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정치, 무엇을 붙잡아야 하나?
[2008년 4월 17일자 기사]
18대 총선이 끝났다. 본질적으로 볼 때 부르주아 선거란 ‘누가 노동자 민중을 지배할 것인가’를 정기적으로 결정하는 장치다. 돈과 언론, 선거 제도 등이 일방적으로 자본가들과 부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노동자계급의 힘은 의회나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선거는 어느 정도는 노동자계급이 현재 형성한 힘들, 그리고 노동자 의식의 수준을 반영한다. 또한 노동자 정치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붙잡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창이 될 수는 있다. 18대 총선 결과는 그 점에서 음미할 가치가 있다.
낮은 투표율
당선 의석수만 따지고 본다면, 우파 세력들의 약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고 있다. 전체 의석의 2/3를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국민들의 지지율은 투표율 46%를 감안할 때 한나라당의 경우, 유권자 대비 18%, 우파 세력 전체를 합하더라도 유권자 대비 26%에 불과하다. 17대 총선에 비해 15%나 급락한 46%에 그친 총선투표율은 선거의 대표성에 대해 부르주아 언론들 스스로가 문제시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17대 대선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당시 투표율은 대선 사상 최저인 63%였다. 이명박이 획득한 전체 득표수 1149만 2389표는 노무현이 득표한 1201만 4277표에 비하면 52만여 표나 적은 것이다. 전체 유권자수가 2002년 대선 때보다 무려 266만여 명이나 늘어났음에도 말이다.
명백히 최근 이명박과 한나라당,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비롯한 우파 세력들의 약진과 영향력 확대는 현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들에 대한 지지는 통상적인 지지도를 결코 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국민 대비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불과 4달 전 대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1/3이, 친박연대를 포함하더라도 대략 1/6이 기권함으로써 이탈하기 시작했다. 진정 급속도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것은 선거에서 기권하는 층, 즉 어떤 세력도 지지하지 않는 층이다. 대안이 없기에 당장 움직이지는 않지만, 현 정치세력들에 대해 불신하고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대중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몰락
이런 현상은 통합민주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더 급격하게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가파르게 낮아지고 있음에도, 총선 결과는 통합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득표율은 15대 대선시 득표율에 비해 1% 하락했고, 유권자 대비로 계산하면 8% 이상 하락했다.
이것은 ‘한반도 대운하 정책’이나 ‘거대 여당 견제’ 등의 부르주아적 쟁점으로 선거에 임했던 통합민주당에 대해 대중들이 한나라당에 비한 어떠한 본질적 차별성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대중들이 통합민주당에 대해 키워왔던 거대한 분노를 반영한다.
한나라당은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통해 집권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 때문에 어부지리로 집권했을 뿐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커질 때, 그러나 그 분노를 표출할 적절한 정치적 대안을 발견할 수 없을 때만 통합민주당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재기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말이다. 본질적으로 볼 때, 한나라당과 대동소이한 계급적 기초 - 자본가 정치세력 - 를 갖고 있는 통합민주당에게서 다른 가능성은 없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패배
이명박과 한나라당으로부터 대중의 이탈 시작, 통합민주당의 왜소화와 몰락 앞에서 성장할 수 있는 거대한 기회를 잡았던 세력은 바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을 덮쳤던 지지율 하락의 망령은 이 정당들까지 집어삼켰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비례대표 8석을 안겼던 13%의 정당득표율에 비해, 민주노동당 5.7%, 진보신당 2.9%의 형편없는 성적이 이를 반증한다. 이 득표율은 낮은 투표율을 감안한다면, 사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대략 절반 정도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지지했음을 뜻한다. 특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던 울산의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이는 거대한 패배라 할 만하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대중들은 결코 이 정당들을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지지했던 대중들의 절반이 이탈해버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민주노동당 분당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는 대선에서의 참패의 결과물일 뿐이다. 17대 대선에서 참패를 낳았던 바로 그 원인이 이번 18대 총선에서도 패배를 불러왔다. 그 원인은 “열린우리당의 2중대 노선”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정책, 계급투쟁 노선”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탈계급화된 정치노선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모두 통합민주당과 똑같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고 ‘거대 여당 견제’에 호소했다. 이것은 통합민주당과의 차별성을 희석화시켰다. 인기 연예인을 동원한 부르주아 선거 방식을 그대로 채용했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제 철폐, 민영화 반대와 노동자 산업 통제 등의 계급투쟁적 쟁점을 점화시키기는커녕 녹색 정치와 같은 탈계급적 쟁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선명한 계급적 대치선은 실종되었다. 기권이란 방식 말고는 다른 저항 수단을 알지 못하는 대중들, 비정규직 제도와 실업, 해고위협과 저임금에 신음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간직한 조직된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로 통합시키며 정치적 열정을 불어넣는 사활적인 실천들이 방기되었다.
그 대신 민주노동당의 몰락, 분당 사태를 초래했던 “열린우리당의 2중대 노선”, 즉 열린우리당(현재는 통합민주당)의 빈자리를 열린우리당의 정책들을 약간 급진적으로 손보는 정도로 대체하려는 낡아빠진 노선이 그대로 집행되었다. 특히 진보신당의 경우, 일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까지 성사시키려 안간힘을 다했다.
이것들은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더 심각하게 허물어뜨렸다. 노동대중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게서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염증을 단결과 투쟁이란 긍정적 대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적 대안을 간절히 희망했던 노동대중들의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하고, 기권으로 퇴각해버렸다. ‘열린우리당 2중대 정도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기권하겠다’가 그들의 의지였다.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살리는 길
민주노동당의 경우, 그나마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의 대중조직과의 연결성이 있었기에 체면치레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계급적 기반조차 팽개치고, 연예인들의 유명세나 특정 후보의 대중적 인기 등에 의존했던 진보신당은 성장의 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것이 보여주는 교훈이 있다. 노동대중은 삶의 공간에서, 즉 작업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하고 노동대중의 절실한 계급적 요구들 정면으로 대변하고 정치적으로 승화시키며, 노동자 투쟁을 헌신적으로 이끄는 세력에게서만 희망을 발견한다.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의 전투를 제대로 전개할 수 있는 세력만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패배는 이 가장 평범한 진리를 포기한 결과다. 다만 진보신당보다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덜 했을 뿐이다.
노동자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담아내고 정치세력화를 진정 일궈낼 세력은 그들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맡기는 이상, 한국 노동자계급은 18대 총선의 패배를 더 큰 규모로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투쟁에 헌신하고,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혁명적으로 실천하는 노동자 당만이 그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18대 총선이 지시하는 나아갈 바이다. 이것을 집행하자!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