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의 배신을 딛고, 전면파업의 한 길로 진군하자!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경제위기가 노동자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노동자 죽이기를 밀어붙여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계속해온 공공부문의 인력감축, 노동강도 강화, 외주화 등의 공격을 앞으로 전면화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자본가 정부의 공세를 박살내면서, 노동자 살리기 투쟁의 전망을 전체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철도노동자들이 08년 투쟁에서 짊어져야 할 절박하고도 소중한 의무였다.
필수유지제도 - 독약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들에게 내놓은 필수유지업무제도는 노동자 투쟁의 손발을 다 묶고 결투에 나서라는 것으로, 결국 뻔한 결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노동자들 속으로 패배감과 절망감을 불어넣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었다.
필수유지 결정에 따르면 실제 열차운행과 직결된 인원 중 거의 70%에 육박하는 인원을 필수인원으로 지정했다. 그것도 모자라 나머지 파업참가자의 50%에 해당하는 사외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사, 본사, 현장의 관리장 등 사내 대체인력과 외주업체 대체인력들이 투입된다면 사실상 열차운행률은 거의 정상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대체인력들은 이미 현장에 와서 훈련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필수유지 제도는 현장도 분열시킨다.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업무와 아닌 업무 사이에, 근무자로 지정된 사람과 아닌 사람 사이에 분열을 일으킨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필수유지업무 제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장의 노동자들은 잘 알고 있다.
단결의 사수, 그리고 전면파업을 위한 실질적 준비
이제 필수유지제도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노동자의 승리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뻔한 사실을 집행부는 정면으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행부에서는 필수유지제도를 이용한 부분파업을 하다가 전면파업으로 간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일단 필수유지 파업을 하게 되면 전면파업으로 조합원을 이끌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이미 파업이 무력화되면서 기세가 꺾인 상황, 그리고 예견되는 현장의 분열과 혼란 상황에서 철통같은 단결과 자신감을 연료로 타오르는 전면파업을 감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합법파업의 가능성이라는 환상과 기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필수유지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유지 부분파업을 하지 않고 현장투쟁을 더 강화한 뒤 전면파업으로 나가는 것이 옳았다.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고 현장만 분열시키는 필수유지제도 보다 대체인력 투입이 안 되는 태업, 안전운행 등 모두가 함께 단결해 전개하는 현장투쟁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전면파업을 향한 실질적 준비태세가 갖춰질 수 있었다. ‘안전운행투쟁’ 전술이 탄생한 배경은 바로 그것이었다.
안전운행투쟁
14일부터 전개된 안전운행 투쟁이 철도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안전운행 첫날은 과연 예년과 다른 안전운행 투쟁이 될까 의문을 가지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조합원들 스스로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자신의 확실한 검수가 안전한 속도로 운전하는 기관사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 안전한 속도로 운전하는 기관사가 시도 때도 없이 기관차에 올라타고 내리면서 기관차와 객차 또는 화차를 연결하는 수송원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철도노동자들은 안전운행투쟁을 통해 몸소 실천했고, 피부로 체감했다. “08단협 승리하여 해고자 원직복직 쟁취하자”는 구호에 힘차게 화답하는 투쟁의 목소리가 연달아 무전기를 통해 날아올 때 그 힘은 더욱 배가 되었다. “투쟁”이라는 짧은 화답조차 부끄러워하던 조합원들도 한번쯤 내지를 수 있었고,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격려와 동지애가 안전운행 투쟁기간의 일상이 되었다.
물론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헌신적으로 함께 했다. 일부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유인물을 만들고 직종을 뛰어넘어 현장을 순회하면서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파업에 함께 참여할 것을 격려했다. 현장 동지들은 이러한 열정적인 활동에 대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처럼 정규직 비정규직, 직종을 막론하고 현장조합원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행동들이 직종과 지역의 벽을 깨고 철도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하나로 모아내고 있으며, 철도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조합원들의 직관과 판단력을 드높였다. 철도를 멈추는 효과가 없고, 현장노동자들이 일하는 층과 일하지 않는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 예상되는 필수유지제도에 입각한 껍데기 파업을 하느니 차라리 안전운행 투쟁을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동시에 전면파업으로 전진하기 위한 자신감과 결의가 움터 나왔다.
냉엄한 현실 앞에 산산조각 난 집행부의 환상
집행부의 안이하고 황당한 현실판단이 붕괴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교섭은 계속 진행되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게다가 ‘필수유지업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공사와 정부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필수유지업무’ 파업(?) 정도라면 아예 이번에 철도노동자들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정리해버리겠다고 그들은 덤벼들었다. 노조의 요구사항, 가령 해고자복직 등은 투쟁의 요구가 될 수 없으니 불법파업으로 간주하고 진압하겠다고 이명박은 공언했다.
필수유지업무 부분파업에서 전면파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집행부의 환상은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이 드러났다. “전면파업이냐 쓰라린 패배냐”는 단 하나의 문제, 즉 “필수유지업무 파업 = 패배”라는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투항과 현장의 저항
이 냉엄한 진실과 곧 맞닥뜨리자 집행부의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그렇다면 전열을 가다듬고 전면파업의 깃발을 들고 대담하게 전진해야 했다. 그러나 집행부의 환상의 뿌리에는 패배의식과 도피의식이 도사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집행부는 깨진 환상 앞에서 투항으로 후퇴했다.
공사와 정부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고, 협조하겠다는 약속으로 채워지고 현장의 절실한 문제들과 해고자 복직 문제는 ‘유보’로 내팽개쳐진 노예문서가 잠정합의안으로 둔갑해 파업돌입을 기다리고 있던 현장조합원들 앞에 던져졌다. 안전운행투쟁으로 기세가 높아져 있었던 조합원들은 즉각 욕설과 항의로 답했다. 수색기지에 찾아와 갖은 핑계를 대며 설득하려 했던 위원장은 성난 조합원들의 주먹과 돌멩이, 욕설에 포위되어야 했다. 전국 대부분의 기지의 상황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현장의 거대한 분노는 현장지부장들을 압박했다. 노조 확대쟁대위는 파업을 철회한다는 내용의 잠정합의안을 64대 76으로 부결시켰다. 현장의 투쟁의지가 집행부의 패배주의를 압도한 것이다.
앞으로!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다. 필수유지업무 파업(?)이란 종이칼을 접고 전면파업의 깃발을 들고 진검승부에 나서는 것이다. 그 길을 이번 안전운행투쟁은 똑똑히 보여주었다. 현장노동자 전체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며, 노동자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고자 자발적으로 분투하는 노동자 투쟁만이 진짜 투쟁일 수 있다. 현장조합원들은 그것을 절실히 갈구하고 있고, 만약 그 길이 결정된다면 단호하게 실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결의를 파괴하지 말자. 자신감을 갖고 “전면파업”의 길로 진군하자. 그래서 자본가들이 만든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얕은 수작은 절대 통하지 않음을, 노동자 투쟁말고 이 자본주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음을 전체 노동자들에게 당당히 보여주자. 그래서 철도노동자들과 전체 노동자들이 함께 살자!
정원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