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지들을 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중, 이해남 평전, <당신은 나의 영혼>을 읽고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랬던 만큼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샀고, 짬짬이 시간을 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책은 나를 곧바로 야만의 세원테크 공장으로, 격렬한 투쟁의 현장으로, 그리고 처절하게 고뇌하는 열사한테로 데리고 갔다.
벌거벗은 야만적 착취
“시급은 고작 2160원”이고, “군대처럼 조회를 서고, 고등학생들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실습생, 연수생이랍시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1명이 2~3명의 몫을 감당해야 하고, 전환배치를 수시로 강요당하며”, “날마다 2-3명이 다쳐 나가고”, “일이 너무 고되 안 나가고 3개월 버티면 인간승리”인 그야말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민주노조가 없을 때, 즉 노동자들의 통제가 없을 때 자본가들의 탐욕이 어디까지 치닫는지를 세원테크 노동자들은 이 책에서 자기 입으로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살아움직이는 노동자투쟁의 정신
민주노조를 만들고 나서부터는, “프레스가 쿵쾅쿵쾅, 로봇이 철커덕철커덕, 용접 소리가 피융피융”하던 숨 막히던 침묵의 공장은 노동자의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 찬 해방구로 바뀐다. 사측이 노조 간부를 불러내 협박하면, 예전엔 고분고분했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득달같이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금속노조 최초의 지부총파업을 지역노동자들과 함께 이끌어내고 2000명이 몰려와 공장을 점령한 용역깡패들을 몰아낸 다음부터 세원테크 노조는 연대투쟁의 모범이 됐다. “지회장은 입버릇처럼 ‘연대가 생명’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간부들만이 아니라 조합원들까지 달려갔다.
마침내 공장을 점거했을 때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 됐다. “타인에 불과했던 노동자들은 목숨 건 투쟁 속에서 운명도 함께하는 동지들이 되어” 끝내 건설할 ‘가장 아름다운 노동해방 공동체’의 싹을 보여주었다.
‘탄압의 백화점’과 열사의 고뇌
세원테크 노조는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려고 분투했다. 그런 만큼 자본가계급은 어떻게 탄압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려고 발악했다. 노조파괴 전문가를 고용했다. 그 전문가들은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짜고 어용세력을 육성해 노동자들을 분열의 늪으로 몰고 갔다. 손배 가압류가 20억 가까이 떨어졌다. 악랄하게 탄압해서 이현중 열사를 다치게 만들더니, 방치해서 죽게 만들었다. 노조 간부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구속했다. 폭력경찰의 군홧발이 파업현장을 짓밟았다. 현대차, 기아차 원청 자본은 물량 이원화를 통해 파업을 무력화했다.
자본가들이 ‘하나의 계급’이 되어 똘똘 뭉쳐 탄압했던 반면, 노동자들은 쪼개졌다. 세원테크 노조는 결사투쟁의 의지를 가졌지만 소수 노조가 됐다. 충남, 대구 등 지역 동지들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연대하긴 했지만, 기아차, 현대차 노조 관료들이 연대투쟁을 회피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투쟁하지 못해,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자 이해남 열사의 쓰라린 고뇌는 점점 깊어 갔고, 결국 분신을 통한 개인적 항거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른다.
열사의 정신으로 치열하게 살아가자
투사들에게 “오늘 하루는 열사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자본과 정권이 겹겹이 쳐놓은 두터운 장벽을 깨부수기 위해 이해남 열사에게 부끄럽지 않게 치열하게 고뇌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이현중 열사처럼 맑은 눈으로 모순투성이 자본주의 사회를 꿰뚫어보고 있는가? 착취와 억압, 분열의 장벽을 산산이 허물어뜨릴 계급적 단결과 연대, 비타협적 투쟁, 노동해방 정치투쟁의 무기를 제대로 벼려내고 있는가?
<당신은 나의 영혼>은 노동자투사들이 쉽게 읽고, 진하게 감동받을 수 있는 훌륭한 노동자문학이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노동자 전투교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사의 산화 이후에 벌어진 투쟁을 거의 다루지 않고,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의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노동자운동의 도도한 물결에 대해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하다. 물론 이 아쉬움을 해소하는 건 ‘과거를 기록’한 작가의 몫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개척할’ 우리 노동자계급 전체의 몫이다.
두 열사는 우리들의 머리 속에 빛나는 별로, 가슴 속에 뜨거운 불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김형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