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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교양도서 2권_노동해방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사노련  | 2009·11·11 23:04 | HIT : 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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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2권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 실린 글입니다.)

    노동해방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최지명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해방 쟁취하자”다. 노동조합 깃발에, 노동자들의 머리띠에, 투쟁조끼 등자락에, 피켓과 플랭카드에 “노동해방”이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97년 IMF 위기 이후 경제위기, 대량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빈곤과 삶의 불안정성이 심해지면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에 대한 갈망이 광범위하게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꾸자”고 목소리 높여 외치며, 그 대안으로 “노동해방 쟁취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해방 쟁취”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모두가 노동해방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까? 과연 노동자들이 “노동해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해고, 수배, 구속, 고립, 테러의 위협 등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노동해방”을 위해 싸우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노동자들이 “노동해방”에 대한 분명한 자기 신념이 없는 상태에서도 장기파업과 전투적 노조활동에 따르는 온갖 고통과 부담을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을까?

    노동해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노동해방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는 것은 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는 노동자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노조 활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을 힘차게 할 수 있다.

    정규직이 되거나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과연 노동해방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노동해방인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면 그것이 노동해방일까?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와 차별받지 않으면 그것이 노동해방일까? 임금이 조금 올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저녁밥을 오붓하게 가족과 같이 먹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산과 들로 여행을 간다면 과연 그것이 노동해방일까?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보다 임금을 조금 더 받더라도 일한 대가를 다 받지 못하고 자본가들에게 많이 빼앗기기는 마찬가지다. 언제 경제위기가 닥쳐 정리해고의 칼날을 받을지 몰라 불안에 떠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저녁밥을 가족과 같이 먹을 수 있더라도 살인적 노동 강도 때문에 골병이 들고, 고용불안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면 집안에 항상 웃음꽃이 가득 피겠는가?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더라도, 임금이 넉넉하지 않은데 어떻게 좋은 곳으로 자주 여행을 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설사 한두 번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 해도, 자녀들이 삭막한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으로 황폐화되고, 부부가 맞벌이의 고통으로 대화조차 하기 어렵고 대화를 하더라도 생계고로 자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행이 과연 즐거움의 연속일 것인가?

    정규직화, 차별 철폐,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노동해방이 아니다. 단지 노동자의 발목을 단단히 죄고 있는 족쇄를 약간 느슨하게 푸는 것일 뿐이다. 자본가들이 여전히 기계, 공장, 철도, 통신과 같은 생산수단을 독차지하고 있고, 국가를 주무르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규직이 되고, 차별이 줄어들고, 임금이 올라가고, 노동시간이 단축된다 해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본가들한테 빼앗기고 짓밟히는 비참한 노예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동자 후보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는 게 노동해방일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은 투쟁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줄 국회의원이 있다면, 노동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 민주노조 건설 같은 정당한 요구를 내건 투쟁조차 구사대, 용역깡패는 물론이고 정부가 노동악법과 폭력경찰을 앞세워 탄압했으니,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를 갈망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소망은 단병호 같은 노동자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병호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파업은 어렵게, 해고는 쉽게’ 만드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통과시켜주는 데 야합했다. ‘노동자 국회의원’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싸우지 못하고, 노동자들을 배신한 것이다.

    이런 배신은 ‘노동자 대통령’이 더 크게 저질렀다. ‘브라질의 단병호’라고 부를 수 있는 금속노동자 ‘룰라’가 그 경우다. 룰라는 1978년 노동자 대파업의 지도자였는데,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 룰라 정부도 뇌물, 사기, 매수, 공금 유용 같은 커다란 부패의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브라질 룰라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처럼 자본가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 앞장서 노동자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단병호나 룰라의 경험은 노동자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자본가세상을 노동해방 세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을 생생하게 가르쳐 준다.

    혹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단병호나 룰라는 노동자를 배신했다. 그렇다면 그들과 달리 국회와 청와대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분투하는 노동자 국회의원이나 노동자대통령이 나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제대로 된 노동자 국회의원이나 노동자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노동자들한테 조금 유리하게 바꾸면 노동해방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몇몇 노동악법을 없애고, 노조의 합법성을 보장해 주며,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해 좀 더 자유롭게 노조활동을 하고, 잘리더라도 최저 생계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면 노동해방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아직 노동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설사 노동자 국회의원이나 노동자 대통령이 몇몇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조의 합법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기계와 공장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은 정리 해고, 노조 탄압,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강화 공세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이 보여주듯이 거대 자본은 폭력경찰, 검찰, 법원, 국회, 행정부, 언론 등을 마음대로 주물러 왔다. 따라서 노동자 국회의원이나 노동자 대통령은 설사 타락하지 않는다 해도, 거대 자본이 사실상 국가 전체를 좌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 대통령이 자본가들한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더라도, 칠레 아옌데 정부가 무너졌던 것처럼, 군대, 경찰 등 국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노동자대통령을 간단히 쓸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고 노동해방이 오는 건 아니다. 노동해방은 무엇보다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지배할 수 있는 근본 뿌리인 ‘기계, 공장 등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노동자 전체의 공동소유로 전환’할 때만 쟁취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 후보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는 ‘찻잔 속의 폭풍’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계급이 거대하고 조직적인 대중투쟁을 통해 자본가들의 정치권력을 뒤엎고 노동자 민주주의 권력을 세우는 ‘대폭풍’이 필요하다. 노동자들 자신의 권력이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물질적, 사회적 여건을 보장할 때만 노동해방 세상이 활짝 열리게 된다.

    노동자계급이 거대한 투쟁을 통해 세워내는 노동자권력이 아닌 이상,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정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정부일 뿐이다. 모든 자본가정부는 ‘국민의 정부’니, ‘개혁 정부’니, ‘친노동자 정부’니 하면서 온갖 화려한 외투를 걸치려 한다. 하지만 자본가의 노동자착취를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는 자본가정부라는 본질에는 한 치의 변함도 없다. ‘서민을 위한 복지제도 강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장점을 채택한 자본주의’ 등 온갖 뻔지르르한 자본가 정부의 주장은 모두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사기일 뿐이다.

    노동하지 않는 것이 노동해방일까?

    그럼 자본가들이 비난하듯이, 그리고 일부 룸펜들이 사고하듯이 “노동을 하지 않는 것”, “노동자들이 게을러지는 것”이 노동해방일까? 조금이라도 건전한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들이 주인인 이 사회에서 노동은 노동자들을 하나의 기계부품으로 전락시키는 아주 고통스런 단순 반복 작업이다.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높은 노동강도로 장시간 이루어지는 지옥 같은 노동이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자본가들의 배만 불릴 뿐 노동자들을 더 피폐화시키고 분열시키며 자본가들의 굴레에 더 단단히 묶어버리는 노예적 노동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의식 있는 노동자라면 이런 노예적 노동으로부터는 과감히 벗어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를 위해 필요한 생산물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생산자들의 육체와 정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노동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들고, ‘고도의 사회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다. 따라서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굴리는 것일 뿐이다.

    노동해방이란 ‘놀고먹는 것, 게을러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사고는 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위대한 노동자계급의 사고가 아니다. 남의 노동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자본가계급의 사고일 뿐이다.

    착취가 없는 세상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는 기계, 공장, 토지 같은 생산수단과 은행, 백화점 같은 교환수단을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자본가들은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임금을 주고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몸뚱아리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자본가들에게 자기 몸뚱아리(노동력)를 팔아 죽도록 일해주어야 겨우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갖고 있기에 기계를 쓰고, 자동화를 도입하며, 생산방식을 혁신해서 나오는 모든 이익은 오직 자본가들한테로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한 곳에 수천 명, 수만 명씩 모여 협동해서 일하고, 전국과 전 세계 차원에서 수십만, 수백만 노동자들과 협력해서 일해 생산력을 높이더라도, 이 모든 사회적 노동의 혜택은 오직 자본가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오히려 나날이 하락하고, 더욱 불안정해질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는 IMF 위기 이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폭 늘어나고, 노동강도는 높아지며, 현장통제가 강화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범죄와 도덕적 타락이 심해진 것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모든 병폐들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공동노동의 산물인 기계, 공장 같은 생산수단을 한두 자본가들의 손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손으로 옮기는 것이다. 즉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노동자계급이 모두 몰수하고 사회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남의 노동을 착취해서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자본가세력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규율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의무적으로 일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본가들은 디룩디룩 살이 찌며 더욱 부유해지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더욱 가난해지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은 끝날 것이다.

    원시 공산제 이후 인류의 역사는 항상 소수 지배자들이 다수 생산자를 착취해서 살아온 계급 지배의 역사였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바뀐 것은 착취자들이 노예 주인에서 봉건 영주로, 봉건 영주에서 자본가로 바뀐 것일 뿐 착취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노동해방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착취 자체를 완전히 뿌리뽑게 된다. 그에 따라 사적 소유와 착취에 기초해 자라났던 독버섯들인 정치적 억압과 자본주의 사회의 공황, 비정규직, 실업, 범죄, 전쟁, 부정부패, 여성 차별, 도시와 농촌의 분리 등도 모두 말끔히 없앨 수 있다.

    억압이 없는 세상

    사회가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로 나뉘고, 빼앗는 자(착취자)와 빼앗기는 자(피착취자)로 나뉜 상태에서는 가진 자와 빼앗는 자들의 질서를 지키고, 못가진 자와 빼앗기는 자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억압 도구가 필요했다. 군대, 경찰, 감옥과 같은 물리적 폭력 수단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 엘리트들과 국가 관료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국가는 ‘공익을 추구한다’,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절한다’고 항상 말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익’, ‘조절’, ‘중재’라는 이름으로 가진 자들과 착취자들의 이해만을 대변해왔을 뿐이다. 국가란 항상 착취계급의 계급 지배도구였다. 가령, 노예제 시대의 국가는 노예 주인들의 국가였다. 봉건제 시대의 국가는 봉건 귀족들의 국가였다. 자본주의 시대의 ‘공화정’, ‘입헌군주정’, ‘군사정부’, ‘민간정부’, ‘파시즘’ 등 모든 정부는 자본가들의 국가였다.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대통령의 얼굴은 계속 바뀌어왔다. 하지만 자본가국가라는 본질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지금까지 다수 노동자대중과 분리된 상태에서, 소수 착취자들의 이익을 지켜 왔던 상비군과 경찰도 없어질 것이다. 자본가들의 이익에 충실했으며 노동자들 위에 군림해왔던 국회도, 법원도, 행정부도 없어질 것이다. 대신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공장별, 직장별, 지역별로 대표자들을 뽑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 대표자들의 전국적 기구가 의결과 집행을 모두 담당하는 노동자국가가 되어 사회를 운영할 것이다.

    이 국가에서 공무원은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할 것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소환, 탄핵될 수 있다. 공무원의 임금은 숙련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자신들을 지배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선거 말고는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가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생산의 주인이자 정치의 주인이 될 것이다.

    사적 소유와 착취가 완전히 철폐되면 더 이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도,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의 충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수갑, 고문 기구, 탱크와 대포 같은 살상무기 등은 역사 박물관에나 가야, 돌도끼 같은 석기 시대 유물들과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황이 없고, 비정규직과 실업이 없는 세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황이 사라질 수 없고, 비정규직과 실업도 사라질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목적은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이윤 증식’, 보다 쉬운 말로 하면 돈벌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 확대 경쟁을 벌인다. 자본가들이 ‘사회적 이익’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자본가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 무정부적인 경쟁체제에서는 시장쟁탈전에서 패배한 자본가가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보다 임금으로 받아가는 것이 훨씬 적기에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격차는 커지게 된다(과잉생산). 경제 위기 시에 자본가들의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의 구매능력을 떨어뜨려 생산과 소비간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킨다. 시장과 백화점에서는 상품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이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며 겨울에도 차디차게 지내야 한다. 상품이 팔리지 않을 때 기업들은 파산한다. 그 기업의 어음을 갖고 있던 다른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낸다. 그런 기업들에 대출해준 국내외 은행들 또한 파산한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공황은 절대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실업자들을 양산하며, 언제든지 끌어다 쓰고 어느 때든 버리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게 된다.

    또한, 자본가는 비정규직을 싼값으로 마음껏 부려먹으며 이윤을 늘린다. 그리고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의 처지를 이용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도 깎고 노동강도도 높인다. 비정규직, 실업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을 서로 분열시키고 대립시켜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한다. 비정규직, 실업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과도 같다.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생산수단을 전체 노동자들의 공동소유로 바꾼다. 따라서 생산의 목적이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전사회적 필요에 맞추어진다. 이 세상에서는 생산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컴퓨터, 인터넷과 같은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을 이용해 최대한 정확히 파악한다. 그리고 이 필요에 맞게 각 공장들에서 어떤 제품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전국적, 지역적, 공장 단위 노동자들의 자주관리 기구와 긴밀히 협의해 결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분배 과정을 인간이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생산과 분배에 대한 인간의 “의식적” 통제가 대단히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황 따위는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다.

    따라서 공황에 따른 대량 실업도 생겨나지 않는다. 공황에 대비해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비정규직 처지로 내모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자본가들의 착취가 사라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실업 노동자와 취업 노동자로 서로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완전고용을 보장받으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하나의 일에만 평생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회를 보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양한 재능을 개발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도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직장을 옮기는 것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 된다. 전환배치는 교육의 부족과 노동조건의 악화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항상 도전의식과 용기를 북돋고, 창의력과 숨겨진 재능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에어컨 공장처럼 여름 한 철을 겨냥하거나, 보일러 공장처럼 겨울 한 철을 겨냥해 일할 수밖에 없는 공장들도 있다. 이런 공장들에서도 비수기 때 노동자들이 전혀 고용불안을 겪지 않고 임금, 노동조건 상의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은 채 다른 일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 보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에서 태어날 때부터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고, 노비들은 토지처럼 양반의 재산이었던 때도 있었다”고 웃으면서 가볍게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지금의 비정규직, 실업제도에 대해 역사책을 보며 그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게 될 것이다.

    노동이 삶의 기쁨이 되고, 노동자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세상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노동시간이 지금보다 대폭 줄어들 것이다. 하루 3-4시간만 일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며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각국에서 공식 통계만으로도 10% 안팎에 달하는 실업자들과 아주 적은 시간밖에 일하지 못하는 일용직, 파트타이머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안정된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의 부담 때문에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와 자신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여성들이 떠맡아야 했던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의 무거운 굴레는 사회가 놀이방, 공동세탁소, 대규모 식당 등을 많이 만들어 해결해줄 것이다.

    자본가들, 정부 관리들, 교수들, 목사들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모두 부류들이 노동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한창 왕성하게 일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나이에 젊은이들이 군대에 들어가 2-3년을 썩히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퇴폐향락 산업, 광고산업 등 자본주의 때문에 비생산적인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면 노동시간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생산성이 더욱 향상돼 짧은 시간만 일해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물들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모두 자본가들이 가로채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전사회의 이익이 되므로 노동자들은 생산력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게 된다. 또한 노동자들은 단조롭게 하나의 노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노동을 번갈아가며 하기 때문에 즐겁게 노동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 간의 경쟁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난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이런 중소기업들을 전체 노동자의 공동소유로 전환해 첨단 시설을 갖춘 대규모 작업장들로 개편할 것이다. 그럴 경우 중소기업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생산력을 빠르게 발전시킬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하루에 3-4시간이어도 족할 정도로 노동시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다.

    산재는 최대한 예방될 것이다. 노동조건은 훨씬 쾌적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오직 이윤만이 생산의 유일한 동기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죽건 말건, 노동조건이 불쾌하건 말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생산의 유일한 동기는 ‘전체 사회의 필요’이며, ‘전사회 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명을 무엇보다 중시할 것이며, 쾌적한 작업조건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산재 예방 시설은 절대 설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노동자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무조건 설치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작업장은 먼지투성이이고, 소음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고, 불쾌한 냄새들로 온통 뒤범벅이었다. 이와 달리 노동해방 세상의 작업장은 자본가들을 위해 지어진 최신 건물들처럼 넓고 밝으며 공기가 잘 통하며, 가장 완벽한 설비와 실내장식이 갖추어져 예술성까지 겸비한 그런 건물로 바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분리되어 불구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매일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경우 노동에 대해 활력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게 된다. 육체 또한 특정 부분을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그 부분이 손상당하며, 다른 부분은 반대로 너무 사용하지 않아 퇴화한다. 그리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정신노동자들은 육체가 허약해지며 몽롱한 관념과 추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지금의 육체노동자들도 정신노동을 번갈아가면서 할 것이며, 지금의 정신노동자들도 육체노동을 번갈아가면서 하게 될 것이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적당히 결합시켜야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고, 육체와 정신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다. 이럴 때만 조화로운 인간이 형성된다. 이런 인간들이 사회의 다수가 될 때에만 조화로운 균형과 협동 속에서 사회가 성장해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대립이 심각하다. 도시에 기업들이 다닥다닥 밀집함으로써 인구 문제, 교통문제, 환경 문제, 주택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반면, 농촌에서는 인구가 대거 도시로 빠져나감으로써 전체적으로 발전이 지체된다. 도시인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정서적으로 메마르게 된다. 농촌 사람들은 정치, 문화생활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낙후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대도시 주민들을 농촌으로 이동시키고, 행정기관, 교육기관, 문화시설 등을 곳곳으로 분산시킬 것이며, 농업과 공업을 적절히 조화시킬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 모순을 집대성해놓은 듯한 ‘대도시’를 해체할 것이다. 그리고 농촌을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도시들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그래서 전국토의 균형적 개발을 말이 아닌 실제 현실로 만들어낼 것이다. 공업과 농업을 결합시키는 과정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결합시키는 과정처럼 노동자들을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측면에서 고르게 발전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짧은 노동을 마친 이후에는 문화예술을 폭넓게 향유하고, 다양한 정치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비로소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천부적 소질과 재능들을 억압, 왜곡, 변형시켜왔는지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점심시간에는 화원에서 꽃을 돌보고 오후에는 사회단체 회의와 대중 집회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문화예술 모임에서 시를 발표하고 밤에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친구들과 화상 대화를 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전업적인 공장 노동자도, 꽃가게 점원도, 사회단체 활동가도, 시인도 아니면서 그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때 노동과 예술과 체육과 놀이는 자연스럽게 결합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유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동은 삶의 참다운 행복이 될 것이다.

    테러, 전쟁, 부정부패, 범죄, 성차별, 종교가 없는 세상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테러와 전쟁이 없다. 부정부패와 범죄가 없다. 여성 차별도 없다. 종교는 자연스럽게 소멸해간다. 착취와 억압이 없고, 광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가 없는 세상에서 테러와 전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처럼 석유산업과 군수산업 등의 자본가들과 그 파트너들인 정부 관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 자본가정부를 노동자권력으로 바꾸고 석유산업, 군수산업 등의 사적 소유를 철폐한 뒤에도, ‘돈벌이를 위한 야만적 침략전쟁’이 일어나겠는가? 야만적 침략이 사라진 뒤에도 ‘야만적 침략의 일그러진 부산물’인 테러가 계속 일어나겠는가?

    공무원이 다수 대중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들의 통제를 받으며 봉사하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수탈해서 살아가는 것은 과거의 치욕스런 유산으로 치부될 것이기 때문에 정신 이상자가 아니고선 범죄를 저지를 까닭이 없다.

    비정규직을 억압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해방될 수 없는 것처럼,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은 결코 해방될 수 없다. 남녀차별을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노동해방 사회에서 가장 비중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노동해방 세상에서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남성에 대해서 자유롭고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며,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전인적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참된 노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또 이런 행복을 누릴 기회가 실제로 주어지면, 환상 속에서 행복을 찾도록 이끄는 종교의 입지도 줄어들 것이다. 노동해방 세상이 종교를 탄압하거나 강제로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점차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것이므로 점차 종교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종교는 자연스럽게 소멸해갈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혈통이나 가문이 중시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유 관계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대접받을 것이며, 인간들 서로서로가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진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현되는 것이다. 놀고먹는 지배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수탈하는 일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일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한다’는 구호가 현실로 옮겨질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인류 전체가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상태에 이를 것이다.

    노동해방은 막연한 꿈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이 자각하고 단결하는 순간 현실이 된다!

    홍길동전의 ‘율도국’,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알 수 있듯이, 진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오랫동안 인류의 꿈이었다. 하지만 노동해방 세상은 더 이상 막연한 꿈이나 유토피아가 아니다.

    지난 2~3백 년 동안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들이 이룩해낸 놀라운 생산력 발전은 풍요로운 공동체 세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든든한 객관적 토대다. 노동자들은 자기 몸뚱아리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데 기꺼이 앞장설 수 있다. 노동해방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와 주체적 세력은 이미 존재할 뿐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공황, 실업, 전쟁, 부패타락 같은 자본주의 모순은 “자본주의는 낡아빠진 체제로서 노동해방에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아니 그것은 노동자계급에게 빨리 자본주의 체제를 역사 속에 묻어버리고, 참된 인간사회를 열어 제껴 달라는 비통한 자기 고백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무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노동해방 세상을 정확히 아는 것이며, 굳건한 확신을 갖고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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