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 혁명정당이라는 전제가 없는 '공동전선'은 실제로는 인민전선으로 귀결된다 (사진=오마이뉴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서 점점 멀어지는 ‘다함께’
≪레프트21≫은 10월 31일자로 “사노련 - 종파주의로 고립되고 초라해지다”라는 온라인기사를 발표했다. 그 기사는 그간 논점이 됐던 다함께의 민주당과의 타협 문제를 은근슬쩍 뒤로 밀어내고, “개혁주의 단체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다함께와 사노련 간 논쟁의 진정한 쟁점”이라고 바꿔치기했다. 그러고 나서 사노련의 태도는 ‘개혁주의 단체들’을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주된 투쟁 대상으로 여기며 적대시”하는 종파주의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이명박 정부와 동일시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굳이 반론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공상소설’ 스토리 가지고 토론할 자리는 아니다. 그나마 다함께 동지들이 강조하는 공동전선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다. 나는 혁명정당이 노동자계급의 압도적 다수를 자기편으로 획득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세우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다함께가 레닌과 트로츠키의 주장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1922년 프랑스의 계급투쟁과 공동전선 문제를 다루면서 다음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당은 분명한 강령과 엄격한 내부규율을 갖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조직으로 남아 있어야만 오직 이것[다수 획득]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이 당이 노동자혁명을 염원하지 않는, 혁명을 위해 대중을 준비시킬 능력도 없고 열망도 갖고 있지 않는,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으로 이것을 멈추게 하는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중도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분리했어야만 했던 이유다.”(<공동전선에 대하여>)
옳게도 여기서 트로츠키는 공동전선전술을 통한 다수대중 전취의 전제조건으로 ‘개량주의 정당으로부터 정치적 조직적으로 분리한 혁명정당 창건’을 말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데, 이런 전제조건이 구비되지 않는다면 공동전선은 개량주의, 중도주의와의 연합노선으로 전락해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의 독립성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때만 공동전선전술이 개량주의자들의 강화가 아니라 노동대중의 투쟁력 강화와 연결해 혁명적 사회주의를 강화(물론 다른 한편으론 개량주의자들의 영향력 약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혁명정당이 개량주의 정당으로부터 명확한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공동전선은 허풍쟁이들의 말장난으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트로츠키는 같은 글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만약 공산당이 철저하게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사회민주당과 분리하지 않았다면, 그 당은 아직 노동자혁명의 당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 당은 혁명으로 가는 길에서 첫 번째의 진지한 발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산주의 ABC의 첫 글자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노동당 등의 사민주의 정당과 “철저하게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 다수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의미 있는 규모의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공동전선을 앞세워 오랜 기간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며 민주노동당 강화정책에 나서고 있는 다함께는 공동전선의 참된 의미를 파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동전선을 말하고 있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서 공동전선전술의 첫 글자도 모르면서 떠벌이는 것에 불과하다. 다함께는 공동전선을 빙자해 혁명정당의 독립성을 부정하며 개량주의 세력과의 동거를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다함께가 말하는 공동전선(독립적 혁명정당이라는 ‘주어’가 빠진 공동전선)은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자본가당과의 전술적 제휴를 인정하는 인민전선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개량주의 세력의 행보에 대해 말로는 ‘인민전선 반대, 공동전선 찬성’이라며 비판하지만, 실천에서는 다함께 선원들이 탑승하고 있는 개량주의 호(민주노동당)의 행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개량주의 정당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량주의 정당을 근본에서는 지지하고 그것의 성장을 염원하면서 활동하는 기회주의 노선이 공동전선 문제에서 반드시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필연적 행보다. 개량주의 정당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개량주의 정당의 성장에 기생해서 성장하기를 꿈꾸며, 개량주의 세력을 ‘개혁주의 세력’과 같은 그럴듯한 단어로 치장해주는 데 골몰하는 종속노선을 유지하는 한 다함께에게는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와 같은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훨씬 큰 세력을 갖고 있고, 바로 그들이 속해 있는 정당인 개량주의 정당의 영향력이 공동전선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현 시기에 잡다한 개량주의 운동에 기생하고, 심지어 자본가당과 전술적으로 손잡는 것을 인정하는 노선을 채택하는 것은 사노련의 ‘초라한’ 독립적 혁명정당 건설운동보다 화려해보일 것이며 손쉬운 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의 화려함을 얻기 위해 독립적 혁명정당 건설과 이를 통한 진정한 공동전선 수립의 기회를 절대 팔아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당장 왜소해지더라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 말고는 장기적으로 진정한 성공을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연홍
[아쉽게도 지면의 제약 때문에 여기서는 많은 이야기를 건너뛸 수밖에 없다. 사노련의 이론지 ≪사회주의자≫ 5호에 실린 “공황과 자본주의 쇠퇴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망과 정치조직들의 대응”이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