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포투쟁 평가
공황기 자본의 공세에 맞서 관료적 질서를 깨부수며 솟구칠
노동자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울산에 있는 현대미포조선은 민주노총 소속이지만 현장조직력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 사업장이다. 바로 그곳에서 지난해 9월 28일 소수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비정규직 용인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대법 판결에 따른) 정규직 즉시복직을 요구하는 현장투쟁에 나서면서, 미포투쟁은 시작되었다. 11월 14일 사측의 탄압이 이홍우 동지의 투신을 부르자 미포투쟁은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울산지역 투쟁으로 발전했다.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한 미포투쟁
미포투쟁은 투쟁주체라는 측면에서 큰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정규직 조합원 3천명을 포함하여 8천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채 20명이 안 되는 활동가들만이 ‘현장대책위’를 구성하여 일차적인 투쟁주체로 나섰다. 그런데 그들조차도 결의수준에 큰 편차가 있었으며,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현장 노동자들 속에서 투쟁주체가 전혀 확대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홍우 조합원 분신 이후 운영위를 ‘대책본부’로 전환하며 미포투쟁의 공식 지도부이자 투쟁주체로 나섰다. 그러나 공식 지도부로서 적극적인 투쟁의지를 갖고 다양한 투쟁전술을 능동적으로 배치하며 투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야 할 민주노총은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12월 13일 영남노동자대회를 하루 앞둔 12월 12일 운영위에서는 영남노동자대회를 계기로 노숙농성장을 자진철거하자는 다수 견해가 열띤 논쟁 끝에 겨우 철회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확고한 의지와 효과적인 전술이 결합된 완강한 투쟁 - 마침내 현중 자본을 교섭장으로 끌어내며 승기를 잡다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 초기부터 미포 또는 현중 자본에게 교섭 가능성을 줄기차게 타진했다. 최소한의 요구마저 거부하던 현중 자본은 1월 20일 용산참사 이후 최소 수준에서 민주노총 요구를 수용하는 교섭에 나섰다.
민주노총의 교섭방식과 교섭전술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점과는 별개로, 어쨌든 현중 자본이 민주노총과 실질적인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동안 현장과 지역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벌인 완강하고 끈질긴 투쟁이 만들어 낸 성과였다.
특히 울산지역의 17개 정치조직·노동단체·사회단체·현장조직·개인으로 구성된 ‘지원대책위’는 이번 투쟁에서 능동적인 자발성으로 각 국면마다 소중한 역할을 해 냈다. 지원대책위는 매일같이 출투, 지역선전전, 촛불문화제 등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몸으로 뛰는 실천을 하였다. 또한 ‘정몽준 타격’으로 투쟁 범위를 확대하고, 조직적 준비로 물품공수투쟁을 성공시키는 데서도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렇듯 비록 그 힘은 크지 못했지만 확고한 의지와 효과적인 전술이 결합된 완강한 투쟁이 이어지자, 결국 현중 자본은 교섭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 다섯 가지는 현중 자본을 실질적 교섭으로 끌어내는 데서 직접적 역할을 했다.
첫째, 12월 24일 전격 시작된 굴뚝 고공농성이 혹한의 날씨를 버텨내며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완강하게 계속되었으며, 온갖 협박과 탄압에도 현장 활동가들의 투쟁 또한 계속된 점.
둘째, 1월 17일 물품공수투쟁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침탈을 시도하는 현중 경비들을 실력으로 제압해 냄으로써 미포투쟁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물리적 우위를 확보한 점.
셋째, 10여 년 만에 노동자들에게 밀린 현중 경비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1월 17일 밤 무모한 테러도발을 감행한 것이 현중 자본 입장에서 결정적인 자충수로 작용하게 된 점.
넷째, 1월 20일 용산참사가 터지고 그 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정몽준 입장에서 테러도발과 용산참사가 연결되는 것이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스럽게 된 점.
다섯째, 1월 2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미포투쟁 관련 전국노동자대회 추진이 만장일치로 결의된 점.
의지부족과 밀실교섭이 망쳐버린 ‘투쟁의 마무리’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미포투쟁 초기부터 확고한 투쟁의지가 부족했고, 승리할 수 있다는 정세판단 관점을 결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중 자본이 마침내 실질적인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투쟁이 마침내 승기를 잡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총공세를 퍼부음으로써 결정적인 승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교섭이 깨질까 조마조마하여 예정된 산재은폐·현장탄압 고소고발마저 유보하는 등 투쟁의 힘을 약화시켰으며, 실질적인 교섭이 열리자마자 최소 수준에서 덜컥 합의에 이르고 말았다.
게다가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추진한 밀실교섭은 소수의 한계와 오류를 집단적 토론 속에서 교정할 가능성마저 막아버렸다. 교섭 당사자로 나선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월 22일 오후 사실상의 잠정합의안을 만들기까지 극소수 교섭 담당자만 관련 사실을 공유하고 운영위원회(이홍우 대책본부)에조차 보고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비공개 밀실교섭을 진행했다.
밀실교섭을 통해 1월 23일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합의서는 당연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공개 합의서’는 용인기업 우선 복직, 민형사 면책 등 긍정적인 내용을 담긴 했지만, 산재은폐·현장탄압 문제에서 모호한 표현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징계·면책 문제에서 ‘선처’ ‘건의’ 등 굴욕적인 표현을 담고 있었다. 사과는 형식적인 유감으로 대체되었고 책임자 처벌은 사라져 버렸다.
‘비공개 합의서’ 또한 징계수위 최소화를 담고 있는데, 비록 최소화를 말한다 해도 징계 자체를 합의했다는 잘못을 담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해고할 수 없다’는 문구가 그나마 최소 수준의 위안을 주지만, 이 또한 실제로 지켜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관료적 질서를 넘어 계급투쟁으로 전진하는 노동자 연대의 가능성
미포투쟁은 공황기를 배경으로 자본가들의 대공세가 예견되고 따라서 노동자들이 거대한 패배와 반격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기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치러진 전초전이었다.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침체된 상태를 고려할 때, 미포투쟁은 여러 사업장 현장 활동가들 속에 일정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낮은 수준이나마 지역 연대투쟁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과 비교해 볼 때, 미포투쟁에서 민주노총과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의 관료주의는 안타깝게도 더욱 심화된 모습으로 드러났다. 반면 관료주의에 맞선 대항력이 성장한 것 또한 확인된다. 이는 무엇보다 노동조합 공식기구에서 배제된 지원대책위가 미포투쟁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지역의 많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그렇게 인정된 점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울산지역 노동자 총파업(또는 적어도 확대간부 파업)을 통해 투쟁의 승부수를 던지자는 제안이 ‘뜻은 좋으나 비현실적인 발상’으로 취급되며 다수 현장 활동가들을 조직해 내지 못했던 점에서 드러나듯, 이번 투쟁은 계급적 태도와 기운이 낮게 처져 있는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상태를 크게 바꿔놓지는 못했다.
지역 총파업 추진이 불발된 것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의 소극적 태도만 탓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현장에서부터 계급적 연대의 기운을 강렬하게 모아내고 확산시켜 나갈 때, 노동조합 공식 지도의 관료적 한계 또한 타파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대결전의 승부를 가르는 핵심은 결국 공세적인 요구를 내건 노동자 계급의 공동투쟁이 얼마나 대대적으로 조직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울산에서도 미포투쟁이 끝난 직후부터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울산의 ‘공투본’은 미포투쟁, 특히 지원대책위 활동의 성과를 잇고 한계를 넘어서는 주체로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부터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공세적으로 세워내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강렬하게 확산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양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