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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방향타 : 교양도서 3권_단결의 무기로 출발했으나 위기에 빠진 노동조합,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사노련  | 2009·11·11 23:33 | HIT : 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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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3권 '노동자, 세상을 움켜쥐어라'에 실린 글입니다.)

    단결의 무기로 출발했으나 위기에 빠진 노동조합,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오지환

    들어가며

    우리는 종종 사장이 회식이나 조회시간에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사원을 가족같이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순진한(?) 노동자는 별로 없다. 사장들은 임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도 노동자들을 잔업·특근으로 뺑뺑이 돌리면서 악랄하게 부려먹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조금이라도 사장과 관리자들 눈 밖에 나면 언제 짤릴지 모른다.

    그렇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단지 순한 양처럼 ‘복종의 대상’이자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사고한다. 그런데 만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다면? 사장들로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감히 노예가 주인의 명령에 반기를 들다니 …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오죽하면 무노조 왕국으로 악명 높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겠는가!

    반대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없다면? 먼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7~80년대 저 암울한 시기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공돌이·공순이로 비하하기 일쑤였다. 또 정문 앞에서 경비가 바리깡을 들고 두발단속을 하고 조회시간에는 사장과 관리자로부터 욕설과 쪼인트가 날아왔다. 한마디로 노동조합 깃발 아래 뭉치고 싸우기 전에는 노동자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노예와 굴종의 시절은 영원히 지나갔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 속에 노동조합 건설의 물결이 태풍처럼 전국을 휩쓸었던 것이다. 구속·수배·해고 등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무수한 탄압의 포화가 쏟아졌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이 모든 고난과 시련을 견디어내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민주노조!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열정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가슴속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던가!

    그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대공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자본가들은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공히, 경제위기의 모든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무자비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임금삭감과 해고 등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의 모든 사업장을 덮치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해야 할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몇 배나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의 구심이어야 할 민주노총은 노조 상층 간부들이 저지른 취업비리, 금품수수, 성폭력 등으로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조합원들은 무관심을 넘어 아예 노동조합을 차갑게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없는가? 과연 지금이 노동조합에 안녕을 고할 때인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면 먼저 노동조합의 과거·현재·미래를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재차 민주노조 운동이 기운차게 전진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서로 다른 두 계급 : 노동자와 자본가

    먼저 노동조합이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펴보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장과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이 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칭송한다. 가령 선거에서 “노동자도 자본가와 동등하게 1표를 행사하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마치 계급대립으로부터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사회인 것처럼 주장한다.

    물론 과거 노예제나 봉건제 사회와 달리 신분적 억압은 철폐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평등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국민이라는 범주는 ‘계급대립’과 ‘불평등’을 은폐하는 위장막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부유한 자본가와 가난한 노동자라는 서로 다른 두 계급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먼저 소수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손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몇몇 언론보도 기사를 보자.

    <한국의 부자들 순위>

    1위 이건희 : 39억 달러(약 4조원),  2위 정몽구 : 18억 5천만 달러(약 2조원), 3위 정몽준 : 13억 달러(약 1조 3천억원)…1)

    <어린이 주식부자들>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상장사 대주주나 친인척 가운데 만 12세 미만에 해당하는 이들의 보유주식을 평가한 결과 30일 종가기준으로 1억원 이상 가진 어린이가 75명인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 한편, 1위는 허석홍[GS그룹] 군으로 보유한 주식가치가 234억원에 이르는 걸로 나타났습니다.2)

    모두가 어렵다는 이 경제위기에도 ‘대한민국 1% 부자’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자본가들이 이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상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은 이제 노동자들이 다 담당하고 있다. 이건희와 정몽구가 며칠씩 해외여행을 떠나도 반도체와 자동차가 생산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따라서 “사장들이 기업을 운영해서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혹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것처럼, 우리의 재산도 정당한 경영의 대가다”라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대체 경영의 실체가 무엇인가? 연구개발과 각종 관리업무도 이제는 기술직·관리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제 무엇이 남는가? 우리가 매일 매일 신문·방송을 통해서 접하는 자본가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각종 투기를 일삼거나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는 것 따위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부정·부패와 낭비가 자본가들의 본업이다. 자본가계급은 이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기생충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사회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들은 이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컴퓨터, 옷, 신발 등을 만들고 지하철, 버스 등을 운행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한다. 정말이지 노동자들이 없다면 이 사회는 단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대들보’요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인 노동자들은 과연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휴대폰 문자메시지 하나로 손쉽게 해고되는 비정규직 숫자는 9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나마도 이런 일자리조차 없어서 굶주리는 실질 실업자 수는 300만에 육박한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가난한 민중의 절규가 끊이질 않는다. 현재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수많은 가장과 청년실업자들이 한강에 몸을 던지거나 약을 먹고 자살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이런 불평등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바로 한 줌의 자본가들이 공장, 기계, 토지, 운송수단 등 사회의 모든 생산수단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이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바탕으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며 노동력을 착취한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뿐이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자본가들에게 고용되어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만일 어떤 노동자가 자본가들에게 노동력을 판매하는 걸 거부한다면, 그는 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느 자본가에게 착취당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정도의 자유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제시하는 취업규칙과 사규가 아무리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생산수단이라는 칼자루를 자본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한,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맺는 취업계약은 처음부터 불평등하다. 과거 신분제 사회처럼 눈에 보이는 억압은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금노예라는 훨씬 더 강력한 족쇄가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를 ‘임금노예제도’라고 불렀다.

    단결과 투쟁의 기구 : 노동조합

    그렇다면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불리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노동자는 개인으로는 자본가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사장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한 노동자가 회사를 때려치우더라도 그는 이내 곧 또 다른 자본가 밑에서 착취당해야 할 운명이다.

    대신에 노동자의 유일한 사회적 힘은 오직 쪽수로부터 나온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하기 시작하면서 평상시에는 노동자를 무시하던 자본가와 관리자들도 이제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동조합은 순전히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투쟁으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장시간·저임금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이처럼 처음에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매달렸다. 이것은 노동조합 투쟁의 출발점으로는 정당하고, 또한 어떤 노동조합이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투쟁이었다.

    노동자들은 최소한 노예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 투쟁해 왔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계약 조건을 따내기 위해 서로간의 경쟁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저지하려고 자연발생적으로 투쟁해 왔다. 노동조합은 원래 이러한 투쟁을 통해 탄생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일차적 목적은 생활필수품을 확보하고 끊임없는 자본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 즉 임금과 노동시간의 문제로 제한되었다.3)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적인 시기에 노동조합은 가장 광범위한 노동대중을 포괄하는 단결과 투쟁의 기관이라는 점이다. 이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서 노동대중은 자본가에 맞선 ‘투쟁의 방법’을 배우고 ‘조직적’으로 단련되고 ‘의식적’으로 각성된다. 나아가서 임금인상과 고용보장 요구처럼 방어적인 투쟁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임금노예제도 자체를 철폐하기 위한 투사로 훈련되기 시작한다.

    이상의 내용을 차례대로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자본가들에 맞선 투쟁의 수단들 중에서 파업은 가장 주요한 노동조합 투쟁의 무기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자본가들의 이윤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공장 가동은 완전히 중단된다. 만일 전체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일 경우, 이 사회는 완전히 정지된다. 파업을 통해서 노동자는 실제 이 사회를 운영하는 주인공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모든 파업에는 혁명이라는 괴물이 숨어있다”고 절규한다. 비록 파업은 그 자체만으로는 임금노예 제도를 철폐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들을 장기적으로 노동해방을 향해 전진하는 투사로 훈련시킨다.

    그렇지만 이러한 파업들이 종종 더욱 심각한 충돌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전쟁에서 그것은 일종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작은 전투에 불과하지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결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이들 파업은 산업 노동자계급의 훈련장이며, 불가피하게 다가오고 있는 대전투를 그들에게 준비시킨다. 파업은 일단의 노동자가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고수하겠다는 선언이다.4)

    다음으로 조직적인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발전과정을 검토해보자. 초창기 노동조합의 형태는 주로 숙련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직종별 노동조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성별과 나이, 국적의 차이와 무관하게 동일한 처지임을 깨달아간다. 또 노동자들의 투쟁이 확대되면 될수록, 업종과 지역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식이 굳건히 형성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부추기는 경쟁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이 지역으로 산업별로 전국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필요성이 자라난다.

    마지막으로 의식적인 측면에서 노동자들은 사장들에 맞선 투쟁을 통해서 점차 전체 노동자계급과 전체 자본가계급 사이의 날카로운 계급적대성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업농성장에 투입되는 경찰과, 노동자투사들을 구속시키는 검찰과 법원,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파업을 불법과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는 보수언론의 작태를 보면서 자본주의는 오직 소수 자본가들만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사회라는 점을 훤히 꿰뚫어 보기 시작한다. 이제 노동자계급 앞에는 단위 사업장에서의 경제투쟁을 넘어서는 전국적 정치투쟁의 과제가 강력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서 때때로 노동자들은 승리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언제나 ‘일시적’이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분열시키고 무력화하기 위해 수천, 수백 가지의 방식을 동원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이 흔들리면 자본가들은 기존에 노동자들이 이룩한 투쟁의 성과를 모두 도둑질해간다. 실제 최근에도 많은 사업장에서 자본가들이 각종 합의서를 위반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임금삭감을 강요하거나 아예 단체협약을 해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한층 더 강화하고 계급의식을 각성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노동조합이 넘어서야 할 과제들

    오늘날에도 노동조합은 광범한 노동대중의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노동조합 투쟁이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에만 자신의 관심과 시야를 한정하면 이내 곧 한계에 부딪친다. 노동자들이 제아무리 많은 임금인상을 쟁취한다고 해도, 그것은 노동의 대가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 즉 자본주의 임금법칙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여전히 이 사회의 주인은 자본가이고 노동자는 노예에 불과하다. 결국 임금노예제도 그 자체를 철폐하지 않는 한, 착취의 사슬을 조금 느슨하게 할 수는 있어도 착취의 원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먼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게릴라 전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임금노동과 자본의 지배제도 그 자체의 폐지를 위한 조직된 힘으로 더욱 중요하다.5)

    그런데 원래 노동조합이 처음 생겨난 19세기 영국은 당시만 해도 아직 자본주의가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한국에서도 87년에 일어난 대규모 노동조합 설립의 물결은 이른바 3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자본가들이 어마어마한 이윤을 거둬들이고 노동자들의 고용도 완전고용에 가까운 호황기에는, 노동자들은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설 수 있었다. 물론 비록 호황기라 하더라도 손익계산에 철저한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강력해서 자신들의 이윤을 압박하지 않는 이상, 결코 스스로 양보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호황기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서 그럭저럭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고 일자리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황의 시기가 지나가고 불황과 공황이 도래하면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덤벼든다. 경제가 어렵다는 빌미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임금삭감, 단체협약 개악 등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한다. 또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밀어붙이고 노동조합이 이에 저항하면 직장폐쇄, 부도와 법정관리도 불사한다. 게다가 공황기에는 자본축적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경쟁이 더욱 격화되면서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쇠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공황은 주기적으로 산업생산을 교란했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호황은 점점 더 예외적인 일이 되고, 불황과 공황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에서는 1998년 IMF 사태를 기점으로 지속적인 경제 불황이 이어졌고 현재는 세계대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심각한 경제위기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격화되면 될수록, 노동조합은 이제 결정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노동조합 앞에는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놓여있다.

    하나는 회사의 흥망성쇠에 노동자의 운명을 종속시키고 “노동자의 투쟁은 결코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조합주의 길이다. 만일 노동조합이 이와 같은 조합주의에 사로잡히면 결국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사측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투쟁 대신에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양보교섭으로 미끄러진다. 최악의 경우, 노동조합이 스스로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의 길은 자본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임금노예제도 철폐와 노동해방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위기의 책임은 너희 자본가들이 져라”, “양보는 죽음이다”라는 기치 아래 단호하게 투쟁에 나서야 한다. 만일 회사가 부도와 파산으로 노동자들을 협박한다면, 공세적으로 ‘노동자가 통제하는 국유화’를 요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계급의 공동 소유로 전환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

    임금노예제도 철폐를 향하여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다”라는 노동자들의 열망은 오직 임금노예제도를 철폐해야만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 즉 모든 착취와 억압이 일소되는 노동해방 사회로 전진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계급 해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위로 미조직 노동대중과 모든 피억압 민중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혁명은 오직 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모두 떨쳐 일어나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설 때만 가능하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노동조합은 일부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은 어용 한국노총을 포함해도 전체 노동자의 불과 10%만을 포괄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은 꿈도 꾸기 어려운 열악한 현실에서 신음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여성,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처럼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이해를 진심으로 대변할 때, 전체 노동자를 위한 희망의 빛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둘째, 노동조합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도시빈민, 노점상, 철거민, 하층 농민 등 가난한 민중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그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 용산 철거민 투쟁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노동자들이 정권과 자본에 맞서 가난한 민중들에 대한 학살에 항의하고 결사적으로 투쟁을 전개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가난한 민중들이 노동조합 투쟁에 박수를 보내고 노동자의 주위로 결집함으로써 자본가 정부에 맞선 노동자 투쟁전선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될 것이다.

    셋째, 노동조합은 정부의 모든 억압과 폭정에 맞선 일련의 사회적·정치적 투쟁을 지원하고 그 투쟁에 직접 나서야 한다. 가령,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일제고사에 맞선 투쟁, 언론장악 음모에 맞선 투쟁,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가 발단이 된 촛불 항쟁이 대표적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분적인 요구투쟁들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통일시켜내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때, 노동자계급은 전체 민중의 지도자로서 자본에 맞선 투쟁을 최선두에서 이끌면서 마침내 노동해방 사회로 전진할 수 있게 된다.

    노동조합은 그 당초의 목적 외에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조직화를 위한 중심으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조합은 이 목표를 지향하는 모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조합은 자신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대변자이며 투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그러한 인식에 기초를 두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과 행동을 통해 아직 노동조합 대열에 가담하지 않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노동조합은 농업노동자들과 같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주의 깊게 보살피고 보호해야 한다. 이들 노동자들은 유별나게 불리한 여건 때문에 지금까지 조직적으로 저항할 힘을 박탈당해 왔던 것이다. 노조는 또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노력이 결코 이기주의적이고 편협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로 학대받고 짓밟히는 무수한 노동대중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리고 이를 확산시켜야 한다.6)

    민주노조 운동의 전진을 위하여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회자되기 시작했고 혁신의 구호들도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혁신의 발걸음을 올바르게 조직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이 문제에 접근해보자.

    많은 노동자 투사들이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노협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말한다. 물론 과거의 전노협이 견지했던 올바른 원칙과 정신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올곧게 계승되어야 한다. 단 당시 전노협 운동이 가졌던 한계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노협 운동의 모범은 첫째, 자본에 맞선 ‘비타협적 투쟁 정신’을 꼽을 수 있다. 전노협은 자본과 정권의 구속·수배·해고 등 입체적인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으며, 적들의 탄압이 밀려오면 기죽지 않고 단호한 총파업으로 맞받아쳤다. 둘째, 이웃 사업장에서 투쟁이 발생하면 곧바로 달려가는 ‘연대의 정신’이다. 전노협 시절에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연대투쟁은 오늘날의 산별노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끈끈하게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셋째, 전노협은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이라는 자신의 구호처럼, 임금인상 투쟁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대정부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했고 노동해방 사회를 강렬히 염원했다.

    하지만 당시 전노협 운동의 가장 심각한 한계는 자신이 지향하는 변혁지향성을 보다 과학적이며 올바른 정치노선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정식화 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게다가 당시 전노협 운동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성장하던 노동자 정치운동은 이미 국제적으로는 오래전에 파산을 선고받은 민중주의와 스탈린주의에 갇혀 있었다. 급기야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사회주의 사회라고 믿었던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1989~91년 잇달아 몰락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정치적 전망을 상실하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다수 활동가들은 평범한 조합주의 활동가로 후퇴했고 최악의 경우는 노동조합 관료로 전락했다. 극히 소수의 노동자 투사들만이 이러한 청산과 변절의 흐름에 저항하면서 패배의 원인을 곱씹으며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모색했다.

    1995년에 출범한 민주노총의 우파 지도자들은 전노협 운동을 계승하기는 고사하고 민주노조운동을 더욱 더 뒤로 후퇴시켰다. 이 당시 등장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포기하게 하고 민족주의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른바 중앙파는 물론이고 현장파도 차례대로 조합주의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자신들이 비판하던 우파와 마찬가지로 직권조인을 일삼는 등 노동대중을 배신했다. 마지막으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로 대표되던 건강한 현장조직운동의 흐름도 전투적 조합주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이제는 대다수가 집행부 장악을 위한 선거조직으로 전락해갔다.

    노동조합 운동의 이러한 일련의 퇴보 과정은 노동자 정치운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뜨거운 염원을 받아 안고 탄생한 민주노동당은 출발부터 변혁지향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개량주의·민족주의 정당으로 고착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자본가 정당의 2중대로 기능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을 심어주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에서 떨어져나간 진보신당 역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개량주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렇다면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지금까지 노동조합 운동의 후퇴 과정을 검토하면, 치명적인 정치적 약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노협의 후퇴와 소멸 과정은 노동자 정치운동 내 변혁지향성을 포기하는 청산주의·합법주의 흐름과 따로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선진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운동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명확하고 올바른 정치노선에 입각해서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더욱 격렬하고 급속하게 위기로 치닫고 있는 세계대공황의 물결 속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진정한 노동자 대중투쟁기관으로 세워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보다 공세적이고 대담한 투쟁요구로 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트로츠키가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조합」이라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쇠퇴기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조합 앞에는 “자본과 결탁하는 관제노조로 전락할 것이냐”, 아니면 “노동해방으로 단호하게 전진할 것이냐”라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셋째, 오늘날 민주노조 운동을 뇌사상태로 내몬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노동조합 관료주의의 해악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장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바탕으로 해서가 아니라 단지 선거놀음을 통해서 노조 상층 집행부만을 장악하려고 하는 시도는 전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평조합원들의 자주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평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활성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솟아오를 때, 투쟁을 통해서 입증된 헌신적이고 투철한 지도자들이 마침내 노동조합 관료들을 몰아낼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조 운동은 다시 올바른 궤도 위에서 노동해방을 향해 다시 힘찬 진군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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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브스 誌> 2009년 5월, 39억 달러면 약 4조원, 18억 5천만 달러

    2) <머니투데이> 2009년 5월 4일

    3) 마르크스, 󰡔노동조합의 과거·현재·미래󰡕

    4) 엥겔스,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

    5) 마르크스, 󰡔노동조합의 과거․현재․미래󰡕

    6) 마르크스, 󰡔노동조합의 과거․현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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