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사태의 교훈 : 의회주의와 철저하게 결별하라!
“배타적 지지는 정치세력화 기초를 닦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당과 민주노총이 서로 협력하다보니 소극적으로 활동하게 만들었다. 또한 정규직 중심의 활동이 되었고 대중을 대상화, 수동화하면서 위에서 지시하는 형태가 되었다. 따라서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는 그 역할을 다했고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현장의 바닥 노동자의 삶을 봐야 한다. 당선이냐 아니냐, 의원이 몇 명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누구를 위한 당이냐가 가장 중요하다.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에 대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무리하게 배타적 지지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정치방침을 거부할 것이다”
대선 참패와 대규모 탈당행렬에 이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후 현장 곳곳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성찰이 이뤄지고 있다. 위의 발언들은 지난 3월6일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개최한 정치세력화 관련 토론회에서 현장 간부들이 직접 쏟아낸 말들이다.
이미 무력화된 배타적 지지 방침
3월7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도 유사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은 이미 무력화된 것”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서울과 부산에서 토론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각각 30~40여명이었는데, 다수가 특정한 정치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현장 간부들이었다.
지역본부들이 토론회를 기획한 것은 분당 사태의 여파가 민주노총으로 파급되면서 적지 않은 간부들이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분당 과정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조합원들이 오히려 다수인 상황이 되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밀어나가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토론 요구가 거세졌던 것이다.
특히 민노당 배타적 지지라는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관련해 토론회에서 쏟아져나온 얘기는, ‘진보적 다원주의’를 근거로 정치방침 수정을 요구하는 진보신당의 목소리와는 분명히 달랐다. 앞서 소개한 현장 간부들 얘기를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기존 노동자 정치세력화 경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이랜드 투쟁에 연대하자”는 거침없는 선동이 아니라 “이랜드 투쟁에 연대했으니 우리 당을 찍어달라”는 선거운동에 동원되며 노동자투쟁을 부차적 지위로 밀어내려는 의회주의라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이다.
이제 분당이 되고 의회진출의 길이 좁아지게 되자,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놓고 민노당과 진보신당 내에서 분열의 2라운드가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이 논란이 일시적으로 종식되더라도 의회주의와 결별할 생각이 없는 이들 당 내에서는 분열의 3라운드, 4라운드가 진행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의회주의에 염증을 느낀 탈당 현장노동자들의 다수는 진보신당 행이 아니라 어느쪽에도 동참하지 않는 길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민노당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방침은 현장에서 이미 무력화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민주노총은 이 방침을 어긴 노조나 조합원을 징계할 수도 있겠으나, 징계하겠다고 달려들면 들수록 민주노총 다수 상층 지도부가 밀고나가려는 배타적 지지방침은 오히려 힘을 더욱 잃어가고 더 강한 반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진보신당을 포함한 의회주의 세력에 대한 염증이 대중적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비정규투쟁에도 의회주의 바이러스 퍼뜨리기
“분당 사태와 민주노총은 별개 문제인가? 사실 민주노총의 한계가 정치운동에서 터져나온 것이 분당 사태이고, 그 분당 사태가 이제 다시 대중운동 쪽으로 여파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발언들도 다수 나왔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의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것이 비정규직 문제인데,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비정규 투쟁사업장들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비록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어렵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은 이 투쟁의 전망과 돌파구를 열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이 방치하는 가운데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앞 순위에 비정규직 할당” “여성 비정규직 출마 시 수천만 원 지원” 등 투쟁의 전망이 아니라 의회주의 바이러스를 심으며 비정규 투쟁사업장의 팔을 당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노총의 한계가 의회주의 세력들이 헛된 의회진출 망상을 퍼뜨리는 근거로 둔갑하게 되고, 대중투쟁의 힘찬 진출과 단결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다면 민노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투쟁사업장 농성장 앞에 선거캠프를 차려라!” 한 투쟁사업장 조합원의 이런 외침 속에 진실이 숨어있지 않은가!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총선투쟁을 폐기하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목소리들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목소리가 기존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의회주의에 심각하게 감염되었음을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발짝 더 구체적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현장 노동자운동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미조직 노동자와 밑바닥 민중들에게로 흐르게 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은 현장 노동자운동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의회주의·개량주의를 철저히 극복하고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조직하자는 것으로 말이다.
총선 공간에서 선거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투쟁사업장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이명박과 자본가들을 상대로 한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것, 선진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공동투쟁에 적극적인 연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1면, 2면 참조) 주간연속 2교대제와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를 위해 현장의 선진노동자들을 규합하고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공동투쟁 또한 그러하다.(5면 참조)
“또 투쟁만이 대안이라고 공자님 말씀처럼 반복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전국적 공동투쟁은 1년 365일 언제나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의회주의 정치가 대중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실망감 등 패배주의를 깨고 노동계급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현장투쟁과 공동투쟁을 통해 만드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철저히 견지하고 나아가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모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전국의 투사들에게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결집하자고 호소한다. 우리가 이미 제출한 [우리의 입장]과 [대중행동강령]에 입각하여 현장 노동자대중 속에서 광범한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것, 그로부터 정치강령 작성과 당 건설을 위한 과업에 함께 나설 것을!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