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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역사에서 배우자
(오세철,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박종철 출판사, 2004)
1. 글머리에
21세기, 마지막 단계의 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의 세계자본주의체계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의 위기가 과잉축적으로 인한 순환적 위기이건 계급적대의 구조적 모순이건 간에 이를 극복할 수 없는 자본의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생산력증진을 위한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 디지털이나 나노기술 그리고 생명공학, 유전자공학에 이르기까지 있으나 그 한계를 보이는 것 같고 노동의 포섭이나 유인 역시 계급투쟁의 성과로 이룩한 복지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계급적대를 약화시키는 방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전쟁과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야만의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은 든다.
1871년 파리 코뮌에서부터 1905년,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세계사회주의혁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주제가 있다. 그 명제는 21세기 세계혁명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하나는 일국사회주의혁명론이다. 이는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의 핵심적 원인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바다에 사회주의 섬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혁명은 세계혁명이어야 함을 뜻한다. 레닌은 혁명의 중심이 유럽이라고 보았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혁명의 불꽃이 피어나기를 바랐다. 유럽의 혁명좌절과 반혁명 그리고 수정주의의 발호는 러시아를 고립시켰고 결국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혁명론의 왜곡과 양 진영체제를 성립시켰으며 후진 자본주의 러시아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은 생산력주의로 나아가 국가자본주의의 도입과 더불어 사회주의 혁명으로 올바른 이행을 저지시켰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계급이 권력과 역사의 주체로 서는 과정으로서의 사회주의혁명이 실패한 것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동유럽, 중국, 북한 등 이른바 ⌈국가사회주의⌋로 불리워지는 나라 등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자본주의화로의 역이행은 이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자본은 처음부터 국제적이었으며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에 희생당하는 노동계급은 민족으로, 성으로, 지역으로, 업종으로, 규모로, 고용형태로 분열되어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자본주의는 지구적 차원의 노동계급의 단결을 요구하고 혁명은 세계혁명의 근거를 확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문제이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벌인 논쟁이기도 하지만 민족주의가 사회주의혁명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보편적 본질과 그에 대한 태도는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국가로 편재되어있던 20세기 초엽 민족해방혁명이 사회주의혁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레닌의 긍정적 평가는 인정 받을만 하였고 민족주의를 반동적 본질로 인식한 로자의 견해 역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세계1차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의 사회주의 세력(특히 독일)은 자기 나라의 깃발을 들고 전쟁에 참여하였다. 사회주의의 국제주의를 무너뜨린 민족주의의 발호였다.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적으로 규정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는 나치즘의 광기에서 전형적 모습을 드러냈고 드디어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해체된 연방에서 민족주의 광기는 자본의 제물이 되었다. 코소보 사태나 체첸 사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초국적(주로 미국)자본의 자원지배전략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가로막는 민족주의의 반동성이다. 자본가계급과 자본주의 자체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특정 국가와 민족을 적으로 싸우는 것이 세계혁명에 진정한 지렛대가 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세 번째는 이른바 ⌈정통⌋ 맑스주의자들의 자동붕괴론으로부터 얻는 교훈이다.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카우츠키 등의 입론은 법칙적 명증성을 드러내고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점진적 개혁과 개량이라는 수정주의로 변질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동력과 매카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체제 자체를 폐절시키는 억압받는 계급 즉 노동계급의 혁명적 실천이 없이는 절대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봉건제를 넘어서는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실천이 필연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법칙에 의존하는 경제주의자들의 이론과 실천이 혁명적 사회주의운동과 분리되어 결국 자본주의체제를 유지, 강화시켜왔다는 역사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혁명의 전망에 대한 검토는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역사 속에서만 가능하고 그 역사는 사회주의역사에 대한 올바른 비판적 평가 위에서만 가능하다. 위에 언급한 세계혁명에서의 교훈은 글 쓴 사람의 사상 그리고 사관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장기기획으로 집필할 ⌈한국사회주의 정치운동사 - 1980년대 이후⌋의 서론에 해당하는 글로서 지금까지 사회주의정치운동의 실천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혁명적 사회주의운동과 혁명적 맑스주의운동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2.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는 세계혁명의 역사이지만 그 중심에는 사상투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맑스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그리고 프랑스의 혁명적 제 학설과 결부되어 있었던 프랑스 사회주의의 복합적 체계로서의 맑스주의는 철학적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관, 계급투쟁,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할, 잉여가치, 국가의 역할,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전략과 전술로 특징지워진다(포스터, 1987, 16쪽). 그런데 이러한 맑스주의 사상이 사회주의운동과 실천으로 나아갈 때 역사적 사회주의로 현상화되고 혁명적 맑스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하나는 우경화된 수정주의로서의 사회민주주의로의 변질된 역사이며 또 하나는 박제화된 교조주의적 스탈린주의로서의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이다. 여기서 혁명적 전통을 지닌 무정부주의와 생디칼리즘이 좌익적 실천으로 교직되어 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구에서 전개되었던 사회민주주의의 정치가 계급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누구의 이익을 위해 복무했는가를 분석한 이안 버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량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상이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만약 사회주의가 계획이나 국가소유로 정의되지 않고 인류가 생산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이를 통해 그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하나의 사회로 정의된다면 정의상 그것이 개량주의적 수단에 의해 달성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버첼, 1995, 17쪽) 그는 이어서 스탈린주의도 비판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요한 경쟁자인 코민테른 역시 커다란 변질을 겪고 있었다. 가난하고 전쟁으로 약화된 나라인 러시아에 혁명이 고립됨으로서 노동자민주주의의 침식이 일어났던 것이다.... 코민테른은 러시아 지배관료의 일국적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전세계의 공산당들은 ‘제3기’(‘사회민주주의자들은 파시스트와 똑같다’)의 초좌익적 광기로부터 인민전선의 우익주의(‘파시즘에 맞서 진보적 부르주아지와 제휴하라’)로 어지러울 정도의 지그재그를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는 둘 다 똑같이 파산한 것으로 보였다.”(버첼, 19-20쪽)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극단적으로 지독하고 잔인한 체제이며 무계획적이고 무정부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폐절시키는 사회주의혁명은 우리에게 계획, 평등, 국제주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이것을 실현 불가능한 환상으로 바꾸어버렸고 이것들의 진정한 본질을 왜곡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노동과 계급은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투표하는 투표자에 불과하였으며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조직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당(사회민주주의당)들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아니다. 실제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표와 에너지를 동원하고, 노동자계급의 열망을 담은 수사를 이용하여 노조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노동자계급의 몇몇 개인들에게 출세의 수단을 제공한다. 그들은 다른 계급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그리고 그러한 이해관계에 반대되는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계급적 이해를 대표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노동자계급의 이름을 빌어 계급들 사이를 중재하면서 결국은 현존 질서와 그것의 방어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버첼, 344쪽)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나아가서 레닌과 볼세비키까지)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혁명적 실천은 평의회 공산주의운동을 전개했던 ‘발본적 좌파’의 논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1918년 독일혁명의 과정에서 혁명이 실패하고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의 관료주의와 혁명성의 거세를 비판하고 그 이후 소비에트의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에 기반한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압살한 볼세비키를 비판한 이들 흐름은 트로츠키 계열과 달리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계승하려는 운동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들의 논지에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해석하는 논쟁은 남아있지만 그것이 20세기 초엽과 2차대전 전까지의 논쟁이기 때문에 더욱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스마트, 1938; 마티크, 1978; 켈러 1977; 거버 1984) 또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소련의 공식 역사서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소보레브의 글은 역사해석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어 의미가 크다.(이정희, 1998, 재인용) “지난 70년간 소련사가들은 무수한 자료를 발굴 집성하여 프롤레타리아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 혁명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면에서 이들의 연구수준은 이론에 비하면 크게 뒤지고 있었다. 과거의 관료적 사가들은 ‘프롤레타리아는 결코 주도권을 잃은 적이 없었다’ 라는 앵무새 같은 주문을 되뇌이면서 노동계급을 우상시하는 선언문만 되풀이하는 관료주의적 서술방식에서 단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행동에서 의식과 본능사이의 상호관계는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민중의 행동에서 열망이나 감정, 지식, 정치문화 및 혁명의 열정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설명되어야 한다.... 민중의 움직임이나 감정상태의 변화에 관한 연구는 오직 개별 노동자들의 전기자료와 군중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욕망 등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연구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러시아 민중의 행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이정희, 2쪽) 특히 이러한 역사서술은 노동자계급의 자발성과 자주성 그리고 투쟁성을 기반으로 한 혁명적 실천이 어떻게 혁명적 사상과 조직 그리고 국가와 당에 의해 촉진되고 억압되고 충돌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자발성에 기초한 무정부주의와 생디칼리즘과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레닌이 볼세비키의 중앙파로서 좌익 무정부주의와 우익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사상투쟁을 벌였는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로의 변질과 달리 무정부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와 어떠한 친화적 관계를 맺으며 실천해왔는가 하는 것도 사상투쟁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구과제임에는 틀림없다. 레닌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으며 평의회공산주의운동을 전개했던 독일의 발본적 좌파도 무정부주의적 전통과 연관되어있음을 볼 때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역사 속에 무정부주의가 지니는 역할에 대한 평가는 사상투쟁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상적 연대의 측면에서도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검토하면 21세기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는 교훈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복원임을 깨닫게 된다. 사회주의혁명의 실험으로 자리매김된 역사적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나 계급타협으로 머무른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한 엄밀하고 냉철한 평가는 21세기의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를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세계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저위의 생산력 수준에 있었던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혁명으로 고착된 혁명의 역사, 진영사이의 대립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군비경쟁과 위성체계의 성립, 생산력위주의 편향과 이를 수반한 중앙집권화와 관료화, 노동계급의 대상화로 인한 당 독재와 국가주의의 물신성 등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의 역사적 과정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의 포위와 압력 밑에서 비주체적이고 관료주의적이고 당 독재체제의 생산관계 모순(권력관계 모순을 포함한)을 극복하지 못한 채 몰락하였다. 자본주의는 과학기술 혁명으로 인한 생산력 증진과 노동계급의 포섭과 배제를 통해 모순과 위기를 극복해 오면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적 과잉생산의 위기와 노자대립의 적대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현시기 자본주의는 금융자본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을 전세계적으로 지배하는 시장경쟁의 논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으며 전세계를 심각한 불평등구조 속에 고착시키고 안정화시키는 최후의 생존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념, 체제, 전략 밑에서 착취, 억압당하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민중은 그 근본체제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주・객관적 조건하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노동계급 앞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를 과감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분쇄하는 것이 21세기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과제이다. 우선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 번째, 제국주의 사이의 패권경쟁이 신자유주의 밑에서 억압받고 고통 당하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민중을 분할하여 복지제도의 혜택 속에 안주하는 선진 자본주의의 노동계급과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제3세계 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러한 경향은 반미라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착종되어 유럽의 초국적자본과 연대를 도모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연동되는 민족주의의 장벽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실험의 실패 이후 야만적 민족주의의 발흥과 이와 결합된 초국적자본의 세계적 관철을 목도한 바가 있으며 이미 오래 전 파시즘의 등장과 세계전쟁을 통한 자본주의 생존전략을 경험했다. 민족주의가 민족해방의 역사적 긍정성을 상실한 채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지배전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계급모순과 성모순 등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가로막는 역사적 경험과 계급환원론의 편협한 이해를 극복하는 일이다.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에서 가족의 해체, 성의 공유 등이 실패했던 사실이나 자본주의에서의 성 억압구조가 계급착취와 착종되는 파시즘적 심리구조의 지배의 합리화 현상은 계급철폐와 무관한 성해방이나 지속적인 성해방적 실천이 없는 계급해방이 오류였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조선(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세계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속에 조선(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이 내포되어 있다. 포스터는 세계사회주의운동사 제53장 식민지세계의 혁명(1945-49년)의 ⌈여타 아시아국가에서의 혁명⌋ 단락에서 조선이라는 두 글자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위대한 식민지혁명은 중국과 인도뿐만 아니라, 그 광대한 지역의 모든 나라를 그 뿌리로부터 뒤흔들었다. 즉 인도지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미얀마, 실론, 조선, 태국, 티베트 등이 그러한 나라들이었다. 일본인은 진주만 이후의 대원정에서 그들 나라의 거의 대부분을 짓밟았지만, 그것은 강력한 민족해방운동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무력투쟁이 개시되었고, 조선과 인도지나에서 2개의 큰 전쟁이 일어났다.”(포스터, 제2권, 271쪽) 사회주의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연구까지도 억압당해 왔고 또한 억압당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보편적 흐름과 맥을 잇는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복원해내고 비판적 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사회주의자와 사회주의 연구자의 임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사 연구가 한국현대사의 이성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기반을 제공하고 통일역사학 수립의 전제라고 하는 성대경은 이성적 재구성을 역사인식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고 토론을 통해 수정되거나 진화될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맑스주의가 사상・문화사에 미친 영향을 외면하고서 이성적인 식민지시대사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성대경, 2000, 6-7쪽) 그런데 이러한 걸음마 단계의 사회주의사 연구가 현존사회주의 붕괴 이후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보는 윤대원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사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 세 가지 견해로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민족해방 운동사의 한 구성요소를 해명함으로써 그 전체상을 밝혀낸다는 일반적 의의. 둘째, 민족해방운동의 주체는 노동자, 농민을 핵심으로 하는 식민지 민중이며, 이들 안에는 공산주의적 사상과 노선이 지배적으로 관철되었다는 것. 셋째, 현실분석을 위한 유용한 차원보다 순수한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보는 입장이라고 정리하고 있다.(역사학연구소, 1997, 14쪽 각주 4) 이와는 다르게 사회주의운동을 통사적 차원에서 민족주의운동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기보다는 사회주의운동의 일방적 우위 내지는 타당성을 강조한다고 비판하는 자유주의계열의 견해도 있다.(권희영, 1999, 23쪽)
지금까지의 한국의 사회주의운동사 연구가 1920년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민족해방혁명과 사회주의와의 연관을 규명하는데 있다고 보며 이 시기는 특히 소련을 중심으로 한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는 역사학연구소는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의 재정립을 위하여 시급히 재검토되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문제로서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계기 및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분화과정을 해명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운동이 한말의 민족운동의 단절이 아니라 연장선이라는 점에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역사학연구소, 1997, 17쪽), 둘째, 전위당(조선공산당)의 문제로서 식민지 조선의 주・객관적 조건에서 볼 때 당의 조직과정이나 공산주의운동은 ‘위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인데, 향후 전위당에 대한 연구는 계급투쟁과정에서 대중이 계급적 주체로 형성되는 과정에서의 당의 역할 그리고 한계를 규명해야 한다는 것(20쪽), 셋째, 대중운동과의 관계문제로서 대중운동이 처한 주・객관적 조건은 물론 그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실천과정에서 지향하는 탈자본주의적 제 경향을 연구 분석해야 한다는 점(21쪽), 넷째, 분파문제로서 당의 무오류성이나 이론의 절대성과 같이 당에 대한 비과학적이고 신화적인 인식을 전제로 한 분파문제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비판, 그리고 과학적 혁명이론에 대한 문제를 도덕적, 개인적 책임론과 품성론으로 접근해 온 소모적 논쟁의 극복(24쪽), 다섯째, 통일전선운동 문제로서, 통전전술 대상인 민족부르주아지에 대한 평가(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일제의 식민정책 아래에서의 민족부르주아지의 존재양식과 물적 토대에 대한 엄밀한 분석), 그리고 코민테른 7차대회에 관련된 문제로서, 스탈린 이후의 러시아 민족주의의 강화의 산물이라는 지적과 인민전술의 ‘반인민적성격’에 대한 비판(25-27쪽), 여섯째, 코민테른과 한국공산주의 문제로서, 코민테른의 지도가 갖는 현실적합성과 그것을 우리 현실에 적용해 간 주체들의 창조성을 해명하는 것(28쪽) 이라고 보고 있다.
1920년대 이후의 사회주의운동사를 연구해 온 연구자들의 좌담을 개최한 진보평론은 2001년 가을 9호에서 몇 가지 소주제를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주로 연구자들은 사회주의운동사 연구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관계, 국가형성과 정치운동의 전망, 대중운동과 사회주의정치 등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으며 변혁론과 국가건설론 그리고 국제연대에 대한 관심으로 모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진보평론, 414-455쪽).
상대적으로 해방 전후 시기(미 군정기를 포함하여)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물론 앞으로의 연구의 주요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료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사료 자체가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분단이후 북한은 사회주의운동사를 당사로 대체하고 있다. 당의 역사는 당으로 모든 권력을 수렴하기 위하여 설정된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북한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이는 별도의 연구과제로 분리 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주의운동은 궤멸되거나 비합법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고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과 같은 운동으로 표현되어 탄압을 받았다(이 시기의 역사 역시 보완되어야 할 과제이다).
4. 1980년대 이후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사회주의정치운동의 역사는 분단으로 단절된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남한사회의 변화발전과정 속에 계승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 세력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 광주 민중항쟁을 거쳐 87년 6월항쟁, 7-9월 노동자 대투쟁, 90년대의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 IMF 관리체제 이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정치)운동이 계급운동과 만나 어떻게 계급투쟁을 전개시켜 왔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80년대에 혁명적 사회주의운동 세력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기반은 다음과 같다(오세철, 2001, 124쪽). “우선 유신 이후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남한자본주의의 재편과 성장이라는 필연적 역사과정 속에서 자본과 군부파시즘에 의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구조화되었고 일반민주주의의 억압(대의민주주의, 대통령직선제)으로 형상화되었다. 두 번째는 혁명의 동력이 지속적 대중투쟁을 통하여 형성되고 기층민중과 혁명적 인텔리(특히 학생)의 연대투쟁이 축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광주 민주항쟁을 경험하면서 계급적 관점에 의한 역사해석과 전략수립에 적합한 맑스-레닌주의와 반미자주통일에 의한 분단극복전략에 적합한 주체사상의 집중적 세례가 있었고 학생 출신의 인텔리들이 노동현장에 들어가 사회주의운동을 조직화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80년대 이후 나는 1995년까지 사회주의정치운동세력에 대한 개괄적 분석을 하기도 하였다. 그 연구는 계급투쟁의 관점을 올바르게 견지하면서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정치투쟁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예비적 시도였으며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조직은 사회주의 노동당을 지향하는 비합법조직과 반합법조직으로서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0년 동안의 기간에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정파로 한정하였고 평가의 시각과 관점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결합이라는 계급투쟁의 관점을 견지하려고 하였다(오세철, 2001, 122-138쪽). 1995년 이후 우리는 노동계급의 정치투쟁과 더불어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다. 이러한 투쟁에 사회주의운동세력의 분화와 재편이 계속되고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이념과 원칙을 계승하는 투쟁은 성장・발전하고 있다. 적어도 2005년 정도까지를 중간기점으로 잡고 한국의 사회주의정치운동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이를 정리하는데 몇 가지의 서술원칙과 분석과제를 제시하기로 한다.
첫째로 역사의 평가와 서술은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사상원칙과 세계혁명의 전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살핀 바와 같이 혁명적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연대 속에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가 사상투쟁의 대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약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과 연대가 공존하는 이념적 지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또한 세계 사회주의운동에서 차지하는 무정부주의는 훨씬 약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분단 이후 북한의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적 조류는 스탈린주의와 착종되기도 하면서 정파를 형성했으며 혁명적 사회주의의 보편적 법칙과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세계사회주의운동에서 민족주의는 설 자리가 없지만 아직도 우리는 진보적 민족주의의 형태가 존재하는 특수성이 있고 이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보편성 속에서 엄밀하게 평가되어야만 한다. 또한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언명 속에 다분히 스탈린주의의 잔재가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검증되어야만 한다. 복잡한 이념적 지형의 얽힘 속에서도 끊임없이 잡다한 수정주의와 포스트류의 맑스주의와 투쟁하고 민족주의적 조류와 투쟁하는 사회주의운동의 맥을 중심에 놓고 역사가 서술되었을 때만이 세계사회주의운동의 국제주의와 만날 수 있고 세계혁명의 전망을 열어 제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사회주의운동은 본질적으로 사상운동이지만 노동계급의 혁명적 실천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혁명적 실천운동을 사회주의운동과의 결합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고 서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운동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상운동과 대중운동의 접점이 형성될 때 계급적 자발성이 기계적으로 사회주의운동으로 전화되지 않고 오직 사회주의 사상과 만났을 때만이 혁명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전투성은 즉각적으로 혁명성으로 고양되지 않고 자본의 전략에 포섭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서 이들의 전투성은 온갖 수정주의 노선에 의해 가로막히고 굴절되기 때문에 대중운동에 침투해 있는 사회민주주의 사상이나 친자본주의적 진보사상과 투쟁하는 역사가 밝혀져야 하고 그 접합의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 이는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의 결합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방적 과잉결정의 역사이기도 한데 대중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사회주의관으로 대중운동을 지도하려던 시기와 반대로 성장하는 대중운동이 사회주의정치운동을 역규정하는 시기로 구분되기도 한다. 또한 혁명적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과의 올바른 결합을 가로막는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와의 투쟁도 중요한 평가지점이다.
셋째로 사회주의운동의 역사 속에서 특히 정치운동의 역사는 당 건설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위당 또는 전략당 건설의 문제는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보편적인 주요 과제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트주의적 당관이 지닌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면서 혁명적 실천을 가능하게 할 당(정치조직)을 어떤 조건과 경로로 건설할 것인가가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이와 관련한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의 사회주의정치운동사를 서술하는 것은 중요하다.
넷째로 정파와 분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에서의 사회주의정파의 형성은 자본과 국가와의 투쟁에서 비합법적 활동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학맥과 인맥을 기반으로 한 가족주의적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상노선과 정치노선 그리고 조직노선에서 차이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가족주의의 틀과 종파적 폐쇄성 속에 갇혀있다. 이는 사회주의운동의 단결과 연대를 저해하고 대중운동과의 결합도 약화시킨다.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앞으로의 사회주의운동의 발전과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 필요하다.
다섯째로 사회주의운동세력의 국제적 연대운동 역시 중요한 분석과제이다. 특히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전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흐름과 만나게 되고 이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건설에 대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전망도 밝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맑스주의자들의 국제연대 뿐만 아니라 실천적 사회주의자들의 연대를 포함하고 있다.
여섯째로 1980년대 이후의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하여 공식자료, 회의록, 성명서, 전단 등의 모든 문건, 재판기록을 수집하고 주요 사회주의자들과의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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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학연구소(편),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현황과 전망⌋, 아세아문화사, 1997.
5.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혁⌋, 현장에서 미래를, 2001.
6. 윤대원,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역사학연구소 편,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현황과 전망⌋, 아세아문화사, 1997, 13-37쪽.
7. 이정희, “볼세비끼 사회주의와 노동자관리(Worker's Control)운동 1917-21”,
서울대 박사논문, 1998.
8. 좌담 “한국 사회주의운동사,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진보평론⌋, 9호 2001년 가을.
9. 포스터, W. I., ⌈세계사회주의운동사 I, II⌋, 동녘, 1987.
외국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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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1960", Doctoral Thesis, Univ. of Wisconsin-Madison, 1984.
2. Kellner, D.(ed.), ⌈Karl Korsch: Revolutionary Theory⌋,
Austin: Univ. of Texas Press, 1977.
3. Mattick, P., ⌈Anti-Bolshevik Communism⌋, N.Y.: M. E. Sharpe, 1978.
4. Smart, D. A.(ed.), ⌈Pannekoek and Gorter's Marxism⌋, London: Plato, 1978.
(오세철,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박종철 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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