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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재판투쟁] 오민규 동지의 최후진술
 사노련  | 2010·12·04 12:00 | HIT : 5,990
* 12월 3일 재판에서, 공안 검찰은 사노련 사건 피고인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국가변란선전선동목적단체 결성 등)과 집시법 위반(촛불시위)을 이유로 다음과 같이 구형했다.
- 피고인 오세철, 양효식, 양준석, 최영익 :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 벌금 50만원
- 피고인 박준석, 정원현, 남궁원, 오민규 :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벌금 50만원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모두 합쳐 48년의 징역형을 구형한 다음, 변호인의 최후변론과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피고인들은 모두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밝혔다. 다음은 오민규 동지의 최후진술이다.


[오민규 동지의 최후진술]


10년 전 어느 날 하청노동자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에서 자신이 일하는 공정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짤릴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노동조합도 없고 달리 도울 수단도 마땅치 않아 법적인 구제책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때 제가 도와드려도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법률가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비겁하게 떠넘기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노동부는 물론이고 노동상담소, 노무사, 변호사까지 모두 만나보았다오. 하지만 방법이 없다더군요.”
명색이 4년제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던 저였지만, 그 노동자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법률의 이 조항으로 구제할 수는 없을까, 이런 제도가 있다던데 이건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제가 모르는 수많은 법률과 제도들의 실상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법적 구제수단이 전혀 없다는 점을 함께 확인한 얼마 뒤, 그 노동자는 같은 3공장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을 데려왔습니다. 함께 몇 년 동안을 같은 콘베이어에서 일해온 몇몇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분의 딱한 사정을 듣고 함께 해볼 수 있는게 없을까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이 분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그리고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이 분의 고용을 보장할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공장 내에 써붙이고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거짓말처럼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투쟁으로 그 하청노동자는 해고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제게 좌우명이 된 말이 있습니다. “하려고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고 하는 이는 구실을 찾는다.” 제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구실과 핑계를 찾는데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그 노동자는 정말 치열하게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법적인 수단이 전혀 없다는 말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는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법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석 달이 지난 뒤에 다른 이유로 결국 이 노동자는 해고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움은 비정규직 파리목숨을 단 3개월 연장한 꼴에 지나지 않았지만, 해고된 뒤에 그 노동자는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비록 짤렸지만 도와줘서 고맙다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되었다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고.

7년 전, 그 노동자처럼 좋은 날을 꿈꾸던 일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울산과 아산공장에서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비정규직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정규직이 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 꿈과 희망은 곧바로 ‘정규직화’라는 요구로 집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심히 방법을 찾았습니다.
6년 전, 금호타이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을 벌여 280여명을 정규직화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파견법과 불법파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 “파견법은 자본가의 법률일 뿐이며, 그 법에 의지해봐야 자본가와 정부는 결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떠벌였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목소리에 아랑곳않고 정말 열심히 불법파견 판정을 위해 뛰었습니다. 공장 곳곳을 돌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불법파견의 증거를 수집했고, 교육·설문은 기본이요 조합원 가입운동도 맹렬히 펼쳤습니다.
2004년 12월, 마침내 노동부가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모든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불법파견 판정 이후 정부는 정규직화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검찰은 불법파견 고발사건에 대해 2년이나 질질 끌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불기소 처분을 내린 장본인은, 바로 저희 사노련을 기소한 검찰 공안부였습니다. 자본가의 불법행위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1백여명이 해고되었고, 5년여 소송 끝에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근속 2년이 넘은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드디어 ‘좋은 날’이 다가왔다며 노동조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노조를 만들던 처음에 이들은 막연히 정규직 되는 것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6~7년의 노조활동과 투쟁 경험은 이를 좀더 구체화시켰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자!”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 명찰을 물려주지 말자!”

11월 15일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에 의거하여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해 오늘로 19일차를 맞이했습니다. 그 사이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정부의 노동정책 수장인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일 동안 언론을 통해 여러 가지 중요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이번 파업이 불법이라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는 발언은 기본이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더라도 딱 2명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 하질 않나, “회사 자료를 보니 4년차 사내하청 연봉이 3,800만원으로 정규직 대비 73% 수준”이란 말을 뱉어냈습니다.
박재완 장관 덕에, 이번에는 제가 “파견법은 자본가의 법일 뿐”이라는 말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우선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불법파업에 공권력 투입? 그럼 왜 노동부는 자기들이 6년 전에 불법파견이라 판정해놓고, 불법파견에는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았는가?” “불법파견인지 아닌지에 대해 노동자들 모두 개별적으로 대법원 판결을 받아와야 한다면, 이번 파업이 불법인지 여부도 대법원에서 판결나기 전까지는 불법이라고 단정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법에 의지해봐야 결코 들어주지 않을 것”이란 말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의 요지 중에는 자동차 조립생산같은 단일흐름생산(콘베이어) 공정에는 도급계약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재완 장관은 대법원 확정판결 나더라도 딱 2명에게만 적용된다며, 개인별로 대법원 판결까지 4~5년은 족히 걸릴 법적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라 합니다. 정부가 한번 불법파업이라 낙인찍으면 대법원 판결은커녕 소송에 들어가기도 전에 노동자들에게 공권력이 투입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손해배상·가압류·가처분 등에 걸려 몽둥이찜질에 철창살 신세를 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덤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정부는 자본가 정부”라는 맑스주의 경구도 읊어댈 필요가 없습니다. 장관이라는 작자가 왜곡으로 가득찬 회사 자료만 참조한 것도 문제이지만,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100만원 받고 누구는 73만원 받는 현실을 두고 “이거라도 감사히 여겨라”고 말합니다. 차별을 없애겠다고 만든 비정규법도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굳이 사회주의자들이 선동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검찰, 아니 한국에 존재하는 자본가 정부는 이러한 노동자 투쟁을 매우 ‘불온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노동자 투쟁의 과정을 통해, 그들이 지켜야 할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모순을 경험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본가 정부는 체제를 수호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노동부장관을 지냈던 이영희 씨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영희 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쯤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의 말이 모종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라면, 저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슬로건 자체는 자본주의를 일부 개량함으로써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과 열망,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자투쟁 과정은 분명히 사회주의로 가는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현대차 울타리 내에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자는 운동과 열망만으로도, 자본가 정부로 하여금 이토록 적나라하게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도록 하고 있지 않습니까!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던 ‘좋은 날’이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로, 더 나아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로 나아간다면 그 꿈은 사회주의와 맞닿기 시작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정규직과 굳게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게 됩니다. “공장 내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는 단순한 진리는 점점 현대차 울타리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며 “모든 노동계급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사상으로 커나갑니다. 저는 그런 사상을 체득한 노동자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 여기서 한번 묻겠습니다.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던 ‘좋은 날’이 사회주의로 이르기까지, 저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역할이 결정적입니까?
따라서 자본가들과 자본가 정부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투쟁과정 자체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를 꿈꾸도록 만들기 때문에 극한탄압에 나서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그들 스스로 만든 법도 지키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성장을 막기 위해서라면 끔찍한 폭력과 테러도 사양하지 않는 것이 자본가들임을, 우리는 지난 19일간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투쟁 과정을 통해 똑똑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자본이 수조 원이 들어가는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도 비정규직에게는 단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대한민국의 자본가 정부는 노동자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을 ‘외부세력’이네, 노동자 투쟁의 ‘배후조종세력’이네 하며 탄압을 퍼붓습니다. 노동자들이 마치 로봇처럼 누구의 조종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업수이 여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본가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앞장서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마치 사회주의자들이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는 세력인양 마녀사냥에 나서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또한 그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었으나, 재판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점은 분명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장장 2년에 걸친 검·경의 수사, 7개월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저들이 얼마나 무리한 일을 벌였는지도 드러났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자본가들의 증언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를 증명했습니다. 뉴코아 노사협력팀장은 검찰이 사노련에 대한 원색적 비방을 담고 있는 진술서를 증거로 들이밀자 “나는 진술서를 작성한 바가 없다”고 폭로하고 말았습니다. 현대차 전주공장 사측 관계자는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당시의 경찰도 사건에 관련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여 한번 가서 간단히 받고 온 것이 전부다.”라며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 자체를 꺼려해 검찰이 증인신청을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한 현장조직이 사노련과 관계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조직도를 들이밀었을 때, 증인으로 출석한 동지가 “이것은 완전한 조작”이라며 강하게 항의하자 검찰은 슬그머니 증거제출을 철회했습니다. 사노련이 아닌 다른 단체의 자료회원·후원회원 명단을 우리 동지들의 e-mail에서 꺼내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통해 저를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더욱 대오각성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본가 정부가 사회주의자들을 두고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 자체가, 투쟁의 선두에 선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로 성장하는 속도가 충분치 않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동자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밀을 폭로하고 있지만, 그것이 더 넓은 노동계급으로 확산되기에는 아직 미약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재판의 모두진술에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의 것이며,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이 사상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만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로 성장하고 노동자 투쟁이 만들어내는 계급의식이 모든 노동계급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면, 자본가 정부는 사회주의자들을 ‘외부세력’이라 부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노력만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의 과정을 통해 자본가 정부와 법률이 매일매일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밀을 폭로하고 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그러한 날이 올 것입니다. 만일 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오만과 아집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신념은 지난 10여년간 제가 직접 겪어온 경험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숱한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도 투쟁과정을 통해 ‘구실과 핑계거리’가 아니라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쟁과정에서 더 넓은 노동계급 속으로 자신의 경험과 의식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전파할 것입니다. 마침내 사회주의가 본래의 주인인 노동계급 전체의 보편적 상식이 되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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