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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교양도서 2권_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노동해방의 전망
 사노련  | 2009·11·11 23:21 | HIT : 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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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2권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 실린 글입니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노동해방의 전망

    양준석

    1. 들어가며 - 근본적 위기를 향해 치달아 가는 세계 자본주의

    20세기 초까지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제국주의 식민지로 집어삼키며 지속적인 확장과 성장을 구가하던 세계 자본주의는 1914~18년의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쇠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독점자본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어 이윤율이 곤두박질치자 벌어진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은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제국주의 세계 전쟁이 낳은 세계적인 노동자 혁명의 물결을 러시아로 가두는 데 성공한 자본주의는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1929년 끝내 세계대공황을 맞이하게 되고, 10년 가까이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실업과 파산을 겪으면서도 좀처럼 세계적 공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살육을 거치고서야 자본주의는 세계적 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약 25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안정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개량주의 노동자당과 관료주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에게 협력하며 지속적인 이윤 확보를 뒷받침했다. 노동자들에게도 일정한 개량의 떡고물이 주어졌고, ‘복지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들이 널리 퍼졌다. ‘자본주의를 조금씩 개선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간다’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를 조금씩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자에게는 충분하다’로 귀결된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그럴듯한 대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타협과 환상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자 자본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윤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1968 혁명을 비롯한 노동자 투쟁이 관료적 통제를 뚫고 아래로부터 거침없이 솟구쳐 올라왔다. 자신들의 이윤을 유지하려면 더 이상 노동자들과 ‘타협’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자본가들은 이제 대대적인 ‘공격’으로 전략을 바꿨다. 타협에서 공격으로 전략을 바꾼 자본가들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대결이 1970년대를 거치며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본가들은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착취와 무자비한 억압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자유로운 공장이동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너뜨리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신자유주의 공세를 펼칠 수 있게 된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노동자 투쟁에서 ‘삼손의 머리카락’에 해당하는 ‘공장’을 (일시적으로나마) 무력화할 방법을 터득했다는 점이었다.

    공장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생산 거점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밀집시키고 노동자 운동의 힘과 성과를 응축시키는 거점이다. 공장 없이 자본주의는 유지될 수 없는데, 공장으로 밀집된 노동자들은 결국 조직화되어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그것이 ‘자기 무덤을 파는 자들’, 즉 노동자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힘을 키워줄 수밖에 없는 자본가들의 필연적 숙명이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자본가들은 그 필연적 숙명을 한동안 피해갈 수 있는 묘안을 찾아냈다. 자유로운 공장이동의 전면화를 가능케 하는 기술적 제도적 수단을 확보해 낸 것이다.

    이제 노동자 운동의 전통이 전혀 없는 곳을 찾아 국내든 해외든 자유롭게 공장을 이동시킬 수 있게 되자, 자본가들은 기존의 노동자 운동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끝없는 굴복과 양보를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장이동의 전면화야말로 ‘세계화’의 핵심이며, 세계적인 수준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향해 신자유주의 대공세를 펼칠 수 있게 만든 힘의 근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는 오늘날까지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펼쳐진 세계적인 공장이동은 세계 자본주의와 노동자 운동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미국·서유럽·일본에 집중되어 있던 공장은 남미·동유럽·동아시아를 향해 빠져 나갔고 최종 귀착지로 중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세계적인 공장이동 속에서 엄청난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한 거대 자본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흐름을 타지 못한 자본가들은 급격히 몰락했다. 초국적 자본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은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수준에서 점점 더 피 말리는 형태로 펼쳐지게 되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운동은 신자유주의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뒤로 아직까지 거의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을 비롯하여 새로 공장이 몰려간 나라들에서 더욱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반드시 솟구쳐 올라오겠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자본 대 노동의 계급역관계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3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심각한 모순 위에 서 있는 세계 자본주의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모순 위에 서 있다. 미국이 계속 소비를 해줘야만 중국이 계속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초국적 자본들이 이윤을 얻고 세계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다. 그런데 세계적인 공장이동 속에서 제조업이 대거 빠져나간 미국의 소비는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역시 엄청난 수준에 이른 가계 부채를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도 정부와 가계의 빚을 점점 더 늘려가야만 소비 수준이 유지될 수 있는 상태에 미국 자본주의가 놓여 있다. 근원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공장이동 과정에서 해외로 대거 빠져나간 제조업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미국은 적자를 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임금과 무노조를 찾아 해외로 빠져 나간 개별 초국적 자본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중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자본은 미국이 더 많은 빚을 내서라도 당장 소비해 주지 않으면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야기하는 불안정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미국의 소비능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출로 번 돈으로 엄청난 양의 미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의 빚을 끝없이 늘려가야만 세계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굴러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세계적인 경쟁 격화 때문에 제조업에서는 점점 더 높은 이윤을 얻기가 어려워지자 금융 부문이 매우 비대해졌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주식과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엄청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그동안 미국이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해 온 데에는 1990년대 주식 거품과 200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이 큰 몫을 했다.

    그러나 거품은 언젠가 터지게 되어 있고, 빚은 무한정 늘릴 수 없다. 이 간단한 상식만을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게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 2008년 3월 중순 85년 된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파산 위기에 빠지면서 연쇄파장으로 세계적인 금융공황이 터질 뻔 했으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수백억 달러를 긴급지원하며 간신히 막아냈다.

    그동안 세계 자본가들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가동하며 축적된 모순이 위기로 드러나는 것을 막아 왔다. 하지만 그것은 모순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모순의 폭발을 지연시켰을 뿐이며 그만큼 모순을 더 심화시켜 왔다. 그리고 이제 도저히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형태로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초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그리고 세계적인 석유·곡물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면서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나자빠지고 그에 투자했던 전 세계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된 사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시장에 안긴 타격은 1929년 대공황 못지않게 컸지만, 미국 정부는 ‘정교한’ 개입을 통해 사태가 공황으로 치닫는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거품과 빚에 의존한 미국의 소비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한계점에 거의 다가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제 주식 거품에 이어 부동산 거품마저 꺼지고 나자, 이윤을 찾아 헤매는 ‘투기자본’이 석유·곡물 등 원자재 시장에 대대적으로 뛰어들면서 전 세계 원자재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오르게 되었다. ‘투기자본’의 실체는 생산 부문에서 제대로 이윤을 내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갖고 있는 막대한 유보금이다. 기름 가격과 식량 가격의 폭등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항의와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장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뒤흔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원자재 분야마저 투기와 거품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자본주의 위기가 얼마나 심화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려면 아직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자본가들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모순이 폭발하지 않은 채 계속 축적될 것이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서야 위기의 실체가 비로소 전면에 충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장차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면, 그 충격은 1929년의 세계대공황을 훨씬 능가하게 될 것이다. 특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빚은 결국 세계 자본주의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태를 낳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는 그것이 눈앞에 다가오면 결국 누군가 미국의 빚을 충격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노동자 민중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빚이 노동자 민중에게 안길 부담은 미국의 계급투쟁을 촉발할 것이며, 따라서 미국은 그 부담을 전 세계에 전가시키려고 드러내놓고 공세를 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하여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매우 높아지겠지만, 결국 자본가들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공격을 가하고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모순을 전가하고 위기를 벗어나려 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계적인 전쟁과 살육, 파시즘의 광란 같은 끔찍한 사건들이 미래의 우리와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노동자 계급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투쟁에 떨쳐나서면 그런 끔찍한 일들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2. 근본적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 작동원리

    1) 경쟁과 축적

    자본주의가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체제인 것으로 보였던 시대가 있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은 고된 노동과 착취에 지배당해 왔다. 18세기와 19세기에 산업자본주의가 출현했을 때에도 그것이 이런 사정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는 어떤 유용한 목적을 위해 이런 고된 노동과 착취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소수의 기생적 귀족을 위한 사치품과 죽은 군주를 위한 사치스런 무덤을 만들거나 쓸데없는 전쟁에 거대한 양의 부를 낭비하는 대신에, 산업자본주의는 더 많은 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들을 생산하는 데 부를 사용했다. 자본주의 발흥기는 산업, 도시, 운송 수단이 그 이전 인류 역사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규모로 성장한 시기였다.

    자본가들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그 이전의 지배계급과 달랐다.

    첫째, 자본가들은 ‘착취당하는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들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동자들의 일할 능력, 즉 노동력을 사서 시간당으로 임금을 지불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라 "임금 노예"들을 사용한 것이다.

    둘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해 낸 것을 스스로가 소비하지 않았다. 봉건 영주는 농노가 생산해 낸 고기, 빵, 치즈, 술 등을 ‘직접 소비’하며 살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를 다른 사람들한테 ‘팔아서’ 살았다. 즉, 시장에서 상품을 팔아 이윤을 얻으며 살았다.

    이러한 사실은 노예 소유주 개인이나 봉건 영주 개인이 누렸던 자유보다 더 작은 자유를 자본가 개인에게 주었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싸게 생산해야 했다. 자본가는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전지전능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공장들과 경쟁할 필요에 굴복해야 했다.

    계속해서 사업을 할 수 있기를 원하는 자본가라면 누구나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일하도록 확실히 해 두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또한 그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다른 자본가들한테 고용된 노동자들보다 단위 시간당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가장 최신의 기계를 갖고 일을 하게끔 해야 했다. 사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자본가는 더 많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자본을 축적해야 했던 것이다.

    자본가들 간의 경쟁은 그들 모두를 속박하는 시장 체제라는 하나의 힘을 낳았다. 경쟁은 자본가들이 항상 노동 과정을 가속시키도록 강요했고, 그리하여 새로운 기계에 그들이 투자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자본을 투자하게 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될 수 있는 한 최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만 새로운 기계를 구비할 수 있었다.

    ▲ 마르크스의 《자본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가는 구두쇠처럼 점점 더 많은 부를 얻는 데 골몰하게 된다”고 썼다. 그러나 “구두쇠한테는 단순히 독특한 개성인 탐욕이 자본가한테는, 그가 단지 여러 바퀴 중의 하나일 뿐인 사회 구조(메커니즘)의 산물이다. (…)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은 자본가로 하여금 일정한 산업 부문에 투자된 자본의 양을 계속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과 경쟁은 자본가로 하여금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의 자본을 늘리도록 강요하였다. (…)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지상명령이다!”

    자본주의 아래서 생산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루어진다.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은,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빨리 축적하려는 자본가의 욕구에 삶이 지배당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바처럼, “부르주아 사회에서 산 노동은 죽은 노동(생산수단)을 축적하는 수단일 뿐이다. (…) 살아 있는 사람(노동자)은 종속되어 있고 아무런 개성도 없는 반면,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고 있다.”

    자본가들이 다른 자본가들과 벌이는 경쟁에서 자본을 축적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압력은, 자본주의 체제 초기 산업의 급속한 진보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반복되는 경제공황이 그것이다. 공황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2) 경제 공황

    “한편에서 부의 축적, 또 다른 한편에서 빈곤의 축적”. 마르크스는 이 말로써 자본주의가 가진 경향을 요약했다. 모든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와 벌이는 경쟁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들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생산수단의 대폭적인 증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된 노동자 수와 임금의 제한적 증가’ 사이의 불비례 현상이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경제 공황의 기본 원인이라고 했다.

    이것을 살펴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갈수록 빠르게 늘어나는 상품을 누가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상품을 충분히 살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임금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금인상은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인 이윤을 감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한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한 기업은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해야 한다. 그러면 임금 총액이 훨씬 더 줄어들어 더 많은 기업들이 자기들의 상품을 팔 수 없게 된다. ‘과잉생산’의 위기가 시작되고, 대중이 구매할 수 없는 상품들이 경제 전반에 걸쳐 쌓이게 된다. 이것은 지난 170여 년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쟁은 자본가들에게 투자를 계속하게 만든다. 그러나 경쟁 압력이 있다고 해서 자본가들이 언제든지 투자하지는 않는다. 자본가는 ‘합당한’ 이윤이 보장된다고 생각할 때에만 투자한다. 만약 그러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본가는 그의 돈을 투자하지 않고 차라리 은행에 넣어 둔다. 아니면 부동산 투기나 증권 투기 또는 사채놀이를 한다. (특히 은행 금리가 낮을 때는 부동산 투기 등으로 자본이 쏠린다. 그것은 부동산 값이 폭등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자본가가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는 그가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제 상황이 좋아 보이면, 자본가들은 투자를 위해 덤벼든다. 건설 부지를 찾고, 기계를 구입하고, 원자재를 구하러 다니고, 돈을 더 주고라도 노동력을 안정되게 확보하려 한다. 이른바 ‘호황’이다.

    그러나 토지·원자재·노동력을 확보하려는 광기어린 경쟁은 그 가격을 상승시킨다. 또한 자본주의 아래 펼쳐지는 무정부적 생산 때문에 생산은 판매시장의 확장을 넘어서서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어느 지점에 이르면 상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고, 자본가들은 더 이상 이윤을 낼 수 없게 된다.

    이제 투자 붐이 갑자기 투자 위축으로 바뀐다. 어느 누구도 새로운 공장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설 노동자들이 해고된다. 아무도 새로운 기계를 사길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계 도구 산업이 공황에 직면한다. 아무도 생산되는 철과 강철을 사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철강 산업의 가동률이 갑자기 평균 수준 훨씬 이하로 떨어지고, 이윤이 남지 않게 된다. 폐업과 조업 중단이 모든 산업으로 파급되면서 일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다른 산업 부문의 상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대폭 하락한다.

    공황이 발생하면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상품, 새로운 시장, 새로운 노동조직, 새로운 금융조직, 새로운 국제협약 등에 힘입어 경제가 다시 성장하는 회복 국면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불황 국면이 계속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벼락경기⇒경제위기⇒공황⇒불황⇒회복⇒호황”이라는 국면을 거치면서 전개되어 나간다.

    자본주의 역사는, 한편에서는 팔리지 않는 상품 더미가 썩어가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빈 공장 밖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머리가 돌아버린 것 같은’ 상태, 즉 공황이 주기적으로 거듭되어 온 역사다.

    어떤 사람이 왼손에 잔뜩 떡을 들고, 오른 손으로는 먹을 것을 찾다가 포기한 채 굶주리고 있다면 틀림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공황 시기의 자본주의가 바로 그 꼴이다. 사회 한 쪽에는 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한 쪽에 쏠려 있는 것을 다른 쪽으로 옮기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한 채 쩔쩔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과잉생산’ 위기를 주기적으로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무계획적이므로 자본이 갑자기 투자로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공황의 야만성은 자본가의 돈벌이를 위해 생산하는 경제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인류가 치러야 하는 고난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아래서 일어나는 이른바 ‘과잉생산’은 결코 진짜 과잉생산이 아니다. 이를테면 ‘남아도는’ 2000만대의 자동차는 세계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아프리카에는 물을 길어오는 데 하루가 걸리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물을 받아오는 데만 하루를 다 보내니 인간의 삶이 생존에만 급급한 동물적 삶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 도로를 놓고, 자동차를 많이 공급해 줘야 한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들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3) 갈수록 악화되는 공황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1973년 이래 끝없는 경기침체에 빠져 있다. 개별 국가에 따라서는 경기가 호전되거나 실업이 줄어드는 시기가 잠깐씩 있기도 했지만, 세계 자본주의 전체로 보자면 30년 이상 장기불황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경기변동 이론은 불황과 호황이 ‘끝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한동안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이었지만, 30년 이상 끝없는 침체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를 설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투자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규 투자가 없으면 새로운 일자리도 없고, 새로운 일자리가 없으면 상품을 살 돈도 없으므로 불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투자를 겁내는 것은 ‘충분한 보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은 임금을 탓한다. 임금이 너무 높아서 이윤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30년 동안 세계 각국의 자본가들과 그 정부들은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묶어두거나 오히려 떨어뜨렸지만, 장기적인 침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욱 가난해졌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공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점점 더 노동절약형 설비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생산을 ‘합리화’함으로써만, 즉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력을 줄임으로써만, 다른 자본가보다 더 큰 몫의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 전반에 파괴적인 결과를 미친다. 생산을 합리화할수록 기계·설비 등 생산수단에 대비한 노동자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돌아가게 하는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윤의 원천인 노동의 상대적 구성 비율이 낮아지게 되면 이윤율 또한 점점 더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공황이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신규 설비에 거액의 투자를 쏟아 넣는 데 자본주의가 성공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갈수록 악화되는 공황을 뜻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가 빠진 장기침체를 정확히 예견하였다.

    이윤율 저하 경향에 따라 공황은 점점 더 악성이 되어 갔고, 1929년 세계대공황은 그 정점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이후 부흥기를 거친 후 1973년에 다시 공황이 온 것인데, 그 사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개별 자본가들은 공황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다양한 기법들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사상 최대의 악성 공황이 일시에 완전히 폭발하는 것은 간신히 막았지만, 대신 끝없는 장기불황에 빠져든 것이다. 그런데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점점 더 큰 모순을 축적해 가고 있다. 결국 지금 겪고 있는 장기불황의 끝은 호황이 아니라 사상 최대의 세계대공황일 수밖에 없다.

    다가올 세계대공황이 1929년 세계대공황을 능가할 것이라면, 그것을 탈출하기까지 인류가 겪어야 할 참화 또한 세계 곳곳의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육 이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가 치닫고 있는 근본적 위기는 인류에게 끔찍한 굶주림과 전쟁의 야만으로 퇴보할 것이냐, 노동해방을 향한 세계적인 노동자혁명으로 전진할 것이냐를 묻고 있다.

    3.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전망

    1)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 된 동아시아

    오늘날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아래서, 끊임없이 착취와 억압을 높이려는 자본가들의 공격이 지구적 수준에서 매우 강도 높게 펼쳐지고 있다. 자본가들의 공격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저임금과 무노조를 향한 세계적 수준의 공장이동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대한 협박으로 노동자들의 굴복·양보 강요
    ○ 정규직을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꾸준히 대체
    ○ 사회복지 시스템을 해체하고 공공 영역에 시장·이윤 논리 적용 확대

    이러한 자본가들의 공격을 가능케 하는 힘의 근원은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의 공장이동이다. 공장이동으로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단행함으로써, 또는 공장이동을 협박하여 노동자들의 굴복과 양보를 강제해 냄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자본은 자신의 의도를 거침없이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미국에 바탕을 둔 에이머락사는 2004년 2월, 75년 동안 운영해 온 캐비넷과 창문을 생산하는 일리노이 락포드의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450개의 일자리를 일리노이에서 중국과 멕시코로 옮기기로 계획했다. 이것은 중국 시장과 멕시코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생산 단가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캐리어(에어컨), 리바이스(청바지), 워너(가정용 사다리), 유니언 툴즈(정원관리도구), 레밍턴(전기면도기)과 같은 기업들에 의해 중국에서 생산될 광범위한 갖가지 상품들이 미국 시장으로 돌아와 팔리게 될 것이다.1)

    수입 증가와 관련된 공장 폐쇄는 미국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급격히 줄이는데 이바지했다. 미국 제조업 부문에서 1998년에서 2003년 사이 3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2000년에서 2003년 사이에만 27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2)

    세계적인 수준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면서, 정규직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영국의 BBC는 전 세계적으로 정규직 일자리의 비중이 1980년에 80%였다가 1995년에 67%로 줄어들었으며, 2010년에는 45%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공장 이동은 남미와 동유럽을 거쳐 최종 기착지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

    ‘중국가격(The China price).’ 이것은 미국 산업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세 단어다. 보통 중국가격은 당신이 미국에서 무언가를 생산했을 때 그것보다 30%에서 50% 낮은 가격을 뜻한다. 아주 나쁘면, 그 가격은 당신이 만든 물건의 원가에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미국에서 공장 문을 닫아온 의류, 신발, 가전제품, 그리고 플라스틱 제품 생산자들은 중국 가격에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다.3)

    동아시아 초국적 수출 체제의 중심축이라는 중국의 새로운 지위 때문에 많은 미국 기업과 노동자들은 중국의 수출 활동을 초조하게 지켜보아 왔다. 그리고 중국의 수출이 주로 저기술 품목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 여러 해 동안 높은 임금을 받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품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고임금 산업에 의해 생산된 상품과 경쟁하는 중국 수입품의 비율은 1989년 약 27%였으나, 1999년에는 거의 45%까지 늘어났다. (…)

    중국 현상은 단순히 일국적 관점 또는 국가 간의 관점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중국 현상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경을 넘어 생산을 함께 묶는 초국적인 자본주의 전개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 연결되지 않은 기업들, 그리고 관련된 모든 국가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손해를 입는다. 하지만 다른 미국 기업들은 이 활동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고 있으며 또한 그로부터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가장 큰 수혜자들 중에는 월마트와 같이 중국을 수출기지로 삼거나 값싼 상품의 조달지로 삼는 기업들이 있다. 실제로 월마트 혼자서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양의 1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제네럴 모터스(GM), 프락터 앤 겜블(P&G), 모토롤라 같은 다른 미국의 초국적 기업들도 중국에서의 기업 활동이나 중국 하청을 통해 커다란 이윤을 얻고 있다.4)

    중국은 2004년 세계3위 무역국가가 되었으며, 2007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2위, 2010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1위 무역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도 2005년에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4위로 올라섰다.

    1978년 이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해마다 평균 9.5% 성장했다. 이 성장률은 미국 성장률의 3배이며, 다른 어떤 나라들의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GDP는 이제 구매력 환산지수(Purchasing Power Parity)에 입각해 볼 때 전 세계 생산의 13%를 차지하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5)

    중국은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공업 생산국이다. 100가지 이상의 공산품 생산에서 선도적 생산자인 중국은 이제 전 세계 카메라의 50% 이상을, 에어컨과 텔레비전의 30% 이상을, 세탁기의 25% 이상과 냉장고의 20% 이상을, 덧붙여 전 세계 장난감의 5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다자간 섬유협정이 종료되는 2005년 중국의 의류업은 전 세계 총생산의 46%에 이를 것이며, 세계 섬유산업의 20%에 이를 것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자전거의 85%와 신발의 80%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6)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 전반이 중국을 최종수출기지로 하는 하청생산기지로 재편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성장은 동시병존하면서 경쟁하는 초국적 기업 생산 네트워크에 (수출을 목적으로 하든 아니든)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려고 임금 저하와 생산성 향상에 대한 압력을 어느 때보다 크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는 임금에 기반한 국내 수요보다는 수출을 지향하는 체계를 강화시키며, 그럼으로써 수출 과잉생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중국은 초국적 투자와 무역 네트워크 안에서의 핵심적인 지위 때문에 경쟁의 기준이 되어 왔다. 그래서 동아시아 전체에서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행해진 노동 착취 수준에 맞추려고 서로에 맞선 경쟁을 강요당해 왔으며, 이는 모두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

    중국이 동아시아의 최종 수출기지로 등장한 것은 국가별 무역 유형 비교를 통해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 중국 수출에서 부품과 부속의 비중이 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의 대 중국 수출에서 부품과 부속의 비중은 1992년에서 2000년 기간 동안 6.4%에서 50.6%로 상승했다. 한국의 경우 그 비중이 8.1%에서 26.7%가 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를 빼면 중국만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 주로 완제품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유일한 국가였다. (…)

    요약하자면, 동아시아의 (전체 생산에서 성장하는 부문인) 수출 생산은 생산의 국가적 기반에서 크게 분리된 부품과 부속으로, 또한 초국적 기업 생산 네트워크의 변화하는 요구에 대응하여 일부 특정 산업의 일부 특정 공정으로 점차 협소화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무역에서 역내 무역의 비율이 의미심장하게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동아시아 지역의 독립과 균형이 성장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의 무역 활동이 중국을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구조화된 축적 과정에 묶여 있으며, 또한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외부 지역으로의 최종 수출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7)

    중국-일본-한국-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지역은 바야흐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 생산기지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 집중되는 현상은 제조업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 산업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세계 자동차산업 성장 축의 이동 (단위 백만대)

    ▲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의 변화 추이 (단위 만대)

    2) 자본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 서서히 다시 일어서는 세계 노동자들

    자본의 세계화 공세 앞에서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자본가 계급에 대해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지만, 세계적으로 노동자 민중 투쟁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개막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적 우세라는 지형을 만들어 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가장 강력한 시기였다. 당시 대다수 나라에서 노동자 운동은 자본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다가 초토화당하거나 아예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들었다. 세계화 공세의 화려한 성공,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중국의 시장개혁 등을 놓고 한껏 자신감에 들뜬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승리를 선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자본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반격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유럽에서는 노동조건 악화와 사회복지 해체에 맞서면서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되고 있고, 중남미에서는 대규모 실업과 빈곤을 야기한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륙 전반에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아래로부터 고조되고 있다.

    ▲ 2006년 5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일어난 의류 노동자 항쟁.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동시간 단축, 민주노조 인정 등을 요구했다.

    특히 2006~7년에는 프랑스 최초고용계약(CPE) 철폐투쟁, 멕시코 와하카 민중봉기에 덧붙여 미국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총파업·항쟁, 베트남 노동자들의 총파업 등 서유럽과 중남미를 넘어 미국과 동남아시아로 노동자 투쟁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노동자 투쟁이 ‘세계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넘어서서 ‘세계화의 결과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점차 확산되어 나갈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사태 전개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노동자 농민의 저항이 아래로부터 크게 늘고 있고, 사유재산법이 많은 논란 끝에 2007년 3월에야 통과된 데서 드러나듯 자본주의 시장개혁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노동자 농민 속에서 마오주의가 부활하고 지식인들 속에서 신좌파 흐름이 확산되면서 이데올로기적 저항이 고조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모든 것은 중국에서 거대한 계급투쟁의 소용돌이가 점차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중국의 노동자 투쟁이 본격화될 것이며, 이는 세계적인 계급투쟁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중국의 노동자 운동이 뚜벅뚜벅 전진하기 위해서는 마오주의나 신좌파 흐름을 넘어 진정한 노동해방 사상을 움켜쥐어야 할 것이다. 다만 마오주의 부활이나 신좌파 흐름의 확산은 진정한 노동해방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 운동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이 자본의 세계화 공세 앞에서 심각하게 주눅 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노동자 투쟁이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의 세계화 공세가 노동자들에게 끝없는 후퇴와 양보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 이르면 강한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세계화의 결과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제조업 노동자들과 미국의 서비스·3D 산업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머지않아 강력하게 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초반에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 투쟁이 점차 활성화되고 강력하게 재건되는 흐름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점차 활성화되는 노동자 투쟁은 자본으로부터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양보를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흐름은 자본의 입장에서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다. 협소한 시야와 역량을 넘어서지 못하는 노동자 투쟁은 비록 어느 정도 활성화되더라도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과 교묘한 술책에 또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넘어서는 혁명적 전망을 중심으로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연대 전선을 대중적으로 형성해 나갈 때에만, 비로소 세계 노동자 운동은 자본의 세계화에 진정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자본의 세계화가 만들어 낸 세계적인 정치 양극화

    자본의 세계화는 세계적인 정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중도 세력 전반이 우경화되고 극우 세력이 강화되고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반(反)자본주의 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혁명 세력이 서서히 다시 형성되어 나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세계 정치의 흐름을 지배했던 것은 중도주의였다. 한편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 세력이 패배함으로써 자본가 계급 정치세력 가운데 극우파가 와해되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1920년대 후반 이후 스탈린주의가 코민테른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노동자 계급 정치세력 가운데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혁명 세력이 사실상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중도주의는 크게 보아 ‘자본주의 성장에 기초한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중도우파가 복지국가를 양보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지키고자 했다면, 중도좌파는 복지국가를 얻는 대신 혁명을 포기했다. 양자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타협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었다.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25년 동안 이어진 자본주의 고도성장은 중도주의가 힘을 얻을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중도좌파를 대표한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사회민주당 또는 노동당의 이름을 가진 정당들이었다. 개량주의 노동조합 관료들에 기반을 둔 이들은 애초 자본주의를 꾸준히 개혁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점차 복지국가 자본주의 자체를 최종 목표로 하는 입장으로 후퇴해 갔다.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인민전선 전략으로 중도우파 자본가 정당들과 협력하며 사실상 노동자 혁명을 포기하게 되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그 사회적 기반과 방향에서 점차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소련을 비롯한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노동자 민주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억압·착취 체제에 불과했고, 그래서 서방 자본주의 진영을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못했다. 제3세계를 지배했던 민족해방 세력은 대체로 독립한 민족국가 주도로 자본주의를 급속히 발전시키려 하는 또 하나의 자본가 세력일 뿐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점차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자본의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 해체를 통한 자본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세계화 시대 자본의 이해관계는 중도주의의 정치적 기반을 세계적 수준에서 붕괴시켰다. 세계화 시대에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는 기본적으로 복지국가와 계급타협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집행자가 됨으로써 뚜렷이 우경화되었다.

    세계화 시대는 노동자 계급과 중간층의 일부를 빠르게 몰락시키며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자본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몰락의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 대중의 두려움이 인종적 민족적 계층적 증오와 대결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 성장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세계화 공세를 지속할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고자 한다.

    ▲ 세계적인 극우 세력 강화를 상징하는 미국 대통령 부시와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이러한 세계화 시대 자본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극우 세력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중도우파가 극우파로 변신하거나 새로운 극우파가 등장하면서 극우 세력의 규모와 공격성이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공화당·민주당과 일본의 자민당 지배집단은 극우 세력이 강화되는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극우 세력은 유럽에서도 꾸준히 세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 극우 세력들은 제국주의적 침략성과 군사주의를 강화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이주자들과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강화하면서, 이를 자본의 세계화 공세와 긴밀히 결합시키고 있다.

    과거에 중도좌파로 기능했던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은 세계화 시대에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집행자가 됨으로써 과거 중도우파 이상의 우파로 변신했다.

    특히 이들은 노동자 대중의 저항력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는 나라에서 복지국가와 계급타협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를 현실화하는 데 좀 더 유용한 세력으로 기능해 왔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진보적인 겉모습은 노동자 대중 속에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저항을 분산·약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서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에서는 우파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다 대중적 저항 때문에 좌초하면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집권하여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철저히 관철하는 양상이 반복되어 왔다. 2003년 이후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정부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에 걸쳐 워낙 광범하게 나타나다 보니, 오늘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집행자로 기능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표현하기 위해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라는 말이 새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 노동당은 이라크 전쟁 등에서 제국주의 군사침략의 앞잡이가 됨으로써 심지어 극우 세력에 가까운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세계화 시대에 전면적인 자본주의화를 추진해 온 중국과 베트남의 지배집단 역시 또 하나의 신자유주의 집행자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적으로 반(反)자본주의 세력 또는 혁명 세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먼저 나타난 양상은 (‘대안은 없다’는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로 요약되는 반(反)세계화·반(反)자본주의 세력의 확대다. 이는 기본적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 서유럽과 중남미에서 세계화에 맞선 대중적 저항이 확대된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미 심각하게 관료화된 많은 노동조합들이 자본의 세계화 공세 앞에서 끝없는 굴욕과 양보로 노동조건 악화를 수용했지만, 일부 노동조합들과 실업자·무산자 운동은 세계화 공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이처럼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흐름을 기반으로 사회민주주의 이탈세력들과 사회운동 세력들 그리고 일부 혁명적인 세력들이

    ▲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연합하여 반(反)세계화·반(反)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급진좌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반(反)세계화·반(反)자본주의 세력은 1999년 시애틀 WTO 반대 투쟁을 하나의 정점으로 해서, 2000년대 들어 세계사회포럼, 이라크 전쟁 반대투쟁 등으로 세계적인 수준에서 그 맥을 이어 왔다. 하지만 2001년 9·11 사건 이후 자본가 계급이 테러진압을 명분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대표주자 격이던 브라질 노동자당이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겪으면서 그 성장세가 둔화된 채 혼란에 빠져 있다.

    최근 세계 운동의 흐름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를 넘어 ‘사회주의가 대안이다’를 내건 혁명 세력들이 점차 확산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반(反)세계화·반(反)자본주의 세력 내부에서 혁명 세력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는 도전하지 않는 반(反)세계화 흐름과 혁명적 전망을 보다 분명히 추구하는 반(反)자본주의 흐름이 분화되는 양상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혁명적인 사상적 전망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들도 차츰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적으로 반(反)자본주의 세력의 힘은 그리 크지 못하며, 특히 혁명 세력의 힘은 상당히 왜소하다. 1930년대 코민테른의 몰락 이후 1990년대까지 60년 이상 1968 혁명을 전후한 짧은 시기를 빼고 나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탄력을 받으며 사실상 다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

    세계화의 진전은 국제적인 정치군사적 긴장을 다시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 양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경제적 패권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데, 2000년대 들어 이를 만회하려고 정치군사적 패권을 좀 더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이란·북한 등에 대한 압박, 미사일 방어망 구축 시도 등은 제국주의적 공격성의 강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냉전의 종결 이후 일시적으로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이 확산되었던 것과 달리, 오늘날 미국은 새로운 전쟁 또는 전쟁 위기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세계화의 결과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은 경제적 위상의 강화를 정치군사적 위상의 강화로 연결시키면서 장차 세계 자본주의 패권 국가로 부상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나라들로부터 점점 더 막대한 원자재를 수입하면서 제3세계 전반에 대한 경제적 지배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장차 정치군사적 지배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중국의 지배집단은 이제 세계 패권국가로 부상하려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으며, 제국주의적 야심의 대중화를 내부 모순을 가리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로 등장한 이후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국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이, 정치군사적으로는 소련이 한동안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경제적 위상이 강화되었다 해도 정치군사적으로는 패전국으로서 철저히 미국의 하위 동맹자일 뿐이었다. 소련은 30년 이상 미국과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극심한 침체와 후퇴에 시달렸고 결국 스스로 붕괴하고 말았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적으로 나날이 그 위상이 강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상당한 힘을 갖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적 힘은 세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빠르게 강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정치군사적 힘도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 힘이 약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적 힘의 약화를 만회하려고 정치군사적 패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정치군사적 힘의 한계를 노출함으로써 그 패권이 더 빨리 약화되는 상황 앞에 서 있다.

    따라서 세계 자본주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특히 정치군사적 긴장은 나날이 고조되어 갈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서로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장차 전면적인 대결로 나아갈 것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한국·대만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를 넘어 남아시아, 서아시아, 몽고 등에 해외 군사기지 또는 군사동맹을 확대함으로써 중국을 사방에서 군사적으로 포위하는 체제를 강화해 왔다. 중국 또한 중남미에 군사원조 또는 군사동맹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능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당분간 대결 일변도로만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상당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주된 기반을 갖고 있는 거대 초국적 자본들은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얻어 왔으며,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중국의 지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바란다. 중국 또한 최대의 수출 시장인 미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만 자본주의 발전을 지속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로 막대한 양의 미국 채권을 사들이면서 미국의 소비능력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가 표면화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빠르게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기를 벗어나는 데 요구되는 부담을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거품으로 뒤덮여 있는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경제 위기로 갑작스럽게 빠져들 가능성을 늘 안고 있다. 나아가 장차 중국 내부의 계급투쟁 폭발과 그로 인한 노동자 권리 강화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감당하기 힘든 위기를 몰고 올 것이다. 어떤 형태로 찾아오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가 표면화되면 미국과 중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빠르게 첨예화될 것이다.

    장차 미국과 중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첨예화되더라도 서로 전면전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대를 절멸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서로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끝내 전쟁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제3의 지역에서 국지적인 대리전으로 우위를 겨루는 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국지적인 대리전이 일어난다면, 대만과 한반도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5) 근본적 위기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세계화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전략적 우위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극심한 모순으로 시달리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폭발을 막기 위하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팽팽한 긴장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자본가들의 애처로운 발악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자본가들이 위기의 폭발을 제어할 수 있는 상당한 역랑을 갖추게 된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자본가들의 역량은 여전히 앞으로도 한동안 위기의 폭발을 막아내고 지연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위기 폭발의 지연은 위기의 해소가 아니라 모순의 심화를 뜻할 뿐이며, 따라서 더 크고 더 심각한 위기를 형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세계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폭발의 초기 국면에 놓여 있다. 그 폭발의 중심에는 세계 경제의 기관차와 같은, 채무를 짊어진 미국 소비자가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모든 지표는 하나같이 호황이 리플레이션에 의해 추동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 호황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신용 확장 덕분이며, 또한 그 근저에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미국 국제수지 적자가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폰지 현상(Ponzi scheme)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아시아의 수출국(일본·한국·중국)은 미국과 동반 나락의 길로 빠지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 대(對) 아시아, 특히 대(對) 중국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원자재 생산국들, 이를테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나락의 길로 빠질 것이다. (…)

    미국의 순 대외 채무는, 외국인이 보유한 최소 11조 달러에서 미국의 해외 자산 8조 달러를 차감했을 때 3~4조 달러에 달한다. GDP의 30%에 달하는 이 채무 액수는 만성위기에 시달리는 제3세계 국가들의 채무 상황에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 미국의 채무 규모는 현재 속도로 매년 8천억 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

    외국인의 미국정부 채무 보유율도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의 4대 중앙은행(일본·중국·남한·대만)이 보유한 것만도 2조 달러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의 리플레이션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연방 정부의 채무, 따라서 외국의 대부다. (…)

    이러한 미국 경제의 전체적인 상은 다음에 근거해 있다.

    1) 미국의 저인플레이션. 물가가 상승하면 외국의 대부자들은 깜짝 놀라 도망갈 것이다.

    2) 기꺼이 더 거대한 빚을 지려는 미국의 소비자들. 몇 년 전까지 전체 가계 소득의 11%를 차지한 채무는 이제 14%에 달한다.

    3)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다시 미국에 계속해서 재대부 하고자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무엇보다도 그래야만 하는 외국인들. 이는 빚을 진 미국 소비자들을 점점 더 세계 경제의 기관차가 되게끔 한다.

    만년 채무상태에 있는 채무자에게 끊임없이 다시 대부하여 줌으로써 다가올 파산을 연기하는 것, 바로 이것이 ‘폰지 금융’이 뜻하는 바이며, 세계적 축적이 현재 도달한 지점이다.8)

    최근 3~4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 규모였지만 오히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주가도 안정적이면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어 미국 경기는 순항을 지속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1997년 한국이 IMF 위기 때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30퍼센트를 넘었지만 유사한 경제 상황에서도 미국은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FRB 의장인 그린스펀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견해를 비치기도 했는데, 이는 누군가 미국의 과소비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소비를 가능하게 해주는 국가는 동아시아를 비롯한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국이다. 무역수지 흑자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흑자 금액 이상의 자금을 유입시키는 것이 수수께끼의 정답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미국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점 시스템 때문이다.9)

    그런데 자본가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하여도 자본주의 위기의 폭발을 도저히 더는 막을 수 없는 국면이 머지않아 도래하리라는 인식이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부르주아 투자분석가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폭발은 끔찍스러운 재앙들로 인류 앞에 다가오겠지만, 아마도 사상 최악의 대공황과 세계전쟁은 그것을 가장 대표적으로 특징짓는 사태가 될 것이다.

    미국이 초래한 세계 경제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 해법이 없다는 것이 공통의 시각이다. (…)

    필자가 2004년에 발간한 『디플레이션 속에서』에서 디플레이션으로부터 탈출이 어려운 이유로 인간의 기본적 특성인 ‘이기심’과 남보다 앞서려는 ‘우월 욕망’을 주요 원인으로 제시했다. 현재 세계는 제로섬 세계다. 세계적 차원에서 약육강식의 경쟁이 벌어지는 전쟁터다. 경쟁에서 탈락하면 그 기업과 국가는 소멸되는 시대다. 궁극적으로 우월 욕망과 이기심에 기초한 세계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디플레이션 구조에서 탈출이 불가능하다. 파국을 실제로 겪어야만 세계적 차원에서 공익을 기반으로 한 여러 사상이 실현될 수 있다. (…)

    미국의 문제가 표면으로 나타날 기간은 2015~2020년 사이가 될 전망이다. 이 시기는 미국은 물론 선진국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구 감소, 고령화, 연기금 고갈 등 사회 안전망의 붕괴가 예상되는 시점이다. 여기에 미국은 인종 갈등과 빈부 격차 확대로 사회의 안전성마저 현격히 낮아질 시점이기도 하다. (…)

    미국의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리가 폭등하게 되면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나 주가는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 금리 상승, 부동산 가격 하락, 주가 급락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미국의 내수 경기는 꽁꽁 얼어버릴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동아시아 등 미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수출이 감소하면서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미국 자본이 투자국에서 철수해서 미국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회복 불능 상태로 비춰진다면 반대로 국제 투자 자금은 미국에서 탈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불안정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국제 정치 구도도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만약 미국이 독점 시스템 포기가 아닌 전쟁을 불가피한 대안으로 선택한다면 세계는 공멸한다. 반대로 미국이 독점 시스템을 포기하고 국제 공조 체제로 전환한다 해도 재건에는 엄청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10)

    1914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인류는 10년간의 두 차례 세계전쟁과 10년간의 대공황을 잇달아 겪으며, 역사상 가장 참혹한 30년을 거쳐야만 했다. 1945년 이후 6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번영과 평화의 시기는 마치 이것이 영원하기라도 할 것 같은 환상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어 놓았지만, 그것은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세계 자본주의가 모순의 심화를 도저히 더는 버텨내지 못하고 사상 최악의 대공황과 세계전쟁으로 그 위기를 끝내 폭발시킬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인지, 아직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머지않은 미래에, 아마 아무리 늦어도 2~30년 이내에는 전면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대가 한편에서는 노동자 혁명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파시즘으로 치달아 나갔듯이, 새롭게 다가올 위기 폭발의 시대 또한 노동자 혁명과 극우 반동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전 인류를 휘감아 들어갈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사회 양극화가 매우 심화되고 그것이 정치 양극화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적 양상은, 다시 한 번 혁명과 반동의 세계사적인 충돌로 치달아갈 역사적 흐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 폭발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에서 중국 내부의 사태 전개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30년 가까이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급속한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이 된 오늘날 중국 전역은 후발 자본주의 산업화가 야기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중국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항의·시위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중국 <공안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항의·시위·폭동 등을 의미하는 이른바 ‘군체사건(群体事件)’이 최근 빠르게 늘어 2005년에 87,000여 건을 기록했다.

    ▲ 1994~2004년 중국에서 일어난 불법 군중소요 횟수(위)와 참가인원(아래) 추이

    수천 명의 마을 주민들이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거나 또는 수백 명의 항의자들이 경찰에게 연행되면서 최루가스를 마시고 곤봉으로 맞았다는 유혈진압 등의 사건 소식들이 매주 적어도 한두 건씩 전해진다. 정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통틀어 매주 수백 개의 이러한 사건들이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중국 당국의 반응은,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권력 수뇌부가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11)

    중재에 회부된 노동 사건은 1993년에 12,368건에서 1999년에 120,191건으로 1990년대 동안 10배로 증가했다. 2002년에는 184,116건이었다. 중재에 회부된 ‘집단적인 노동쟁의’의 맹렬한 증가 또한 의미심장하다. 공식적인 기록은 사건 당 연루된 ‘평균 노동자 수’가 높아져 가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는 노동자 투쟁의 집단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

    <중국 노동·사회보장 연보>는 노동쟁의의 원인 가운데 50% 이상이 임금·복지·사회보험에 관한 것이고, 30% 이상이 노동계약 종료와 해고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외국투자 사기업에서 임금 체불은 특히 심각하다.12)

    매일같이 보다 부유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늘 묘사되는 나라 안에서, 안정에 그렇게 높은 중요성을 두는 곳에서, 그처럼 많은 불안을 점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 원인들은 임금과 연금의 미지급, 갑작스러운 대규모 해고, 일부 기업들의 파산에 책임을 갖고 있는 부패한 관료들, 끝으로 공산당원들의 특권과 이익 등이다.

    모택동 이후 지도자들은 계획경제가 사회주의의 과잉이자 낭비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고, 그에 따라 1990년대 초반부터 약 6천만 명의 국유기업 종업원들이 공장의 파산으로 갑작스럽게 해고되었다.13)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 덧붙여 (예전에는 공짜거나 저렴했으나) 값비싼 회사상점과 기숙사, 그리고 그 외의 높은 비용들에 항의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자주 시위에 나선다. 몇몇 경우에, 노동자들은 해고와 임금 미지급에 항의하기 위하여 심지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이를테면 2004년 11월에 중국 남부에 있는 어떤 공장의 노동자들은 지나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놓고 그들의 사장을 인질로 잡았으며, 같은 달에 같은 마을에 있는 다른 공장 노동자들은 해고에 항의하면서 보안요원들과 싸웠다.14)

    사회의 표면 아래서 지난 시기에 분노가 매우 강하게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어떤 작은 사건도 폭발을 야기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04년 11월에 교량 통행료에 대한 한 여성의 분노는 3만 명을 폭동으로 이끌었고, 경찰과 준군사부대 수백 명과 대치한 끝에 한 사람의 사망자를 남겼다.

    최근에는 성장하는 도시의 가장자리에 공업 개발을 위해 지방정부가 토지를 몰수하는 것으로 인해 불안이 매우 자주 고조되고 있다. 더 넓은 면적이 공업용지와 주거용지로 충당됨에 따라 4천만 명의 농민들이 그들의 땅을 잃었으며, 대부분은 불충분한 보상으로 몹시 화가 나 있다. (…) 특히 2004년부터 농민투쟁은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이를테면 2004년 10월에는 쓰촨 지방에서 9만 명의 농민들이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아주 적은 보상만 받고 그들의 집을 잃은 것에 대하여 경찰들과 싸웠으며, 계엄령을 통해서야 겨우 질서가 회복되었다.15)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격렬한 항의는, 중국 정부로 하여금 자본주의 발전의 속도를 일시적으로 조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이 되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 깊이 편입된 이상, 이미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의 가속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 투쟁의 폭발을 막으려고 인터넷과 언론을 강도 높게 통제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양보 조치들을 내놓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의 모든 노력과 상관없이 후발 자본주의 산업화가 불러일으킨 중국 사회의 모순은 머지않아 끝내 거대한 노동자 투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늦어도 10년 이내에는 이루어질 중국 노동자 투쟁의 폭발은 아마도 한국의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상당히 비슷한 성격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자본주의 산업화가 필연적으로 야기해 온 이른바 ‘산업투쟁’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게 될 것이며, 임금의 급격한 상승과 노동조건 개선, 그리고 본격적인 노동조합 운동의 등장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될 중국의 산업투쟁과 노동조합 운동은 그 자체만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매우 심대한 타격을 안길 것이다. 중국의 저임금과 노동자 통제 때문에 세계 굴지의 제조업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앞 다투어 중국으로 몰려들었고 그래서 중국을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으로 만들어 놓은 만큼,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상승과 노동조합 운동이 본격화되면 자본가들의 이윤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수많은 연쇄작용으로 세계 자본주의 전반을 강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렇게 등장하는 중국의 거대한 노동자 운동이 어떤 정치적 방향으로 나아가는가는 혁명과 반동의 전 세계적 대립구도 속에서 또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1980년대 폴란드 연대노조가 결국 완전한 자본주의 복귀의 문을 열었던 것과 같은 경험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로서 중국을 완전히 재편하는 새로운 노동자 혁명의 길을 걸을 것인가는 전 세계적 수준의 계급투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와 위기 폭발은 또 다른 세계전쟁의 위험을 향해 나아갈 것인 바, 그 전쟁의 기본 축은 미국 대 중국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흐름대로 간다면 그 전쟁은 두 거대한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 또는 그 대리전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지만, 장차 등장할 중국의 거대한 노동자 운동은 다가오는 세계전쟁의 성격과 가능성에도 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찬 세계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단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이 말해주는 기본적인 경향과 법칙을 토대로 우리는 미래를 큰 틀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위기를 축적하고 있으며 그런 만큼 장차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양상으로 그 위기가 폭발하리라는 점이다. 장차 다가올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폭발은, 수많은 인류에게 가공할 고통을 안김으로써 그 위기를 해소하고 그 폐허 위에서 다시금 자본주의 발전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극우 반동 세력의 준동을 필연적으로 낳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 체제를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건설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얻고자 하는 거대한 노동자 혁명의 물결을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만들어낼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정점으로 20세기 초반에 세계를 뒤흔들었던 노동자 혁명의 물결을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노동자 혁명의 물결만이 인류를 야만과 참화로부터 구원하고 노동해방으로 전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길이며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4. 노동해방으로 전진하기 위한 근본적 과제들

    장차 세계 자본주의 위기 폭발과 극우 반동 세력의 준동에 맞서 노동해방으로 전진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들은 지금부터 세계적 수준에서 혁명적인 노동자 운동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 운동 또한 일국적인 시야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세계 노동자 운동의 한 부분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성장·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혁명적인 세계 노동자 운동의 한 부분으로 성장하는 것은 끊임없이 가장 근본적인 과제들을 실천하려는 과감한 노력과 도전을 요구한다.

    1) 노동자 국제주의

    오늘날 한국 노동자 운동은 그 시야와 전망이 너무나 일국적 한계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 긴밀하게 융합되어 있으며, 경제·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적 연관이 나날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특히 IMF 공황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자본주의가 걸어 온 길은 세계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의미가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 자본가들과 그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 투쟁은 동시에 세계 자본가들에 맞선 세계 노동자 투쟁의 유기적인 한 부분으로 스스로를 정확히 자리매김해야만 진정한 계급투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노동해방의 참된 전망을 비로소 열어갈 수 있다.

    세계화된 신자유주의로 특징되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을 더욱 절실한 현실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미 진작부터 자본가들은 날이면 날마다 세계 자본주의의 냉혹한 경쟁을 거론하며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잠재우고, 걸핏하면 공장폐쇄와 해외 이전을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세계화를 앞세운 자본의 무차별적인 이데올로기 공세와 협박에 한껏 주눅 든 노동자 대중에게, 이제 노동자 운동은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적 전망과 세계 노동자 계급 투쟁의 희망찬 미래를 갖고 새롭고 당당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노동자 대중이 이데올로기적 자신감과 믿음을 되찾는 것은 일상적인 현장투쟁과 계급적 연대, 나아가 대중적 정치투쟁을 새롭게 활성화해 나가는 데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된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노동자 연대를 직접 요구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노동자 운동도 세계적 수준의 자본주의 극복 전망과 연결되지 못하는 한 세계화된 신자유주의의 거미줄 같은 포위망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노동자 운동과 실질적인 소통과 연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한국 노동자 운동의 전망을 열어 나가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 노동자 운동 속에 나타나는 세계적 보편성을 확인하면서 아울러 한국적 특수성을 올바로 규명할 때, 우리는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제대로 결합시켜 나갈 과학적 전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 특성과 언어적 한계, 국제주의 전통의 단절 때문에 여전히 노동자 국제주의는 한국 노동자 운동에서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세계 노동자 운동과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한국 노동자 운동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앞으로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으로서 동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는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 전망과 시야를 갖고 노동자 국제주의 정신으로 특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노동자 운동과 강력한 연대를 건설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미래를 여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노동자 국제주의는 막연한 당위가 아니다. 그것은 저 멀리서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는 노동자 혁명과 자본가 반혁명의 세계사적 대격돌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다.

    2)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대항세계화 전략

    노동자 운동의 근본 원리는 경제·사회적으로 분산되어 존재하는 노동자 대중을 정치적으로 하나의 계급으로 통합시켜 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자본의 세계화 공세 속에서 일국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점점 더 철저한 분할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 계급의 현실은 노동자 운동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아래서, 세계 자본주의는 각국의 노동자 계급 구성을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로 분할하고 나아가 그러한 분할을 나날이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생산 거점을 저임금·무노조·불안정고용이 가능한 이른바 ‘그린필드’로 이동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일국적 또는 세계적 수준에서 끝없이 전개되고 있다. 그 속성상 국외로 이전시킬 수 없는 서비스업에는 이주 노동자 등 헐값의 노동자들로 채워 나가고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실업자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 예비군’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편입됨으로써 농업 사회는 해체되었으나 고용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하는 ‘실업 상비군’이 엄청난 규모로 존재한다. 비정규직은 세계적으로 새롭게 창출되는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점점 더 주도적이고 보편적인 고용 형태가 되어 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항 능력을 갖고 있는 정규직에게는 일정한 개량과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비정규직과 실업자, 이주 노동자 등에게 착취와 억압을 상대적으로 집중시키며 자본주의 모순을 집중적으로 전가시키는 현상도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운동의 전통을 가진 지역들에서 자본의 세계화 공세에 맞닥뜨린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상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역들에서 대공장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노동자 운동의 중심 세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대체로 공장이동에 대한 공포와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대한 만족감이 기묘하게 뒤섞인 채 운동적으로 극심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사실 자본의 세계화 공세는 바로 이것을 추구한 것이기도 했다. 자본가들은 세계화 공세를 통해 노동자 운동의 힘이 응축되어 있던 대공장 노동자들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힘을 해체시키고자 했고 그들의 시도는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결정적으로 성공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들의 시도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지역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더욱 거대한 노동자 운동이 새롭게 분출될 수밖에 없도록 자본가들 스스로 그 조건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대응방법을 진화시키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무덤을 파게 될 존재로서 노동자 계급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가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머지않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거대하게 시작될 노동자 운동은 장차 세계 노동자 운동에서 가장 젊고 힘센 주력 부대로 역할하게 될 것이며 세계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새롭게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운동만으로 세계 노동자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자 운동을 재건할 때에만 세계 노동자 계급은 결정적인 승리를 향해 뚜벅뚜벅 전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으나 자본의 세계화 공세 앞에서 무너지고 해체당한 지역들에서 노동자 운동을 재건하기 위한 관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할된 노동자 대중 속에서 제각기 전개되는 운동들을 최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유기적으로 엮어나가는 것이다. 특히 대공장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상대적으로 더 활력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과 실업자들 속에서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며 이것을 다시 대공장 노동자들의 운동과 전체적으로 통합시켜 나가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산업구조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를 뒤흔들 만한 힘을 갖고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이 거대한 흐름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노동자 운동은 결코 역사적 승부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 공세 앞에서 운동이 무너지고 해체당한 대공장 노동자들 속에서 운동의 흐름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제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의 운동이 갖는 활력으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로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 운동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대공장 정규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실업자들 속에서도 강력한 대중운동의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현장은 사실상 대공장 정규직의 일터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포함하여 노동자 대중의 모든 일터와 삶터를 중층적으로 다양하게 포괄하는 새로운 의미로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 운동은 대공장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파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투쟁 형태에 덧붙여, 비정규직 또는 실업자들의 존재 형태에 근거한 다양한 투쟁 형태들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고 이것을 다시 전통적인 투쟁 형태들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나아가 대공장 노동자들에서부터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를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각각의 운동들을 전체 노동자 계급의 통일된 운동으로 결집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 운동은 그린필드를 향한 대규모 공장이동에 대응하는 근본적 대응책을 세계적 수준에서 구축해 나가야 한다. 세계화에 저항하는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전략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들의 상향평준화를 향한 연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구상에서 자본의 도피처를 없애 버리겠다는 공세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을 세우고 현실화해 나가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오로지 생동하는 노동자 국제연대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3) 노동해방 사상의 발전적 재정립

    20세기 세계 노동자 혁명의 전진과 좌절의 역사는 노동해방 사상의 발전적 재정립이라는 과제를 세계 노동자 운동에 남겨 놓았다.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노동자 혁명 대신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선을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로는 노동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으며 자본가들에 맞서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이 노동자 혁명의 위협을 봉쇄할 필요가 있을 때 타협책으로 활용하는 수단일 뿐이며, 노동자 혁명의 위협이 사라지면 자본가들에게 간단히 무력화 당하고 만다. 이것은 20세기 세계 노동자 운동의 역사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노동해방 사상을 발전적으로 재정립하여 노동자 혁명의 전망을 분명히 세우는 데서 보다 어려운 과제는 스탈린주의를 그 뿌리로부터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롭게 다가올 노동자 혁명이 20세기 노동자 혁명의 좌절을 넘어서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다.

    스탈린주의는 단지 스탈린 관료집단의 권력야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노동자 혁명, 특히 러시아 혁명이 결국 스탈린주의의 승리로 귀결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혁명 자체에 내재한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 한계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그러한 본질적 한계의 결과적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스탈린 집단이라는 바이러스의 출현만이 아니라 그것을 막아내지 못했던 혁명 자체의 면역력 한계를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20세기 노동자 혁명에 내재했던 한계를 규명하고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그 혁명이 철저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과 인간해방을 향해 거대하게 전진했던 역사적 사실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혁명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없게 했던 한계를 규명하고 극복함으로써 다가올 새로운 노동자 혁명이 진정으로 20세기 노동자 혁명의 정수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마침내 궁극적인 승리로 나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생산력주의’였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그저 자본주의보다 더 효율적인 어떤 것으로 여기는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상이 겉모습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생산력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21세기 초반의 세계 자본주의는 생산력이 발전한다고 인류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어느 누구도 착취당하거나 억압받지 않는 사회, 어느 누구도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광범한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힘을 갖고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계급 억압을 소멸시키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은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소멸시키는 것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며, 자연에 대한 억압자로서의 인간을 생태계의 동반자로 되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노동해방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인권·생태·양성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의 실현과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것, 즉 보편적인 인간해방이어야 한다.

    스탈린주의가 등장하고 승리하여 끝내 노동자 혁명을 찬탈하는 과정에는 ‘관료주의’ (또는 대리주의) 문제가 핵심에 놓여 있다. 사실 노동자 운동에서 관료주의 극복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자본주의 극복 못지않게 어렵고 중요한 문제다.

    관료주의는 노동자 운동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려는 자본가들에 의해 곧장 부추겨지고 활용된다. 그러나 관료주의는 아직 자본주의 사회의 오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 운동 자신으로부터 수시로 움터 나온다. 따라서 관료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오물을 걸러내기 위한 노동자 운동 자신의 내부 투쟁이다.

    노동자 운동은 자본주의 자체의 산물이다. 노동자 대중은 자본주의 모순이 축적되면 이따금 거대한 모습으로 자신을 역사 앞에 드러냈다가 다시 수그러들기를 되풀이한다. 그러한 노동자 대중의 분출은 자본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다. 그러나 노동자 대중의 분출이 수그러들면 자본가들은 넘겨준 것들을 되찾아 가며 노동자들 속에서 그 흔적을 지워나간다.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는 대중적 분출만으로는 노동자들은 결코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려면, 계급투쟁의 역사적 교훈을 간직하고서 노동자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을 선도하는 노동자 혁명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그들이 결집한 강력한 혁명정당이 필수적이다. 또한 노동자 혁명가들이 제대로 형성되고 강력한 혁명정당으로 성장하려면 사상적·실천적으로 험난하고 치열한 노력이 축적되어야 한다. 노동자 혁명가들에게 요구되는 사상적 문화적 정치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 또한 겸허한 헌신 속에서 노동자 대중과 진정으로 결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나게 성장한 혁명정당도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혁명운동,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권력을 대체할 수 없으며 대체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 대안을 광범한 노동자 대중이 거대한 힘으로 움켜쥐지 못하는 한 자본주의는 결코 극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정당은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혁명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을 주도하는 전위부대로서만, 즉 ‘계급의 한 부분’으로서만 역할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혁명정당은 노동해방 사상을 노동자 대중의 언어로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운동과 실질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노력, 노동자 대중의 사상적 문화적 정치적 수준 전반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에 무엇보다 집중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운동은 무오류의 당, 심지어 수령을 상정하는 야만적 인식론과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은 현실의 거대한 억압에 맞서 싸우는 데서 중요한 사상적 무기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당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충분히 옳을 수는 없다.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과 종교적 맹신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어떤 권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도전할 수 있는 대담한 수평적 토론의 토대 위에서만 진정한 합리적 이성이 발전한다. 현실의 극심한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야기하는 신비화의 유혹, 일정한 성취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쇠락의 위험을 물리칠 수 있는 사상적 문화적 힘을 21세기의 노동자 운동은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4) 노동해방 사상과 전망의 대중화

    이른바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포한 흐름은 ‘대안은 없다’는 체념으로 오늘날 노동자 대중의 뇌리를 깊게 누르고 있다. 자본의 힘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이주노동자로 또 무엇으로 분할당한 채 한껏 쪼그라들어 있다.

    원대한 사상적 실천적 전망을 열어내지 못한 채 즉자적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운동은 노동자 대중의 갈라지고 쪼그라든 상태를 그저 받아 안는 운동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한 운동은 그것이 정규직 운동이든, 비정규직 운동이든, 또 어떤 더 억압받는 자의 운동이든, 결코 새로운 전망을 열 수 있는 운동이 되지 못한다.

    노동자 운동은 모든 억압·착취·차별의 철폐를 향한 노동자 계급의 연대라는 관점에서 노동해방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과 열정을 조직하고 상승시켜 나가는 운동이 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 운동으로 현실에 등장할 수 있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모든 활동가들은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노동해방 사상과 전망을 정립해 나가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늘 배우고 토론하면서 스스로 자기 전망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내는 것에 무엇보다 역점을 두어야 한다. 나아가 노동해방 사상과 전망을 노동자 대중 속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의 세계화 논리는 노동자 대중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럼으로써 노동해방 사상과 전망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장애물이다. 그 논리는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전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로 다시 통합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를 자유와 번영으로 이끄는 가장 나은 체제이며 역사 발전의 최종 단계임을 보여준다.

    ○ 세계적인 무한 경쟁 속에서 국가 경쟁력과 회사 경쟁력을 끊임없이 강화할 때에만 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도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경쟁력 강화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피해자들을 만들어 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한다.

    ○ 자본주의 체제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노동자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 노동자들의 반란은 역사적으로 패배하였으며 앞으로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 논리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진실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실들을 갖고 자본의 세계화 논리가 가진 거짓을 철저하게 폭로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대항세계화 논리를 튼튼하게 세워내야 한다. 그 논리는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전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본주의가 인류를 자유와 번영으로 이끄는 좋은 체제임을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대다수 인류를 점점 더 극심한 빈곤과 야만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것은 한 줌 자본가들뿐이다.

    ○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거대한 위기와 파멸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 공황을 지연시키는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영원히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연된 공황은 오히려 누적된 위기가 언젠가 더욱 거대한 규모의 대공황으로 폭발하게 만들 것이다. 점점 더 부풀어 오르며 전 세계에 넘쳐흐르는 거대한 거품이야말로 그 숨길 수 없는 증거다. 세계적인 무한 경쟁은 결국 세계적인 전쟁위기로 치달아 갈 것이며, 끝없는 생태계 파괴는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 개별 국가나 자본이 세계적인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가장 철저하게 박탈하는 데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자본의 경쟁력 강화에 앞 다투어 협력한다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삶을 향한 끝없는 추락일 뿐이다.

    ○ 경쟁력 강화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구조조정 속에서 희생당한 자들은 결코 그 삶이 회복되지 않으며 다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일 뿐이며,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그 칼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자 민중은 아무도 없다.

    ○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새롭게 성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자본이 세계적인 무한 경쟁으로 위협할 때 노동자들은 세계 노동자 계급의 연대로 맞서야 한다. 그것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날이면 날마다 노동자 대중 앞에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자본의 논리에 노동자 계급의 논리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해방 사상과 전망의 대중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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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onfenbrenner, Kate and Stephanie Luce 2004, The Changing Nature of Corporate Global Restructuring: The Impact of Production Shifts on Jobs in the US, China, and Around the Globe. 14 October

    2) Bivens, Josh 2004, 'Shifting Blame for Manufacturing Job Loss,' Briefing Paper No. 149, Economic Policy Institute, April

    3) Business Week 2004, 'Special Report, The China Price', 6 December

    4) ‘중국과 초국적 축적의 동학 : 지구적 구조조정의 원인과 결과’, <실천> 2007년 1월호, 사회실천연구소

    5) Economist 2004, 'The Dragon and the Eagle', 2 October:3-26.

    6) Lee Ching Kwan 2004, '"Made in China": Labor as a Political Force?', Presentation at the 2004 Mansfield Conference. The University of Montana, Missoula, 18-20 April,

    7) ‘중국과 초국적 축적의 동학 : 지구적 구조조정의 원인과 결과’, <실천> 2007년 1월호, 사회실천연구소

    8) <1973년으로의 회귀? : 달러중심 축적체계 쇠퇴의 연속과 불연속>, [진보평론] 2006년 여름호, 로렌 골드너

    9)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 2005년 12월, 해냄출판사, 83~84쪽.

    10)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 302~313쪽.

    11) <뉴욕타임스>, 2005년 8월 24일

    12) <CSR Asia Weekly> 제1권, 2005년 제11주, 제니 와이링찬

    13) <중국에서의 노동자 항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2005년 2월, 도로시 솔링거

    14) <중국의 사회적 불안에 놓인 경제적 기초>, 2005년 5월, A. 카이델

    15) <광풍처럼 상승하는 중국의 계급투쟁>, 2006년 4월, 브루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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