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 그렇다면 앞으로 진격하자!
작년 11월, 철도공사는 파업 돌입 하루 전인 25일 철도노조에 일방적으로 단협해지 통보를 보냈다. 통상 노동조합과 공사가 파업 돌입 직전까지 교섭을 벌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협해지 통보는 사측이 이전부터 노동조합과 어떤 논의도 할 생각이 없었고 힘으로 제압하기로 작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철도공사는 작년 10월 초 ‘전국노경담당 팀장회의’를 통해 철도노조가 완전히 양보하지 않는 한, 단협 해지를 기정사실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철도공사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근거한 철도 구조조정을 강행하기 위한 수순을 밟았던 것이다.
물러서려고 했던 노동조합
지난 2월 9일 발표된 철도진상조사단의 철도 파업 보고에 따르면, 철도노조는 작년 11월 철도공사와의 최종협상에서 공사가 요구한 대부분의 안을 수용하는 후퇴안(철도공사는 이것조차 받지 않았다)을 냈다. 2010년 노사평화선언을 비롯해서 노동조합이 요구했던 안에서 대부분 후퇴한 안을 공사에 제출한 것이다.
발전, 가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기업이 일방적으로 단협해지를 당하고 있고, 노동운동 진영의 공동투쟁이 어려운 상황, 집권 2년차인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 어쨌든 단협만이라도 유지하고 후일 도모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노동조합이 최종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 최종안이 공기업선진화에 맞서고,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던 현장 노동자들의 열망을 헌신짝처럼 버린 후퇴된 안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러나 더욱 발톱을 세운 철도공사
그러나, 철도공사는 이 굴욕적인 항복안조차 수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투쟁결의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더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판단과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2월 4일 파업 종결 이후, 철도공사는 철도노조를 말살시키기 위한 계획에 돌입했다. 선진활동가 및 조합 간부 200여명에 대한 해고, 600여명에 대한 중징계, 일반조합원 12,000여명에 대한 대량징계가 그 시작이었다. 2006년 3.1 파업에 대한 100억 손배에 따른 가압류, 11월 파업에 대한 90억에 달하는 개인 손배소 등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그간 미뤄두었던 사안들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2급 이상 관리자들에게만 시행되던 연봉제를 순차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원감축을 위한 근무체계 변경 역시 검수 주기를 변경하고, 현장 인원을 전환배치하거나, 일근으로 강제 전환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철도공사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목표했던 2010년까지의 구조조정 계획을 일방적으로 착착 실행하고 있다.
몽둥이를 들지 않으면 물어뜯길 수밖에 없다
몇 개월간 진행된 상황들은, 강력한 투쟁으로 맞불을 지피지 않는다면 정부와 철도공사의 공격을 막을 길이 없음을 보여준다. 양보와 타협은 숨돌릴 시간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한 층 강력한 공격을 불러올 뿐이다.
노동조합이 노조측 최종제시안을 통해 보였던 타협적 모습, 그리고 지난 파업을 성과없이 조급하게 마무리짓는 과정을 보면서 철도공사는 철도노조의 투쟁이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으므로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집권 3년차, 철도노조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 어느 곳도 이명박 정권과 맞서 싸우기에 역부족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명맥을 유지하고 재기의 기회를 노려 투쟁하자는 고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은 자신에 대해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아무리 작은 뿌리라도 결코 남겨두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언론 장악, 노조 말살 등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다.
분명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와 철도공사는 노조 말살을 완료하기 전까지, 구조조정의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는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은 제대로 붙어보지 못했을 뿐 싸울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두려움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을 뿐이다. 수천명의 경주노동자들도 싸워서 돌파해가고 있다. 2만명이 넘는 우리 철도노동자들이 왜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철도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