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이고 민주주의인가?
- PD수첩판결 논란에 부쳐 -
피디수첩에 대한 법원의 무죄선고가 있은 후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굳이 법치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누가 보아도 당연한 사실이 법원으로부터 인정되었을 뿐인데도 이 사건은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뭔가 대단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주된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검찰과 경찰 뿐만 아니라 법관들에게까지 소위 “정치적 협박”을 강력하게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동안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없었다면 법관들의 양심과 법조항에 의거한 판결을 두고 “사법부의 반발”이라고 인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 보안법으로 기소된 동지들의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와도 재판부의 성향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없었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에게 강력한 사법처리를 강요한 신영철 대법관과 비교해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무죄판결들은 분명히 판사들이 반기를 들고 덤비는 것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무죄판결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용산학살 수사기록 3000여 쪽에 대한 공개 결정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쪽에서 흘러나오는, 사법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사법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법치주의가 해법인가?
반면, 이에 맞서는 주장의 많은 부분은 사법부의 독립을 옹호하며, 마치 사법부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양 비춰질 수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법치주의에 대한 꿈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이 고통 당해야 했던 것은 법치주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법치주의라는 헛된 선동 뒤에 숨어있었던 자본의 무자비한 공격 때문이었다.
법은 자본가가 자본가의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보호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을 정당화시켰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도입을 지시해 왔다. 법은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정치적 투쟁을 금지시켰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무수히 무력으로 짓밟아 왔다. 이와 같은 법이 올바로 지켜졌을 때 박수 칠 자들은 뻔하다.
도대체 사법부가 지금 무엇에 반발하고 있다는 말인가? 자본주의 체제에? 결코 아니다. 자본가계급과 정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에? 그것도 아니다. 사법부는 자본주의 체제를 보호하는 법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본가계급의 법전에 충성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 법전이 허용하고 있는 ‘최소한의 민주주의’ - 바로 자본가계급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민주주의 - 에 충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그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법치주의 수호’는 우리 노동자계급의 구호가 될 수 없다. 사법부가 지켜내려는 바로 그 법치주의는 우리 노동자계급을 향할 때는 ‘착취권 보호, 파업 불법화, 노동자 투사 구속’ 등을 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법, 민주주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 투쟁하는 피흘리는 투사들로부터 노동자 민주주의는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목숨까지 바치며 투쟁한 노동자들로부터,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헌신한 노동자들로부터, 자본가의 착취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노동자계급의 진짜 법과 민주주의는 탄생할 수밖에 없다. “악법은 어겨서 깨버린다. 바로 우리 노동자의 권리가 법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법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이 법에 복종해야 한다!”
김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