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등장, 다시 노동자운동에게 방향을 묻다!
2007년 대선이 막을 내렸다. 제도 언론들은 이명박의 48.7% 득표율, 그리고 이회창과 합산한 65% 득표율을 거론하며 보수 세력의 완전 승리를 타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BBK 동영상 공개로 이명박 당선자가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다는 점이 명명백백하게 폭로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던 객관적 요인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바로 이로부터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똑바로 세워내야만 한다.
객관적 토대
전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아직 어마어마한 규모로 신규 시장을 열어주고 있는 상황에서도, 세계시장은 갈수록 포화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적절한 이윤율을 보장해주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거대한 과잉 자본들이 금융투기자본이 되어 전세계를 배회하면서 수시로 국지적 경제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은 경쟁의 압력을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있다. 무정부성과 경쟁의 압력, 낮은 이윤율이 삼박자를 이루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여력이 자본주의 체제에게는 더 이상 없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실업률, 도처에서 터져나오는 전쟁, 널뛰는 주식과 부동산 가격 때문에 수시로 발생하는 파산자들, 터질듯이 부풀어오르는 경쟁의 압력에 의해 계속 확대되는 도산, 대량 해고,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증대, 임금수준 악화 등이 현재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것들이다.
제 계급의 배열 상태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계급들에게 피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신음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조차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의 해고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인상률을 겨우 쫓아가기 바쁜 낮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생활처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반면 퇴직연령은 강제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열배 이상 증폭시키고 있다. 이것은 가장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도 다음의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탈출구는 도대체 어디인가?”
그 맞은 편에는 자본가계급이 있다. 경쟁의 압력, 파산의 위협, 좁아지는 시장, 적절한 이윤율을 약속할 수 있는 투자처의 축소 등은 자본가계급의 포악성과 잔인함을 백배 이상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의 구호는 이렇다. “가급적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언제든지 해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하다가 지쳐 죽어도 상관없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로 노동강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최소한의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모든 권리들은 파괴되어야 하고, 정부는 이 파괴 작업의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쇠퇴는 중간계급 하층에게도 치명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가난한 빈농들, 도시빈민들, 영세상인들에게 자비를 베풀 여력이 자본가계급에게는 없다.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쥐꼬리만한 시장이라도, 가령 동네의 수퍼마켓, 자그마한 재래시장이라도 잡아먹으면서 대자본을 위해 시장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장에서 축출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갈 곳이 없다. 반동화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열어주지 못한다. 그 대신 이미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마저 해고시켜야만 한다. 갈수록 좁아지는 이 시장에 실업자들까지 가세함으로써 여기에서 경쟁의 압력은 최고조에 달하고, 반동화된 자본주의 체제의 본모습이 가장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들의 일부는 범죄자가 된다. 이들의 다수는 분노에 차서 외친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달라! 열렬히 따르겠다!”
계급투쟁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압력, 그리고 이 압력을 반영하는 제 계급의 상황은 계급투쟁을 전면화시킬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생존의 길은 간단하다. 자본가계급의 이윤이 아닌 노동자 민중의 생존, 무정부적 생산이 아닌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필요와 생산능력을 고려한 계획적 생산, 경쟁이 아닌 전세계적 협력의 길을 의미하는 사회주의로 대담하게 전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 고난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노동자계급에게 고난은 조금도 낯선 것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실업, 비정규직, 산업재해, 저임금), 바로 그것만큼 고난스런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회주의의 길은 이러한 “임금노예의 고난의 길” 대신 “고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노동해방의 길”을 제시할 뿐이다.
노동대중은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노동자운동이 전체 노동계급에게 이런 혁명적 탈출구를 제시할 수 없다면, 노동계급대중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의 세례를 전혀 받지 못한 다수의 후진적 노동자들은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썩은 지푸라기’가 이명박 정부다. 이것은 소상인들, 소농민들과 같은 중간계급 하층에게도 동일하게, 아니 더욱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이미 지속적인 파산 앞에서 더 이상 참을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고 있으며, 만성화된 룸펜 상태로부터 도덕적, 이성적 판단능력마저 잃고 있는 이들은 ‘구원을 약속하는 어떤 말’일지라도 믿고 따를 태세가 되어 있다. 사기꾼 이명박은 이들 앞에 ‘구원의 메시아’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잠시 성공했다.
이명박의 슬로건은 간단했다. “부패하는 자본주의를 노동자 민중의 피로 수혈하자. 자본가들에게 이윤추구를 위한 완전한 자유를 제공하자. 노동자운동을 무장해제시키자. 자본가 정부가 자본가법률을 단호하게 집행하도록 만들자. 그러면 기업이 살고, 국가경쟁력이 회복되어 일자리가 늘고 장사도 잘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운명을 개척할 단 하나의 길
약 10여년 동안 한국 자본가계급의 지배 전략은 이러했다. “노동운동의 개량주의 관료층과 적절히 거래하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자 조직들을 통제해나가자. 그래서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솟구친 노동자운동의 힘을 야금야금 진압하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자본가계급이 부여한 그 역할을 충실히 집행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대안을 제창하고 단결과 투쟁을 통해 그것을 인도해야 할 선봉장이 바로 조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노조관료층은 이들의 투쟁의지를 무참히 파괴하면서 자본가 정권과의 거래에 집착했다.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고, 비정규직 확대를 방조한 대가로 그들은 합법성을 구걸했다. 이러한 합법주의적 굴종과 개량주의적 타협성은 그들이 주도해서 만들었던 민주노동당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이것은 재앙이었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사회주의, 그리고 노동자 투쟁과 연대라는 단 하나의 탈출구가 봉쇄되고, 이들이 노동대중 위에 군림하는 관료로 더욱 확실히 변질하기 시작하자, 노동자운동을 향하던 노동대중의 발걸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저 정도면 자본가 세력들과 무엇이 달라?”라고 느끼면서 노동대중은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핵심적 부위인 조직 노동자 부위를 야금야금 파괴해서 충분히 약화시켜 놓았다고 판단한 자본가계급은 이제 더 대담하게 덤벼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물심양면 지원해온 그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세력들에 법을 엄격히 집행하고 공권력의 위엄을 높여야 한다.”(매일경제신문) 이것은 노조 관료층과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배신과 사기 행각 속에서 계속 파괴당해온 현장의 노동자투쟁력을 계산하면서 자본가들이 느끼는 자신감 - 이제 노동자운동에 더 강력한 공세를 펼쳐, 87년 이전으로 되돌릴 때가 되었다! - 의 표현이다. 이명박 정부의 역할은 바로 그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해내는 것이다.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파업을 없애겠다. 불법파업을 없애고 사회기초 법질서를 확립하면 경제도 앞서 갈 수 있다.”(이명박 선거유세문)
이에 맞서면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사수해온 모든 단결투쟁의 권리들, 조직화의 권리들, 사상의 자유들을 지키면서 전진하기 위한 길은 분명하다.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단 하나의 탈출구를 모든 노동대중 앞에 제기하고, 그 탈출구를 향해 “전투적 투쟁, 강력한 연대”의 기치를 들고 전진하는 노동자운동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 현혹당하고 있는 후진적 노동대중을 이명박과 같은 세력으로부터 단호하게 분리시켜 혁명적 노동자운동의 당당한 일부로 합류시킬 것이다. 또한 몰락하는 중간계급 하층들을 이명박의 가짜 탈출구가 아닌, 혁명적 노동자운동이라는 진정한 탈출구를 향해 결집시킬 것이다.
예견되는 환멸, 그리고 새로운 기회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승리는 몰락의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그들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달성하려 하는가? 쥐꼬리만한 복지정책마저도 축소시키고 자본가들에 대한 세금을 대폭 낮추는 것, 종합부동산세 대폭인하, 기업에 대한 온갖 규제 철폐, 대기업의 시장 확대 허용, 산업자본의 금융진출 허용, 노조운동에 대한 탄압과 자유로운 해고와 같은 노동악법 확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기대에 정반대로 응답하는 것이다. 지지자들의 다수가 분노에 찬 반대자들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지금 칼 끝에 올라선지도 모르고 환호하고 있을 뿐이며, 그들의 운명은 노무현 정부의 운명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문제는 노동자 민중들의 커져가는 분노와 실망을 담아내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모아낼 정치적 대안을 형성할 수 있느냐 있다. 유럽의 상황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90년대 내내 높아지던 우파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는 이어지는 시기에 환멸로 바뀌었다. 이제는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조금씩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고, 노조관료층에 통제당하던 노동대중은 프랑스에서, 그리스에서, 터키에서 새로운 활력으로 아래로부터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 노동자계급 또한 이런 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길을 단호하게 걷는 대신, 한나라당의 공세에 혼비백산해서 정동영과 같은 자본가 세력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자본가들에게 ‘타협과 상생’을 호소하면서 더욱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면 그것은 가장 확실한 재앙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길이 “중소자본가들과 함께 가는 길을 제창하고, 중소자본가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씨의 길이고, “사회적 공화주의”를 제기하며 “유럽식의 보수 자본가 당과 개량주의 사회민주당의 양날개 경쟁 구도”를 현 시대의 진보로 떠들어대는 사회당이 가고 있는 길이다.
둘 중 하나다. 다른 길은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건설할 것이냐 아니면 개량주의 세력에게 노동운동을 내맡기고 추락할 것인가?” 가칭)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은 전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최영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