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1,100조원 긴급 수혈은 누구를 살리는가?
5월 10일, 유럽연합과 IMF는 그리스에 7,500억 유로를 빌려주기로 했다. 7,500억 유로는 한국 돈으로 1,100조원이나 된다. 구제금융 사상 최대의 천문학적 지원이다. 1997년에 IMF가 한국에 빌려준 45조원보다도 약 34배나 많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천문학적 지원이 이루어지게 됐는가? 유럽연합과 IMF가 ‘천사와 같은 마음씨’라도 지녔단 말인가?
1,100조원 긴급수혈로 은행가들은 배가 터질 것
그리스 경제가 무너지면 그리스 채권을 가진 유럽 은행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그리스의 국가 총부채는 3천억 유로에 이르는데, 유럽 선진국 은행들이 1,512억 유로나 가지고 있다. 프랑스 은행들은 640억 유로, 독일은 360억 유로 가량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부도날 경우 빌려준 돈을 떼일 뻔했던 유럽 은행들을 살려준 셈이다.
또한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가 심각하기에 다른 유럽 국가보다 최대 10%의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 결국 유럽 은행들 그리고 IMF는 ‘그리스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그리스 노동자의 피땀을 더욱 악랄하게 쥐어짜 배를 실컷 불리려 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 구제금융안이 발표됐을 때 유럽 은행들의 주가가 치솟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스 경제는 과연 살아날 것인가
4월 28일, 한 신용평가 회사가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를 ‘정크본드(쓰레기채권)’ 수준으로 떨어뜨린 것은 정부의 긴축조치로 그리스 경제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다. 임금과 복지가 삭감되고,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정리해고당하면,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들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기에 실물경제는 더 나빠진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의 2월 실업률은 12.1%로 작년보다 3%나 올랐다. IMF는 ‘긴축정책의 경기위축 효과’ 때문에 그리스가 올해 -4.0%, 내년 -2.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침체를 계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유럽연합, IMF, 그리스 정부가 그리스 경제를 살리겠다며 노동자의 피땀을 더 쥐어짜려 하는 것은 돌팔이 의사가 환자한테서 피를 뽑아내고 물로 헛배만 채우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1,100조원 긴급수혈안 발표 이후에도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그리스의 국가부도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폭탄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는 세계경제위기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도 모두 국가부도 위험에 떨고 있다. 미국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월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로 827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19개월째 최장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92%로 그리스의 108%보다도 훨씬 높았다. 천문학적인 정부부채 때문에 일본이 이르면 내년, 늦어도 3~4년 안에 국가부도가 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두바이보다 1,000배나 심각한’ 중국의 부동산 거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경제의 화약고다.
한 줌 자본가들의 무한탐욕을 채우느라 혈안인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제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구원투수 그리스 정부는 구원에 실패했다. 대신 사태를 더 가망없는 상태로 내몰았다. 이제 유럽연합과 IMF가 천문학적 자금을 들고, 아마도 마지막이 될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이 시도도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무시무시한 ‘경제폭탄’을 더 무시무시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도 그리스만이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 즉 세계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요동치게 할 그런 폭탄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이 경제폭탄을 제거하는 것이 더욱더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명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