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위기와 노동자투쟁의 전망
조선업의 호황
한국의 조선업은 90년대 이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해왔다. 세계 10대 조선소 가운데 7개가 한국의 조선소들이었다. 07~08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조선업은 2010년 이후로 주춤해지긴 하지만 향후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는 ‘아무 걱정 없다’고 예측되었다.
실제로 07년 말 한국의 조선업은 선박의 발주가 너무 많아서 걱정했다. 발주 증가로 인하여 선박재료에 필요한 철판(후판)가격이 상승하고 그래서 철광석 가격이 상승하게 되어 원자재 값이 너무 많이 드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당시 한국 조선업계는 3.5~4년 치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는 적정수준 잔량에 비해 1.5~2년 치 정도가 많은 물량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모든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경제위기로 인해 선박발주가 세계적으로 전년대비 무려 90%나 줄어들면서 한국 조선소들은 2009년 상반기 수주한 총 선박수가 47척으로 곤두박질 쳤다. (07년 전체 수주선박은 1,228척)
경제위기와 해운업의 위기
이는 세계적인 무역량 감소로 인하여 해운사들이 휘청거리며 더 이상 선박발주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해운기업인 덴마크의 머스크그룹(AP Moller-Maersk)이 올해 상반기 약 5억 4천만 달러(6,25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의 CMA-CGM은 빚 상환 불능을 선언하였다. 대만의 TMT는 용선료를 지급하지 못해 파산압박을 받고 있다.
독일의 최대선박회사이자 세계 6위인 하팍로이드와 클라우스 페터 오펜, 피터 될레 등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독일 정부에 긴급 자금지원 요청을 했다. 이들 선박회사가 요청한 자금 규모는 각각 1억~1억5000만 유로(1,729억원~2,594억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오펜의 경우는 정부가 회사의 자금 지원 요청을 '거부'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최대 해운기업이자 세계 8위 컨테이너선박회사 코스콘이 소속된 중국의 코스코그룹(COSCO Group) 또한 지난 3분기 6억9천70만 위안(1,172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아시아 3대 선박회사 가운데 하나인 싱가폴의 NOL 역시 3분기 1억 3천890만 달러(1,611억원), 일본의 최대 해운사인 NYK는 올 상반기 293억엔(3,82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일본의 해운사 K-LINE은 올해 3분기까지 약 740억엔(9.66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해운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진해운은 올해 3분기까지 7천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현대상선, 대한해운 역시 올해 3분기까지 4천억 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해운업과 조선업 - 바늘과 실
한국 조선업은 건조선박의 대부분이 화물선, 원유선, 컨테이너선이다. 세계 무역량 감소는 완성품뿐만 아니라 원자재 무역량의 감소로도 이어져, 화물선, 원유선, 컨테이너선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그래서 이를 운영하는 해운사들의 적자는 발주한 선박의 납기를 연기시키거나, 대금을 늦게 준다거나, 발주 자체를 취소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선박을 가져가봐야 항구에 정박해놓고 놀리는 일밖에 없는데 정박료만 들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10% 가량이 일거리가 없이 대기 중이며 이 추세대로 간다면 1년 후 놀게 되는 컨테이너선이 지금의 3배가량 될 것이라 한다. 결국 선박발주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이미 발주한 선박 또한 인수 여부가 미지수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소들의 위기 또한 커져가고 있다.
머스크사는 55척의 선박을 국내 조선사들에 발주해 놓은 상태이다. 오펜사는 44척을 모두 국내 조선사들에 발주했다는데, 그 금액이 55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중 36척이 국내 조선소에서, 8척은 해외에 있는 한국기업 조선소에서 건조될 선박들이다.
피터 될레사는 삼성중공업에 8척을 발주한 것을 비롯해 국내 조선소에 컨테이너선 16척을 발주한 상태다. 프랑스의 CMA-CGM은 현대중공업 9척, 대우조선해양 8척, 삼성중공업 5척, 한진중공업과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10여척 등 모두 41척의 선박을 발주했다.
대만의 탱커 및 벌커 전문선박회사인 TMT도 현대중공업 13척, 현대미포조선 3척, 현대삼호조선 8척, 대우조선해양 7척 등 총 40~50억 달러의 규모를 발주했다. 일본 K-LINE이 국내에 발주한 선박은 현대중공업에 7척, STX에 6척이다. NYK는 오는 2013년까지 컨테이너선단을 절반으로 축소할 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대한해운은 80% 이상을 한진해운은 50% 이상을 국내 조선소에 발주하였다.
현재 상위 25개 해운사가 국내에 발주해 놓은 선박은 570척이며 그 중 절반이 2010년까지 인도될 선박이다. 49개사에서 국내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은 전체 선박발주량의 80% 정도이다.
해운사들의 선택
머스크사는 지난해 4,500명을 해고하였고, 올해 1,500개의 일자리를 줄였다. CMA-CGM사 또한 11월 중순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하팍로이드, 클라우스 페터 오펜, 피터 될레 역시 자국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으며, 이는 당연히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 1월과 8월 국내 직원 900여 명과 해외 현지직원 2,200명 가운데 170명을 희망퇴직이란 명목으로 해고시켰다. 현대상선도 2,000여 명 중 6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이달 말까지 받고 있다.
조선업도 위기로 치닫고 있는가?
해운사들과 다르게 국내 조선소들은 엄청난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09년 3분기 현대중공업은 5,317억원, 삼성중공업은 2,664억원, 대우조선해양은 1,58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였다. 08년 3분기와 비교하면 48~52% 정도 이익을 더 낸 것이다.
매출로만 본다면 국내 조선소들은 경제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요소 때문이다. 하나는 올해 매출을 올리고 있는 선박들은 이미 1~2년 전에 수주를 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부문의 손실을 해양플랜트부문에서 만회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08년 3분기에 조선부문의 매출이 6조 5천억원이고 09년 3분기에 6조 8천억원으로 큰 변화가 없으나 플랜트와 해양부문을 합쳐 08년 3분기에 2조 5천억원이었는데 09년 3분기에 3조 9천억원으로 증가하였다. 반면 플랜트부문이 약한 한진중공업은 3분기에 399억의 손실을 입었다. 현대미포조선은 937억의 이익을 기록하였지만 08년 3분기 1,451억과 비교하면 35.5% 감소한 것이다. 국내 조선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점점 더 위기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조선소들이 경제위기 본격화 이전에 받아놓은 대규모 수주를 바탕으로 아직 맷집좋게 버티고 있지만 해외 조선소는 이미 매우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는 미국 자회사에서 700여명의 노동자들 중에 400명을 해고 하였다. 불가리아의 한 조선소는 800명 전원을 해고하고 조업이 중단되었다. 일본의 츄지 사는 100여명 정도의 인원을 해고하였다. 인도네시아의 PT PAL은 800~1,000명 정도를 해고했다고 알려졌다.
독일의 티센크루프사도 45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였다. 프랑스의 STX 유럽은 노동자들을 해고하려다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다. 핀란드의 STX 투르크조선소는 400여명의 인원을 해고하려 하고 있어 노조가 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루마니아 회사는 현금부족으로 인하여 조업이 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수주물량 부족으로 내년에 조선업계 전체가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고 있다. 국내의 한진중공업은 내년 건조물량이 6척밖에 되지 않아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세계조선업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는 중이다. 조선업계 세계 1위라는 우월적 지위 속에서 안정적으로만 보였던 국내의 조선업계이지만 외국 조선업계가 가는 길과 다른 길로는 갈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의 지원과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
유럽의 해운사들은 각국 정부에 조선업에 대한 구제금융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인하여 놀고 있는 배가 늘어나고 운임이 싸지는 상황에서 구제금융이 공급량을 늘려 위기를 격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운업과 조선업의 위기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곳은 없어져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상황을 모면해보겠다는 것이다.
상위 25개 해운사가 국내에 발주해 놓은 배만 570척이라는 것에서 보듯이 자본주의의 모순인 과잉생산과 무정부적 생산은 해운사들의 과잉발주와 그에 따른 조선소들의 과잉설비투자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중국은 본격적으로 조선업에 투자한지 5년 만에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중국 조선업계의 성장은 세계적 규모에서 과잉 설비가 더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불에 기름 붓는 격이다. 하지만 과잉생산의 확대와 그만큼 격화될 경쟁 앞에서 자본가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고려한다. 머스크사의 사장은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통하여 10~15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자랑했다.
한국 정부는 해운업과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1차로 15년 이하의 선박 62척을 매입하는 중에 있으며, 2차 매입 신청을 받고 있다. 1차에서는 금융기관이 60%, 구조조정기금이 30%, 민간투자가 10%인 것에 비해, 2차에서는 건조중인 선박도 매입하고 매입자금의 60%까지를 구조조정기금이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무역량감소로 인한 해운사들의 발주가 없는 상황과 조선소들의 과잉설비는 남아도는 선박의 일부를 매입하는 구제금융으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언발에 오줌누기 이상이 될 수 없다. 결국에는 국내 조선업계 또한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이 위기를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자본가들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오종쇄 위원장은 올해 임금교섭위임이라는 방법을 통해 회사가 원하는 대로 임금동결을 했으며, 임금동결은 현대미포조선으로, 현대삼호조선소로 퍼져나갔다. STX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모두 다 임금동결을 하였다.
한진중공업은 임금동결에서 더 나아가 단협축소를 하고자 하였다. 한진지회가 전면파업으로 맞서자 회사는 직장폐쇄, 단협해지 등 공격의 고삐를 더 단단히 죄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한진중공업은 사내하청업체에 최저입찰제를 통하여 최저가의 업체들과 계약을 하면서 10여 개 업체를 폐업시켰으며, 이 업체 노동자들은 임금과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도크장 1~2개 폐쇄설’, ‘하청노동자 3,000명 해고설’ 등이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이 가야할 길
조선소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조선소 노동자들의 잘못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해운사들과 조선사들의 무분별한 경쟁의 폐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서 보듯이, 자본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부터 공격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원하청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같이 싸우지 못한다면 하청은 하청대로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자본의 공격에 각개격파 당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가야할 길은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하여, 단사를 넘어 조선소 노동자들 모두의 단결을 통하여 단호한 투쟁으로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해고, 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의 공격에 맞서 자본가들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더 나아가 자본가들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어마어마한 이윤과 돈 보따리를 풀어서 노동자들의 생존과 고용을 보장하라고 투쟁해야 한다.
개별 자본가가 책임을 못 진다면 정부가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을 책임지라고 투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가들에게 알아서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직접 산업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으로 대담하게 치고나가야 할 것이다. 자본가들이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면, 게다가 가증스럽게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죽이려 한다면, 이제 우리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인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