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양보, 더 큰 화를 부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5.00%에서 0.25%를 올린 5.25%로 인상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에 대해서 보수언론은 물가인상이 임금인상을 부추겨 다시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일제히 환영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1년간 물가상승의 속도가 빨라진 데 비해 아직은 임금상승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증거는 없지만 미래에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야 하며,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실질임금 하락
이미 7월 소비자 물가는 5.9%인상되었고,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지수는 7.1%가 올랐다. 노동부가 발표한 협약임금인상률은 5.1%(6월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로 이미 실질임금은 하락했다. 금호타이어 3%, 보건의료노조의 중소병원 4% 잠정합의, 최저임금 6.1% 인상 등 대부분의 임금인상 합의가 생활물가지수 7.1% 인상에 못 미친다. 심지어 2/4분기 영업이익 1,300억원을 기록한 기아차는 임금교섭에서 동결을, 07년도 영업이익 5,426억원을 낸 GM대우차는 임금교섭에서 물가인상의 반밖에 안 되는 3.14% 인상안을 내놓았다. 허리가 휘도록 일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고스란히 전가시키겠다고 한다. 더군다나 정부가 하반기에 가스요금 30%, 전기요금 5% 등 공공요금을 올릴 계획이어서 노동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고통 전가를 위한 공격
한국은행은 제조업의 애로점에 대해 원자재 가격상승 49.9%, 내수부진 12.3%, 환율요인 9.6%, 불확실한 경제 상황 7.5%, 경쟁심화 4.5%, 인건비 상승 1.7%라고 밝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문제가 아님을 스스로 밝혔었다. 그런데도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앞으로 다가올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비열한 수작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먹고살 임금을 보장하라!”, “경제위기의 책임은 우리에게 없다. 실질임금 하락을 인정할 수 없다”고 외치며 투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같은 데서 임금 양보교섭을 부추기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노동자들의 이런 수세적 분위기에 한 몫 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민경우 팀장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한다면 공기업은 고용축소 움직임을 중단하고, 대기업도 고통 분담 차원에서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통계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4.1%는 매달 15일 이후에는 통장에 잔고가 없어 다음달 월급을 기다리며 카드 빚으로 살거나 그냥 버틴다고 답했다. 신종 보릿고개인 ‘월급고개’의 고통이 턱밑까지 차올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임금이 너무 적어서라고 답한 사람이 49.5%인데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니 굶어죽자는 소린가!
저지선을 치고 공세로 나아가자!
덮쳐오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 우리는 이미 98년 IMF 시절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회사 살리기’와 양보교섭 해서 돌아온 건 정리해고와 외주화, 임금동결 말고 뭐가 있었나.
임금양보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임금→단협→고용 순으로 우리의 목숨 줄마저 내놓아야 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에서 밀려났고 비정규직 고용은 이제 8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노동자들 사이에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종업원 의식만 커질 뿐이다. 투쟁으로 자본가들에 맞서야 한다는 자신감만 잃게 된다. 아직 임금교섭을 끝내지 않은 사업장에서는 임금인상 요구안에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성과급으로 만회하려는 생각은 금물이다.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물가인상보다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
1년에 한번 하는 임금협상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물가가 뛰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물가-임금연동제 요구를 걸고 투쟁해야 한다. 물가폭등, 경제위기의 책임은 자본가들에게 있고, 자본가들이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
박준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