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프, 레미콘 ｜ 껍데기뿐인 승리가 아니라 속이 꽉 찬 승리를 위해
전국 건설현장의 90%를 세우며 6월 16일부터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의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만여 명이 훨씬 넘는 덤프 노동자들, 그리고 소수지만 조직적 여건이 열악한 굴삭기·레미콘 노동자들도 참가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차라리 죽여라” 노동자의 함성이 대학로를 뒤덮었다. 이제 파업투쟁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파업의 장기화로 인해 조합원들이 지쳐가고 있고 조직력이 약한 지역과 현장이 조금씩 구멍이 뚫리고 있다.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이 미미하지만 물꼬는 이미 트였다. 덤프 노동자들은 각 지역의 도청, 시청, 도시개발공사, 국토관리청, 발전소, 건설현장 등에서 집회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을 계속 틀어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고 민주노총 파업집회와 촛불시위에 지속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파업 12일차를 맞고 있는 6월 28일, 앞으로 일주일이 이번 파업의 결정적 고비가 될 것이다.
임금삭감 없고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지난 5월 1일 발표된 표준임대차계약서는 ‘1일 8시간, 1개월 200시간’을 기준으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유류비는 건설사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너무나도 늦은 8시간 노동제를 건설자본이 거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건설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쥐어짜서 벌어들였던 막대한 이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표준임대차계약서(8시간 근무, 유류지급)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운반비를 대폭 깎아버리려 한다. 이 문제가 지금 현장에서 교섭이 진행되는 경우에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대형 건설자본은 10시간을 고수하며 유류비 부담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을 따내더라도 임금삭감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날마다 뛰는 기름값을 부담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임금과 다름없는 운반비를 대폭 인상시키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은 알맹이는 쏙 빠진 채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운반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한 탕, 한 시간에 목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뛰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지금처럼 적자 살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물러설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표준임대차계약서 현장 정착 문제가 간단한 것처럼 보여도 어려운 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적 이해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 자본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고, 우리가 강력한 투쟁으로 맞받아치는 현장에서만 한 발 물러서고 있다.
물러서지 말고 투쟁의 고삐를 바짝 쥐자!
정부는 우리가 3년간에 걸친 투쟁으로 쟁취한 표준임대차계약서 실행을 방치하다가, 파업을 시작하자 실태조사, 이행실적 보고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투쟁 전환 이후에도 표준임대차계약서의 체결은 전무했다. 상황 타개를 위해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요구가 올라왔고 지도부는 다시 한번 대정부투쟁, 끝장투쟁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정부는 다시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건설사에게 인센티브를 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건설자본은 ‘배째라’ 식이고 발주처가 정부 산하공사들인 공사현장의 책임 회피 역시 여전하다. 관급공사에서 경유 직접 지급이 지켜지는 곳이 있는가? 고속도로, 도로, 철도, 대규모 주택, 토지공사 현장에서의 표준임대차계약서 체결의 열쇠는 바로 각 정부기관이 쥐고 있는데 이곳에서 돌파구가 열리고 있지 않다. 정부의 말뿐인 대책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현장투쟁과 더불어 과감하게 대정부투쟁을 펼쳐야 한다. 현장을 사수하는 투쟁 역시 힘든 조건이지만 정부와 싸우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헤아리고 과감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얼마 전 정부가 구성하겠다고 한 노사정 협의체 “건설기계 현장 선진화 태스크포스팀”은 독약 바른 미끼에 다름 아니다. 국토부 건설정책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대한건설협회, 전문건설협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가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풀어갈 것 같은가? 만일 현장에서 핵심적 문제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협의체에서 추후 논의하자며 파업을 조기 종결한다면 표준임대차계약서는 엉망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관급공사 현장에서, 그리고 핵심 대형건설 자본에게서 노동시간 단축과 운반비 현실화를 쟁취해야 하고 이것이 압도적인 흐름이 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장투쟁의 흐름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그 흐름을 대정부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정부를 강하게 두들겨서 무릎을 꿇려야 한다. 현장별, 지역별로 연대투쟁을 강화하자! 촛불시위에 적극 결합하고 이명박 정부 퇴진을 위해 투쟁하자! 지난 6월 24일 스스로 목을 맨 인천건설기계 김상만 조합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
이남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