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자본가들에 맞선 공동투쟁으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계급투쟁의 돌파구를 열자!
두 가지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빚어낸 매우 실질적인 공포인데, 양극화·비정규직화·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과연 내 삶을 지탱할 수 있을까” 하는 밑바닥 노동자민중의 심리이다. 나머지 하나는 이명박 새정부와 자본가들이 고의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패배주의로서, “잘못 나섰다간 작살난다”며 납작 엎드려버린 대중운동 지도부들의 현재 상태를 나타낸다.
이명박은 ‘민생경제 해결’이라는 슬로건으로 앞서 말한 밑바닥 대중의 공포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켜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쥐어짜는 방식만을 해법으로 갖고 있기에, 이명박을 당선시킨 공포가 언젠가 이명박에 대한 대중적 분노로 변화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두 번째 공포는 차원이 다르다. 비록 개량주의와 의회주의가 근본적 원인이지만,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통과에 이어 민주노동당 대선 참패와 대규모 탈당, 분당 등을 거치며 대중운동 지도부에게 패배주의는 유전자처럼 새겨져 버렸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으로 완연하게 자신감을 회복한 자본가들의 공세에 방어적 투쟁조차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납작 엎드린 대중운동 지도부, 완연하게 자신감을 회복한 자본가들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08년 노동자투쟁의 밑그림을 대중운동의 지도부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금속노조 지도부는 완성차 대기업을 포함한 산별교섭만 성사되면 요구안도 낮출 수 있다며, 올해 투쟁의 집중점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당선과 함께 최대 쟁점으로 꼽히는 공공부문 민영화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11일 민주노총은 공공운수연맹을 비롯한 7개 연맹을 묶어 ‘공공부문 시장화 저지 공투본’을 출범시키고 6월말 7월초 집중투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는 민영화와 구조조정 공격 앞에 선 노동조합들의 투쟁결의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6월 말까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확정하겠다는 발표에 맞대응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의 6말7초 시기집중투쟁의 실체가 무엇이냐 물으면 민영화 저지투쟁이라 답하고, 민영화 저지투쟁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민주노총의 시기집중투쟁이라고 답하는, 말그대로 서로의 꼬리를 붙잡고 실체 없는 집중투쟁 슬로건만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업종들의 지도부도 상황은 똑같은데, 모두가 ‘산별 건설(완성)’만을 조직적 목표로 제시할 뿐 자신있게 투쟁계획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총대 메는 놈만 피본다”며 대중운동 지도부가 눈치를 보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과 자본가들은 거침없이 공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전선의 최선두에 서있는 투쟁사업장들이다. 이명박 당선 전후로 이랜드·뉴코아 간부들을 전원 해고하는 것을 필두로, 취임한지 보름만인 11일 코스콤 농성장을 폭력 침탈하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선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길
대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제대로 보고, 우리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재 전선의 최선두에는 투쟁사업장들이 보급로조차 끊긴 채 고립되어 장기투쟁·징계해고·손배가압류 속에 고통스럽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전선의 후방은 납작 엎드린 대중운동 지도부와 함께 너무 뒤쳐져서 이명박과 자본가들의 공세를 맞받아칠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공포와 패배주의가 확산될수록 전선의 최선두와 후방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이명박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반대로 대중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길만이 이 거리를 좁혀주고 자본의 공세를 맞받아칠 전열을 정비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최선두의 투쟁사업장들이 먼저 이명박과 자본가들에 맞선 공동투쟁의 깃발을 세우는 길이다. 각 사업장투쟁에서 개별 자본을 넘어서지 못하고 고립된 현실을 공동투쟁으로 타개하는 한편, 이명박과 자본가들을 상대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전선의 후방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물론 현재 투쟁사업장들의 상태가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명박 취임 전후로 진행된 8일간의 공동투쟁처럼 이슈파이팅에 머물러서는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은 모두 느끼고 있지 않는가.
대중들은 분명히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지도부의 얼어붙은 상태와 달리 대중들은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최근 서울지하철과 발전산업 노동자들은 노사협조적 세력이 아닌 민주파 집행부를 선택했다. 물론 아직은 분명한 투쟁결의라기보다 이명박의 공격이 올 것이라는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투쟁하겠다는 민주파를 뽑아도 결국 도망치더라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아직 거둬들인 상태는 아니다.
대중들이 보내오는 신호는 “하려면 확실히 하라! 그러면 우리도 가겠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무쟁의를 깨고 당당하게 파업투쟁을 전개한 현대차 1공장 노동자들(4면 참조)의 사례가 보여주지 않는가! 앞서 밝힌 것처럼 대중들의 공포가 언젠가 분노로 전환될 것이다. 또한 개별분산적 투쟁이 아니라 정권과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총단결투쟁으로 발전해야만 한다는 자각이 커져갈 것임도 틀림없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주력 부대도 수세적 방식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으며, 공세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확신해나갈 것이다.
대중운동 지도부가 아무리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도, 자신감으로 가득찬 자본의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밀려올 것이다. 그리하여 투쟁을 회피하고자 하는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의 의지보다 투쟁과 단결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노동대중의 투쟁에 대한 염원이 훨씬 더 강하다는 점이 증명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공세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싸울 것인가, 이빨 물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투쟁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중들에게 제기하며 다가올 계급투쟁을 준비하고 대중의 잠재적 투쟁의지를 현실화시켜 나가는 투사들의 역할이 더욱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동지들의 제안으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논의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2면 인터뷰 참조) 가장 어려운 처지의 투쟁사업장들이 다시한번 용기백배하여 공동투쟁의 돌파구를 열어낸다면, 전선의 후방에 있는 대중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장의 선진노동자들은 가능한 최대의 연대를 조직함으로써 선두에 선 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보급로를 뚫어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자기 현장에서 대중의 지지를 확대하면서, 전체 노동자들이 함께 반격에 동참해 위풍당당하게 진군하는 위대한 나날들을 준비해나가자. 이것이야말로 대중의 공포를 확산시켜 지지를 넓혀가는 이명박에 맞서 투쟁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첫걸음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