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사내하청투쟁의 새로운 전망을 수립하자!
해고 반대투쟁을 넘어 노동강도 완화투쟁으로!
2004년부터 시작된 제조업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2005년부터 본격적인 파고를 올리기 시작해 최고 정점에 이르렀으나, 대략 2006년 하반기 쯤에는 대다수 사업장에서 패배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중투쟁의 두려움을 벗은 검찰은, 2006년 연말에 현대자동차·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전체에 대한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일괄 불기소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반토막인 사내하청 비정규직 사용의 불합리성은, 자본주의 논리로도 모조리 정당하다고 사기칠 수는 없었는지 사법부에서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기도 했다. 불법파견에도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된다는 2년 전 대법원 판결과, 최근 현대중공업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원청사용자책임 일부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최근 이러한 진일보한 판결들에 기초해 금속부문 사내하청노조들이 원청자본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원청사용자성 인정’ 투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원청을 상대로 직접 투쟁을 벌이겠다는 기개는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투쟁이건 정확한 전망으로 대중을 조직하지 않으면 용두사미가 되는 법이다. 어떤 전망을 제시하고 부여잡을 것인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대중투쟁이 가능했던 이유
원청을 상대로 한 사내하청투쟁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2004~2006년 사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며 대중투쟁으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정규직화’라고 하는 사내하청 대중의 열망에 대한 화답이었다. 물론 정규직화라는 열망에는 돈도 많이 벌고 정규직처럼 소비도 늘리고 싶다는 왜곡된 열망도 포함돼 있었지만, 당시 자본가들이 조합원은 배제한 채 말 잘 듣는 사내하청 일부를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는 방식의 사내하청노조 탄압을 가해왔다.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이 아니라 사측에 줄서기 경쟁이 벌어지는 조직력 와해 위기 앞에, 사내하청운동은 ‘정규직화’를 향한 투쟁적인 대안을 제시해야만 했고 그 핵심에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놓여 있었다. 비록 자본가의 법률인 파견법을 활용한 것이긴 했지만, “너희 자본가의 법에 입각해 봐도 우리의 정규직화 요구는 정당하다!”는 명분을 내걸고 대중적 조직화와 투쟁을 쳐올릴 수 있었다.
평조합원 스스로 행동하며 자신감을 높이다
둘째, 원청 사측의 불법파견 증거를 조합원들 스스로 수집하고 현장 곳곳에서 자본의 하수인들과 크고 작은 공방전 속에서 자신감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당시 활동가들이 아니라 평조합원들 스스로 불법파견의 증거다 싶으면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자료를 수집했다. 현장 곳곳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토론을 벌였고, 원청 관리자들에게 “우리한테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며 사내하청 노동자들 앞에서 논쟁과 투쟁을 벌였다. 원청의 직접 개입이라는 현실을 자본가들은 도저히 지울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투쟁을 벌이는 사내하청 조합원들의 자신감과 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언감생심 정규직화 투쟁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조합원들이 불법파견투쟁을 ‘덤벼볼 만한 투쟁’으로 인식해갔던 것이다.
그러나 2006년 하반기, 이 거대한 투쟁이 패배로 귀결되면서 더 이상 사내하청 노동자의 가슴 속에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전망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공황이 겹치며 곳곳에서 사내하청 우선해고가 벌어지며 “정규직화는커녕 해고도 못 막지 않나” 하는 패배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단체협약을 쟁취하자는 것에 대해 “그렇게 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사내하청 대중의 열망에 화답하는 요구를 부여잡기
불법파견 대중투쟁이 가능했던 근거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어떤 요구가 사내하청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는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최근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가 조합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올해 임단투 핵심요구로 71%의 조합원들이 ‘고용보장’을 선택한 바 있다. “비정규직 해고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이 대중적 열망인 것이다. 지난 4월에 벌어진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해고저지를 위한 원하청 공동투쟁 같은 투쟁이 조직되기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강하게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의 모범적 투쟁은 그 이후 확산되지 못하며 사내하청 대중의 자신감과 사기를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근거인 조합원 스스로 활력 있게 움직이며 ‘자신감과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노동강도 완화 및 여유인력 충원을 위한 평조합원 운동이라는 전망의 형태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전에 ‘동일’노동 여부부터 따져보자!
조립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서 작업하는 현장에서 우리는 일반적 원칙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곤 한다. 하지만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한번 따져보자. 동일임금은 고사하고 과연 ‘동일’노동이라도 하고 있는가?
“(엔진/변속기 조립공정에서) 싸이클 타임이 33초인데 우리 하청들은 이 중에서 30초 이상을 몰두해서 작업해야 속도를 맞출 수 있어요. 정규직들은 20초 정도면 가능한데 말입니다.” 째깍째깍… 정규직의 시계와 비정규직의 시계는 돌아가는 속도가 다른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입되는 공정 상당수가 정규직 근골격계로 인한 공정, 즉 정규직 기피(애로)공정임을 직시한다면, 사내하청의 노동강도가 정규직의 그것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매년 또는 신차종 투입 때마다 M/H 협상이 벌어지지만 그것은 사업부나 부서별 정규직 대의원들의 일로만 치부되어 왔다.
여기서 투쟁의 고리를 잡아보자. 아니,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데 비정규직들은 M/H 투쟁과 인원 협상을 할 수 없는가? 게다가 훨씬 어렵고 힘든 공정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정규직 인원협상이 끝나면 제일 먼저 짐 쌀 것을 강요받는 쪽은 비정규직이 아니던가!
정면으로 맞서야
“비정규직부터 해고하자”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 “해고만은 안 된다”는 수세적 투쟁을 넘어서 “비정규직 노동강도가 너무 높다! 그러니 인원을 더 투입하라!”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가능하다. 직접 초시계를 들고 작업공정에서 자신의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계산하자. 작업시방서와 조립공법서를 사측에 요구하고 과연 1분에 내가 몇 초를 일하고 몇 초를 쉴 수 있는지, 즉 편성효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조합원들이 나서서 조사활동에 나서자.
구체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이를 근거로 정규직 수준의 편성율 내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의 노동강도를 위해 추가인원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해보자. 곳곳에서 째깍째깍… 초시계가 돌아간다면 평조합원들 스스로 활력을 갖고 노동강도와 관련한 수많은 상상력을 쏟아내게 될 것이다. 과거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불법파견 증거를 찾던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자신들의 인원협상 결과에 따라 항상 비정규직부터 짐 싸는 모습을 보아왔던 정규직 평조합원들 입장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이런 활동과 투쟁을 전개한다면 비정규직 해고반대를 위한 연대투쟁에 나설 중요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치기 이전에 과연 ‘동일’노동인지부터 따져보자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사내하청 노동자의 전국적 공동투쟁으로!
이러한 과정으로 평조합원들 스스로 투쟁을 일궈나가며 자신감과 사기를 끌어올린다면,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과 요구는 다시 한 번 ‘덤벼볼만한 투쟁’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노동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원청자본이며 하청자본은 원청의 하수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 투쟁과정에서 다시 한 번 대중적으로 확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사내하청의 존재형태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투쟁이 다시 한 번 사내하청 노동자의 전국적 공동투쟁으로 조직되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투쟁 전망으로 대중의 열망에 화답하며 평조합원 자신의 운동으로 대중투쟁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놓여 있다. 그것이 바로 역동적 투쟁을 조직해왔던 비밀이기 때문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