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의 대답
<공황에 맞선 13개 투쟁요구안>
미국발 경제위기가 세계 실물경제 위기로 심화되고 있다. 금융은 물론 제조업, 서비스업 업종에 상관없이, 미국, 유럽, 중국 지역을 불문하고 대량감원이 시작되었다. 노동자투쟁도 업종과 국경을 넘어 새롭게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투쟁은 물론 철의 장막에 쌓인 중국의 노동자계급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세계경제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계급투쟁도 서서히 달아오를 예정이다.
전 세계 지배계급의 대응도 유사하다. 구제금융, 대규모 재정정책 등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케인즈주의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방편이라고 의식적으로 왜곡시키고자 하는 이데올로그들은 이를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 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케인즈주의적 대증요법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여전히 각국의 개별자본과 정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통해 “100년만의 최대 경제위기”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한국 자본과 정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1998년 IMF 경제위기를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도입 등 노동자계급에게 고통전담 시킴으로서 극복한 전례를 갖고 있는 한국의 지배계급은 비정규악법을 더욱 개악 --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파견업종을 네거티브 방식에서 포지티브 방식으로 등-- 하고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완화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와 대대적인 구조조정, 자본과 정부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필수유지업무 지정과 같은 파업권 제약, 집시법 개악,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등 공안탄압 기구를 확대 부활시킴으로써 자본의 기득권을 방어하려 하고 있다.
개별 자본의 공세는 정부의 공세보다 앞서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없이도 마구잡이로 정리해고를 자행하고 있다. 정리해고는 부도난 사업장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10여 년간 최대 흑자를 낸 대기업들조차 내년에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만으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자본주의 공황으로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간택’받지 못해 굶주리다가 교도소 가기 위해 범죄자가 되는 세상, 지옥 같은 자본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세상,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오늘 잘릴까, 내일 잘릴까 애만 태우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강요하는 세상,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양심이 쓰레기보다 못한 자본가세상, 손실을 사회화 하자며 노동자에게 고통전담 시키는 세상, 소수의 이윤을 위해 한편에선 대량실업을, 다른 한편에선 멈춰선 공장, 사무실, 부두, 건설현장이 있는 세상, 소수의 이윤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세상을 자본가들은 지키려 한다.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은 무자비하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고통전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단호한 지배계급은 뒤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경제위기와 관련해 “내년 2월이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다” 며 “이들이 상황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게 되면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렇다. 지배계급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미취업 실업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난 실업자들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배계급은 이들이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못하도록 다양한 분할통제정책을 사용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누고, 사업장별로 나누고, 산업으로 나눠서 통제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비정규직 우선 해고를 정규직 고용안정의 방패막이로 여기도록 조장하고,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조정은 사기업 노동자와 아무런 상관없는 문제거나 심지어는 ‘그렇게 되어야 너희들한테도 이롭다’는 식으로 이데올로기 주입을 한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로 격화되고 있는 기업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고용보장과 임금보장의 유일한 수단임을 앞세워 ‘비정규직 확대’, ‘용역 ․ 외주화 확대’, ‘노동강도 강화’, ‘전환배치 자유화’, ‘임금동결 및 삭감’, ‘정리해고 완전 자유’, ‘노동조합 무력화’를 전면적으로 시도한다.
생존의 위협에 맞서 노동자대중은 정리해고 반대투쟁, 계약해지 반대투쟁, 외주 ․ 용역화 반대투쟁,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에 맞선 투쟁, 임금 ․ 단협 저하를 막기 위한 투쟁을 해 왔고 연장선상에서 노동악법 ․ 비정규악법 저지투쟁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의 ‘반대’투쟁은 전개되었으나 폭력경찰 투입, 열사투쟁이 아니고선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연맹을 산별노조로 전환해도 관료화된 산별노조는 기업의 튼튼한 울타리를 제거하기보다 그 울타리 안에 안주하며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설령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서도 진정 총자본에 맞선 투쟁, 정부에 맞선 투쟁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왜냐면 개별자본과 정부가 노동조합의 투쟁이 단위사업장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동원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98년 IMF보다 더 큰 경제공황 앞에 서 있는 한국자본주의에서 앞으로의 10년은 이전 10년보다 훨씬 더 많은 ‘반대’투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해야 한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개별자본에게, 정부에게 승리하기 위해선 단위 사업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반대’투쟁을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전사회적 투쟁으로, 전계급적 투쟁으로 이끌 수 있어야만 한다.
사회적 의제 vs 대중행동강령
현 시기 노동자투쟁은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98년 경제공황 시기의 노동자투쟁을 경험했지만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것 때문이다. 이 결정적 약점을 해결하는 방안은 경제공황에 맞선 생존권 투쟁을 경제공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노동해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담한 투쟁요구와 계획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런 투쟁을 조직할 전국지도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제는 바로 지금 당장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추진해야만 한다.
개량주의자들 역시 ‘반대’투쟁을 벗어나기를 호소한다. 반대 ․ 저지투쟁 대신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가지고 고용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그대로 반영되어 소위 “사회적 의제 확장” 론으로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개량주의자와 노조관료들의 ‘사회적 의제 확장’과 ‘사회적 합의’라는 해법은 몰락한 사회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문제는 ‘일자리 나누기(이는 구조조정 인정 하에 임금 나누기를 전제로 한다)’로,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사회연대전략 혹은 임금연대전략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는 과거 2차대전 후 서구의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산업‘평화’의 시기에서나 그나마 가능한 정책이었다. 지금처럼 업종, 산업을 불문한 경제위기로 대공황 돌입기에 서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없는 정책이다. 오직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지배계급에 맞서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선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노조관료들이 제출하는 ‘사회적 의제’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제출하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왜냐면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은 사업장의 구체적 생존권의 문제를 단지 자기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자본주의체제로 결합시켜 투쟁동력을 확대 ․ 강화해 주기 때문이다. 몇 가지 대중행동강령을 예로 살펴보자.
먼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계약해지, 정리해고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자동차산업의 조업중단에 따른 고용위기는 완성차만이 아니라 남동공단, 효문공단 등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소용돌이치게 했다. 한 두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개별적으로 기업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고용보장 받고자 한다면 사측의 말을 따르면 된다. 사측의 위기극복 처방에 반대하는 노조라면 두 가지 길이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끝없는 양보교섭 -- 순환교육→비정규직 정리해고 및 전환배치 수용→임금삭감, 외주 ․ 용역화 인정→정리해고 순-- 을 하는 것, 그래서 결국 정리해고 최소화를 이끌어내는 것, 이 방안이 지금까지 노조의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정리해고가 최소화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로 인해 10년간 패배의 패배를 거듭해 왔다. 정리해고까지 합의해 주는 노조로 전락해 왔다.
다른 하나는 자기 사업장의 문제를 옆 사업장의 문제로, 전 사회적 문제로 연결시켜 투쟁하는 것이다.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같은 대중행동강령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완성차-부품사-비정규직이 이와 같은 공동요구를 걸고 투쟁한다면 소수의 자본가와 정부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 주저하고 있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승리할 수 있다. 다수의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제공황은 다수의 노동자들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만들었다. 이제 과감한 단결투쟁을 만들어 낸다면 대중행동강령은 꿈속에 있는 천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실의 목소리, 동료들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정유사, 건설사를 비롯한 모든 대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요구도 중요하다. 우리는 경제위기 원인이 통제되지 않는 자본 간의 이윤경쟁 때문임을 알고 있다. 정유사는 국민들이 기름값 인상으로 고통 받을 때 천문학적인 이윤을 냈다. 건설사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인상으로 고통 받을 때 최대이윤을 냈다. 자동차, 전자, 철강, 조선산업의 경우 대표주자들인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은 부품사에게 납품단가 인하로 수탈하고, 10여 년간 최대이윤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고용으로 이윤극대화를 꾀했다. 대자본가들은 중소자본가들에게 기업의 영업비밀을 원청에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기들의 영업비밀은 비공개로 한 채 말이다.
게다가 이 작자들은 사내유보금 형태로 400조에 가까운 운영자금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잠시 힘들다고 모든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고통을 전가시키는 자본의 음모에 맞서 제대로 투쟁하기 위해선 회계장부, 영업비밀을 공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정당하고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은행 및 금융기관의 몰수 ․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 하의 금융통제위원회 구성!”도 빠질 수 없는 요구다. 왜냐면 부도사업장이든, 아니면 여전히 잘나가는 대기업이든 자본거래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정부도 구제금융(공적자금)을 은행을 통해 실현한다. 98년 IMF 부도사태 때 은행을 국유화하고 그 은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여해 대기업들을 국유화한 것을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산절차든 회생절차든 세금을 낸 노동자들을 그 세금을 가지고 정리하는 게 은행 및 금융기관의 임무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은행 ․ 금융기관의 몰수 ․ 국유화는 노동자통제 없이는 자본과 정부의 구조조정 담당자로 전락함을 알 수 있다. 은행 및 금융기관이 대기업들의 영업비밀 철폐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통제 하에 운영될 수 있다면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보장받는 것을 넘어 사회통제의 상투를 틀어쥘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투쟁을 올바르게 전개하기 위해선 완전한 파업권을 쟁취하고 노동조합을 전투적으로 재편해야만 가능하다. 지금의 민주노총, 산별노조, 대공장 지부로는 이러한 투쟁을 전개하고 승리로 이끌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장에서부터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행동강령에 기초해 사업장단위를 전투적으로 재편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의 이러한 투쟁이 대중투쟁의 고양으로 전진할 때 노동조합을 넘어 공장위원회 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건설될 공장위원회는 사업장통제와 산업 전반에 걸친 산업통제위원회로 성장할 것이다.
“경제파탄의 주범 이명박 정부 퇴진! 노동자 민중 정부 수립!” 요구 또한 필요하다. 당연히 우리의 투쟁이 이렇게 커진다면 자본가 정부는 미친 듯이 탄압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노동악법, 국가보안법, 국정원 등 악법과 국가폭력기관을 동원한 대대적인 탄압은 대중으로 하여금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다. 대중투쟁은 “노동악법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등 폭압기구 해체!”를 넘어서 이들 악법과 폭압기구 없이 한시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이명박 정부 퇴진!”과 “노동자 민중 정부 구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렇듯 대중행동강령은 생존권 투쟁을 체제에 맞서는 투쟁으로 결합 ․ 발전시킨다. 현재의 경제위기 정세에 맞춰 대중행동강령을 다음과 같은 요구안들로 제출해 본다. 현장활동가 동지들은 이 행동강령을 자신이 속한 현장조직, 노동조합 등에서 경제위기에 맞선 투쟁요구안으로 채택되도록 제안하고 선전 ․ 선동하자.
1.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
2. 노동시간-고용연동제 도입
생활임금 보장 하에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3.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
4. 공기업 사유화 저지! 구조조정 저지!
공기업 노동자 통제위원회 구성
5. 교육 시장화 반대! 무상교육.
의료 시장화 반대! 무상의료.
6. 건설사 몰수 ․ 국유화! 무상주거
7. 정유사, 건설사를 비롯한 모든 대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8. 재벌 대기업들의 투기자금 몰수!
9. 은행 ․ 금융기관의 몰수 ․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 하의 금융통제위원회 구성!
10.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11. 공장위원회와 전 산업에서의 산업통제위원회 구성!
12. 국가보안법 철페! 국정원 등 폭압기구 철폐!
13. 경제파탄 주범 이명박 정부 퇴진! 노동자 ․ 민중 정부 수립!
* 이 13개 요구안은 토론을 거쳐 해설과 함께 <경제위기에 맞선 노동자 13대 행동강령>으로 다음 호와 소책자를 통해 나갈 것입니다. 경제위기 하의 고용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모든 노동조합, 현장조직 활동가들의 진지한 검토와 토론을 바랍니다.
정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