자들이 의지해야 할 힘은 바로 노동자들의 단결, 노동자들의 연대,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연대파업뿐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것은 노동자들 자신 이외에 아무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오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단결과 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이제 공장과 사업장 검거파업이 전체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선 정치파업의 양상을 띠는 경우 노동자들의 투쟁전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정치파업과 가두시위를 결합시키는 전술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어떤 투쟁에 연대하기위해 다양한 집회에 참가해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집회는 상급단체 관료들의 연설로 채워지고 몇 가지 문화공연을 끼워 넣어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코 노동자들이 집회의 주인공이 아니다. 집회가 끝나면 곧바로 해산하는 경우도 많다. 설사 거리행진을 하더라도 경찰들이 쳐놓은 폴리스라인에 갇혀 얌전히 행진하고 마무리한다. 그러면 투쟁하고자 했던 노동자들은 맥이 빠져 집회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수천수만의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달려왔는데, 그 엄청난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경제파업은 정치파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정치파업은 가두시위와 조직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이러한 공격적인 전술을 과감하게 사용해야만 자본가들과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으며, 보다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와 파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가두시위를 전개할 경우 조직화된 폭력경찰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위력적인 가두시위를 전개하려면 그것을 선도하고 폭력경찰을 제압할 수 있는 노동자투쟁기구가 필요하다. 우리 노동자들은 오랜 파업의 경험을 통해서 전국노동자선봉대, 전국노동자정당방위대를 만들어 투쟁해왔다.

    7) 파업의 연속성을 사수하는 것

    파업은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전투다. 전투에서는 상호충돌로 인하여 ‘불가피한 손실’이 발생한다. 기만술을 쓰는 가짜 전투가 아니라면 일정한 조직적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서술한 공장과 사업장 점거파업, 지역과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파업, 경제파업을 정치파업으로 발전시키는 것, 정치파업과 가두시위를 결합시키는 것, 가두에서의 폭력경찰과의 전투 등 이러한 공세적이고 대담한 다양한 전술들을 실행하면서 조직적 손실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파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직적 손실에 대비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조직적 손실이 지도부의 손실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반드시 세워두어야 한다. 이것은 파업을 이끌어가는 노동자투사 지도부들의 필수적인 임무다. 자본가와 정부의 탄압에 의해 지도부의 일부를 잃는 경우 파업대열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노동자들의 혼란을 조직적으로 정비하면서 파업을 일관되게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2선 지도부, 3선 지도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진지하고 책임성 있게 파업을 이끌어가는 노동자투사 지도부라면 파업의 연속성을 사수하기 위한 준비를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파업전술항목 첫 번째에서 다루었던 대중적인 전술토론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풍부한 대중적인 전술토론을 통해 전체 파업대열이 어떤 목표를 향해 전진해나갈 것인지, 정확하게 어떤 요구를 끝까지 쟁취해낼 것인지, 그리고 어떤 투쟁의 전술과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확고한 통일성을 갖추어야 한다. 파업대열이 내용적인 통일성을 획득하고 있다면 자본가와 정부의 탄압에 의해 지도부의 일부, 간부층의 일부, 평조합원들의 일부를 빼앗기더라도 큰 동요와 혼란 없이 일관되게 싸워나갈 수 있다. 파업의 요구와 전술의 통일성에 입각하여 조직적 손실을 신속하게 복구하고 대열을 정비하고 파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조직적 면모를 보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본가들과 정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2선, 3선 지도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구성인자가 과연 새로운 투쟁지도부로서 즉각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갖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파업의 기조·요구·원칙·전술에서 확고한 지도부이다. 이러한 중요한 사항들은 파업에 돌입하기 이전부터 대중적인 토론을 거쳐서 전체 파업노동자들이 통일된 방침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파업의 과정에서 조직적 손실을 입더라도 즉각 새로운 파업지도부가 떠오를 수 있을 것이며, 확고한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일관되게 전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6. 마지막 승부처는 파업마무리를 잘하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왜 파업에 나서는가?”, “파업이란 무엇인가?”, “살아 숨 쉬는 파업의 의의는 무엇인가?”, “명실상부한 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항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파업에서 사수해야 할 기본원칙들은 무엇인가?”, “승리의 길을 열어주는 파업전술항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다루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파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원칙과 전술을 갖고 투쟁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파업을 마무리해야 하는가이다. 왜냐면 파업마무리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파업을 훌륭하게 조직했는데도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파업의 성과를 온전히 사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아주 어렵고 고통스럽게 파업을 조직했지만 마무리를 잘해서 파업의 사기와 조직력을 사수하고 현장에서의 또 다른 투쟁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파업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면, 그것은 곧 파업을 제대로 준비하고 철저하게 전개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마무리를 아주 훌륭하게 진행했다는 점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파업을 마무리할 때 많은 노동자들은 “우리의 요구안이 얼마나 관철되었는가!”를 주목한다. 그리고 요구안을 많이 쟁취하면 ‘승리한 파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 파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생각은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조관료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상식처럼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낮은 의식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파업의 요구를 쟁취하는 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요구가 없다면 파업은 조직되지 않았을 것이고, 요구를 얼마나 쟁취했는가의 문제도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파업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노동자들이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파업의 성과와 결과, 승리와 패배를 판단할 때, 요구안의 획득만이 ‘전부’일 수 없다는 점이다. 노동자투사들은 당장의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가 보다도 파업의 진정한 의의를 얼마나 살려냈는가에 보다 주목한다. 왜 그런가?

    1) 파업마무리에서 견지해야 할 기본관점

    파업을 계속 밀어갈 것인가 아니면 마무리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과 파업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지 ‘요구안을 얼마나 쟁취했는가’로 한정되지 않는다. 파업의 진정한 목표와 의의가 무엇이었던가를 되돌아본다면 파업마무리 역시 그에 걸맞는 본질적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파업의 진정한 목표와 의의는 파업을 통해서 투쟁력을 강화하는 것, 단결력과 조직력을 성장시키고 노동자다운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요구의 쟁취로 연결되는 것이다. 파업의 마무리와 성과를 판단하는 것도 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요구안의 성과를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파업을 통해서 단결력과 조직력, 투쟁력과 계급의식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성과는 진정한 성과로 남을 수 없다. 반대로 요구안에서 많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조직력, 투쟁력과 계급의식을 강화했다면 그 파업은 진정 가치있는 파업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두 경우를 비교해 보면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표면적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의 요구안을 관철했지만 파업을 통한 노동자들의 단결력, 조직력, 투쟁력, 계급의식의 강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경우다. 오직 요구안의 쟁취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파업은 성과있는 파업이고 승리한 파업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진정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획득한 성과물이 아닌 경우, 그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날카로운 투쟁의지를 무디게 만들고 투쟁력을 마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시적인 양보조치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것은 전진하는 노동자들의 발목을 움켜잡는 덫일 뿐이다. 이 덫에 걸려 파업이 마무리되고 투쟁력이 하강하면, 자본가들은 본색을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양보를 거둬들이고 은밀한 방식이든 공공연한 방식이든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다. 만약 파업을 통해 단결력과 투쟁력, 조직력과 계급의식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자본가들의 비열한 책동은 즉각 폭로되고 강력한 반격에 부딪혀 격퇴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투쟁력을 잃고 무기력해진 상태에서 자본가들의 분열책동에 휘말리며 또다시 후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거에 획득했던 성과물들을 도로 빼앗길 것이 자명하다. 요구안의 성과조차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진정한 성과가 될 것인가는 그 성과를 사수할 수 있을 정도의 단결력과 조직력, 투쟁력과 계급의식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두 번째는 당장 손에 쥐어지는 성과는 거의 없지만 파업을 통해서 노동자의식을 날카롭게 발전시키고 단결력과 조직력, 투쟁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한 경우이다. 오직 요구안의 쟁취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파업은 성공적이지 못한 파업이며, 미완성의 파업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성급한 판단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투쟁력과 조직력 등등을 상승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노동자들은 투쟁의 기세와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전진을 보장할 것이다.

    2) 파업마무리와 새로운 투쟁의 준비

    이러한 이유로 파업마무리에 앞서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그 파업을 가장 철저하고 완강하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직접적이고 진정한 성과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최대로 상승시키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굳게 서 있지 않는 타협주의 지도부와 노조관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의 파업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의식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해서 노동자들에게 ‘선물보따리’를 안겨주고 싶어 한다. 이런 식으로 파업을 이끌어나가면 결국 모든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 즉각 손에 쥐어지는 눈앞의 성과만을 추구함으로써 파업을 통한 투쟁력의 강화, 조직력의 강화,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이라는 과제는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상승시키지 못한 결과, 아무리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그 성과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설사 일정한 성과물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파업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의식을 강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재도발에 맞서 그 성과물을 사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투사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당장 손에 쥐어지는 성과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교섭을 통해 얼마나 많은 요구안을 얻어낼 것인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파업 이전의 일상 시기에 비해 단결과 행동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성장했는가 여부에 따라, 적더라도 가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많더라도 가치 없는 성과만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업 마무리는 노동자투쟁의 의지와 사기를 탄탄하게 유지하고, 긴장감과 경계, 즉각 행동에 돌입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태세를 견결히 사수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본가들의 도발을 단호히 응징하면서 다음 투쟁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미래의 전망을 열어갈 수 있다.

    이제 결론을 맺자!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파업이 끝났다는 것은 새로운 투쟁과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앞에서 “무엇이 파업을 부르는가?”에서 다루었듯이 자본주의 사회가 끝장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파업은 끝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자본가들과 정부는 끊임없이 노동자들에 대한 도발을 감행하며 우리의 의지와 힘을 시험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크고 작은 도발을 노동자들의 철옹성 같은 단결력과 단호한 투쟁력으로 즉각 분쇄하면서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노동해방 세상을 향해 거센 파도처럼 당당하게 전진하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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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2 세계노동자운동  교양도서 2권_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한국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 09·11·11
    811 세계노동자운동  교양도서 2권_세계노동운동사(3) 2차 세계대전 후부터 오늘날까지 09·11·11
    810 세계노동자운동  교양도서 2권_세계노동운동사(2) 1920~30년대의 격변하는 혁명시대 09·11·11
    809 세계노동자운동  교양도서 2권_세계노동운동사(1) 자본주의 탄생부터 러시아 혁명까지 09·11·11
    808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교양도서 2권_노동해방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0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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