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
[① 돈 버는 데 도가 튼 자본가들]
한창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무렵,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경기에 열광했다. 나 역시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월드컵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번 <가자 노동해방>에서 다뤘던 것처럼 대기업들은 이런 스포츠 경기까지도 돈을 벌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를 위해 대중의 열기를 부추기고 동원하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자들도 그런 대기업들의 돈벌이 속셈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붉은악마단에게 특정 기업의 응원가만을 강요하려 했던 일, 엄청난 가격으로 경기 중계권을 팔아먹는 일 등은 물론이거니와, 축구공 하나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소원을 풀어주려 했더니 공 하나가 엄청 비싸더라는 한 동료의 푸념까지, 월드컵은 그야말로 기업들을 위한 돈잔치였다.
동료노동자들도 쉽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하여튼 뭐만 있으면 다 그렇게 이용해먹으려 해.” “하여튼 돈 버는 데에는 도가 텄다구.”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스포츠까지도 돈 걱정하면서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만드는 자본가들의 탐욕적 행태에 대한 비난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자본가들의 사회는 온갖 형태로 자신의 치부를 항상 드러내고,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병폐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일상적으로 안겨준다.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② ‘활력’ 발전소 -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지난 <가자 노동해방>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게 돼, 얼마 전 열린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기자회견에 가봤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늘 마주치는 청소노동자들이지만, 노조로 뭉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동참하게 되니 부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이런 내 느낌을 <가자 노동해방>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기자회견은 병원 로비 앞에서 점심시간을 짬내 하는 것이었는데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도 함께 해서, 나까지도 든든함을 느꼈다.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먼저 노조를 만들어 자신감을 얻자 이에 힘입어 병원 청소노동자들도 이참에 본격적으로 팔 걷어붙이고 투쟁에 나선 것이다. 학생들도 이미 학교 청소노동자들 투쟁을 함께 한 경험이 있는 터라 ‘이런 게 바로 노학연대구나’ 싶은 일체감이 가득한 듯하다.
휴게공간 보장, 아침식사 제공, 인원 확충, 응급치료 지원 등을 절절히 이야기하는 청소노동자들. 현수막이나 피켓을 요란히 들지 않아도, 입고 있는 체크무늬 작업복만으로도 청소노동자들이 모였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유니폼 차림의 병원노동자들이나 환자들이 무슨 일인가 관심을 보인다. 떼지어 나온 병원 관계자들이 인상 구기며 기자회견 내내 감시와 채증을 하든 말든 청소노동자들은 화기애애, 명랑발랄, 활력이 넘친다.
기자회견 후 본관 앞 공터로 가서 도시락을 먹고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러 간 대표들을 기다리는데 청소업체 소장이 낯짝도 두껍지, “비조합원들은 얼른 일하러 가라”고 훠이훠이 손으로 새 쫓는 시늉을 한다. 7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조합원, 비조합원, 고참, 신규 할 것 없이 한 자리에 모여, 멋쩍어진 소장이 뒤통수만 긁적이게 만들며 단결된 대오를 유지한 채 신나게 구호 외치고 박수를 치며 웃음꽃을 피운다. 또 문 걸어 잠그고 면담을 거부한 병원 측의 작태에, 한 학생이 울음을 터트리자 어머니 같은 마음의 청소노동자들, 여기저기서 눈물바람이다. 이렇게 투쟁으로 하나가 되는구나 하는 현장을 ‘목격’하니 뭉클하다.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지만 원청을 상대로 직접 권리를 요구하고 나선다. 힘도 없고 별 권한도 없는 하청사장을 상대로 변죽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원청인 병원, 고려대의료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투쟁 초기부터 분명하게 내걸고 싸우는 모습은 많은 투쟁들에 모범이 될 것이다.
이 청소노동자들은 정말 활기가 넘친다. 인간적인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목마르게 원한다. 그리고 이미 투쟁 경험을 지닌 청소노동자, 학생 동지들이 함께 하니 든든한 마음도 생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터라 그늘 없이 환하게 전진해나간다. 눈물 쓱쓱 닦고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결의를 다지며, 앞으로의 투쟁을 기약하며 씩씩하게 자리정리를 한 뒤 다시 일터로 향하는 어머니들은 정말 위풍당당해 보인다.
그 위풍당당함에 자극받고 힘을 얻어 함께 어깨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이런 신바람 나는 투쟁의 기운을 여기저기 많이 퍼뜨리고 싶다. 지기만 하는 투쟁, 해봐도 안 된다는 패배감을 벗어던지고 다시 주먹 불끈 쥐고 ‘한 번 해 보자’ 작정하고 싶다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자. 보약 한 첩 먹은 듯, 영양제 주사 한 방 맞은 것처럼 기운이 넘쳐날 것이다!
[③ 홈플러스 월드컵지부 설립 3주년 문화제에 다녀와서]
2007년 [당시 홈에버] 파업 때 매장 점거농성 거점이었던 월드컵지부가 작년에 이어 3주년 문화제를 진행했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 약간 급하게 진행되면서 조합원들의 발언을 충분히 들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짬짬이 준비한 다양한 율동공연과 노래공연은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파업 당시의 숱한 아픔과 좌절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문화제를 준비하는 조합원들에게 문화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지난날 힘들었던 투쟁으로 잃은 것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주장하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잃고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 “지난 파업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죽지 않았다”는 동지들의 의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