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란 무엇인가<1>
취업계약에 담긴 비밀 - 착취는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가?
노동자들은 가장 끔찍하고 긴장된 순간으로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 많은 노동자들이 입사원서를 들고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을 거론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취업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노동자들에게 ‘고용 여부’가 판가름나는 입사면접은 살 떨리는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칼자루는 전적으로 회사가 쥐고 있다. 회사가 어떤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즉 실업자로 방치해도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자본가에게는 입맛대로 노동자를 고를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면접장에 들어서는 노동자들
취업을 위해서 노동자가 보여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면접관이 “파업과 노동조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회사에 협조해서 상생해야 한다”고 답해야 한다. 최대한 순종적인 태도를 보여야만 승산이 있다. 취업을 위해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대기업들은 전문적인 적성검사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 적성검사 프로그램은 ‘반항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해 만든 것이다.
이런 갖가지 절차들을 용케 통과하더라도 중요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취업계약서’에 싸인 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에는 시간당 임금 혹은 월급 등이 명시되어 있다. 나아가서 회사 내에서는 법처럼 군림하는 ‘회사 사규’가 명시되어 있다.
착취가 합법화되다!
이 취업계약서에 싸인 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심지어는 이제 일자리를 얻었다는 뜨거운 감격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싸인 하는 그 순간은 “착취”가 노동자의 동의라는 형식으로 합법적으로 ‘계약’되는 비극적 순간이다.
시급 혹은 월급이 결정되는 그 순간, 노동자는 회사에게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최소한 가족을 부양하고 나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노동능력(노동력)을 유지하여 계속 노동하기 위해서는 얼마 정도는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나의 기술은 이것인데 이 기술을 얻기 위해 나는 얼마 정도의 비용과 노력을 투여했으므로 이것도 좀 고려해주시오.”
반면 이렇게는 절대 말하지 못한다. “생산과정에서 내가 만들어낸 가치가 얼마이니 이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주시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자본가는 ‘고용할 생각이 없으니 가보시오’라고 차갑게 통보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회사의 영업비밀은 법적으로 완전히 보장되어 있으므로, 노동자는 자기가 생산과정에서 만들어낼 가치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결국 취업계약의 실체는 분명하다. 노동자가 자신에 대한 자본의 착취에 대해 동의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취업계약을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윽박지른다. “당신이 착취당하더라도, 이것은 당신 스스로 계약한 것이므로 우리는 잘못이 없소!”
하지만 이 동의는 ‘생존’을 위해 노동자에게 “강요”되는 것이다. 취업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처지는 칼을 든 강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내가 가진 돈을 모두 넘기겠다”는 계약에 싸인 할 수밖에 없는 선량한 시민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착취와 이윤이 발생하는 곳 - 생산과정
“취업계약서 = 착취동의서”가 작성된 뒤, 착취는 이제 합법화된다. 그러나 착취가 실제 일어나는 공간은 면접사무실이 아니라 생산현장이다. 이제 노동자는 관리자의 뒤를 따라 현장에 배치된다. 일을 시작한다. 착취가 발생한다.
착취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본가가 700만원을 들여, 그 중 500만원을 기계와 원료 등의 생산수단에 투입하고 나머지 200만원을 이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지급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 노동자가 주 20시간 노동으로 한 달에 200만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하자. 그런데 이 노동자는 주 평균 40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매주 20시간은 공짜로 일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200만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자본가에게 매 달 공짜로 제공하는 셈이다. 바로 이것이 자본가의 이윤을 구성한다. 만약 이런 노동자가 1000명이 일하고 있다면, 1000명×200만원 = 20억원의 이윤이 매달 발생하고, 연간 240억원의 이윤이 생긴다. 이 이윤에 대해 자본가들은 회사 생존을 위해 대부분 투자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착취로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이윤을 투자한 결과는 무엇인가? 투자한 만큼 회사의 가치는 올라간다. 100억원짜리 회사가 120억원짜리 이상의 회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회사의 가치는 모두 사장이나 대주주들의 것이 된다.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과정은 곧 자본가를 위해 착취당하는 과정과 뗄 수 없이 연결된다. 자본가들에게 현장노동자들은 “이윤을 낳는 거위”이고, 작업현장은 거위가 알을 낳는 “사육장”이고, 고위 관리자들은 “사육사”다.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 - 계급전선
이렇게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만들어낸 이윤은 어떻게 분배되는가? 이윤은 우선 사장의 금고에 쌓인다. 그러나 사장이 혼자 다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라면 대주주들이 투자한 자본의 크기에 따라 나누어 먹는다. 공장부지를 임대했다면, 임대한 땅주인에게도 얼마간 이윤이 돌아간다. 자본가들을 보호하고 특혜를 베푸는 정부 고위 관리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떡값, 뇌물 등의 방식으로 일부를 나누어준다. 바로 이들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결과물을 서로 분배해서 나누는 “자본가계급”을 이룬다.
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면서도 겨우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작은 일부만을 얻고 나머지를 빼앗기는 사람들, 한마디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을 이룬다. 금속이든, 화학섬유든, 공공부문이든 어떤 곳에서 어떤 노동에 종사하든 관계없이,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 모두는 “노동자계급”을 이룬다.
이처럼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 사이에는 “자본가계급” 대 “노동자계급”이라는 명확한 대치선이 처진다. 계급투쟁이 발생한다. 자본가계급은 착취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발악한다. 반면 노동자계급은 착취를 줄이고 더 나아가 착취를 폐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착취는 왜 발생하는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가져가는 막대한 부가 모두 자신에 대한 착취로부터 발생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당한다. 기업에 취업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합법적 착취계약서에 싸인을 한다. 무엇 때문인가?
간단하다. 노동자는 일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능력(노동력)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노동능력만으로는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다. 그래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노동능력에 결합되어야 할 것은 작업장, 기계, 작업도구, 원료 등의 생산수단이다. 그런데 이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생산수단은 ‘자본’이 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해서 얻는 막대한 이윤을 투자해서 계속해서 거대 자본을 키워왔다. 수백억, 수천억, 수십조원에 달하는 이 거대 자본을 노동자는 결코 동원할 수 없다.
이처럼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소수 자본가들에게 장악되어 있는 한, 노동자들은 착취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업률까지 높아지면 노동자를 덮치는 운명은 더욱 가혹해진다. 노동자들은 취업계약서에 싸인 하면 이후 얼마나 많이 착취당할 것인지를 따질 겨를이 없다. 취업계약서란 노비문서에 싸인 해서 일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의 올가미는 얼마나 강력한가? 우리는 이 착취의 올가미를 반드시 박살내야 한다.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