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갈 수 없다면 같이 죽자는 각오로”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김유식 대외협력부장
1월9일로 파업 120일차를 맞는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농성장을 찾아 김유식 대외협력부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현재 코스콤 비정규지부 투쟁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현재 파업 120일차를 경과하고 있는데, 중노위의 (원청은 교섭책임 없다는) 잘못된 판결 이후 코스콤 사측은 면죄부를 얻은 것처럼 기고만장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교섭 요구에 대해 아예 싫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자와 사측의 힘겨루기 상태가 이어지며 소강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많은 이슈화와 사회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고 정규직노조 핑계를 대며 “정서상 안 된다” “시험 봐라” 등의 루머만 퍼뜨리고 있다. 아마도 “힘으로 교섭 국면을 강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향후 투쟁을 판가름할 것이라 본다.
▣ 12월31일 벌어진 고공시위는, 이명박 당선 직후 처음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40~50m 고공의 CCTV 탑에 오를 때 만에 하나 너트 하나 빠지거나 혹독한 바람 때문에 손이라도 놓치면 정말 대형사고가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고공시위가 한 두 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째인데,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사측에 압박조차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합원들 스스로 처절한 저항을 결의한 것 같다. 강제진압 문제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이미 언론에서는 톱 이슈가 되어 있었다. 각 거점(보신각, 광화문 등)이 가진 상징성과 연말 상황이 맞물리면서 더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경찰 강제진압이 오히려 이슈화를 거들어 주었다. 특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비정규노동자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주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올라오고 있다보니 조선일보조차 우호적으로 썼더라. 1월2일 증권시장 개장일 재경부장관의 거래소 방문에 맞추어 진행한 투쟁까지 잘 진행되었다고 평가한다. 연말연초 투쟁을 잘했으니 쉬자는 분위기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반전을 위해 나설 때이다.
▣ 파업투쟁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노조 만든 지 한 달 만인 6월말 파업 들어가서 1주일 로비농성 끝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던 순간이다. 물론 그 합의서는 두 달 만에 사측이 휴지조각을 만들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승리의 순간이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 포옹을 하면서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고, 곧바로 KTX 농성장에 달려가서 힘도 주고, 홈에버 상암점 가서 몸짓 공연도 하면서 동지들과 승리를 공유했다.
우리가 로비농성을 전개할 때, 증권노조 각 지부에서 대형 현수막을 로비에 쫙 내려 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2차 파업 돌입 후 경찰에 처음 연행되었을 때 한 동지가 고공농성 하면서 결국 모두 석방을 시켰을 때, 그리고 10월말 새벽 사장실 점거했을 때 용역깡패에 개처럼 얻어맞고 끌려나오며 모조리 소화기 분말가루를 뒤집어쓰고 내려오는데도 조합원들이 함께 손을 잡아주는 모습에서 “이게 바로 동지애”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 6개월 넘게 싸우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우고 느꼈을 것 같은데?
과거에는 자기 스스로 비정규직임을 인정하기 싫었고, 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일반적으로 기업들 고용형태가 거의 이러하니까, 불법이라도 힘없으니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했다. 그러나 투쟁 속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노동자라 하면 공장에서 망치질 하고 너트 조이는 사람들만 생각했는데, 사무직인 우리도 똑같은 노동자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연말 노동자대회 직전에 노동해방선봉대 활동에 5명 조합원이 참여했는데 경험을 통해 많은 성장을 보여주었다.
▣ 투쟁기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크게 두 가지인데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 문제이다. 예전에 노조를 몰랐을 때는 무노동 무임금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조항 만든 놈들 때려죽이고 싶다. 생계비가 없다 보니 집에 한번 갔다올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적금 깨고, 카드빚 내고,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데 더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저도 애가 둘 있는데 애가 아프기라도 하면 화도 나고 짜증날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제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막내딸이 배밀이 할 때 파업을 시작했는데 어제는 세 발 정도를 걸었다. 본격적인 걸음마 전에 승리로 끝낼 수 있으면 한다. 생계비와 투쟁기금을 우리 스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CMS 후원모금도 하고 있는데, (후원가입원서를 들이밀며 ^^) 동지들도 많이 동참해달라.
▣ 투쟁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투쟁방기와 방해로 사무금융연맹에서 제명되기도 했는데?
지금도 분노스럽다. 국정감사에서 코스콤 정규직노조 위원장이 “그런 사람들(비정규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말할 때는 TV를 깨버리고 싶었다. 비정규직제도 만든 이유가 정규직을 악화시키려는 목적 아닌가. 과연 이런 상황을 원하는 것이 누구일까.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자본가들일 것이다. 현장에서 함께 형, 동생 하면서 지냈던 우리는 비애감마저 느낀다. 비정규직 지금 있는 상태로 두고 자기 고용만 지키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반노동자적 의식에 다름 아니다. 연봉을 얼마 받던 간에 따뜻한 마음을 갖고 더 낮은 곳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라고 외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규직노조가 다시 반성하고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함께 하겠다는 것이 우리 지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노-노 싸움처럼 몰아간다면 정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라고 본다.
▣ 파업투쟁 중에 많은 연대를 조직하기도 했는데, 현재 전개되고 있는 비정규 연대투쟁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해주신다면?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지 전투에서 이기는 것을 잘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어느 사업장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집중해서 승리를 일궈내고 이것이 모인다면 어느 시점에선가 크게 모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작은 사업장들에서 승리를 일궈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파업투쟁 초기(지난해 여름과 가을)에는 많은 연대가 조직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연대가 형식적 연대가 되고 있다. 승리를 주고 타격을 주는 연대가 되어야 하는데, 그저 집회 한번 하고 와 하고 몰려들다가 다시 잦아드는 반복에 그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예상되는 변화는? 마지막으로 향후 투쟁계획까지 부탁드립니다.
확실히 예상되는 것은 노동탄압이라고 본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비정규직에게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경찰과 용역깡패에 의해 우리 농성물품(관, 만장 등)이 강탈당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맘대로 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아닐까 한다. 이명박 당선자의 양대노총 방문에 맞추어 농성장을 침탈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기까지 하다.
연말연초라면 나눔이 기본 정서여야 하는데, 사측이 끝까지 잘못된 입장만 고수한다면 극단적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측은 알고 있을 것이다. 되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형태로 투쟁이 전개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누가 자신이 일하던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겠는가마는, 벼랑 끝까지 내몰리게 되자 조합원들은 “함께 갈 수 없다면 같이 죽자”며 코스콤 퇴출투쟁도 불사하자고 얘기하고 있다. 암흑이 자욱했을 때 빛의 가치가 있는 법이라 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워나갈 것이다.
(정리: 오민규)
코스콤 비정규직 지부 동지들과 함께 합시다!
07년 12월 31일, 코스콤 동지들은 서울 시내 5곳의 CCTV 탑에 올랐습니다. 한 겨울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을 던져 투쟁하고 있는 코스콤 동지들에게 따뜻한 동지애를 보냅시다! 코스콤 비정규직 지부 동지들이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서 후원 CMS를 받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코스콤 비정규직 지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 rekoscom.jinbo.net 연락처: 02)783-6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