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대의원대회 참관기
"하느님이 주신 선물 좋아하다간 조합원들이 다 죽어요"
정기대의원대회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미 08년 평가 중심의 현장대의원 발의안과 09년 경제위기에 맞서 “비정규직우선해고 중단 ․ 양보교섭임금동결 반대 ․ 노동법개악 저지 ․ 재벌 사유재산 환원 고용안정-노동자살리기 투쟁본부(안)”이 현장발의 된 상태였다. 게다가 기타 안건으로 이홍우 동지 투신사태를 다룰 것이 제출되었다. 정갑득 의장은 먼저, 최병승 대의원 외 31명이 기명한 이홍우 투신투쟁에 대한 기타 안건 상정을 “조합원의 일이니 중집에서 꼭 다루겠고, 영남노동자대회는 추진 중이니 믿고 맡겨 달라”며, 원활한 진행을 위해 철회해 줄 것을 관철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대의원 대회를 쥐락펴락 했다.
“GM대우 의견접근안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
현장발의안의 08년 평가는 주로 중앙교섭에 집중되었다. 정갑득 위원장은 “GM 의견접근안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까지 극찬한 반면, 현장발의안 제출 대의원들은 중앙교섭을 포기하게 만든 GM 의견접근안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현장발의안은 모두 패배했다. 위원장은 세 번에 걸쳐 GM 의견접근안을 수용할 것을 강제했다. 투쟁을 바로 앞두고, 투쟁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위원장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투쟁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과연 GM 의견접근안은 07년 확약서와 다른 효과가 있을까. 위원장은 장담했다. 확약서와 다르게 의견접근안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변호사 의견까지 들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과연 완성차 4사의 대자본이 구속처벌 규정조차 없어진 부당노동행위가 두려워 교섭에 적극 응할까라고 본다면 절대 ‘아니 올시다’이다. 생산에 대대적인 타격을 가해 교섭에 끌어내든지, 아니면 금속자본의 요청처럼 산별노동조합의 교섭과 투쟁을 포기하든지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란 없어 보인다. 07년, 08년 금속노조는 교섭을 위해 투쟁을 포기해 왔다. 아니, 확약서, 의견접근안이라는, 교섭도 아닌 것을 얻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했다. GM 의견접근안은 07년 확약서와 마찬가지로 투쟁을 교란시켰다. 아니, 투쟁을 회피하고 싶어 했던 금속노조 위원장의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위원장은 “늘 현장동력, 투쟁동력이 없어 할 수 없다”와 “100% 쟁취하는 교섭과 투쟁 없다”는 말로 모든 평가에 분탕질하거나 회피해 왔다. 금속노조를 인정받아야 하는 중앙교섭조차 이렇게 회피한다면 금속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재점화 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철회
평가와 사업에서 또 다른 쟁점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철회 요구다. 220번 대의원이 한 발언을 속기록을 통해 다시 들어보자. “나는 민노당 당원이었다. 건설 시부터 열심히 했다. 민주노총이 만든 당이라 가입했고 민노당이 노동자의 문제를 우선 다룬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데 당을 탈당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만든 당임에도 노동자, 민중의 문제를 먼저 다루지 않고 민족의 문제 남북의 문제 미국과의 문제를 우선으로 다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 명의 당원 중 절반이 탈당했다면 금속노조의 정치사업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료의 ‘당’은 아마 민노당인 듯하다. 진보신당, 최근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사노련 등 여타 다른 세력들의 당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치사업도 변화해야 한다.”
몇 명의 대의원들이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민주노동당 중심의 정치사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연달아 비판했다. 정갑득 의장은 두 가지 교묘한 수로 피해 갔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게 단결을 호소하고 이를 듣지 않는 쪽은 지지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모으자는 말로 말이다. 이 얼마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비겁한 행위인가. 두 가지 논리는 민주노총의 지침을 금속노조로부터 바꿔나가자는 대의원들에게, 정치적 선택권을 돌려달라는 조합원들에게 다시 민주노동당으로 통합해 배타적 지지를 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사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220번 대의원은 이어 “핵심은 민주노총의 주요부대는 금속이고 시대적 조류가 당 사업 관련 변혁을 요구받는다. 09년에는 구조조정 위기의 해이다. 이 시기의 정치사업은 가장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장 쉬울 수도 있다. 09년 정치사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정당과 함께할 수 있는 방식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그렇다. 모든 정치세력들은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갖고 실천 검증을 해야 한다. 어느 세력은 어렵고 두려워 할 것이다. 그러나 단연코 사회주의 세력은 세계경제위기가 가져다 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 속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사회주의 세력이라면 지금처럼 좋은 기회란 없다. 단지 배타적 지지 철회가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기치로, 현 정세에 조응하는 혁명강령과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으로 무장하고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투쟁으로 나서야 한다. 모든 수정안이 부결되었지만 그나마 배타적 지지 철회안은 40% 넘는 높은 찬성을 얻었다.
말도 없는 주간연속2교대 평가
08년 완성차 4사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 평가는 나오지도 않았다. 단지 535번 대의원의 “주간연속2교대. 현재 이미 내년1월부터 시행한다고 되어 있고, 9월~ 만약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위원장은 “올해 현자지부 단협이 있다. 단협 내에 넣을 것. 단체협약 할 때 안을 삽입해서 하는 등의 방식. 지부 차원의 위원회 구성되면 활발하게 해서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있게 하겠다. 전주 일거리가 없어 쉬고 있는 형편. 주간연속2교대 당겨 시행 가능할 수도. 단 임금보전은 작년보다 불리한 입장”이라는 의견 표명이 전부였다. (속기록). 금속노조로서는 완성차, 부품사,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 임금, 획기적인 노동조건 변화를 꾀할 주간연속2교대에 무기력하게 대응해 온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아니, 올 초 요구안 확정 대의원대회에서 정기우 대표발의 현장발의안이 제기한, 투쟁동력 있는 현자-기아 완성차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에 맞춰 부품사, 비정규직의 요구를 함께 걸고 투쟁할 것에 적극 반대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위기는 금융만이 아니라 모든 제조업으로 특히, 자동차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고 노동해방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방안은 대폭적인 노동시간 단축 외에 다른 방안이란 없다.
토론조차 못한 “고용안정-노동자살리기 투쟁본부(안)”
“비정규직우선해고 중단 ․ 양보교섭 임금동결 반대 ․ 노동법개악 저지 ․ 재벌 사유재산 환원 고용안정-노동자살리기 투쟁본부(안)”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장대의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단초를 보여줬다. GM대우차 대의원과 현자전주비정규지회, 하이스코 비정규지회 대의원들의 이러한 정세인식과 대안 만들기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요구가 더 공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우선해고 중단과 양보교섭 ․ 임금동결 반대를 할 수 있는 요구는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이외에 다른 방안이란 없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중앙쟁대위가 투쟁본부로 전환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현장에서부터, 투쟁 가능한 사업장들의 연대망을 짜서 공동투쟁을 계획하고 조직해야 한다.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에 기초해 과감한 투쟁조직화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무기력한 사회주의 진영의 대의원대회 대응을 반성하고, 차기 임시대대부터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을 중심으로 한 공세적인 대응을 조직해야 한다.
정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