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합의안 부결은 묻고 있다!
세번째 야합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집행부 총사퇴를 통한 비대위 결성,
그리고 전면파업을 통한 완전쟁취로 갈 것인가?
현대차 사측과 지부 집행부가 합작해 주간연속2교대제를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 5일 사측과 친자본 언론들이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던 현대차 잠정합의안 총회는 결국 역대 최고의 반대율로 부결되었다.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현장 활동가들조차 조합원들의 단호한 결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결이든 부결이든 50%선에서 왔다갔다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표차는 24%의 압도적인 차이를 드러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교활한 짓으로 조합원들을 우롱하고자 했던 사측과 지부 집행부의 기만적인 행위는 결국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러나 추호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 지부 집행부
지부 집행부는 잠정합의안이 압도적으로 부결되자 곧바로 쟁대위 소식지를 통해 “조합원의 준엄한 평가, 겸허히 받아안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행부는 조합원의 뜻인 “잠정합의안 폐기, 전면재협상, 완전한 주간연속2교대제 쟁취”에 대한 의지를 밝히지도 않고 곧바로 교섭장으로 달려갔다. 이것은 집행부가 조합원의 뜻과 노조 민주주의를 내팽개치고 또다시 사측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에 운명을 건다고 비판받을 만하다.
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현명했다
지난 18일 어처구니 없는 의견일치안이 나왔을 때 1백여 명의 대의원들은 추가 야합을 막기 위해 선도적으로 나서 본관앞 농성을 돌입했다. 하지만 이후 보수언론이 집중포화를 퍼붓고 사측과 지부 집행부가 이간질했을 때, 과감하게 나서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세력이 제대로 형성되지는 못했다. 이런 약점을 간파하고 사측과 지부 집행부는 2차 야합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하지만 현장 조합원들이 야합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현장조직들이 하지 못한 일을 현장 조합원들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단호하게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회는 현장조직들이 보여준 주저함과 불철저함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우회적이지만 따끔한 비판도 담겨 있다.
밀실야합에 대한 심판이다
사측과 지부 집행부가 잠정합의안을 내놓는 과정은 그 누가 봐도 밀실야합이었다. 4월부터 시작된 근무형태변경위의 13차례의 협의는 조합원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8월 18일 황당무계한 의견일치안을 내놓고 9월 2일 잠정합의안을 내놓기까지의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부 선전물은 사측이 제시했던 안을 싣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현장 조합원들을 허수아비로 전락시키는 밀실야합에 대해 조합원들은 간단히 답했다. “똑바로 해라!”
물량보존 논리를 거부했다
지난 2일 잠정합의안은 사측이 원하는 물량보존을 위해 조합원들이 20년 동안 투쟁해서 쟁취한 성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었다. 노동강도를 높이고, 현장 투쟁의 권리마저 앗아가며, 전환배치로 뺑뺑이 돌리고, 안전교육시간과 조회시간 그리고 휴일까지 축소시키는 상황을 조합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일시적 목돈에 미래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았다
사측과 지부 집행부는 교활하게 추석 명절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저들은 조합원들을 너무나 얕잡아 봤다. 조합원들은 시급제 임금구조 하에서 물량에 얽매여 하루 12시간을 공장에서 살고, 주말휴일까지 반납하고 특근하면서 심야노동 철폐, 완전월급제 쟁취의 꿈을 가슴 속 깊이 키워왔다. 하지만 저들은 무늬만 그럴싸할 뿐 실제로는 물량에 임금을 종속시키는 변동월급제를 던지며, 40대 중년의 노동자들에게 앞으로 어찌되건 당장 낼 모래의 추석을 흐뭇하게 보낼 생각으로 미래를 포기하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저들의 이런 바람은 조합원들에게 ‘지나던 소가 웃을’ 일일 뿐이었다.
현장권력의 기초를 사수했다
저들의 합작품은 핵심적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권리를 앗아가는 데 맞춰져 있다. 신차 투입이나 물량조정 시에 현장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나 여유인원 문제를 두고 맨아워(M/H) 투쟁을 벌여 왔다. 맨아워 투쟁은 현장 투쟁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측과 집행부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통해 이러한 현장투쟁권을 말살하고 상층 밀실기구에서 좌지우지하려 했다. 밀실기구인 근무형태변경위에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여하려던 시도가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좌절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M/H위원회’를 잠정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은, 현장 투쟁을 무력화시키려고 저들이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장과 동떨어진 기구인 근무형태변경위 안에 M/H위원회를 세운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조합원들은 단박에 알았다. 현장 투쟁을 멈추고 상층 교섭기구만을 목 빠져라 쳐다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조합원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동료들의 희생을 외면하라고! 미쳤냐?
저들의 얄팍한 셈속에는 주간연속2교대제에 해당되는 당사자들이 17,000명(전체의 38%)밖에 안 된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간연속2교대제에 당장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은 62%의 조합원들이 동료들의 문제에 무관심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교활한 속셈은 조합원들의 분노를 돋웠을 뿐이었다. 조합원들은 압도적으로 저들의 얄팍한 술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만약 판매, 정비, 연구소, 상시주간 노동자들이 주간연속2교대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거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켰다면, 노조는 심각한 분열로 치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동자들은 대의를 선택해 노동자간 단결력을 유지, 강화시켰다.
망가진 브레이크, 제때 교체하지 않으면 대형사고 터진다
같이 교섭에 참가하는 교섭단 회의에서조차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상황은 현 집행부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합원들의 삶은 안중에 없고 사측과의 조율에 모든 것을 거는 집행부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희망은 오직 현장 조합원들의 집단적 의지로부터 나온다. 지난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현장 활동가들이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한 부분을 조합원들은 집단적 힘으로 밀어 올렸다. 조합원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도부를 보지 말고 자신들을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망가진 브레이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세우라고 외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