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퇴진 - 쇼를 걷어치우고 삼성을 몰수, 국유화하라!
[2008년 4월 30일자 기사]
삼성특검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신문과 TV뉴스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이 ‘대통령 퇴진’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파이낸셜뉴스>는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삼성을 “더 이상 흔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망언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삼성특검은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과 딱 들어맞는다.
소문 난 잔치
삼성특검은 그 규모에서 역대 최대였다. 무려 255명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1만4천개의 계좌를 추적했으며, 수사기록이 2만5천 페이지나 된다. 특검을 통해 일부 밝혀진 사실도 있다. 4조5천억의 은닉재산. 1,128억원에 이르는 세금포탈.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이건희 회장에 대해 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를 간단히 묵살했다. ‘국가 안의 국가’라는 삼성의 권력이 여실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경영쇄신안을 내세우며 이건희 회장이 물러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동시에 ‘또 하나의 6·29선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열기를 무마하기 위한 떡고물로 군사정권이 기만적인 양보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두고 ‘대외적인 연극 조치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폭로
24일 MBC ‘100분토론’에 나온 김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도 이건희 회장이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결재를 한 적은 없었고 항상 구두로 전달하기만 했다.” “내가 삼성에서 일하던 동안 이건희 회장이 출근한 적이 거의 없다. 나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는 식···.” “사장단도 별로 하는 일이 없다. 회의하면 모여서 강연 듣고 가는 게 전부 ··· 아무나 해도 되는 일···.”
여기에는 자본가체제의 중대한 비밀이 감춰져 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사장들은 기업과 경제가 돌아가는 데에서 있으나마나 한 자들이라는 점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결국 오늘날 자본가라는 집단이 얼마나 쓸모없는 자들인가, 그리고 그런 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란 얼마나 불합리한가에 대한 폭로가 되었다. 어차피 출근도 안 하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그러므로 명백히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는다.
탁월한 경영능력?
자본가들과 그들의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칭송하면서 더 이상 삼성을 괴롭히지 말라고 울부짖는다. 나름대로 증거도 제시한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이끌었던 20년간 17조원이었던 매출은 152조원으로 늘었다. 수출은 9억 달러에서 663억 달러로, 무려 73.7배나 증가했다. 삼성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 수준이며, 한국 전체 수출의 21%를 담당하고 있다. 정말이지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탁월한 경영능력’이란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것이다. 평택에 있는 삼성코레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생리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계단청소를 하기도 했다. ‘1초관리’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고 조금만 오래 걸려도 핀잔을 주며, 매달 그 시간의 통계를 내 게시판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삼성SDI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대규모 정리해고의 희생양이 됐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자 ‘교통안전 기초질서 및 사내청결’ 따위의 명분으로 회사 앞 집회신고를 내면서 투쟁을 방해했다. ‘삼성 무노조정책’의 상징인 회유, 감시, 협박, 미행, 성추행 등이 어김없이 뒤따랐다.
삼성 핸드폰 밧데리를 제조하던 군포의 쎌콤에서는 생산직 노동자 전원이 정리해고 당했다. 쎌콤에서 10년 근무한 노동자의 월 통상임금은 68만원밖에 안 됐다. 그런데도 이들이 정리해고 당한 이유는, 삼성이 부품 생산단가를 더 낮추기 위해 하청을 중국으로 이전시켰기 때문이다. 삼성의 눈부신 성장이란 이렇게 잔혹한 착취 즉 현장통제, 비정규직화, 저임금, 정리해고, 노조탄압 위에 이룩된 것이다.
노동자 착취․ 탄압 죄
이건희 회장은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다”며 퇴진했지만, 그가 떠안은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자본가들은 떡값로비, 비자금조성, 세금포탈, 경영권세습 등으로 덧칠된 범죄집단이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죄목은 따로 있다.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은닉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벌금을 내고, 경영권세습을 중단하고, 그 결과 이른바 경영쇄신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 값을 다 치를 수 없는 그들의 죄목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 착취․ 탄압 죄’다!
자본주의 시스템 위에서 이루어지는 특검이 자본가들을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삼성특검은 답이 빤한 놀이를 했을 뿐이다. ‘경영쇄신’과는 다른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다른 답이 나오려면, 답을 찾는 주체가 달라져야 한다. 변호사, 특검, 시민단체가 아니라, 저 자본가들에 의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길거리고 쫓겨나는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은 기만적인 ‘경영쇄신’에 만족할 수 없다. 모든 착취의 내역을 밝히기 위한 장부공개와 영업비밀 철폐, 재벌 몰수·국유화를 통해 저들이 확실히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