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 이명박 정부의 늑장대처, 자본가들의 책임 떠넘기기
바닥난 어린이용 타미플루
10일 민노당 곽정숙 의원은 “소아·어린이용 30mg 타미플루 재고량은 전혀 없다. 소아·어린이용인 45mg 타미플루도 2천 명분밖에 없다. 성인용 타미플루도 정부 비축량은 84만 명분뿐”이라고 폭로했다. 이명박 정부는 12월 말까지 타미플루를 많이 수입해올 것이므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건강한 40대 남성, 20대 여성을 포함해 벌써 52명이 죽고, 하루에 1만 명이 새로 걸리며, 하루에 10만 개의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사용되는 신종플루 ‘심각’ 단계에서 1~2주만 공백이 생겨도 아주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구멍 숭숭 뚫린 정부 예방접종대책
정부는 인구의 35%인 1,716만 명에게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위험군 중 올해 안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000만 명뿐이다. 65살 이상 노인과 당뇨병, 천식 등 만성질환자들의 경우는 올해 안에 예방접종을 못 받는다. 초중고생한테는 예방접종을 하지만 교사한테는 예방접종하지 않는다. 의사, 간호사한테는 예방접종을 하지만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간병노동자, 청소노동자들은 제외됐다. 그래서 경북대노조는 11월 6일 파업을 한 다음에야 겨우 간병, 청소노동자를 포함해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장애인, 저소득층, 24세 미만 청년들도 예방접종 우선순위에서 빠졌다. 결국 이들은 생명을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4년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정부
왜 이런 상황이 왔는가? 이미 4년 전에 신종플루 대유행이 예측됐지만, 정부가 4년이란 귀중하고 충분한 시간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신종플루 백신을 인구대비 100% 준비해놓을 동안 한국정부는 겨우 5.5% 정도만 준비해뒀다. 그 결과 지금 정부가 신종플루 ‘우선접종’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누구를 우선접종에서 제외해 먼저 병들고 죽어가도록 방치할 것인가를 정하는 꼴이 돼버렸다.
노동자 집단감염에 신종플루 해고까지
자본가들은 지금 노동자들을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신종플루에 걸렸으나 집에서 쉬지 못하고 출근해 다른 노동자 11명이 신종플루에 감염됐다(공공운수연맹 소속 특수경호업무 담당).”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 김모(44)씨는 나흘 전부터 감기몸살 증세가 나타난 뒤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쉬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 구하면 되니까 나오지 말라’고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갔다가 신종플루 검사비(약 15만원)가 하루 일당보다 더 비싸다는 걸 알고 그냥 돌아왔다. 단순한 감기이길 바라면서.”
신종플루 확산이 우려됐을 때, 사측이 일방적으로 전시관을 폐쇄하면서 거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휴업보상도 못 받고 출근정지를 당했다. 어떤 간병노동자는 신종플루 증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했다.
신종플루 무상의료 실시하라
탤런트 이광기씨의 아들은 3만원짜리 신종플루 간이검사에서는 신종플루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15만원짜리 확진검사 결과 신종플루가 맞다는 문자메시지를 죽은 다음에야 받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15만원이 부담스러워 확진검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비슷하게 죽어갈 수 있다.
하지만 4대강 삽질에 쓰려는 22조 중 단 1조만 있어도 모든 노동자민중에게 신종플루 예방접종, 확진검사, 치료제 등을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 치료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면 당장 강제실시[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도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치료제를 충분히 생산해야 한다. 제약회사의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휴가 권리를 인정하라
금속노조 만도지부 문막지회는 10월 28일 ‘확진환자 특별유급휴가’를 쟁취했다. 11월 4일 현대차지부가 그 뒤를 이었다. 정부 행정안전부도 이미 9월 중순 ‘공무원 복무관리지침’을 통해 본인 또는 가족이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유급휴가(공가)를 인정하게 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휴교로 자녀가 집에서 쉴 때 유급휴가를 받을 권리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이 보장받아야 한다.
예방을 위해선 노동조건을 확 바꿔야 한다
자동차 부품사에 다니는 한 노동자는 야간노동, 주말특근으로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신종플루에 걸렸다. 그런데 지금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노동에다, 밤까지 꼬박 새우고, 주말에도 쉬지 못해 몸이 녹초가 돼 신종플루 감염 1순위인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모든 노동자가 잔업, 특근을 하지 않고 1일 8시간, 주40시간 노동만으로도 생활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 수명을 13년이나 단축시키고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심야노동을 없애야 한다. 노동자를 파김치로 만드는 살인적 노동강도를 대폭 낮춰야 한다.
이런 본질적 대책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손 씻기, 마스크 쓰기’만 강조하는 정부와 자본가들의 캠페인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며, 신종플루에 걸리고 죽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죄다 떠넘기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전염병 대유행을 막을 수 없는 정부,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민중의 숫자만 세고 있는 정부라면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김형선
신종플루 사망보다 더 무섭지만, 더 감춰지고 있는 산재사망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노동자들만 겪고, 자본가들은 절대 당하지 않는 산재다. 2008년에 산업재해자는 9만5,806명으로 10만에 육박했다. 2007년에 비해 5,659명이 더 늘었다. 산재사망자는 2,422명으로 하루 7명꼴로 죽었다. 한국의 산재사망자수는 인구 10만 명당 30.8명으로 OECD 가입국 중 최고였다. 10만명당 12명인 2위 멕시코와도 약 3배나 차이가 났다. 한국보다 산재사망률이 20~30배 낮은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신종플루 사망자보다 산재사망자가 훨씬 더 많은데도 왜 자본가, 정부, 보수언론은 산재사망을 감추거나 마지못해 살짝만 알리는가?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40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산재사망은 신종플루 사망에 비해 ‘자본가의 탐욕이 부른 살인’이라는 게 훨씬 더 명백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노동자는 공포, 자본가는 축포
신종플루 때문에 노동자들이 병들고, 짤리고, 죽어나갈 때, 환호성을 지르는 자본가들이 있다! 한국에서 신종플루가 경악할 정도로 빠르게 퍼지고, 미국에서 1,000명 넘게 죽어 오바마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신종플루 치료제를 생산해온 녹십자의 주식은 10월 26일 상한가인 2만1,000원에 거래됐다. 액면가 5,000원에 비하면, 320% 솟구쳐 오른 셈이다.
신종플루 확진검사에 사용되는 장비와 진단키트, 진단시약을 공급하는 한국로슈, LG생명과학 같은 업체들도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지난 8월초 하루 45명에서 10월 초 하루 800명, 10월 말 하루 4,500명, 11월 초 하루 1만명으로 폭증하면서 이 업체들에도 주문량이 폭증하고 있다.
노동자의 고통이 자본가의 행복이 되고, 노동자의 재앙이 자본가의 돈줄이 되는 이 기막힌 사회를 그대로 둘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