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선진노동자,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 전투적 조합원들의 힘을 조직하자!
지난해 11월말, 철도 투쟁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 진행되었다. 구조조정과 단협 해지 등 노동자 탄압에 대한 철도노동자들의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8일간의 철도파업은 강점과 약점 모두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강점은 철도 파업 역사상 최고의 참석률이었다. 필수유지업무 요원으로 파업명단에서 빠진 조합원들이 상당수였음에도, 파업대오는 사상 최대치에 가까웠다. 참석률은 90%에 달했다. 몇 년 동안 전개된 파업에서 불참했던 상당수 조합원들이 이번 파업에는 참가한 결과였다.
약점은 무엇이었던가? 이번 파업은 반쪽짜리 파업(필수유지업무 요원은 파업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비필수유지업무 요원은 파업 참가가 허용되는 파업, 이하 ‘필공파업’)이었다. 철도노조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투쟁을 제한했다. 준법투쟁은 철도 파업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강점과 약점 모두가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준법투쟁이란 약점은, 과거 파업에서는 불참했던 후진적 조합원들까지 큰 부담없이 파업에 참가할 수 있는 강점으로도 나타났다.
현실을 직시하자!
이것은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 합법적 필공파업은 전투적 조합원들의 힘보다는 후진적 조합원들의 참여에 의지했다. 물론 파업은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기본 요소로 하기 때문에 후진적 조합원들까지도 포괄해야만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한된 인원인, 소위 비필수인원만으로 파업에 나서야했기 때문에, 파업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지켜내기 위해선 ‘후진적 조합원’들의 참여에 불가피하게 의존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합법이라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해법으로 작용했다. 다가올 구조조정과 단협해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과 파업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수의 비필수자들에게 ‘파업에 나가도 합법 투쟁이므로 큰 피해가 없다’는 확신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에 노조지도부는 공을 들였다. 그것은 최소한 파업 참가자 수의 증가라는 점에서는 이번 파업에 대단히 유효했다.
둘째, 다른 각도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점검한다면, 법을 준수하는 필공파업은 전투적 조합원 부위를 약화시켰다. 최근 몇 번의 파업에서 선두에 서면서 철도노조와 파업투쟁을 지탱해왔던 전투적 조합원들의 40% 가량이 필공파업전술로 인해, 파업 기간 동안 현장에 남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종합하자면, 이번 필공파업은 일부 후진적 조합원들의 참여와 일부 선진적 조합원들의 불참을 맞바꿔치기 했다. 대차대조표는 무엇일까?
대차대조표
파업의 중핵으로 선봉에 서야 할 선진적 조합원층마저 완전히 결합시키지 못한 파업, 게다가 상황이 탄압국면으로 바뀌면 금방 동요할 가능성이 높은 후진적 조합원층에 의존하는 파업은 엄청난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이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감지하고 있던 노조지도부는 탄압국면이 시작되고 후진적 조합원 부위의 동요가 시작되자 바로 파업을 접었다.
투쟁을 합법투쟁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파업 종료 후에도 위원장 출두, 파업 유도에 관한 진상조사단, 법원에 파업 적법성 인정 요구 등 ‘합법파업’을 인정받기 위한 부분에 중심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후진적 조합원 층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징계 위원회 대리 참석 등에 역량이 과도하게 실리게 되었다. 반대로 철도노조를 민주화시키고, 불법굴레를 뚫고 소중한 파업들을 여태껏 밀어왔던 전투적 조합원 층을 결속해 현장투쟁으로 반격을 조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핵심 과제
부당한 징계에 맞서 조합원들을 대변하는 것은 이후 3차파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장활동가들이 현장의 크고 작은 투쟁의 기운을 확산시키고 불씨를 만드는 작업보다는 징계위원회에서 조합원들을 대변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금 철도 상황은, 특히 재파업을 밀고나가기 위해선 전투적인 조합원층을 투쟁으로 결속하는 것을 핵심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권과 허준영 사장은 우리의 투쟁이 아무리 합법임을 주장하더라도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수많은 장치들을 갖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2차 필공파업을 법원은 쉽게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합법으로 인정해주더라도, 정부는 법개정을 통해 ‘필수유지업무 요원의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의 효력을 반감시키는 갖가지 합법적 장치’들을 동원할 수 있다.
합법 파업에서도 참가 조합원 전체가 징계를 당했기 때문에, 보다 전면적인 파업 투쟁에 나서기 위해선 선진적 조합원층의 단결과 결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징계위원회 출석투쟁과 같은 수세적 대응을 넘어서서 현장투쟁을 통한 공세적 전진까지 이뤄질 때, 선진적 조합원들의 자신감과 결의는 비로소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후진적 조합원들이 징계 앞에 위축되지 않고 2차 필공파업에서처럼 파업에 전면적으로 참가하겠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 그래서 2차 필공파업의 강점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3차파업을 준비하는 것도 그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철도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