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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노선 : 4호_현 시기 남한에서 이행강령 논쟁 - 노정협의 비판에 답하며
| 2009·08·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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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노선]

    현 시기 남한에서 이행강령 논쟁
    - 노정협의 비판에 답하며

    양효식

    1. 이행강령 - 오직 준혁명적 상황에서나 현실성을 갖는 강령?

    최소강령으로 표현되는 일상적 요구투쟁과 노동자권력 쟁취투쟁 사이에 놓인 간극을 잇기 위한 가교로서 복무하는 이행강령은 준혁명적 상황 때 그 효력을 최고도로 발휘한다. 첨예한 사회적 위기가 대중들을 혁명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하는 요구들을 ‘당면 요구’가 되게 하는 시기가 그러한 준혁명적 상황이다. 이전 시기에 당면 요구가 생존권적 요구, 최소요구 수준을 넘지 않았던 데 비해 이 시기에는 과거 대중들에게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으로만 비쳤던 요구들이 절실한 당면 요구가 된다.

    낡은 사회질서가 무너져가고, 대중들은 투쟁할 태세가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어 있는 것이 준혁명적 상황의 특징이지만, 그러나 배신적인 개량주의 지도부가 대중들을 수동적이고 혼란된 상태로 방치하고 패배의 길을 닦는 것이 또한 이 상황의 특징이기도 하다. 낡은 질서는 무너지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이 맞고 있는 지도력의 위기는 대중들이 지배계급의 균열을 이용하는 것을 막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절망에 빠진 중간 계급·계층들을 노동자계급의 편으로 결집시키는 것을 막는다.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로 인도하고 배신적 지도부와 결별토록 하며 노동자계급이 혁명가들 속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찾도록 해주는 강령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을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이러한 지도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요구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 생산통제”, “재벌 몰수·국유화”, “노동자정부” 같은 이행 요구가 갖는 결정적 중요성이다. 그래서 이행강령의 원형인 1934년 「프랑스 행동강령」도 이러한 준혁명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준혁명적 상황이 아닌 비혁명적 시기들에서는 어떠한가? 그런 시기들에서는 이행 요구들이 전혀 적용될 수 없으며 현실 적합성을 가지지 못하는가?

    예를 들어 한편에서 야간노동 폐지, 법정 노동시간 준수(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과 독일사민당의 최소강령 요구들)나 정리해고 금지, 비정규직 철폐 같은 당면 생존권적 요구 투쟁과,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권력 쟁취투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최대강령 투쟁)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이행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조직하려고 하는 것이 ‘비혁명적 시기’라는 이유로 전혀 실효성을 가지지 못하는가?

    사회주의자들이 ‘비혁명적인’ 현 시기에, 예를 들어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분쇄투쟁에 결합하고 이 투쟁을 전 계급적인 투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정리해고 분쇄”를 넘어 자동차산업 국유화 및 노동자 산업통제 요구를 중심으로 개량주의 지도부의 영향 하에 있는 금속노조·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서 투쟁을 조직하려고 하는 것은 모험주의적이고 고립을 자초하는 것인가?

    ‘비혁명적 시기’라는 이유로 노동자권력 목표로부터 생존권적 요구의 분리를 막기 위한 매개적 요구들은 자제되어야 하며 단지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제기한 요구들을 그대로 반복해야만 하는 것인가?

    “개량의 획득은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이라는 맑스주의 테제는 준혁명적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는 틀린 이야기인가?

    비혁명적 시기에 개량주의 지도력 하에 있는 노동자들을 노동자권력 투쟁 쪽으로, 사회주의혁명 강령에 대한 동의로 전취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최소 요구뿐만 아니라 이행 요구들을 중심으로 이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전선을 조직하여 준혁명적 상황을 앞당기기 위한 시도들은 전혀 현실성을 갖지 못하는 것인가?

    준혁명적 상황에서 적용력이 가장 극대화된다는 것이 곧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실 적합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비혁명적 시기들’이라고 해서 모두 일률적으로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우리는 현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자본주의 공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명확히 준혁명적 상황의 특징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혁명적 시기’이다.

    1997년 말부터 2~3년 동안의 ‘IMF 시기’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같은 비혁명적 시기라고 해도 현재의 공황기와 같이 준혁명적 상황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직접 품고 있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다. 서구의 1950~60년대와 같은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기가 그런 시기이다.

    또한 직접적인 공황기가 아니면 모두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기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IMF 구제금융을 끝낸 2000년에서 2007년의 시기는 공황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구의 1950~60년대와 같은 상대적 안정기도 아니다. 상대적 안정을 지속적으로 누릴 만큼 계급투쟁이 결정적으로 패배하지도 않았고, 자본 축적의 구조적 위기도 완화하기는커녕 계속 심화되어 갔다. 이런 시기는 준혁명적 상황도 아니고 직접적인 공황기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상대적 안정이 지속되는 시기와는 달리, 가령 구조조정 반대투쟁 같은 당면 투쟁을 전체 계급의 투쟁으로 전면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이행요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

    계급투쟁의 결정적 패배로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계급에게 전가되고 대중이 깊은 패배주의와 사기 저하에 빠진 결과로 자본주의 체제의 상대적 안정이 지속되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시기에는 노동자계급이 매우 기초적이고 준비 단계의 투쟁 형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혁명으로 나아가는 이행강령은 그 같은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적용력을 잃을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이행 요구가 보다 당면의 요구들, 즉 최소 요구들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일시적으로만 그러한데 왜냐하면 그러한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기조차 오늘날 제국주의 시대(epoch)의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규정성 안에서 그 규정성을 받는 소 시기(period)이기 때문이다. 이행강령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시대 규정(제국주의 시대 - 이행 시대)을 근거로 하여 작성되는 강령이므로 의당 그 시대 안에서의 소 시기 정세들에 대해서는 해당 시기에 맞춰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만 한다. 이는 불가피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영구적 위기나 ‘전반적 위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 안정기에는 일시적으로 최소 요구들에 두드러진 지위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최소 요구들이 이행 요구들을 대신할 대용품으로서가 아니라 이행 요구들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수단으로 배치된다. 즉 이행 요구들을 밀어갈 힘들, 세력들을 투쟁 속에서 모아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상대적 안정기가 아닌 대부분의 비혁명적 시기들에서는, 심지어 아주 일상적인 시기에서조차도 이행요구들이 최소요구들을 포함한 행동강령의 형태로 실생활에 옮겨질 경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즉 그럴 경우 노동자들의 당면 이해를 위한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은 물론, 사회주의 이행의 과제를 위해 노동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행요구들은 일상 투쟁에서도 필수적이다. 트로츠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전략적 과제[노동자권력 쟁취]의 달성은 모든 전술적 문제, 심지어 사소하고 부분적인 전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계층, 직업, 집단을 망라하여 모든 노동자계급 부문들은 혁명운동으로 당겨져야 한다. 현 시대가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것은, 현 시대가 혁명당을 일상적인 사업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일상 사업이 혁명의 실제 과제와 분리되지 않은 채 진행되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상대적 안정기가 아니지만 아직 준혁명적 상황의 특징을 띠고 있지도 않은 현 시기 남한과 같은 상황은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그 일반적 성격이 (준)혁명적이지 않은 시기들에서도 정치권력 쟁취투쟁을 전면화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제국주의 시대의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갖는 특징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남한 자본주의는 그 특유의 불균등·결합 발전 속에서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모든 특징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현 시기 남한의 정세적 성격은 이러한 규정성 안에서만 올바로 자리매김 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준)혁명적 시기 아니면 일상적 시기’라는 기계적 이분법으로는 불균등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 시기 남한 정세의 구체성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정세의 불균등성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방어하는 초보적 과제가 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를 객관적으로 제기하는 투쟁들과 결합하게 되는 상황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현재 쌍용차 투쟁에서 정리해고를 분쇄하고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이 기초적인 투쟁 과제가 쌍용차와 함께 GM대우와 현대·기아차 그리고 부품사 등 자동차산업 전반을 국유화하고 이에 대한 노동자 산업통제를 도입하기 위한 투쟁으로,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이명박 자본가 정부 퇴진과 노동자정부 수립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제기하는 상황이 이런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 최소강령적 투쟁과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이 아니라 오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고, 이러한 최대강령적 목표와 분리되지 않고 긴밀히 연결되는 것을 통해서만 온전히 쟁취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자본가 정부를 세우는 투쟁으로 왜곡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투쟁의 불균등·결합 발전 상황이 현 시기 남한에서 이행 요구들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정세적 근거이다. 준혁명적 상황이 아님에도 말이다.

    2. 이행강령과 전술

    노정협은 ‘다함께’와 마찬가지로 줄곧 “이행강령이 준혁명적 시기에나 현실성을 가질 수 있지, 일상 시기에는 대중들한테 너무 급진적이어서 현실성을 갖지 못하고 고립만 자초한다”며 현 시기 이행강령을 거부해 왔다.

    이들은 당면 요구투쟁(최소강령 실현 투쟁)이 어떻게 최대강령적 목표와 분리되지 않도록 만들 것인가, 매번의 투쟁에서 발생하는 최소요구/부분적 요구와 사회주의혁명이라는 목표 간의 분리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개량 요구가 어떻게 개량주의로 빠져 유실되지 않고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로서 온전히 쟁취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최대강령 실현투쟁으로 나아갈 고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개량주의 지도력 하에 있는 대중들을 혁명적 최대강령 쪽으로, 사회주의혁명 강령에 대한 동의 쪽으로 전취할 것인가 하는 현 시기 절박한 과제를 ‘정세’를 탓하며 회피하고 있다.

    이행강령은 대중들이 이행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준혁명적 시기에나 제출할 수 있다는 이러한 대기주의적 주장은 전위의 임무를 포기하는 추수주의, 경제주의에 전형적인 특징이다. 노정협도 한 때 인용한 바 있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자.

    “강령이 노동자의 현재 의식에 영합해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의 객관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 강령은 노동계급의 후진성보다 이 계급의 객관적 임무를 표현해야 한다. 강령은 후진성을 극복하고 제압하는 도구이다.” (<노동자정치신문> 17호 ‘이행기 강령과 실현조건’에서 인용)

    대기주의는 이러한 추수주의·경제주의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그로 인해 이행강령만이 아니라 현 시기 강령적 요구안과 ‘계획으로서의 전술’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다. 이러한 강령적 요구안이나 전술이 아니라 대중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 지금 중요하다고 대기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강령 그 자체가 대중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동만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그럴 듯한 주장은 현실의 계급투쟁을 떠올리면 곧 추수주의·경제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임이 드러난다. 대중들은 행동에 나서고 있다. 수십만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는 아니지만 수만 수천 명이 불균등하게 행동에 나선다. 계급투쟁 자체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고, 파업을 하게 하고, 대중행동으로 결집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으로, 파업으로 나서는 데서 어떤 식으로든 요구들도 제기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을 행동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동의 전개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노동자권력 투쟁 쪽으로, 사회주의혁명 쪽으로 전취하는 것이다.

    이행강령을 위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상적 요구를 넘어서도록 이끄는 바로 이러한 임무―대기주의자들이 떠맡기를 늘 거부하는 것―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회주의로 전취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강령과 전술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의 과제를 노동자들의 일상적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은 연관된 과제로 만들어야 하며 만들 수 있다.

    제2 인터내셔널 시기의 독일사민당처럼 한국의 대기주의자들은 당면 투쟁과 노동자권력쟁취 투쟁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그리고 일상 시기와 준혁명적 상황을 연결할 전위의 전술을 부정, 왜곡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대중정당인 독일사민당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의회주의와 조합주의로 분리시키는 기회주의 양날개 전술을 가지고서 정치투쟁 전술을 사실상 폐기했다면, 한국의 써클주의적 대기주의자들은 최대강령을 추상적 선전의 주제로만 한정하고 현실의 실천은 조합주의, 경제주의, 꽁무니주의로 빠져들면서 전위의 ‘계획으로서의 전술’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주의자들은 러시아의 경제주의자들이나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전술을 그 전술의 모태가 되는 강령적 원칙으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래서 ‘전술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야 하며, 24시간 안에 상황이 바뀌면 전술도 바뀌어야 한다, 강령과는 달리 전술은 유연해야 한다, 하루,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전술적 요구와는 달리 강령은 일관돼야 한다’는 상투적인 주장만 되풀이 할 뿐,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술이 바뀌려면 일단 기존의 전술이 있어야 한다. 확립된 전술, 혁명적 사회주의 전술이 부재하다는 것은 곧 기회주의 전술로 빠져들고 있다는 증명이다. 전술을 최대강령으로부터 떼어내 실용주의적 기반 위에 올려놓는 것, 강령의 실현을 위한 전술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를 핑계 대며 추수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술은 기회주의의 징표이다.

    전략과의 연결을 끊는 방식으로 전술을 사용하는 것, 그것은 기회주의적 전술로 귀결된다.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로의 타락을 가속화시킨 주범은 다름 아니라 강령의 전술적 조항들을 궁극 목표로부터 이와 같이 분리시킨 데에 있다. 일상적 시기에 이행강령(전술적 강령)은 맞지 않다며, 오직 대중들이 다 수용할 수 있는 준혁명적 상황에나 이행강령을 제출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바로 이러한 기회주의적 전술관과 선전주의적 강령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전술을 강령적 목표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우익 기회주의만이 아니라 초좌익의 특징이기도 하다. 스탈린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한 5차 대회 이후의 코민테른은 6차대회에서 초좌익으로 좌선회했다가 7차대회에 가서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으로 180도 우경화했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서도 한 가지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3차대회의 「전술에 관한 테제」를 통해 확립된 이행강령의 방법, 즉 당면 요구투쟁을 권력 투쟁의 출발점으로 삼는 전술 원리를 폐기하는 것이었다. 6차대회의 초좌익 노선이 어떻게 이행강령을 공격했는지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전술에 관한 테제」에 깔려 있는 방법론을 확인해 보자.

    1차 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과 1920년에 각각 개최된 코민테른 최초 두 대회는 소비에트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같은 혁명의 근본 문제들을 취급했다. 당면 과제가 전후 유럽 각국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강령적 문제들에 중심이 가 있었다. 그러나 3차대회에 이르러 자본의 공세와 노동자계급의 후퇴의 시기―1921년과 그 이후―가 도래하자 코민테른은 대중의 지지를 전취할 수 있는 강령을 확립하기 위해 강령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고민하는 한편 전술 재검토에 들어갔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새로운 현실에 여전히 눈을 감고 ‘혁명적 공세’를 계속하고자 했던 좌익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 3차대회와 4차대회를 거친 이 투쟁을 통해 혁명적 전략·전술의 발전을 향한 일대 전진이 이루어졌다. 노동자 통일전선 전술, 총파업 전술, 노동자정부 슬로건 등 이 모든 것이 논쟁을 거쳐 맑스주의의 병기고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이 같은 일련의 전술 발전은 이들 전술이 권력 장악을 위한 전략과 어떤 연관을 이루고 있는지 명확히 해명해줄 필요를 제기하였다. 말하자면, 새로운 강령의 명문화가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명문화 작업이 제3차 대회(1921년)에서 채택된 「전술에 관한 테제」로 나타났다. 「테제」는 현 시대의 성격을 이행적 시대(transitional epoch),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로 파악했다. 이로써 코민테른은 이제 일상적 투쟁과 노동자권력을 위한 투쟁 간의 엄격한 분리를 폐지해야 했는데 왜냐하면 “어떠한 투쟁도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테제」의 전술은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부분적 투쟁이 권력을 위한 투쟁인 것처럼 과장함이 없이 부분적 투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행기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매우 불균등한 투쟁들을 던져서 이와 씨름하게 만든다. 부분적 투쟁이 혁명적 투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혁명적 투쟁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다. 이 결합된 요소들을 실제로 반영, 표현해낼 수 있는 요구들, 권력쟁취 투쟁을 노동자계급에게 최후통첩 형식으로 제기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정확히 이 권력 투쟁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는 요구들을 정식화해야 한다. 이행(기) 요구들이 그 답이다. 「테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산당이 비틀거리는 자본주의 구조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최소강령을 내세워야 할 것인가? 아니다. 공산당은 그 같은 최소강령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본주의 구조의 파괴는 여전히 공산당의 주 목표이며 당면한 임무이다. 그러나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에게 지체 없이 즉각 충족되어야 할 요구들을 내걸어야 하며, 그것이 자본가계급의 이윤경제와 양립할 수 있느냐[자본가들의 지불 능력이 되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투쟁을 통해 이러한 요구들을 옹호해야 한다.”

    코민테른은 이렇게 부분적 과제를 전략적 과제와 결합시킴으로써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트―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아직은 그 다수가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를 연결할 다리를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제출한 그 결합된 이행 요구들은 상호 연결되어 총체적으로는 하나의 전략을 이룬다는 점에서 구식의 부분적 요구들, 최소 요구들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 요구들이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절실한 필요사항들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또한 이 대중들이 그러한 요구를 실현시키지 못하면 자신들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요구 투쟁은 권력 투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개량주의자나 중도주의자의 최소강령 대신 제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체적 필요를 위한 투쟁이다. 일련의 요구들, 즉 그 요구들 총체로서는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분해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 단계들을 대표하는, 또 그 요구들 각각으로서는 그 자체로서 가장 광범한 대중―그들이 아직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찬성하지 않을지라도―의 필요를 표현하고 있는, 그러한 일련의 요구들을 위한 투쟁이다.”

    이 초기 이행요구들의 주 특징은 무엇이었는가? 레닌의 「임박한 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제출되어 있는 요구들처럼 이 초기 이행요구들 각각은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對)자본가 직접행동 쪽으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려 했다. 경제 영역에서 이것은 생산에 대한 통제권 쟁취투쟁의 형태를 취했다. 이 투쟁은 (여전히 좌파 개량주의자들이 유포하고 있는) 경영참가나 노사공동결정제, 산업민주주의 등등의 계급협조주의적 공상에 대당하는 것이었다. 이 생산 통제권은 노·자가 공유, 분점하는 통제권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제어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는 통제권이었다. 생산 통제권 쟁취투쟁은 노동강도, 노동시간, 고용과 해고 등에 대한 자본가들의 계획(案)에 대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공장폐쇄 권한에 대한 체계적인 거부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켰다. 정리해고는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당면한 문제였다. 자본가들이 해고를 자행하는 것에 대해 통제를 하기 위한 투쟁이 이 당면 문제에 대한 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러한 통제를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토대 자체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갔다. 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에 바탕을 둔 제도·기구―공장위원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기관과 정치권력 장악을 지향하는 경제권력(노동자 경영체제) 기관 둘 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체 경제에서의 (노동자 국가에서의) 노동자 경영체제로 가는 길은 어떻게 닦였는가? 공장과 산업에서의 (자본가 국가에서의) 통제권 쟁취를 위한 항상적이고 부단한 싸움들에 의해 닦였다.

    「전술에 관한 테제」에 입각하여 설립된 적색노조 인터내셔널은 노동자 통제권 쟁취투쟁의 핵심적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였다. 이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부분적 투쟁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또한 이해했다. 1921년 7월에 열린 적색노조 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에서 채택된 행동강령(Action Programme)은 직장폐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혁명적 노동조합은 직장폐쇄에 반대하는, 그리고 직장폐쇄 이유에 대한 노동자의 조사권 쟁취를 위한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노동자들로 구성된 특별 통제위원회가 설립되어 원료와 주문에 대한 조사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 특별 통제위원회는 생산에 필요한 원료의 분량이 얼마인지, 또한 은행에 예치된 회사 자금이 얼마인지를 확인, 검증해야 한다. 이 선출된 특별 통제위원회는 해당 기업과 다른 회사들 간의 자금 관계를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조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업비밀 철폐를 당면의 실천 과제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같은 대회에서 통과된 노동자 통제권에 관한 결의안은 노동자 통제권의 이행강령적 내용을 명확히 하고 있다.

    “현실에서 힘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해결(즉 사회혁명의 길)로 가는 서막을 의미하는 이러한 대응은 실제로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형태를 취한다.”

    노동자 생산 통제와 관련하여 사용된 열쇠말은 ‘서막’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생산 통제는 권력 투쟁이라는 본 시합에 앞서 오는 것이지만, 그 본 시합과 뗄 수 없이 묶여 있고 그 본 게임을 여는 오픈 게임이다.

    이와 같이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는 (적색노조 인터내셔널 대회를 포함하여) 이행요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이행요구들 가운데서도 노동자 통제의 핵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실제로 3차 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대중의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하는 모든 실천적 슬로건은 생산 통제권 쟁취 투쟁으로 그 방향이 모아져야 한다. ...”

    그러나 이행요구들을 코민테른의 강령 속에 집어넣는 문제―1922년에 제4차 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놓고 부하린이 이에 대해 반대하면서 강령 문제의 해결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4차 대회에서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한 공산당들의 지도자들은 대중을 이 권력 장악의 과제로 나서게 하는 문제에 대해 매우 첨예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령 문제에 대해 매우 현학자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 부하린은 행동강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 지도자들을 기회주의라고 비난하며 강령을 일종의 일반적인 교육문서 같은 형태로 만들어서 제출하였다. 부하린 강령 초안의 주요 장들은 맑스주의의 근본 원리에 관해 노동자들을 계몽하고, 개량주의와 노동조합 등등에 대한 맑스주의적 태도를 매우 일반론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부하린은 초급진적인 언사를 써가며 행동강령이라는 개념을 조롱했다. 그는 노동자 생산 통제나 ‘노동자정부’ 전술 또는 노동자 통일전선의 여타 측면들을 강령에 포함시키는 것은 “공세를 취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며, 주요 전술 문제들을 강령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나의 수중에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맞서 싸울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부하린의 입장은 상호 연결된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선전주의적 강령 개념과 실용주의적 전술 개념이 그것이다. 그는 전술과 전략과 원리가 각각 별개의 것으로 그 경계가 엄격히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진정한 강령은 단지 원리의 설명만을, 그리고 전략과 관련해서는 몇몇 일반적 기준점들만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어서, 원리는 자본주의를 설명하고 “공산주의 사회의 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했다. 레닌은 러시아공산당(RCP) 내 강령 논쟁에서 이렇게 공산주의의 (추상적) 상을 그리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러나 부하린에게 그 같은 상은 그의 수동적인 선전주의적 강령관(觀)의 불가분한 일부였다.

    이와 같이 전술이 제 자리를 벗어나 원리로부터 이탈함에 따라 전술은 자율적인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부하린의 전술관이었다. 그에게 전술은 “끊임없이 바뀌는 입장”의 산물이었고, 따라서 매 5분마다 바뀐다. 전술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완전히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전략과의 연결을 끊는 방식으로 전술을 사용하는 것,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로서의 개량 획득이 아니라 양자를 무매개적으로 분리시키는 것, 혁명적 최대강령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 최대강령 목표로부터 당면 요구투쟁을 떼어내 별개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개량주의적 전술로 귀결된다.

    이러한 일반론적이고 선전주의적인 강령 개념은, 행동강령을 “순수 전술 문제”를 취급하는 것으로 깎아내리는 오류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사소한 전술 문제’를 다루는 행동강령 같은 강령은 부하린에게 강령일 수가 없었다. (1918년 3월 러시아공산당 7차 대회의 당 강령 개정을 위한 토론에서 부하린이 최소강령을 통째로 지워버릴 것을 요구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에게 강령은 원리들의 카탈로그이지 행동의 매뉴얼이 아니었다. 부하린에게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원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개념이었다.

    부하린의 이 같은 현학자적인 강령 접근방식은 4차 대회에서 단호히 거부되었지만, 스탈린이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1928년 6차 대회에 가서는 코민테른이 공식 채택한 강령의 기초가 되었다. ‘사회 파시즘’ 테제 등 초좌익 노선으로 전환하는 기점이 되었던 이 대회에서 부하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은 과거 적색노조 인터내셔널의 “노동자 생산 통제” 슬로건을 ‘최소강령’, ‘조합주의 강령’이라고 조롱했다. 즉각 혁명적 공세를 취할 수 없었던 시기(직접 공세에 앞서 대중을 전취하는 전술에 초점을 맞춘 「전술에 관한 테제」를 채택했던 3차대회 시기)에 매개적 이행적 요구로 노동자 생산 통제를 제기한 것을 두고 ‘순수 전술 문제’에 매달려 최대강령에 입각한 공세를 취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외견상 좌익적인 태도를 취하며 생산 통제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정에 오르지 않는 이상 생산 통제권 쟁취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속’ 일정에 오르지 않았고 추상적 선전의 영역에서만 가동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매개적 이행적 전술 운용은 ‘사소한 전술 문제’에 매달리는 것으로 비난받았다. (준)혁명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행적 요구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가교를 놓는다는 방법론/전술원리가 철저히 부정되었다. 적색노조 인터내셔널의 행동강령은 강령과는 무관한 단지 “전술적 방침”일 뿐이라며 그 의미가 격하되었다.

    제2 인터내셔널에서 나타났었던 그 치명적인 분리(강령으로부터 전술의 분리)가 제3 인터내셔널에서 ―다만 다른 경로를 거쳐, 다른 이유로 인해― 일어난다. 이행요구들이 추상 속에서 다루어지고, 오로지 “혁명적 상황”에만 적용 가능한 것으로 유폐되어 버렸다. 노동자 생산 통제권  요구들은 오직 혁명적 상황에서만 제출될 수 있다는 특별지령이 내려졌다.

    이와 같이 초좌익 노선이 창궐했던 6차 대회의 코민테른은 당면요구들과 이행요구들을 모두 기회주의라고 비난했다. 모든 것이 권력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앙상해져버렸다.

    그러다 1935년 7차대회에서 인민전선 쪽으로 우경화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급진적 언사들은 자취를 감추고 “진보적 민주주의”, “인민”, “계급동맹”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졌다. 권력 문제도, 당면 생존권적 요구도 모두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계급협조를 위해 자제되어야 했다. 당면 요구투쟁과 권력 투쟁을 연결시키기 위한 이행 요구는 아예 폐기되었다. 당시 대공황 속에서 이행요구들이 급속히 대중들의 절박한 필요에 부합해져 갔고, 여기에 더해 권력 문제 자체가 당면의 절박한 현안 문제가 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말이다.

    3. 대기주의적 반대 - 추수주의·경제주의 전술

    노정협은 이행강령이 준혁명적 상황이 아닌 현 시기에 현실 적용성을 갖지 못한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에서 실현 가능한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침해해 들어가는 투쟁강령, 전투강령을 내걸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행기 강령의 문제의식을 동의한다”고 말했었다. (<노동자정치신문> 32호 ‘사회주의연합에서 잊고 있는 것’)

    또 그보다 앞선 <노동자정치신문> 17호의 기사 ‘이행기 강령과 실현조건’에서는 다음과 같이 아주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다.

    “이 자본의 위기 시기에 노동자가 내걸고 투쟁해야 할 행동강령, 자본의 위기를 부르주아의 정치적 반동이 아닌 노동자의 정치권력 장악과 노동자 해방의 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대중적 투쟁강령을 트로츠키는 이행기 강령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본주의에는 혁명적 시기와 일상적 시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 시기에서 준혁명적 시기로 이행하는 때도 있고 준혁명적 시기에서 혁명적 시기로 이행하는 시기도 있다. 마찬가지로 강령에서는 최소강령과 최대강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결합시키고 이어줄 수 있는 강령이 필요하다. 일상적 시기와 혁명적 시기를 서로 별개의 것으로 다루게 되면 최소강령은 가능한 투쟁―최소저항 노선―으로 변질되고 최대강령은 립서비스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자본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의 반동이 강화되는 시기에는 사회개혁이나 대중의 생활향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국가와 소유관계 내부에서는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 대중과 소부르주아의 삶을 고통, 파산,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던져 버렸다. 자본주의는 노쇠하여 대중의 절박한 삶의 요구조차도 들어주지 못하고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죽음에 이르는 깊은 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일상적인 것과 자본주의 체제가 대립하고 갈등하는 객관적 조건을 형성한다. 일상적인 것과 혁명적인 것이 교차하고 상호침투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이런 상황은 이행기 강령을 필요로 한다.”

    이행강령에 대한 이 얼마나 훌륭한 해설인가! 그러던 노정협이 최근에 이행강령을 부정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세적 차원으로가 아니라 아예 원칙적 차원에서 이행강령 자체에 대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행기 강령은 부실한 모래성 위에 쌓아놓은 성처럼 허술한데다가 강령의 세부적 요구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총체적 부실 강령이다.” (<노동자정치신문> 52호 ‘최근 당 건설 토론과 강령 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 2’)

    이것은 최근 노정협이 친스탈린주의 경향에서 완연한 스탈린주의로 넘어가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노정협이 혁명전략 차원에서 스탈린주의 단계론까지 수용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일국 사회주의’를 옹호하긴 하지만, 노사과연을 따라 인민전선 전략으로까지 돌아섰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래서 예를 들어 스페인 혁명에서 부르주아지와 함께 하는 인민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혁명을 민주공화정 사수로 제한하고 사회주의혁명으로 전진하려는 노동자 자치위원회 등 노동자권력의 맹아를 파괴한 스탈린주의자들(스탈린의 통제 하에 있던 스페인 공산당)을 노정협이 옹호하는 쪽으로 가버렸는지는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론과는 달리 전술 문제에서는 위의 코민테른 6, 7차 대회에서 본 바와 같은 스탈린주의로 넘어갔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술을 그 전술의 뿌리인 강령적 원칙으로부터 완전히 잘라내서 추수주의적·경제주의적 기반 위에 올려놓고 있다.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차단벽을 설치하여 대기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노정협은 이행강령에 대한 반대를 넘어 현 시기 강령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노정협은 강령의 형식·체계를 둘러싼 논쟁을 제기하며 이행강령에 대립하여 최대강령-최소강령 체계를 옹호하고 있지만, 현실 투쟁에서는 노동자계급 앞에 어떠한 강령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 대중을 개량주의 지도부로부터 떼어내 어떠한 강령적 목표들 쪽으로 당길 것인가? 사회주의 정치세력이라면, 더욱이 노동자계급 전위를 자임한다면 그러한 강령적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 쪽으로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전술을 운용해야 한다. 그러나 노정협은 강령을 제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쌍용차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러한 [국유화 강령 같은] 대안 논리들이 아니라, 비타협적 투쟁으로 강력한 옥쇄파업 투쟁을 통해서 전국적인 투쟁전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노동자계급에게 경제공황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회사의 처리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출할 이유 또한 없다. 공황기의 생존권 투쟁은 더욱 많은 노동자 민중을 투쟁의 대오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 투쟁은 자본의 이해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본의 이해를 폭력적으로 대변하는 국가권력의 적나라한 본질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잡다한 대안논리에 빠질 것이 아니라 노동자 권력의 문제라는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노동자정치신문> 52호 기사 ‘미국을 보라! 이것이 자본주의 국유화의 현실이다!’)

    ‘노동자권력 전망’? 생존권 투쟁에서 노동자권력 전망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 그것도 진공 속에서가 아니라 현 시기 대중들이 개량주의 지도부의 영향 하에 있는 구체적 조건 속에서 말이다. 전망은 전망일 뿐, 전망을 강령과 전략 전술로 구체화 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좋은 아이디어로 끝난다.

    노정협이 강령 제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현 시기 개량주의 지도력에 맞서 계급투쟁을 이끌 대안적 지도력을 세워야 할 절박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정협은 현 시기 그 대안적 지도력의 조직적 표현인 전위당/혁명정당 건설의 절박함을 부정하고 있다. 강령 체계상의 논쟁은 실제로 강령(안)을 제출하고 그 강령 목표들의 실현을 위해 정치투쟁을 조직하고자 할 때에만 실천적·정세적 맥락 속에서 논쟁될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과거 사회구성체 논쟁의 관념적 폐해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을 조직할 전투정당 건설의 절실함 속에서만이 강령·전술의 절실함도 제기되는 것이며, 역으로 강령·전술의 절실함 속에서만이 당 건설의 절실함도 제기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전술이 빠진 강령 체계 논쟁은 대기주의와 써클주의에 전형적인 논쟁이다. 노정협이 노동자권력을 현 시기 쟁취해야 할 강령적 목표로서가 아니라 단지 ‘전망’으로만 제시하는 것은 노정협의 대기주의 때문이다. 대중을 정치권력 쟁취투쟁 쪽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치투쟁을 조직할 강령과 그 강령에 바탕한 전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정협은 생존권 투쟁과 노동자권력 전망만 말하고 있지 생존권 투쟁을 어떻게 노동자권력 목표와 분리되지 않도록 이끌 것인가, 생존권 투쟁이 최대강령과 분리된 즉자적 고립적 개량 요구로 제한되지 않고 어떻게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로 쟁취될 수 있도록 이끌 것인가에 대한 전위의 목적의식적인 계획이 없다. 즉 강령·전술이 없고, 그것을 제기할 절실함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자권력은 훗날의 전망일 뿐, 지금은 생존권 투쟁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며 하다보면 언젠가 노동자권력의 전망이 열릴 것이라는 대기주의적 정세관·투쟁관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기주의는 현 시기 개량주의 지도력에 맞서 대중을 전취할 대안적인 혁명적 지도력을 세워야 할 절실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현 시기 당 건설을 부정하는 노정협의 써클주의는 바로 이러한 대기주의적 정세관·투쟁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우리는 자본의 경제위기 전가에 맞선 대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정리해고를 분쇄하고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단지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뿐만 아니라 현 시기에 ‘필요한’ 투쟁 요구와 목표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공황기에 대중들이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기 위해서라도 투쟁 요구와 목표가 “생존권 사수”, “정리해고 분쇄”로 제한되지 않고, 그러한 부분적 요구와 함께 “노동자 산업 통제 하의 국유화”, “은행·금융기관의 몰수 및 단일 국영은행으로의 통합”, “이명박 자본가 정부 퇴진! 노동자 정부 수립”과 같은 이행적 요구들, 대중들이 마침내 노동자권력 투쟁의 필요에 대한 동의(사회주의혁명 강령에 대한 동의)로 나아가게 해 줄 그러한 이행적 요구들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현 시기에 일체의 해고를 금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온전한 정규직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고 선출된 노동자들의 위원회가 이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러한 노동자 생산 통제 하에서 노동조건 저하 없이 주 30시간 또는 그 이하로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여 전체 노동자들 사이에 일자리를 나눌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고 거부하는 자본가 정부를 노동자 정부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를 위해 전국 총파업 및 노동자정당방위대와 총파업 비대위(총파업 실행평의회) 건설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들에는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도 없으며, 현 시기에 노동자가 비타협적으로 생존권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생존권 사수”, “정리해고 분쇄”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이러한 요구들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이러한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정치권력을 빼앗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노동자권력을 세우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이 생존권 투쟁과 권력투쟁 사이에 놓인 간극을 이어줄 가교가 필요하다. 이 가교는 그러한 구체적인 요구들(일련의 요구 체계, 즉 강령)이지 막연한 ‘전망’일 수 없다.

    최소요구(“생존권 사수”) 투쟁에서 최대요구(“노동자권력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노정협도 말한 바와 같이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비약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비약이 자동으로 무매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위와 같은 이행적 요구 투쟁의 매개를 통해서, 혁명당의 전술 개입을 통해서 질적으로 비약한다. 대기주의적인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전위의 목적의식적인 전술 운용이 필요하다. 개량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대중들을 이러한 노동자권력 투쟁 쪽으로 전취하기 위한 혁명당의 전술, 즉 단결전선(공동전선) 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 ‘노동자권력 전망’에 대한 대기론적 선전주의를 넘어 이행 요구/행동강령을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러한 강령·전술을 거부하는 대기론적 선전주의는 당면투쟁과 권력투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을 쌓는 개량주의만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노정협이 왜곡하는 것처럼 이행 요구는 최소요구를 폐지하거나 대체하지 않는다. 이행강령이 폐지한 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부터 최소강령의 ‘분리’이다. 이행 요구는 생존권 투쟁 같은 최소요구 투쟁을 공세적인 최대요구 투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매개적 전술이다. (레닌이 강령과 함께 항상 ‘전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이 단지 강령 체계상의 분리가 아니라 현실 투쟁에서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간극을 당의 전술로 메우고자 함이었다. 최소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레닌이 정치투쟁 전술,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전술을 도입한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우리는 공동전선의 요구안으로 이행요구와 함께 “모든 종류의 해고 금지”, “비정규직 철폐”, “생활임금 쟁취” 같은 최소요구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주의자들은 이러한 최소요구들과 이행요구들을 포함한 행동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전선 전술을 통해 개량주의자들의 영향 하에 있는 대중들을 사회주의혁명 강령 쪽으로 획득할 수 있다.

    노정협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강령 체계상의 최소-최대강령 구별이 아니다.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은 당연히 구별될 수밖에 없고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아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투쟁을 먼 훗날의 과제로 돌리고, 최소요구 투쟁을 최대강령으로부터 분리시켜 ‘최소저항선’으로 묶어두는 대기론적 기회주의이다.1) 우리는 최소강령-최대강령 구별 자체가 개량주의를 낳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2) 개량주의를 낳은 것은 강령 형식이 아니라 노정협의 ‘전술’처럼 최대강령적 목표로부터 최소요구 투쟁을 분리시키는 경제주의적 전술이다. 당면의 생존권 투쟁이 즉자적 무매개적 개량 요구에 머무르도록 조장하는 추수주의적 전술이다.

    대기주의는 평론가적 정세인식을 수반한다. 노정협은 전위를 자임하면서도 주체의 정세 개입을 위한 전술이 부재하기 때문에 노정협의 정세 진단은 항상 “주체 역량” 부족을 핑계 대며 대기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노정협은 “혁명적 정치세력들은 아직 대중들에게 지도력과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위를 자임하는 세력이 강령과 전술을 제출하고 그것으로 개량주의 지도력에 맞서 대중들을 정치투쟁으로 조직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도력과 신뢰가 구축될 수 있겠는가?

    4. 권력 문제에 대한 종파주의적·선전주의적 접근

    과거에 노정협은 이행강령이 준혁명적 시기에나 적합성을 갖지, 일상적 시기에는 너무나 급진적이고 과도해서 대중들로부터 고립된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세와 관계없이 이행강령 그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이제 이행강령이 준혁명적 상황에서 권력의 문제를 회피한다고 반대한다. “노동자 산업통제”나 “노동자 정부” 요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노동자 산업통제 요구가 노동자권력/프롤레타리아 독재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그 투쟁을 제기할 수밖에 없음을 보았다. “노동자 정부”는 어떤가? 노정협은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사노련의 노동자정부는 그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노동자 정부는 대체 무엇인가? 왜 자본주의 권력과 노동자권력 사이에 노동자 정부라는 모호한 중간단계를 제시하고 있는가?” (<노동자정치신문> 52호 ‘최근 당 건설 토론과 강령 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 2’)

    우리는 소비에트가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비에트는 혁명정당에 의해 혁명 쪽으로 전취되어야 한다. 그것이 1917년 2월에서 10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라는 양대 개량주의 정당이 다수파를 이뤄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지지하던 소비에트가 그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소비에트로 바뀐 것은 다름 아니라 볼셰비키의 혁명적 강령 전술이 8개월의 시간 속에서 개량주의 세력들의 강령 전술로부터 소비에트 대중을 전취해 낸 것에 있다.

    노동자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정부도 혁명정당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쪽으로 전취되어야 한다. 개량주의 정당이 지배하는(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에 반대하는) 소비에트가 될 가능성 때문에 혁명주의자들이 “소비에트 구성” 요구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량주의 정당들도 노동자정부 요구(즉 그들한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반하지 않은 노동자정부 요구)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에 혁명주의자들이 노동자정부 요구 자체를 버릴 것인가? 그렇다면 혁명주의자가 아니라 종파주의자일 것이다.3) 여기서 우리는 종파주의가 어떻게 이행 요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게 된다.

    노정협은 1917년에 볼셰비키당이 소비에트에 대해 이러한 종파주의적 전술을 편 것처럼 왜곡하여 사노련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

    “볼셰비키는 임시정부를 대신해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집중할 것을 주장했지만 이 소비에트가 멘셰비키에 의해 장악 당했을 때는 이 구호를 일시적으로 철회하기도 했다.” (<노동자정치신문> 52호 ‘최근 당 건설 토론과 강령 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 2’)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슬로건을 일시 철회한 것은 ‘7월의 날들’ 이후 부르주아 임시정부가 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의 지지 하에 소비에트의 권한을 축소 박탈하고 볼셰비키당을 불법화한 데 따른 것이다. 볼셰비키당은 이제 소비에트 내에서 비판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잃고서 소비에트 대중들 사이에서의 공공연한 활동을 통해 지지를 획득하는 데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소비에트도 더 이상 공동전선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나중에 코르닐로프 쿠데타를 패퇴시키고 난 뒤에서야 되돌릴 수 있었고, 그 때 볼셰비키당은 행동의 자유가 회복되는 것을 조건으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슬로건을 다시 내걸기로 결정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지, 노정협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비에트가 멘셰비키 등 개량주의 세력들에 의해 장악 당해서가 아니다. 소비에트는 처음부터 줄곧 멘셰비키 등 개량주의 세력들이 다수파로서 장악하고 있었다. 새삼 7월에 와서 장악된 것이 아니다. 다만 ‘7월의 날들’ 이전에는 볼셰비키당이 그 안에서 소수파로서나마 비판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 받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슬로건이 처음 제출된 것은 레닌이 러시아로 귀환해서 발표한 「4월 테제」에서였고, 이때는 2월 혁명으로 출현한 소비에트가 여전히 개량주의 세력들, 즉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다수 대의원들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노정협의 말대로 하면 이 슬로건은 제출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장악하지 못하면 정세상 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 하는가? 정세 조건이 그러한 슬로건/전술을 요구하고 있는데 혁명주의자들이 아직 소비에트를 ‘장악’하지 못했다고 그 슬로건을 제출하지 말아야 되는 것인가? ‘장악’이 아니면 포기인가? 최후통첩적 종파주의자들이 아니라 혁명주의자들이라면 그 내에서 처음 소수파의 지위로서나마 공동전선 전술을 통해 다수를 획득해 들어갈 수 있다.

    첨예한 혁명적 상황에서 혁명주의자들은 전술과 슬로건을 통해 자신의 혁명적 올바름을 대중들 사이에서 입증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수파 장악도 되는 것이지 혁명성을 선험적으로 주장하거나 최후통첩을 발포해서 장악이 되지 않는다. 레닌이 이 때 했던 말을 들어보자. “소비에트에서 우리 당은 소수이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수의 전술적 오류를 인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소수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속임수로부터 대중을 구출하기 위해 비판을 수행할 것이다.”

    종파주의적 걱정과는 달리 이 전술적 슬로건은 다수파 개량주의 세력들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기는커녕 그들에 대한 심대한 압박이 되었고 기회주의가 폭로되게 하여 그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리고 소수파였던 혁명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라!’는 슬로건과 함께 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슬로건을 중심으로 볼셰비키당은 당시 소비에트 대중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르주아 임시정부에 대한 환상을 깨나가고, 이 임시정부에 들어가서 계급협조 행각을 펼치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의 기회주의를 소비에트 대중들 사이에서 실천적으로 폭로해 나가면서 소비에트를 혁명적 투쟁기관으로 바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내 다수파의 지위를 이용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소비에트의 지지를 계속 유지시키고 있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집중하라는 이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임시정부에 파견한 각료들을 계속 남겨두었을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내 “자본가 장관들의 퇴진” 요구도 끝까지 거부했다. 임시정부는 2월 혁명 이후 대중들에게 약속한 ‘빵, 평화, 토지’라는 요구들―당면 최소요구―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경제파탄의 고통을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하고,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지속하고, 농민들의 토지 몰수를 승인하길 계속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개량주의 세력들의 태도는 그들이 부르주아지와 한 몸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술적 슬로건/ 전술적 요구를 통해 소비에트는 임시정부를 지지하던 노동자 공동전선 기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노동자 공동전선 기구로 바뀔 수 있었다. 즉 계급협조주의적 인민전선 지지와 노동자권력 쟁취 사이에서 동요하던 대중투쟁기관에서 혁명적 대중투쟁기관으로 재편될 수 있었다. (볼셰비키가 다수파를 장악해서 소비에트가 혁명적 기구가 될 수 있었다기 보다는, 그러한 전술적 슬로건/ 요구의 올바름에 의해 소비에트가 혁명적 기구로 바로 설 수 있어서 그에 따라 혁명주의 볼셰비키가 다수파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요구는 노정협이 왜곡하는 것처럼 ‘우리’의 세력 기반(종파의 ‘주체 역량’)을 기준으로 하여 내걸었다 접었다 하는 종파주의적인 전술이 아니었다. 다수파의 지위가 그 전술 운용의 전제 조건이나 기준이 아니라 역으로 그 전술이 다수파 지위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다수파 지위는 그 전술의 올바름을 통해 투쟁을 한 걸음 전진시킨 (즉 혁명적 소비에트의 확립을 가져온) 부산물로 획득되었다.

    요구와 전술 제출의 기준은 객관적 정세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는 2월 혁명 이후 조성된 정세가 요청하는 슬로건/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즉각적인 임시정부 타도 전술이 아니라 임시정부 타도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전술이었다. 그 조건이란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소비에트가 혁명적 소비에트로 바뀌는 것이다.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한 임시정부 타도를 직접적 일정에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는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있던 개량주의 세력을 폭로시키고 소비에트를 혁명주의 세력으로 물갈이 하는 전술, 즉 임시정부 타도로 나아가기 위한 소비에트의 혁명적 재편 전술이었다. 이렇게 혁명적으로 재편된 소비에트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임시정부 타도/ 노동자 소비에트 권력 수립’ 투쟁으로 곧장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소비에트의 혁명적 재편을 이행의 고리로 삼아 거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는 2월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세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적 이행적 전술이었다. 달리 말하면 임시정부에게 ‘평화, 빵, 토지’에 대한 약속 실행의 기대를 걸고서 임시정부 지지에 머물러 있는 소비에트 대중들의 현재 의식과, 평화 빵 토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제2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한 이행적 요구였다.

    이 요구/전술의 올바름은 마침내 코르닐로프 쿠데타를 패퇴시킨 뒤인 9월에 혁명적 소비에트가 정립되는 것으로, 즉 혁명적 대의원들이 소비에트에서 다수를 이루게 된 것으로 최종 입증되었다. 혁명적 소비에트 정립/ 혁명주의의 다수파 장악(소비에트 대중들과 대의원들을 혁명적 강령·전술에 대한 동의 쪽으로 획득)으로 열린 새로운 정세 조건은 이제 전술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슬로건과 함께 짝을 이뤄 그 하위 슬로건들로서 제출되었던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라!’와 ‘자본가 장관들 퇴진!’ 슬로건들은 이제 ‘임시정부 타도!’ 슬로건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이렇게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슬로건은 최대강령에 다리를 놓는 이행 요구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전술에 대한 종파주의적 견해, 즉 종파의 ‘주체역량’을 전술 제출의 기준으로 삼는 이 같은 태도는 왜 노정협이 이행강령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노정협은 이행강령이 권력의 문제를 회피한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이행강령에 대한 이와 같은 종파주의적 부정과 권력 문제에 대한 종파주의적 접근이다.

    노동자통제나 노동자정부 요구가 권력의 문제를 회피한다는 노정협의 주장 또한 이 동일한 종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종파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대기주의와 선전주의가 또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요구와 마찬가지로 이 요구들은 혁명당이 대중들을 노동자권력/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투쟁 쪽으로 획득하기 위한 전술적 매개이자 그러한 목표를 열어젖히는 서막이지, 중간 ‘단계’가 아니다.

    계획으로서의 전술의 부재, 그리고 노동자권력/피티독재라는 최대강령을 당면 요구투쟁과의 연결고리가 지워진 추상적 선전의 주제로 제한하는 선전주의로 인해 노정협은 이행강령 자체를 반대한다. 지금 여기서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이행강령이 아니라 이행강령에 대한 노정협의 대기주의적 부정과 권력 문제에 대한 선전주의적 접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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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2 인터 시기 독일사민당의 이러한 대기론적 기회주의는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이 터지면서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자본주의 상승기에, 특히 1890~1900년대에 최소요구 투쟁을 최대강령 목표로부터 분리시키는 사민당의 기회주의 전술은 아직 제대로 폭로되지 못했다. 그 같은 개량주의 전술의 유효성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주의 상승으로 인해 실제 개량이 주어졌고 사민당의 국회 의석 및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에서 꾸준한 증가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최소-최대강령 분리 전술이 1914년 이전에는 옳거나 유효했는데 그 이후의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틀려졌거나 효력을 잃었다는 식의, 노정협이 유도하는 방향의 설명은 그 자체가 기회주의 전술을 전제로 깔고 있는 설명이다. 오히려 이러한 물질적 개량의 허용 덕에 기회주의 전술의 모순 폭발이 지연되었고 기회주의가 혁명적 분출을 봉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면서 1914년에 제국주의 전쟁 찬성이라는 역사적 배신을 준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강령 체계상의 구별이 아니라 이러한 최소-최대강령 분리 전술의 기회주의적 본질은 1914년 이전이나 이후에나 동일했다. 다만 그 이후의 자본주의 쇠퇴기에 비해 자본주의 상승기 때에 훨씬 더 기회주의적 본질이 폭로되기 어려웠고 상당 정도 감추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2)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강령도 독일 사민당의 에어푸르트 강령(엥겔스가 추인한 강령)을 따라 최소강령-최대강령 구분을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레닌은 양자 간에 만리장성을 쌓기는커녕 정치투쟁 전술, 피티 헤게모니 전술 같은 이행강령적 성격을 갖는 전술들을 통해 양자 간의 간극을 메우고자 했다. 강령 상에서 ‘민주주의혁명 다음에 사회주의혁명’이라는 혁명 단계론의 입장에 설 때조차도 ‘성장 전화’ 전술(「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당면 혁명과 분리시키지 않았으며, 결코 대기주의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 같은 강령 체계를 가지고 있던 볼셰비키와 독일사민당(특히 카우츠키주의) 간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3) 1905년 혁명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낯선 소비에트에 대해 볼셰비키 당의 강령을 승인하지 않겠다면 해체하라며 최후통첩주의적 요구를 발포하여 레닌으로부터 비판(“당이냐 소비에트냐가 아니라 당과 소비에트 둘 다이다”) 받은 당시 당 위원회주의자들(당시 볼셰비키 내 미숙했던 종파주의자들)도 이런 경우였다. 1905년에 이 같은 ‘시행착오’를 예행연습으로 거친 덕분에 볼셰비키가 1917년에 비슷한 종류의 오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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