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현대차 전주공장 노동자들(사진=한겨레)
전주공장의 원하청 연대투쟁은 더욱 거센 흐름으로 전진할 것이다 !
[현대차 전주공장 투쟁평가]
투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었다
작은 싸움이었지만,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던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해고분쇄 투쟁이 마무리되었다. 고속버스 라인의 UPH 조정에 따른 비정규직 18명 해고방침에 맞서 한 달 간 지속된 원하청 연대투쟁이 마무리된 것이다. 사측은 3월 19일로 예고되었던 계약해지 통보를 유보하고 은밀하게 업체별 희망퇴직 인원 선정에 들어갔고, 결국 비조합원인 18명의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해 함께 싸우자’는 원하청 동지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원을 제출했다. 가시적 결과만 놓고 생각한다면 사측의 완승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사측이 제시했던 단기계약직 제시안을 수용하는 것이 낫지 않았겠느냐’고. 그러나 계급투쟁의 진정한 성과가 어디 단기적인 성과에 의해 측정되었던가? 단기적, 가시적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는 계급의 연대질서이며, 승리했건 패배했건 원칙을 지키는 투쟁은 진정한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수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전주공장 <위원회소식 19호>는 다음과 같이 사측의 단기계약직 제시안을 재차 거부한 바 있다. “사측이 낸 제시안은 18명의 업체정규직을 단기계약직으로 재고용하겠다며 3개월 또는 6개월 한시적으로 고용한 후 조용해지면 내보내겠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으며,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지금의 투쟁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투쟁은, 패배했을지라도 더 큰 투쟁의 밑거름이 된다. 전주공장 투쟁은 비정규직 18명의 해고저지 및 원청 사측의 고용보장 확약을 내걸고 진행된 투쟁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생산타격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원하청의 연대질서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은 비정규직 조직률의 증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전주공장 투쟁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전주공장 투쟁을 되돌아보고, 이후 나아갈 바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전진을 위한 평가
2월 23일 제출된 사측의 비정규직 계약해지 방침으로 시작된 24일부터의 비정규직지회 출근투쟁을 시작으로, 3월 2일부터 원하청이 함께하는 출근투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한 달 간 진행된 출근투쟁에는 평균 150가량, 최대 180가량의 인원이 참가했고 이것은 임단투 시기의 참가인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투쟁이 본 궤도에 오르며 출근투쟁대오는 시계탑을 넘어 본관까지 이어졌고, 악천후에 상관없이 한 달 간 지속되었던 출근투쟁은 전체 현장에 비정규직 해고분쇄를 위한 생산타격 투쟁의 기세를 알려내고 정당성을 각인시키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 3월 3일, 11일의 중식집회에 350에서 400여명이 참가했고, 18일의 중식집회에는 지역 연대대오 200명을 포함한 600명이 결집했다. 3월 5일, 12일, 19일 진행된 3차례의 전 공장 잔업거부는 정규직 연대의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했고, 3월 13일, 20일 2차례에 걸쳐 진행된 비정규직지회의 특근거부 투쟁이 벌어졌다.
울산 2공장 등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가시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시점이었고, 그런 시점이니만큼 자본은 호락호락 양보할리 만무했다는 것을 인식한 상태에서 시작한 투쟁이었다. 비록 가시적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전주공장 투쟁은 비정규직 우선해고가 당연한 것처럼 행해지고 있던 현대차 현장에, “싸워야 한다! 싸울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더군다나 사측이 단기계약직을 제시한 상황에서 원하청이 이를 거부하고 함께 싸웠던 것은, 쌍용차 이후 지속된 침체일로 상황에서 투쟁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투쟁의 주체였던 동지들은 말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전국적으로 이슈화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직면한 전선의 후퇴를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진지한 성찰과 모색을 가능케 할 것이다.
물론, 이 투쟁에도 비판적으로 평가할 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가자! 노동해방> 49호에 언급했던 버스부 대의원회의 UPH 인원협상 종료라는 한계(합의서에 비정규직 고용문제에 대한 조항 없음)가 있었으나, 투쟁 과정에서 더욱 중요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늦게 시작된 비정규직 동지들의 주체화다. 초반의 투쟁이 정규직 동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2월 23일 사측의 해고방침 발표 이후 3월 5일의 1차 전 공장 잔업거부 돌입까지, 그리고 1차 잔업거부 이후 최소한 일주일간의 국면에서 정규직 주도의 투쟁이 이어졌다. 11일 전주공장위원회 의장 및 대의원대표들의 간담회에서 2차 잔업거부가 결의된 시기까지, 비정규직지회는 생산타격투쟁을 결의하지 못했고, 3월 12일 출근투쟁에서 비로소 토요일 특근거부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비로소 비정규직 동지들이 투쟁의 주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동지들의 1차 특근거부 이후 비정규직의 자체 동력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정규직에 기댄 투쟁이라는 우려를 상당부분 불식시키며 비정규직 동지들의 주체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주체화가 빨리 이루어졌어야 한다. 정규직의 1차 잔업거부가 결의된 상황임에도 비정규직지회가 명확한 전술이 없는 상태로 투쟁의 초반 국면을 보낸 것은, 현장의 동요를 틀어막고 투쟁을 더욱 확산시키는 것을 상당부분 제약했다.
둘째, 집단가입운동의 문제다. 비정규직 해고를 자행하는 사측에 맞서 공세적 집단가입운동을 벌여내자는 것은 정규직에 의해 먼저 제출되었다(첫 번째 평가지점과 연동된다). 이는 승리의 열쇠였고 투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비정규직의 투쟁력확대라는 핵심적 성과를 남길 수 있는 전술이었지만, 원하청 공동의 집단가입운동은 전면화되지 못했다. 원하청 소식지를 통한 비정규직의 집단적 조합가입 촉구 및 6개 현장제조직의장단 명의의 촉구성명이 수차례 제출되었지만, 실제로 공세적 집단가입 운동은 벌어지지 못했다. 물론 비정규직 조합원수는 10명 이상 늘어났고, 이것은 투쟁의 성과였다. 그러나 정규직의 연대라는 방패가 있는 상황에서 집단가입 운동이 전면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늦게 시작된 비정규직 동지들의 주체화’라는 첫 번째 평가지점과 연동되는 동시에 다음의 평가지점과 연동된다.
셋째, 원하청의 긴밀한 논의-협력구조가 부재했다. 물론 공동의 모색은 있었지만, 그다지 긴밀하지는 못했다. 특히 3월 23일, 사측이 18명이 모두 희망퇴직서를 제출했다고 통보했을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긴밀한 논의구조 속에서 실제로 18명이 누구인가를 공동으로 확인하는 작업부터 벌였어야 했다. 공식적 투쟁체가 없는 상황에서, ‘18명이 모두 나갔다’는 사측의 통보는 일순간에 주체들을 아득한 피로감 속으로 떨어지게 했다. 사측의 통보가 전달된 즉시 원하청 공동의 회의를 소집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했으나, 투쟁 전반에서 긴밀한 전술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이 시점에 공동의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명단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친 것은, 이미 현장에 ‘18명이 나갔다’는 말이 퍼진 뒤였다. 사측은 당연히 18명의 희망퇴직자 명단을 확인시켜주지 않았고, 원하청 주체들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이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통보 이후 2~3일간, 실제로 18명의 희망퇴직자가 나왔는지는 불명확했고, 이것은 투쟁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현장에 이미 18명이 나갔다는 이야기가 퍼진 상황에서 정규직 상무집행위원회 방침으로 결정된 4차 잔업거부와 확대간부 이상의 특근거부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나가며가 아닌, 나아가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투쟁은 분명 많은 것을 남겼다. “비정규직이 날아가면 공장장도 날아간다!”고 당당히 선언한 전주공장 투쟁은, 정규직의 해고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의 해고 또한 살인이라는 것을 현장에 각인시켰다.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 조직률과 투쟁력이 증가했고, 투쟁이 마무리된 지금에도 비정규직 조합가입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원하청 동지들은 이후에도 공동으로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현대차 전주공장 동지들의 투쟁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전주공장의 모든 동지들에게, 사회주의자의 경의를 표한다. 동지들, 더욱 큰 투쟁을 준비하자! 반드시 다시 올 불법파견 철폐의 그날로 뚜벅뚜벅 진군하자! (이진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