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 개악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이 드디어 비정규악법을 더 개악시키겠다고 나섰다. 그 내용의 핵심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업종을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을 위해 4년간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직무에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이명박 정권은 법 개악의 명분에 ‘비정규직 보호’라는 말을 거들먹거린다. 현행법에 따르면 2년 넘어 비정규직을 사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 부담 때문에 사용자들이 해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 28명 집단해고 사건마저 “봐라! 2년 만에 해고되느니 차라리 4년이 낫지 않나”라고 선동하는 소재로 사용한다. 비정규악법 시행 2년을 맞는 내년 7월에 해고냐 정규직화냐 기로에 선 노동자들의 숫자가 100만에 달한다며, 올해 안에 법을 바꾸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법 개악의 진짜 목표 : 패배주의 확산
통계청이 올 3월 실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근속년수 평균은 4.7년이고, 정규직은 7.8년, 비정규직은 2.0년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경우 근속년수 3년 이상이 19.8%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비정규법이 아니더라도 이미 2년 내에 짤리는 비정규직이 절반이며, 4년 근속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전체 비정규직의 상위 극소수(10% 미만)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대졸 구직자 10명 가운데 3명은 이미 취업을 확정짓고도 계속 직장을 구한다. 취직 후 1년 반이 지나면 30.9%가 일자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직장을 옮긴다. 21.6%가 6개월 이내에 그만두고 학업의 계속이나 재취업 준비도 14.5%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경향신문 10월13일자)
한 가지 더! 자본가들은 비정규법을 지킬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2년을 넘겨 비정규직을 사용하더라도 법을 어기고 계속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것이란 얘기이다. 정부가 철저히 근로감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자본가들이 절실히 요구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엉뚱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명박과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의 연장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과 비정규직 대중들 안에서 패배주의가 확산되는 것이다. 이미 04~06년 민주노총의 비정규법 개악저지 총파업이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이번에도 민주노조운동이 '개악저지' 슬로건으로 싸우다 패배하기를, 그리고 패배주의가 암세포처럼 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평균근속 2년의 비정규직 대중들 입장에서 4년 근속을 채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어차피 우리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숙명이야" "저항해봐야 안 될 거야"라는 의식을 퍼뜨리려는 것이다.
개악저지 슬로건이 갖는 분명한 한계
아니나 다를까, 벌써 민주노총은 '법 개악저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물론 개악을 저지하자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슬로건만으로 싸울 경우 "4년으로 연장되면 큰일나니 지금 것(2년)이라도 지키자"는 의식이 은연중에 확산되게 된다. 자본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패배주의 확산이라는 점을 직시한다면 더 위험해진다.
또한 '법 개악저지'만 내거는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이 이 법을 지킬 것이라는 가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2년이건 4년이건 자본가들은 비정규법을 지킬 의사가 전혀 없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이 법의 존재로 인해 비정규직 대중들이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법이 있건 없건 그들은 자유롭게 몇 년이고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짤라 오지 않았던가!
청년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 양산
그렇다고 해서 비정규악법 개악에 '패배주의 확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법 개악 시도에는 자본가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내용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이미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새롭게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청년층의 경우에는 사용기간 연장이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된다. 2년 한도보다 4년 한도로 법이 바뀔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신규채용을 정규직으로 해야 할 아무런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신규채용을 한 후 무려 4년간 마음껏 부려먹다가 자르던지, 온순한 사람들만 골라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만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법 개악안을 직접 들고 나온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청년층에 과감하게 비정규직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파견업종 확대'는 실제로 자본가들이 파견노동자를 양산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파견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파견을 꺼려왔는데, 그 이유는 파견법을 하나의 규제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허용업종도 얼마 안되어 잦은 불법파견 시비에 휘말리고, 파견업체들이 활성화되지 않아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견업종이 전업종으로 확대되고 중견 파견업체들을 대형화/양성화하게 된다면, 자본가들은 적극적으로 파견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노동부는 파견업종 확대라는 법개악안과 함께 올해부터 '우수파견업체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파견업체 양성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노동부는 자본가들의 집행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싸우기
그렇다면 법 개악 국면에 어떻게 싸움을 만들어갈 것인가? 여기에 한가지 힌트가 될만한 사건이 있다. 애초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들고 나왔을 때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3년으로 하고 있었다.(나중에 한국노총과 열린우리당의 야합으로 2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2005년 이 법이 국회 환노위에서 논의되고 있을 때 노동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제한은, “(3년에 비해) 교체 사용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촉진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비정규법이 비정규직 보호가 아니라 주기적 해고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정부가 인정한 것인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다음 단락에 이렇게 등장한다. 고용불안이 확산되면 “비정규직 다수가 집단화하여 정부에 고용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사회문제화 될 것”!!
그렇다, 자본가들이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대목에서 본심을 들켜버렸다! 정부와 비정규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해고하는 법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게 되는 것,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챈 비정규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화하여 투쟁에 나서는 것!
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패배주의 확산이기에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맞받아쳐야 한다. “왜 10년, 20년이 아니고 고작 4년이냐? 아예 한 100년쯤으로 늘리지? 그러면 100년간 고용안정 되겠네?” “그래, 더 개악시켜라! 언제는 너희들이 스스로 만든 법을 제대로 지키기라도 했더냐? 우리는 밑바닥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을 조직해서 싸우겠다!”
밑바닥 노동자들과 청년들 속에서 조직화
법 개악 국면에서 운동의 진짜 대안은 '조직화'이다. 개악저지에만 머물러서는 수세적 투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조직화'야말로 공세적인 투쟁수단이다. 법이 2년으로 되어있건 4년으로 되어있건 항상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밑바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 그리고 법이 개악되면 100% 비정규직화가 예정되어 있는 청년층, 그리고 파견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청년세대의 경우에는, 현재 대학의 학생운동진영이 앞으로 가장 주목하여 진행해야 할 대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프랑스의 'CPE 철폐투쟁'처럼 청년/학생운동의 급진화가 뒤따라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파견노동자들 조직화의 경우, 이미 진행되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인 연대를 조직하면서 확산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좀처럼 꿈틀대지 않고 있는 밑바닥 노동자들 조직화이다. 그러나 밑바닥 노동자들이 일어서지 않는 데에는 분명히 구체적인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면 조직화는 불가능하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조직노동자들은 분노하면 투쟁을 선택하지만, '수틀리면 사표 쓴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한 저항방식이다. 1~2년에 한번씩, 평생에 수십 차례 직장을 옮겨다니다보니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이들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과 저항양식을 이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해야 한다. 공단 선전전, 거리 문화제, 지역노동자 쉼터 같은 낮은 수준에서부터 이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공황은 다시금 밑바닥 노동자들이 87년 대투쟁과 같은 형식으로 일어서도록 밀어 올릴 것이다. 설령 운동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스스로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기에 노동자 대중은 다시금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당장 조직화에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조직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된다면, 대중들 스스로 올라오게 될 국면에 운동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한없이 커지게 될 것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올 것을 거의 예견하지 못했던 과거 운동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87년을 향해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해!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