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5월 2일! 7일자로 시행한다는 인사발령 소식이 날아들었다. 퇴출을 위한 서비스지원단 발령(314명)과 조직통폐합에 따른 전환배치 등 4,000여명에 달하는 초유의 인사명령이 지하철을 뒤덮었다. 기술분야는 분소의 50%가 폐쇄되었다. 설비는 140명이던 교대인력이 70명으로 줄었다. 불과 22일전 도시철도에서 벌어진 일들이 서울지하철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예고된 공격이었다.
예고된 공격
5월 2일 명단이 발표되자 즉각적 항의가 용이한 차량분야는 반나절, 또는 하루 총회투쟁에 들어갔다. 현장은 분노와 정적만이 가득했다. 일부현장에서는 소장실 집기를 들어냈다. 비상 조합원총회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오후3시 노동조합은 투본회의를 통해 ‘4일 서비스지원단 발령자 총회 개최’, ‘부당인사발령 거부와 원직사수’, ‘6일과 7일 연쇄총회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대응
4일 군자기지에서 서비스지원단 총회가 열렸다. 314명 중 50여명이 참석했다. 노동조합은 법적 대응과 징계탄압이 있을 시 재정지원 약속으로 조합원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발령거부, 원직사수란 추상적 방침 외에는 구체적 투쟁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단호한 투쟁계획을 제출하지 못하고, 법률적 구제와 금전적 피해보상으로 접근하는 노동조합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총회는 부당 인사발령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전망과 확신을 주지 못하고 끝났다.
3일의 긴 연휴를 넘겨 6일 조합원 총회가 개최되었다. 2500여명의 거대한 분노의 대오가 본사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내일이면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부당인사를 거부하고 현직사수투쟁을 전개해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총회에서 위원장은 “한 번의 투쟁으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길게 보고 싸워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뚜벅 뚜벅 걸어가겠다.”는 말로 투쟁지침을 대신했다. 당장 무엇을 하자는 투쟁지침은 없었다. 노동자들은 가슴 속에 품고 왔던 분노 말고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다.
날려버린 기회
7일은 수천 명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날이었다. 투쟁인가, 아니면 후퇴인가. 2000명의 노동자들이 다시 본사에 집결했다. 그들은 분노를 행동으로 바꿀, 투쟁전망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복사라도 한 듯 어제의 말을 되풀이했다. 현직사수지침을 현실화할 실질적 투쟁 지침은 제시되지 않았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총단결투쟁의 계획이 부재하면서, 사실상 지부와 지회별로 알아서 투쟁계획을 짜서 현장을 사수하라는 식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오후부터 현직사수지침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노동조합은 그동안 협의회에 응하면 사측에게 모든 공격의 빌미를 준다며, 역으로 특별단체교섭을 제기했다. 공사는 거절하고, 인사발령을 강행했다. 공사는 자기들의 일을 다 끝내자 노동조합에게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논의”하자며 14일에 노사협의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은 투쟁을 조직하려는 계획도 없이 노사협의회에 응하기로 했다. 반대 입장은 의견으로 치부되었다.
노동조합의 결정에 대해 13일 공사가 화답을 했다. 첫째 6일 총회 투쟁 시 밀가루를 뿌리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 사과할 것, 둘째 농성장을 철수할 것.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섭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노동조합을 농락했다.
19명의 작은 불꽃들
수천 명의 전환배치 된 노동자들과 서비스지원단으로 간 290여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시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올 마음은 놓고 갔고, 그것을 당겨올 힘이 아직 미약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힘을 조직할 방향을 보여주는 투쟁이 있다. 공사로부터 “업무부적격자”라는 가장 치욕적인 모멸과 모욕을 당한 서비스지원단 발령자 314명 중 19명이 발령을 거부하고 완강하게 현직사수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사측의 공세는 19명의 동지들의 저항에 걸렸다. 거꾸로 사측의 탄압도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지들의 결의는 확고하다. 신정정비 4명은 13일까지 삭발 단식투쟁을 전개하였고, 지축정비 8명은 출근선전전, 소장실 항의투쟁을, 창동차량 1명은 천막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나머지 동지들도 현장사수투쟁을 결연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현장과 분리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게 현직사수 지침을 끝까지 지킬 것, 투쟁의 결의와 수위를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투쟁하는 동지들을 방어하고 투쟁을 확대 강화하기 위해 신정정비와 지축정비는 이 동지들에게 사측의 징계가 자행될시 즉각적 작업거부투쟁에 들어가기로 결의하였다.
찢겨나간 출근부가 다시 붙여지지 않는 이상, 아무도 이 동지들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작지만 결코 꺼지지 않을 불꽃이다. 이 불꽃은 전체 지하철을 투쟁으로 활활 지필 거대한 불길로 성장하고자 한다. 다음은 부당인사 발령을 거부하고 투쟁하는 한 동지의 말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하지만 물은 아래에서 끓어 위를 넘치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물을 끓이는 불이 되고자 한다. 노동조합은 지금 우리에게 아무런 투쟁의 희망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우린 그냥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부터, 밑에서부터 끓어 위를, 지도부를 넘치게 해야 한다. 이것도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순리다.”
파업투쟁을 향하여
공사의 1차 전환배치는 완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실제적인 투쟁의 전망과 계획도 제공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 그러나 분명하게 투쟁은 장애물에 부닥쳤다. 노조관료들 일부는 이것을 패배라고 단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대중들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패배는 관료들의 머릿속에서만 넘치고 있다.
현장은 더 과감하고, 더 전면적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오래가는 투쟁”이라는 빗장을 열고, “당장의 전면적인 투쟁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서비스지원단 해체투쟁도, 조직개편 저지 투쟁도 아니다. 2,088명 감원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정부와 서울시, 공사의 계획 전반에 대한 전면적 거부투쟁이다.
모든 지하철 노동자들을 하나의 투쟁으로 모아야 진정 싸울 수 있다. 현장조합원들은 ‘시시한 계획이면 관심없다. 한 번 제대로 붙을 전망이 있으면 진정으로 걸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일한 길은 총파업투쟁뿐이다. 이것 말고는 모든 개별적인 저항과 투쟁을 하나로 통일시키면서 확신을 줄 다른 방법은 없다. 파업투쟁의 무기와 권리가 현장노동자들의 손에 정확하게 주어 질 때만이 작은 투쟁의 패배를 뛰어넘어 조합원들이 단호하게 치고 나올 수 있다. 그것만이 노동자들을 분노를 표출할 길을 알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파업의 군대로 조직하고 결집시키는 수단이다. 무너진 조직을 복구하는 길과 방향은 실질적 파업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와 파업투쟁 조직 건설에 돌입하는 것이다. 현장 소조, 대의원, 분회장 등 기층현장조직을 짜고 가동하는 현장투쟁의 계획을 파업투쟁의 준비로 세워내야 한다.
즉각적 조치
지속되는 공사의 공세로 50여명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해고와 직위해제가 단행되었다. 하나의 집중된 투쟁 없이, 저들의 도발에 각개로 대응한다면 끝없는 방어투쟁에 몰려 모든 기력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상황은 국면전환의 필요를 제기한다. 하지만 19명의 동지들이 전개하고 있는 투쟁을 비켜나가거나 그 투쟁의 의미를 훼손하는 방향의 국면전환은 자멸하는 것이다. 노사협의회에 응하는 것은 그 단적인 모습이다.
국면전환의 핵심은 파업투쟁을 현실의 일정에 올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첫 번째, 대의원대회를 통한 즉각적인 쟁발 결의가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름길이다. 울분과 분노에 지쳐가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전망을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노동조합 집행부 일부의 패배적 전망을 쟁발 투표가 진행되면 산산조각날 것이다. 현장조합원들은 압도적으로 파업투쟁에 찬성할 것이다.
두 번째, 현장단위의 독립적, 독자적 현장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 지침으로 내려진 준법투쟁의 수위를 끌어 올림과 동시에 모든 직종과 지회단위에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서 총파업투쟁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태세를 매일 매일 조직하고 눈앞에서 확인해야 한다.
세 번째, 서울시, 정부에 대한 타격을 조직해야 한다. 금번 조직개편으로 예고되고 있는 사고와 참사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퇴출프로그램이 가진 반동적 내용을 폭로해야 한다. 기존에 제기되었던 석면과 전력피크제 등의 문제를 더 세부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이것은 여론전이라는 수단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총회나 집회, 거점 농성, 가두시위 등 대중들의 직접적 참여를 전제로 계획, 실천되어야 한다. 그래서 매일 같이 자신감을 드높이고, 지부 지회를 가로지르는 공동투쟁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나아가서 이것은 민영화 공세에 대한 공공부문 전체의 공동투쟁을 현실화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것은 서류상의 계획이 아니라 실제 아래로부터 치고나가면서 단호하게 투쟁전선을 여는, 꺼지지 않는 불씨를 필요로 한다. 지하철 총파업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결단, 진정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대중적 폭발은 그 불씨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지하철 총파업은 전체 공공 노동자들을 공동 투쟁으로 모집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그 길을 가자!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살자!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