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연속2교대 투쟁평가
현장의 분노를 모아내는 믿음직한 대안세력을 세우자!
현대차에서 2차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간신히 54%의 턱걸이로 가결됐다. 조중동을 비롯한 부자언론들은 “파국은 막았다”, “벼랑 끝 겨우 정지” 등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일제히 빵빠레를 울렸다.
“노조의 떼쓰기식 파업과 사측의 금전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노사가 타결한 협상안까지 노·노갈등의 제물이 돼 공전을 거듭” 등을 써대면서 끝까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이번 총회 결과와 주간연속2교대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가결시키려고 분열까지 조장해야 했나?
현대차 지부 집행부는 투표 직전인 9월 23일 “판매, 정비, 연구소, 일반직 관련 주간연속2교대 진실”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다음 내용도 들어 있다. “판매, 정비, 남양 및 일반직 조합원도 주간연속2교대에 맞추어 단협의 기득권을 다 뺏기고 배치전환도 회사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데 주간연속2교대 관련한 방안을 만들면서 ‘해당 부문’ 외에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해당 부문, 즉 생산직 노동자들은 그런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여러분은 그럴 일이 없으니 안심하고 찬성표를 던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단결의 구심이어야 할 노조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 성명서를 읽고 많은 현장 노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가결됐는가?
이번에도 생산직 노동자들은 반대표를 많이 던졌지만, 어쨌든 전체 투표는 가결로 끝났다. 그렇다면 가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부자언론들이 써갈기듯이 ‘돈 100만원을 더 받으려고’ 1차에서 부결시키고, 2차에서 가결시킨 것인가? 현대차 조합원들을 ‘돈만 밝히는 돈벌레’로 바라보는 것은 자본가들의 전형적 시각일 뿐이다. 돈벌레의 눈에는 모두가 돈벌레로 보일 뿐이다. 그들은 조합원들의 깊은 고통과 고뇌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조합원들이 과연 2차 합의안 부결 이후의 ‘파국’(집행부 총사퇴, 전면파업 등)을 두려워해서 가결시킨 것인가? 얼핏 보면 그래 보인다. 하지만 그런 관점도 아주 피상적인 것이다. 1차에서 역대 최고의 압도적인 반대표(2만 6252표, 61.21%))가 쏟아져 나왔다. 2차 가결율은 54%로 93년(50.07%)과 2002년(51.2%) 이후 최저다. 그만큼 잠정합의안에 대해 조합원들의 불만은 컸다. 확실한 대안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1차투표에서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안을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밀고나갈 확실한 대안세력이 없었다
그런 한계는 이전에도 계속 나타났다. 8월 18일에 주간연속2교대 야합안(의견일치안)이 처음 나왔을 때, 현장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면서 대의원들의 교섭저지 투쟁이 전개됐다. 하지만 확고한 구심이 없었기 때문에 투쟁은 차츰 가라앉았다. 그래서 결국 1주일 뒤 의견일치안 폐기 없이 교섭이 다시 열렸고, 9월 2일 거의 바뀐 게 없는 1차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9월 4일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됐지만, 마찬가지로 대담하게 총사퇴, 비대위 건설 같은 투쟁전망을 제기하면서 앞장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신뢰받는 대안세력’이 없었다. 결국 9월 22일 2차 잠정합의안이 나왔고 가결됐다. 여러 현장조직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일상적으로 현장 속에서 헌신적인 자세로 활동해 조합원들로부터 굳건한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또한 조합원들이 투쟁을 이끌 새로운 지도력을 요청할 때, 이에 즉각적이고 대담하게 응답할 실천적 세력으로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다.
따라서 뼈아픈 현실은 보수언론들이 떠벌이듯이 ‘반대세력이 너무 강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너무 약한’ 데 있다. 조합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확실한 비판세력, 선거를 통해 노조권력을 장악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싸울 수 있는 세력, 말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검증된 세력이 너무 약한 것이 이번 투쟁의 결정적 약점이다.
단사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한계는 공동투쟁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한 데에도 있다. 완성차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차, 기아차 간의 공동투쟁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별로 전환했지만 무늬만의 산별로 그쳐버렸다. 단사주의 장벽은 더욱 두텁게 쌓여가고 있다. 이런 한계는 “부품사 문제를 다루는 건 월권”이라고 했던 현대차 지부 집행부만이 아니라 현장조직들에서도 꽤 많이 나타났다. 몇몇 현장조직들이 공동투쟁에 대해 원칙적으로 주장하긴 했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서는 매우 부족했다. 조직된 완성차 정규직 운동이 좁디좁은 단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전체 노동자운동의 진정한 선봉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이번 주간연속2교대 투쟁은 잘 보여주었다.
현장은 무너지지 않았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계가 많았지만 주간연속2교대 투쟁은 중요한 성과들도 남겼다. 형편없는 의견일치안이 나왔을 때 사상 최초로 교섭저지 투쟁을 벌인 것, 1차 잠정합의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킨 것, 2차 잠정합의안에 대해서도 부결투쟁을 힘차게 벌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성과는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수개월간 투쟁의 올바른 방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현장 속에서 투쟁의 불꽃을 지피기 위해 분투해온 선진적인 현장활동가들 덕분에 가능했다.
형편없는 안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통과됐다면 자본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현장을 유린하려 했을 것이다. 결코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은 이후 투쟁을 고려해볼 때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내년도 노사관계는 더욱 암울해 보인다. 자칫하면 1년 내내 극심한 노사분규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한국경제 칼럼) 부자언론한테 절망스러운 미래는 노동자에겐 희망이다.
올해 투쟁을 발판으로 내년 주간연속2교대 투쟁과 임단협 투쟁 때는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투쟁에서 주간2교대 합의안의 독소조항, 가령 전환배치와 노동강도강화 등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이러한 예고된 공세를 분명히 알고 있는 현장조합원들은 자주적 현장 투쟁으로 반격에 나설 것이다. 또한 집행부가 현장의 요구를 저버릴 때, 노동조합의 주인인 현장노동자들은 이번 부결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비판과 통제를 더 강화할 것이다. 이번 주간연속2교대 투쟁에서 현장을 대변했던 전투적 활동가들은 부족한 점을 평가하면서, 더 위력적인 세력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관건은 투쟁의 성과를 사수, 강화하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세력을 차분히 조직해나가는 것이다. 단사의 이익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세력, 노동자의 권리를 완전쟁취하기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려는 세력, 노동자를 자본의 노예가 아닌 사회의 주인으로까지 우뚝 세워내려는 세력을 현장 속에 굳게 만들어내야 한다. 08년 주간연속2교대 투쟁이 제시한 사활적인 과제다!
김형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