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현장에서부터 투쟁을 준비해야
현대차 지부의 임금과 주간연속2교대제 협상이 54.49%로 가결되었다. 정규직 조합원은 분노를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잔업, 특근이 없어 몸 편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투쟁의 선봉에 섰던 1공장도 특근 7개를 결정했다. 어정쩡한 투쟁, 어느 때보다 길어진 투쟁기간으로 8시간 노동의 단꿈을 누렸지만 이제 다시 10+10과 특근에 시달리는 옛날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08년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M/H 개선위원회 등 구체적인 사안이 남아있으며 본격적인 실무협상도 남아 있다. 추후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남겨진 비정규직지회
현대차 지부의 협상타결로 비정규직지회가 홀로 남겨졌다. 금속대대부터 제기해온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이 폐기되었기에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를 막아내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한 투쟁은 비정규직지회만의 몫으로 떨어졌다. 정규직 타결로 조합원들의 피해도 예상되지만 더 큰 직접적 피해를 볼 당사자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 정규직 동지들이 가장 문제를 삼는 ‘물량에 따라 자유롭게 전환배치’를 한다는 것은 비정규직에겐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늘 물량부족으로 정규직을 전환배치하기 전에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해 왔기 때문에 불을 보듯 뻔하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안정의 방패막이로 인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활동가들을 속아내기 위해 업체변경을 하면서 정리해고를 밥 먹듯이 하는데 공장간 전환배치 시에는 모든 활동가들의 씨를 말릴 것이다. 게다가 주간연속2교대제에 따른 임금도, 노동조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달려 있는 실정이다.
준비 안 된 비정규직지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지회의 준비 정도는 매우 취약하다. 새로운 집행부 등장 이후 현장조직화에 박차를 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적으로 정규직 투쟁기간에 무기력한 조직화로 나타났으며, 정규직 지부의 타결 이후 비정규직지회의 행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정규직지회의 준비부족은 쟁의행위 찬반투표 부결에서 절정에 달한다.
총유권자 635명 중 투표자 435명. 찬성 187명, 반대 239명 무효 9명으로 부결되었다. 교섭하는 업체에 대해 임금, 일시금의 차등지급하겠다는 사측의 공작도 집요했다. 다른 한편, 정규직 지부의 협상타결로 비정규직지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조합원들의 자포자기도 부결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지회장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현장활동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추된 노동조합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너진 조직력을 복원해 주간연속2교대 투쟁에 집중할 과제를 안고 출발했지만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부결이라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산적한 과제가 눈앞에 있지만 과제를 해결할 주체가 없다면 헛빵이다. 당장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지회는 부활할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부결에 따른 자기반성, 즉 교훈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지회가 주간연속2교대제의 방향이 없어서 부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의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한다. 다시 말해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지회활동을 만들어야 한다. 조합원들은 버튼만 누르면 투쟁으로 나서는 로봇이 아니다. 지회의 방향에 충분히 공감해야 겨우 용기를 내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회장의 과격한 말로, 지회의 선언만 하는 유인물로 조합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 없다. 바로 발로 뛰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지금 당장 발로 뛰는 지회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사측을 이길 수 없다. 조합원들이 먼저 지회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지회는 단협조차 없어 조합원 교육이나 활동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을 조직해야 한다. 대의원, 현장위원들이 현장을 조직하고 추동하기 위해선 자기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지회임원들이 솔선수범으로 현장활동을 강화하고 대의원, 현장조직위원들을 추동해야 한다. 이것을 수행할 생각이 없다면 빨리 내려오는 것이 지회를 위하는 길이다.
셋째, 지회 내부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임원진 내부, 임원진과 공장별 대표 사이의 불협화음은 지회를 마비시키는 원인 중에 하나다. 이는 지회 임원만의 잘못이 아니다. 공장별 대표들이 자포자기하고 기본만 한다는 태도도 심각한 문제이다. 방향과 투쟁전술에 대한 논의는 최대한 공개하고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에 따라야 한다.
넷째, 지회는 역량 있는 해고자들의 도움을 공식적으로 받아야 한다. 해복투와의 정기간담회는 물론 해고자들의 실무역량까지 지회 활성화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노련은 얼마 전까지 이승희 집행부를 지지, 지원했었다. 그 과정에서 지회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다. 사노련은 최소한 조합원을 투쟁의 주체로, 현장에서부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지회가 원청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선 정규직지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비정규직동지들의 내부 결의와 조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길에 사노련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