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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부정 - 자본주의가 학생들을 이토록 망가뜨렸다!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 선배의 빛나는 입시성적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친구 타도에 이바지할 때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무시하고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찍기의 힘과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 눈치 빠른 학생으로서 남의 실패를 모아 줄기찬 배타주의로 명문대에 입학하자.”
오래 전에 유행했던 이른바 ‘우울한 고교 교육헌장’이 최근 수능부정의 흐름을 타고 다시 유령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이 교육헌장이 비꼬고 있는 교육현실이 2003년 말에는 학생들의 잇단 자살을 불러왔다. 똑같은 현실이 2004년 말에는 현재까지 140여 명이 연루된 대형 부정행위를 낳았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어린 학생들에게 자살 아니면 범죄행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을 바라보는 각 계급의 태도는 확연하게 다르다.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각 계급의 태도는 어떠하며, 왜 그런 태도가 나오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희생양 처벌에 몰두하는 자본가계급
자본가정부는 SK텔레콤, KTF 등으로부터 2억 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넘겨받아 시험시간대에 오고간 메시지들을 집중 분석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구속함으로써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감독관 추가 배치, 전자 검색대 및 전파 차단기 설치, 주변기지국 폐쇄가능성 검토, 몸수색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부정행위를 막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수능 부정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제껴 둔 채 그 결과만을 없애겠다는 가엾은 태도다. 수능 부정은 왜 발생했는가? 어느 학생이 말했듯이 “수능 날 하루가 인생의 반 이상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대박’을 바란다.”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서울대 등 소위 일류대를 가서 명예,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의 지배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게 열리는 반면, 낮은 점수를 받으면 그 지배층 아래에서 평생토록 지루하고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 문턱에서 지배층으로 올라갈 발판을 마련하거나 무한경쟁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학생들의 열망은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 계급 사회가 조장하고 이용하며 부추기는 구조적인 것이다. 계급적 불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계급적 위계질서를 합리화하는 제도가 바로 시험제도다. 이 제도는 사회를 이끌어갈 소수와 그들을 따라야 할 다수를 그럴듯한 절차를 거쳐 분리시킨 뒤, 이 무지한 다수가 소수의 교육받은 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입시제도에서 과외나 학원 등등의 좋은 교육환경을 갖춘 부르주아 아이들은 당연히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노동자계급 가정의 아이들은 경쟁에서 불가피하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만의 하나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이 이 경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이들은 자본주의 하에서도 노동자가 상층 계급으로 도약할 수 있고, 그러므로 계급 분열은 각각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위장시키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 토대 위에서는 입시제도는 자본주의를 따라다니는 불가피한 제도다. 당연히 시험부정 행위를 해서라도 출세 행렬에 끼려는 유혹이 자라나게 된다. 이런 유혹은 자본주의 사회가 기본적으로 부정과 뗄 수 없이 연결된 사회라는 점에서 더욱 증폭된다.
따라서 자본가정부가 아무리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을 가혹하게 하더라도 시험부정을 없앨 수는 없다. 이것은 사형제도로 살인죄를 막지 못하고, CCTV 설치로 범죄를 막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가정부가 강남지역에 설치했던 CCTV를 수도권, 전국으로 확대 설치하여 범죄단속을 강화하려 해도, 생계난을 못 이기거나 이 사회가 조장하는 한탕주의의 포로가 된 범죄자들은 CCTV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훨씬 더 지능적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결국 범죄를 더욱 교묘하게 만들 뿐,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본가정부가 수능시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부정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몇 년 뒤면 연필에 컴퓨터가 장착되고, 책받침으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올 것인데,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자본가정부가 수능시험 부정행위자를 엄벌하고자 하는 것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얄팍한 술책일 뿐이다. 자본가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들어 문제의 근본을 감추면서 자기 목숨을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 수능 부정 고교생들은 ‘희생양들’에 불과하다. 그들을 낳은 심각한 계급불평등과 학벌사회 자체에 비판의 화살을 더욱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야 한다.
부정의 사회적 뿌리를 보지 못하는 소부르주아들
소부르주아들은 소상인, 소농민의 삶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대단히 협소하다. 이들은 그런 계급적 특성 때문에 본질이 아니라 피상적 현상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 가운데 대단히 후진적인 일부는 수능 부정이 ‘핸드폰 같은 정보통신기술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핸드폰에 장착된 디지털 카메라로 시험지를 찍어 보내면 밖에 있는 ‘해결사’들이 문제를 풀어 답을 전송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따위의 구체적인 현상에만 주목한다.
그래서 핸드폰은 문자 메시지, 일정 관리, 게임, 음악 저장 및 감상, 카메라 등 우리 생활 전반에 많은 유익함을 주지만 동시에 각종 상업광고 전달, 수능 부정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고 대단히 평면적으로 주장을 나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문제는 핸드폰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상업적, 자본주의적 이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부정을 낳은 뿌리 깊은 사회적 토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부르주아들은 ‘도덕불감증’이 부정의 원인이라고 보고, 대안으로 ‘도덕재무장’ 캠페인을 벌인다. “커닝한 A보다 정직한 C가 낫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전국기독교학생연합회와 일부 대학의 총학생회가 벌이는 캠페인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학생들의 양심을 믿고 ‘감독이 없는 시험’을 추진해보는 것도 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사례들은 입시성적이 돈과 권력, 계급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적이고 정직한 시험제도’가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을 불어넣는다.
소부르주아들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있다. 그들은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고통을 겪기에 자본가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단결 투쟁하여 가진 자들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처지 때문에 소부르주아들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에 쉽게 빠져드는데, 이런 태도는 다른 사회문제들에서도 지배계급과 그 체제의 희생양들을 동시에 비슷한 비중으로 비판하는 양비론적 태도로 이어지곤 한다. 그들은 학벌사회, 한탕주의 사회풍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더라도 양비론을 펼침으로써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흐리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두리뭉실한 태도밖에 취하지 못한다.
수능부정은 자본주의가 낳은 자식이다
수능부정의 근본원인은 계급적 불평등 사회, 즉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어디에서나 심각한 계급적 불평등이라는 치명적 모순을 안고 있다.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2달러(2400원 정도)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며(약 30억), 1달러(1200원 정도)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도 세계 인구의 1/4 정도에 이른다. 그런데 한줌도 안 되는 억만장자들이 부를 독점하며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남한에서도 죽어라도 일해도 한 달 월급을 채 100만원도 못 받는 노동자가 700만 명에 이르지만, 재벌들은 한 달에만 수천억 원이 넘는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부자와 빈자 사이의 골은 아주 깊게 패여 있다. 계급은 철저히 세습되고 있다. 자본가의 자식은 다시 자본가가 되며, 노동자의 자식은 역시 노동자가 된다. 교육은 모든 인간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문구’와는 달리 계급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형식적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자본가, 부자의 자식들이 좋은 사교육을 받아 서울대나 일류대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고, 노동자, 가난한 자의 자식들은 대학문턱에도 가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이른바 삼류대, 지방대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쨌든 수능시험은 아무리 형식적일지라도 모든 학생들에게 ‘출세의 기회, 대박을 맞아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한다. 이런 “형식적 기회”마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단히 드문 기회이다. 따라서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도 이런 기회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가진 자들의 아이들에게는 널려 있는 기회이지만,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갈수록 더욱 좁아지는 기회일 뿐이다. 과외나 학원, 조기 교육, 좋은 집안 교육 환경 조성 등등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점을 간단히 승인할 것이다.
게다가 ‘부정’을 해서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만능주의는 사실 자본주의가 매일 조장하는 것이다. ‘노동자 착취’라는 부정을 통해 매일 거대한 부의 성채를 쌓는 자들이 바로 자본가들이다. ‘노동악법’과 ‘친자본 법률’로 매일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자본가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끊임없이 ‘부정’의 유혹을 받는다. 상황의 주범은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인 것이다.
부정과 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연적인 ‘일탈’행위가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제반 영역에서 참된 주인이 되는 노동자세상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수능 부정과 같은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계속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임시방편으로는 안 된다
이번 수능부정과 같이 교육제도의 병폐가 나타날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국가가 교육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대학이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게 하자’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선발권을 전적으로 대학에 맡긴다고 해보자. 그렇게 되면 대학은 지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본고사 부활을 전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 경우 고등학생들은 ‘서울대반’, ‘연대반’, ‘고대반’ 등으로 미리부터 서열화된 반에 나뉘어 들어가서 입시공부를 해야 할 것이며, 본고사를 대비한 맞춤형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공교육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한 대학자율권 강화는 기부금 입학제를 곧바로 현실화시킬 것이다. 연세대는 20억 원을 기부하는 사람의 자녀에게는 입학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려는 기부금 입학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기부금 입학제가 실현되면 대학은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입학할 수 있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훨씬 더 심화될 것이다.
수능의 비중을 대학을 입학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정도만 판단하는 자격고사 수준으로 낮추고, 고교 내신을 강화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학교 간, 지역 간 학력격차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보는 대학에서는 똑같은 전교 1등이라도 어느 학교 1등이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것이며, 그래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떤 방식으로든 고교등급제를 계속 실시할 것이며,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다.
고교등급제(고교서열화)가 강화되면 좋은 등급의 고등학교(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등)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시험부정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내신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만큼 시험 부정은 수능시험 시간이 아니라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일상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세상만이 시험부정을 없앨 수 있다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이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험을 통해 그 소수의 대열에 뽑힐 수 있는 기회를 기만적인 형식으로 제공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시험부정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
이런 시험부정은 평등과 차별, 무한경쟁과 이기주의 대신 평등과 협동, 공동체정신에 따라 움직이는 새로운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아니 부정행위만이 아니라 ‘공정한’ 제도라는 형식 아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분리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시험제도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소수의 엘리트를 선발하는 데 들러리로 동원되어 스스로 원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은 시험공부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노동해방 사회에서 학생들은 획일적으로 국영수 과목을 달달 외우는 대신,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창의적인 학습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학습은 단순히 삭막한 콘트리트 건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배운 것을 현실로 옮겨보는 노동과 결합되고, 개성을 자주적으로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놀이와도 전면적으로 결합될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꿈이나 공상이 아니다. 비록 스탈린 반혁명에 의해 자본주의 시험제도가 부활되긴 했지만,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을 때 바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해낼 수만 있다면, 그 과거는 어두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미래를 비추는 밝은 등불이 될 것이다.
학벌 사회 폐지는 계급 사회 폐지다
대졸 노동자와 고졸 노동자들 간의 임금, 승진 차별을 철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것, 모든 청년들에게 원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 더 나아가 부와 권력을 (가령 학벌이 좋은)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리고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통제력을 대폭적으로 강화하는 것 등이 자본주의 안에서라도 노동자계급이 추구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다. 일류대를 나오지 않더라도, 아니 아예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며, 사회정치적으로 소외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일류대에 진입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걸고 부정을 저지르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학벌철폐는 대학평준화와 맞물려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학평준화는 곧 개성을 말살하는 획일화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들은 말살당할 ‘개성’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의 대학들은 모두 ‘취업학원’에 다름없으며, 자본과 정부가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획일적인 ‘노동력 양성소들’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토플, 토익 공부에 매달리고 있고, 고시와 취직시험 교재를 달달 외우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조건에서만 고등학생들은 상품가치가 높은 좋은 대학간판을 따기 위해 일류대를 찾고, 인기학과를 선호하는 대신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과와 대학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학벌사회 폐지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낳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대학생들은 취업준비 외에는 학문을 깊이 있게 탐구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학력수준이 대단히 떨어진다. 영어단어와 시사상식을 열심히 외우는 것은 풍부한 정신적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을 단순한 암기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일 뿐이다. 전자사전이나 인터넷 등을 활용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내용들을 암기하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몇 년을 허비하게 만드는 이 사회는 ‘거대한 낭비체제’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학벌구조가 없고, 서열화가 철폐된 다음에는 학생들이 오로지 진정한 학문 탐구에 전념함으로써 학력이 대폭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인터넷과 같은 뛰어난 기술을 활용해 풍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활발하게 의견교류를 함으로써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학문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능부정이 노동운동에 던지는 물음
한국에서 유난히 교육열이 강하고, 입시경쟁이 치열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노동운동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사회에서 노동자민중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자본주의 계급질서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해방 직후 이런 노동자적 방식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은 소부르주아적 방식, 즉 ‘자식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꾸며 교육열을 불태워 왔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갑자기 5조원을 마련해서 자동차 공장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죽어라고 공부해서 부르주아 상층으로 변신(가령 검사, 의사)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지만 그럼에도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단지 1%도 되지 않는 그런 희박한 가능성이다. 그러나 99%의 확실성으로 노동자의 권리 상승을 보장하는 노동운동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그 만큼 1%의 가능성의 매력은 커진다.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운동의 힘과 입시지옥은 반비례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운동이 고양됐던 시기에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해방을 쟁취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다시 가졌다. 이 시기에 소부르주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자식교육에 목을 매는 경향이 강했지만, 적어도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이 약화되는 것만큼 ‘자식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소부르주아적 꿈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시작해서 다시 노동자들의 뇌리를 파먹어 들어오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입시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녀의 입시교육에 매몰되면 될수록 노동운동은 그만큼 병들어갈 것이며, 노동운동이 병들어가는 만큼 노동자의 자녀들은 입시경쟁의 희생양이 되어 자살과 부정행위의 늪으로 끌려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과도한 교육비’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가령 노동운동이 강해서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전한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의 생계비 지출 항목에 ‘교육비’ 항목이 아예 없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학년수당이 나오며, 대학도 장학금까지 타면서 다닐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병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서도 지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관문인 일류대를 가기 위한 경쟁이 나름대로 치열하며, 경제력 격차에 따른 교육격차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의 교육제도는 한국의 교육제도에 비한다면 분명히 한발 앞서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과거 프랑스 노동운동, 더 나아가 유럽 노동운동의 강력한 투쟁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제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굳건한 단결과 강력한 투쟁을 통해 심각한 계급적 불평등과 차별의 질서를 날려버리고 평등과 연대, 진정한 자유의 새세상을 열어제끼겠다는 꿈을 되살려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이런 꿈을 갖고 힘차게 전진할 때만 학생들을 시험부정의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비인간적 상황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다.
따라서 수능부정은 노동자계급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미래를 짊어져야 할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동생들이 자본주의에 의해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뜨려지고 있는 모습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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