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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재판투쟁] 최영익 동지의 최후진술
 사노련  | 2010·12·04 11:58 | HIT : 5,042
* 12월 3일 재판에서, 공안 검찰은 사노련 사건 피고인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국가변란선전선동목적단체 결성 등)과 집시법 위반(촛불시위)을 이유로 다음과 같이 구형했다.
- 피고인 오세철, 양효식, 양준석, 최영익 :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 벌금 50만원
- 피고인 박준석, 정원현, 남궁원, 오민규 :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벌금 50만원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모두 합쳐 48년의 징역형을 구형한 다음, 변호인의 최후변론과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피고인들은 모두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밝혔다. 다음은 최영익 동지의 최후진술이다.


[최영익 동지의 최후진술]


저는 소위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16년 전과 똑같은 죄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저에게 적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16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저의 신념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저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제 자신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자신을 의식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 인간이란 존재에게 ‘이성에 따른 충실한 삶’으로서 양심에 따른 삶처럼 의무적이고,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재판에 임하는 과정에서 저를 비롯한 사노련 피고인들 모두가 ‘징치적 신념’과 관련된 한,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엄청난 증거 자료들에서도,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 신념’과 관련된 한 결코 부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노련 활동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재판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솔직히 ‘공개하는 것’을 의무이자 미덕으로 간주했습니다.
이와 똑같이 저는 최후 진술에서도 저의 정치적 신념, 즉 사회주의 사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최후 진술에서 저는 정부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맞서 저의 양심의 정당함을 제시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검찰은 제가 ‘민주주의의 파괴자’인 것처럼 몰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80년대 중반 ‘민주주의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에 눈뜬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결코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군사독재에 맞선 항거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들과, 선후배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저로서는 ‘민주주의 적’이 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그나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조차 누구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현 정부와 검찰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찰과 검찰은 군사 독재 시절 내내 군사 독재 정권의 하인이 되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선봉에 섰던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 ‘80년 광주의 시민들’, 구로동맹 파업을 비롯해 80년대 초반의 그 암울한 시절 군사독재의 폭력에 맞서 치열한 파업 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들, 87년 ‘호헌 철폐, 민주 쟁취’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수백만의 시민들, 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했던 전국의 노동자들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사수하고 만들어냈던 당당한 주역들입니다. 민주주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다만 그 피는 현 정부의 피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획득된 민주주의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발판’이 놓인 것에 불과합니다. 주권자인 전체 사회구성원들이 실질적인 권리를 대등하고 누리고, 사회 시스템과 정책,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진정으로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즉 사회주의로 전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이건희의 권리’와 ‘평범한 노동자 민중 한 사람의 권리’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중앙일보를 소유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입장을 몇십면의 칼라 신문으로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백여만부를 찍어내는 이건희의 권리와 노동자 민중의 권리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신문사를 사회가 공동 소유하고 모두의 견해가 고루 반영되게 만들어야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검찰은 ‘파업 투쟁을 선동’한 것이 마치 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노동자 민중이 지극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집단 행동입니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사장에게 고용되어 일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일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진정한 생산적 힘’은 바로 이들로부터 탄생합니다. 바로 이 힘을 동원하는 것, 그래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일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 바로 그것이 노동자 투쟁입니다. 이것마저 박탈한다면, 노동자들에게 무엇이 남을 것입니까?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노예의 삶,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정부들은 ‘파업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이런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거대한 범죄라면, 이것은 현 정부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단지 ‘부자들을 위한 민주주의’, 즉 껍데기 민주주의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면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파업의 권리 행사’는 민주주의 권리를 실현하는 기본적인 행위이며, 사노련의 파업 선동은 이런 권리 행사를 상기시켜주는 정당한 행위입니다. 현 정부, 검찰 대 사노련 사이의 대립은 결국 ‘민주주의’에는 “계급적 경계선”이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권자는 하나이지 셋이 아닙니다. 입법, 사법, 행정 모두 이 단 하나의 주권자에 복종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상을 사회주의는 “입법, 사법, 행정을 단일한 주권자의 의지와 통제 아래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입법 기능, 사법 기능, 행정 기능’은 모든 사회에 필수적인 것으로 사회주의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는 그것을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사회주의는 단지 그 기능들을 사회구성원 전체의 직접적인 통제와 관할 아래 하나로 통합시키려 할 뿐입니다. 꼬뮌, 소비에트, 레떼 등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의지를 ‘직접’, 그리고 ‘일상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기구에 의해 그것을 실현하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구는 선거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기구는 ‘직접 투표’와 ‘상시적 투표’를 통해 선거 기능을 전면적으로 활성화시킵니다. ‘지배할 그 누구’를 뽑고, 이들이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도록 허용하는 왜곡된 선거 대신, 스스로를 대표할 사람들을 언제든지 갈아치우고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선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금권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를 남김없이 반영하는 그런 선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상비군’을 ‘민병대’로 대체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이상에 결코 대립하지 않습니다. ‘상비군’은 소수 장교들이나 정부의 몇몇 핵심들의 명령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군대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이들에 의해 군대의 지위와 직책, 역할이 지명되는 ‘민병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일하면서 지킨다’는 원리에 의해 참가하고 협동하며 이들의 의지에 충실히 복종하는 ‘민병대’야 말로 “주권자의 의지에 복종하는 민주주의적 군대”에 딱 맞는 것입니다. 80년 광주학살이나 군사쿠데타, 군사독재의 비극적인 경험을 결코 반복하지 않을 보증물인 것입니다.
이상의 이유로 저는 검찰이 제시하는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죄를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사상은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사상입니다.

다음으로 검찰은 저를 ‘폭력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적반하장입니다. 우선 누가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저를 구속해 감옥에 가두려 하는 것은 과연 폭력이 아닙니까? 한 인간의 소중한 양심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사슬을 묶어 억압 통제하려는 당사자는 바로 검찰이 아닙니까?
검찰이 신봉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개성에 따라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야 할 청소년들을 입시의 굴레에 가두는 것은 폭력이 아닙니까? 수백만의 사람들을 사장의 한 마디에 언제든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어 길거리를 떠돌도록 만드는 비정규직 제도는 잔인한 폭력이 아닙니까? 강제 퇴직과 높은 생활비, 자녀 양육비 등의 온갖 굴레에 의해, 뼈빠지게 온 생을 바쳐 일하고도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드는 것은 폭력이 아닙니까?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치료받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연평도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에게 과연 이 체제는 평화적인 체제입니까? 젊은이들이 2년, 3년을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받고,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훈련받는 체제, 사회의 엄청난 자원과 인력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는 군수산업에 투입되는 이 체제가 과연 평화로운 체제입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체제는 너무도 충분하게 폭력적입니다. 진심으로 이러한 폭력을 제거하고 평화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데로 전진해야 합니다. 저는 사회주의에서 그러한 희망을 찾았습니다. 상비군을 민병대로 대체하고 최종적으로는 전세계 노동자 민중의 단결에 의해 군대 자체를 철폐하는 것,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에 입각해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인 안정된 일자리와 생활수준, 노후,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무상 주택을 제공하는 것, 청소년들이 가혹한 경쟁과 불안정한 미래 대신 자신의 취향과 희망을 따라 최상의 교육을 받으면서 행복한 미래를 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사회주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간디식의 비폭력 평화주의자’는 아닙니다. 평화적 방식으로 사회주의로의 전진이 이뤄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기필코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아엔데 정부를 무너뜨린 칠레 군사쿠데타나 80년 광주에서의 대량 학살처럼, 압도적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의사를 폭력적으로 억압한다면, 이런 경우 노동자 민중은 잠자코 학살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 경우, 평화 달성을 위해서는 ‘정의의 다수자 폭력’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파업과 시위’ 등의 행위는 자본주의 폭력에 맞선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노동자 민중이 폭력적이라면, 그리고 만약 사노련이 폭력을 선동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폭력에 맞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기에 강요된 자구책으로서 폭력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마치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노련의 선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묘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랜드, 쌍용차, 현대차 등에서 펼쳐진 투쟁들이 사노련의 사주에 의해 발생한 것처럼 몰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사노련은 노동자 운동에 참가하고 지지하며 이것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동자 스스로의 자주적 운동 이외에 사회주의에 이를 다른 길은 없다고 믿는 저희들의 철학에 비춰볼 때 당연한 실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투쟁들을 만든 것은 저희들이 아닙니다. 생활고, 가정의 무게 등을 가진 저 노동자들이 저토록 과감하고도 처절하게 싸우도록 만든 것은 결코 저희들이 아닙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실업과 저임금, 비정규직의 굴레”를 씌우지 않았다면 저희들의 선동의 몇 만배를 동원한다고 해도 저들은 결코 투쟁에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짜 투쟁을 선전 선동한 자들을 찾아야 한다면, 바로 해고를 서슴지 않는 악덕 사장들과 경영진들일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조종할 수 있는 로봇이 결코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경험과 확신에 따라 움직이는 자주적 존재입니다. 사노련의 선동은 그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사노련이 제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사선택해서 결정할 사람들은 바로 노동자 자신입니다. 사노련은 노동자들의 의지를 거스를 생각이 없고 거스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노련의 생각과 제안의 옳고 그름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심판, 바로 그것에 의해 저와 사노련의 생각과 실천이 판단될 것이고, 저는 그것에 승복할 것입니다.  

이상의 이유로 저는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양심에 따른 결론, 즉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번 재판이 저의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저의 삶이 노동자 민중과 역사의 판결에 의해 평가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를 희망합니다.
123  사노련의 해산을 선언한다.  사노련 11·02·25 14672
122  1월 24일 미국 뉴욕의 한국 영사관 앞에서 벌어진 "사노련 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 항의시위  사노련 11·01·25 8275
121  사노련 재판을 앞두고 날아 온 국제적인 항의와 연대의 메시지들 (요약)  사노련 11·01·21 5017
120  사노련 재판 선고에 즈음한 사노련 공대위 성명서  사노련 11·01·21 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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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사노련 재판투쟁] 양준석 동지의 최후진술  사노련 10·12·04 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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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사노련 재판투쟁] 양준석 동지의 최초진술  사노련 10·06·04 3621
112  가자 노동해방 57호가 나왔습니다.  사노련 10·07·30 5584
111  가자 노동해방 56호가 나왔습니다.  사노련 10·07·15 5428
110  가자 노동해방 55호가 나왔습니다.  사노련 10·07·02 4970
109  가자 노동해방 54호가 나왔습니다.  사노련 10·06·18 3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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