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묻지마 연대’, ‘묻지마 당건설’이 노동자계급 정치의 진로를 교란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직도 ‘ 사회주의 노동자정치 ’ 가 아니라 고작 ‘ 진보정치 ’ 인가 ?
최근 이른바 진보대통합에 관한 여러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난무하고 있다. 다음의 두 흐름은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이다.
진보대통합, 진보대연합, 진보재구성 …
먼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덧붙여 국민참여당과 창조한국당까지 포괄하는 개념의 ‘진보대통합’ 추진이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진보신당 정종권, 국민참여당 김영대, 창조한국당 유원일 등 4당의 대표적 인사들이 참여하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그 대표주자다. 6.2 지방선거에서 사퇴 파동을 일으켰던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다가올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거대 보수야당 민주당과 대등한 협상을 벌이려면 4개 군소야당이 먼저 힘을 합해야 한다는 철저한 정치공학적 노선이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반MB연대’ 몰두를 비판하며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세력이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공개적으로 ‘진보재구성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 대안 실현을 위한 노동자 민중 중심의 진보대연합’을 제안한 김세균 교수가 그 대표주자 격이다. 사노준 회원인 김세균 교수는 6.2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고,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는 사회당 금민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 등을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내건 진보대연합의 한 흐름으로 묶어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반MB연대와 진보대통합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진보대통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을 통해 노동자운동 속에서 진보정당 운동, 즉 개량주의 노동자당 운동의 정통성과 권위를 회복하고 재구축하려는 (주로 민주노동당의) 시도를 대표하는 구호였다.
하지만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많은 것이 변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 대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반MB연대에 사실상 올인했다. 그리고 반MB연대라는 ‘민주대연합’이 현실정치에서 거둔 성공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수야당부터 진보정당까지 수많은 ‘정치지망생’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꿈을 강력하게 아로새겼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반MB연대는 그야말로 ‘묻지마 연대’였다. 집권 10년 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반노동자 정책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도 없고 민주노동당 수준에서나마 민주당과 정책적 차별성도 드러내지 못한, 철저한 민주당 이중대 노선이었다. 당연히 민주대연합을 하더라도 진보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은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평가와 문제제기가 새롭게 꿈에 부푼 진보적 정치지망생들의 공통 화두가 됐다.
그래서 이제 ‘진보대통합’은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민주대연합’을 비판하며 ‘진보정치의 지분을 챙기는 또는 진보정치의 독자성에 입각한 민주대연합’을 주창하는 이들이 주로 내거는 구호가 되었다.
‘개량주의 진보정치’인가, ‘사회주의 노동자정치’인가?
친노세력, 즉 자본가 정치세력의 일부까지도 ‘진보세력’이라 말하는 ‘진보대통합’은 사실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반MB연대, 민주당 이중대 노선의 변형판일 뿐이다. 이처럼 자본가정치 대 노동자정치라는 근본 경계선마저 무시하는 세력들은 노동자 정치운동에서 하루라도 빨리 축출돼야 마땅하다.
그들에 비하면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세력은 그래도 최소한의 건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대신 신자유주의만을 반대하는 ‘진보정치’, 자본가들의 소유권과 이윤 논리에 정면 도전하는 노동자 대중투쟁의 발전 대신 이러저러한 복지정책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진보정치’,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전제로 한다고는 하지만 민주당과의 또 다른 연합 가능성을 열어 놓는 ‘진보정치’가 과연 노동자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IMF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자본주의 모순이 매우 심화되는데도 한국의 노동자정치가 광범한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희망으로 서지 못했던 것은 ‘보수야당의 이중대 노릇을 하는 개량주의 진보정치’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보수야당으로부터 독자성을 말하더라도 개량주의 진보정치 자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의 노동자정치가 겪었던 정체와 퇴보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오늘 한국의 노동자정치가 붙잡아야 할 깃발은 더 이상 자본주의 아래서 선거를 중심으로 개량을 추구하는 ‘진보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혁명을 추구하며 노동자 대중투쟁의 거침없는 발전을 책임 있게 선도하는 ‘사회주의 노동자정치’여야 한다.
[양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