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시트로앵 투쟁이 보여준 파업위원회의 역동성
지난 수년 간 이른바 ‘무늬만 파업’이 거듭되어 왔다.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에서 느꼈던 희망과 기대감은 종종 절망과 회의감으로 바뀌곤 했다. 교섭 위주 프로그램, 일방적인 지시와 동원으로 점철된 일정은 파업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무기력만을 남겨줬다.
‘무늬만 파업’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가? 푸조-시트로앵 파업의 경험은 관료적인 파업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작년 4월부터 6주간 프랑스 올네 공장에서 전개된 푸조-시트로앵 파업은 처음에 10명의 조립라인 노동자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곧 라인가동 중단으로 확대됐고, 주간조 야간조 모두가 참여하는 파업으로 발전했다. 파업이 끝날 때까지 전면적으로 합류한 노동자는 500여 명을 넘나들었다.
이들은 파업기간 내내 현장의 모든 노동자를 설득하기 위한 순회선동을 펼쳤다. 또한 푸조-시트로앵의 다른 공장, 연관 부품사업장, 더 나아가 다른 업종 공장까지 방문하며 활력 있는 연대투쟁을 조직했다.
투쟁의 중심에 선 파업위원회
이 파업의 정점에 ‘파업위원회’가 있었다.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100명으로 구성된 파업위원회를 선출했다. 핵심 파업노동자가 500여 명이었으므로, 다섯 명 당 하나씩 대표를 세운 셈이다.
파업위원회는 일상적인 노조체계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어떤 직책을 맡고 있었는가, 대의원인가 아닌가, 어느 노조에 속해 있었는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화 시기에 적합했던 통상적인 노조체계는 투쟁 시기에 적합하게 재편되어야 했다. 파업위원회에 참여하고 싶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참여해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보통 노조관료들은 현장노동자를 일방적인 명령과 동원 대상으로만 여긴다. 관료들에게 다수 노동자를 논의와 결정에 참가시킨다는 것은 ‘귀찮고 피곤하며 비효율적인’ 일일 뿐이다. 더욱이 파업위원회처럼 관료체계를 뒤흔들 조직이 등장하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푸조-시트로앵 노동자들은 100명(나중에는 더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다)의 파업위원회를 통해 명실상부한 집단적 지도력을 만들어냈다. 파업위원회는 투쟁계획 전반과 더불어 파업기금, 문화제, 여러 시위를 조직했다.
노동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다
여기서는 가장 사소한 문제부터 가장 중요한 문제까지 모든 것이 함께 토론되었다. 가령 매일 아침 파업위원회 이름으로 도장을 찍을 ‘파업카드’를 만들자는 제안, 징계하겠다고 협박하는 사측의 편지, 파업위원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사측에 대한 대응, 어제의 투쟁이 낳은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 내일의 계획 등이 다뤄졌다.
하루에 두 번 열린 파업위원회의 토론내용은 모든 노동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총회가 열렸다. 따라서 파업노동자들은 총회안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모든 문제를 토론하며 파업노동자 전체가 진정한 투쟁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했다. 기층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 파업은 곧 나의 파업’이라고 느꼈으며, 바로 여기에서 투쟁의 활력과 역동성이 자라났다.
푸조-시트로앵 노동자들은 이 파업위원회를 ‘파업의 학교’라고 불렀다. 관료들은 이러한 ‘파업의 학교’를 세우는 것을 한사코 회피하면서 투쟁동력을 죽인다. 그러고 나서는 ‘동력이 부족하다’며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파업의 학교를 제대로 세우기만 한다면, 현장노동자들은 늘 활력과 헌신으로 응답한다. 푸조-시트로앵 파업이 이 진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