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공황의 고통, 누가 대가를 치러야 하나?
노동자인가, 자본가인가?
미국경제가 위기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5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이어 4위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으며 3위의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매각되었다. 베어스턴스 파산 때만 해도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정부와 학계도 1930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는 비관적 진단에 동의하고 있다.
줄파산과 연이은 구제금융
부시정부는 모기지 국책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긴급구제금융을 투입한 후 더 이상의 구제금융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지켜봤다. 그러나 입술에 침도 마르기 전에 AIG에 대한 850억 달러 구제금융 투입에 이어 5,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여를 시사함으로써 더 이상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며 구제금융을 거부한 부시가 단 며칠도 안 돼 구제금융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 정도로 위기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정부의 긴급한 대응은 “미국 금융시장은 언제 누가 쓰러질지 모르는 러시안 룰렛게임의 형국”이라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진단에 대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언제, 어디서, 어떤 금융기관이 파산할지 모르는 상황이 작금의 미국경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리먼브러더스에 이어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미국 최대 저축•대부조합인 워싱턴뮤추얼과 영국 최대 모기지 업체인 HBOS, 스위스계 대형 투자은행 UBS 등 10여 개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파산 명단에 올라 있는 실정이다.
부시정부의 마지막 선택
신용위기 관련 손실 전망이 기관과 연구자마다 다르지만 최소 1조~2조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IMF는 9천 5백억 달러, 골드만 삭스는 1조 2천억 달러,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1조 5천억 달러, 루비니 교수는 2조 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위기 사태가 본격화 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금융사들이 털어낸 부실은 5,000억 달러 가량으로, 단순 수치로 비교하더라도 위기가 절반이나 1/3도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시작한 미국 경제위기가 알트-A, 프라임(우량) 모기지로 확산되고 있으며, 주택 값은 지속적으로 폭락할 예정이다. 최소 지금보다 10% 이상 더 내릴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월스트리트의 자랑인 금융파생상품이 만들어낸 가공자본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는 산업과 고용에 심각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금융위기→소비위축→성장둔화→실업률 증가→소비위축의 악순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업률은 급등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구조조정과 실업은 단지 금융산업, 건설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IT산업 등 전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경제 붕괴를 손놓고 기다릴 수 없는 부시정부는 5,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구제금융을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시정부가 전쟁을 제외하고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5,000억 달러의 개입으로 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 작금의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온 루비니 교수는 “지금 미국 정부는 대형 은행들의 실패를 모두 구제할 만한 돈이 없다”며 “지금의 금융시장의 혼란을 해결할 만한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1년 전 8,000억 달러에 달했던 연준(FRB; 미국 중앙은행) 기금이 조만간 1,950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어 미 재무부는 연준의 요청에 따라 18일 400억 달러어치의 국채 발행에 이어 추가로 600억 달러의 단기국채를 발행, 연준의 유동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윤은 私有化, 부실은 社會化하는 자본주의
부시정부의 거창한 구제금융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실패한다면 전 세계적인 대공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성공한다 할지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경기침체가 지속될 거라는 점이다. 부실을 정부가 떠안는다 해서 부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부실을 떠안는 미국정부는 핵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쌍둥이 적자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에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경제전문가 사이에서 주요 내기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재무부 차관이 일본 금융회사 CEO들에게 연락해 채권을 투매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지경, 지금 미국정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는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스스로 붕괴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혁명 없이는 경제위기 때마다 손실을 사회화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 왔다. 자본주의는 위기 대처에 대해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윤은 사유화하면서 부실은 사회화하는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속성이다.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를 경계하자는 작자들도 경제위기 앞에선 침묵한다. 이윤은 자본가들의 뛰어난 경영 덕분이기에 다 가져가야 할 몫이고 부실은 국민의 혈세로 메워서라도 해결해야 할 지상과제가 된다.
둘째 속성은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을 노동자, 민중이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중국, 한국 등 국적과 상관없이 자본주의라면 모든 곳에서 그러하다. 정리해고와 실업률 상승, 비정규직의 확산,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는 기본이고 물가상승, 조세부담조차 노동자, 민중에게로 돌아온다. 국민의 혈세(유리지갑인 노동자의 세금)로 만든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이중의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자본가계급에게 대항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부실의 사회화가 아닌 생산수단의 사회화로 대처해야 한다. 인간 노동의 결실이 한줌 자본가들의 이윤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사회화, 공유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될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되어야 한다.
정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