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공공부문 투쟁, 정면 돌파를 준비하자!
이명박 당선과 동시에 공기업과 기금 등에 대한 대규모 민영화 계획이 공공연하게 추진되고 있다. 새 정부 공식출범 전인 인수위 때부터 기획예산처는 298개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민영화·사유화·통폐합·구조조정 계획을 검토했다. 공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민영화 시도는 이미 지난 IMF 사태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다. 1998년 이후 11개 공기업의 민영화가 일정에 올랐고, 그중 한국통신을 포함한 8개 공기업의 민영화가 완료됐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넘겨준 바통을 이어받아 민영화 정책을 더욱 본격화하면서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계획
대규모의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자본가들에게 충분한 이윤을 챙겨주는 것이다. 전경련은 농구에 비유하여, “공기업이라는 거구의 센터가 골밑을 장악하고 있는데 어떻게 민간 기업들이 새로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가?”라며 공공부문 시장개방을 촉구했다. “정부가 소유하여 독점수입을 내고 있는 마사회 같은 공적 기관은 민영화해야 한다”며 이윤을 향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박은 이러한 자본가들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정부는 일차적으로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고 나섰다. 공공부문에서는 필수유지업무제도라는 새로운 족쇄를 도입해 파업권을 무너뜨리고 있다. 올해 2월 도시철도파업이 무위로 끝난 것도 필수유지업무가 노동자들에게 미친 심리적 압박의 영향이 크다. 철도 역시 지난해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을 겨냥해 파면·해임 등의 징계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착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자본가들의 포악한 의지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 상황이 지시하는 것
이것은 자신의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겠다는 자본가정부의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위기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서둘러 노동자의 투쟁과 조직을 분쇄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를 밀어붙여 착취율을 높이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전반적 불황과 불안정성 속에서 자본가들에게 높은 이윤을 보장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 말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80년대 초 대처 수상과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노동자투쟁을 분쇄하고 강력한 자본가독재를 확립해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해준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집권 이전부터 ‘작지만 강한 정부, 민영화, 투자자를 위한 감세, 시장경쟁주의, 기업규제 완화, 사회복지 축소’ 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는 대처와 레이건의 노선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대처는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였던 탄광노조의 투쟁을 깨기 위해 1년 치 재고를 쌓아놓고 싸움을 걸었다. 레이건은 항공관제사 파업을 깨기 위해 48시간 내 복귀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한 노동자 11,345명을 실제로 해고시켰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12년 간 복직할 수 없었다. 파업권을 포함한 노동조합 권리가 크게 축소됐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의 저항진지를 무너뜨린 뒤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했다. 사회안전망은 누더기처럼 폐기되어갔다. 그 결과 영국·미국의 자본가들은 잠시나마 숨통을 틔웠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본가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KTX 여승무원이 1년 이상 전개한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소위 민주주의 투사였다는 이철 사장이 완강하고도 잔인하게 대처한 방식을 보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 노동자투쟁에 대한 자본가들의 태도를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완강하고, 단호하고, 비타협적이며, 사활을 걸고 노동자를 공격할 것이다. 저들의 태도는 이미 결정됐다. 이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패배의 경험에서 승리의 조건을 배운다
지금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도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타협적 전투태세를 갖춘 자본가들에 맞서, 우리 역시 비타협적·계급적 전투태세를 갖춰야 한다. 파상적인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정부 앞에서 각각의 현장들이 각자 따로 대응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것은 패배를 준비하는 것이다. ‘쪼개져서는 안 된다’, ‘오늘 하나로 뭉쳐 투쟁해야만 내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기조로 싸움을 준비하자.
그러나 동시에, 단지 ‘비타협적으로 싸우자!’는 호소만으로는 절대 대중을 계급적 단결투쟁으로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처와 레이건의 공격 앞에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패배한 것도, 지금 이 나라의 노조 지도자들이 무력화되고 있는 것도 조합주의 전망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노조 지도자들은 정부로부터 ‘국가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그 질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자본가정부와 정면 대결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95년 민영화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했던 한국통신노조의 경험 역시 교훈적이다. 투쟁대열로 결집한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노조 위원장의 이름을 연호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조 지도부는 이 투쟁을 자본가정부의 노동운동 탄압과 착취강화 계획에 정면 대결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 파업에 대해 “국가전복 저의가 있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노사분규 차원이 아닌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로 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초강수를 뒀다.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파업 결의를 하자마자 정부로부터 ‘국가전복세력’이라는 명찰을 받았다. 사실 이는 공공부문 노동자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 정부는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정부의 단호함만큼 단호하지 못했던, 그 결과 자본가국가에 맞선 정면승부를 밀어붙이지 못했던 한국통신노조는 안타깝게 패배했다.
이 패배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김영삼 정부는 대정부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한국통신노조 간부들을 대거 구속하고, 노조 사무실과 전자게시판을 폐쇄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가차 없는 탄압을 퍼부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유린하기 위해 그때보다 몇 배 이상 더 흉포한 탄압을 퍼부을 것이다. 이 탄압을 제압하려면 우리 또한 비할 바 없이 단호한 투쟁의지, 이명박 정부의 공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확고한 대정부투쟁 계획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정면 돌파를 위하여
지금처럼 자본가계급 전체가 노동자투쟁을 원천적으로 박살내기 위해 달려드는 상황에서, 특히 공공부문처럼 정부와의 충돌로 곧장 나아갈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자본가국가와 대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자본가의 정부를 과감하게 밀어내고 노동자의 정부를 세워야만 노동자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쟁취할 수 있다는 전망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전망과 결합될 때 비로소 ‘현장투쟁’들은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다. ‘전투파’를 조직하는 것은 유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이 첫 걸음은 다음 걸음으로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투쟁 강령이 필요하다.
가령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는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압박을 걷어내고 현장노동자들이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서기 위한 핵심요구다. ‘노동자 생산통제·산업통제 쟁취!’는 공공부문 노동자가 자본가들의 목을 쥐고 흔들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관제고지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민영화·사유화 반대! 국가기간산업 국유화!’는 공기업이 자본가들의 돈벌이를 위한 사냥터로 전락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한편으로는 노동자 생존권을 사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기업들이 진정으로 노동대중의 편의증진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 모든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노동자투쟁은 노동자정부 수립의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자본가정부는 이러한 요구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처와 레이건 앞에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결전을 회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한국의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이명박 정부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고 싸우자. 단호하고 진취적인 투쟁 강령으로 무장하고 결전의 시기를 맞이하자!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