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전에 맞선 노동자 국제주의 :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
발레오 자본의 행태에서 나타나듯이 자본가들은 간단하게 공장을 이전해버리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수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른바 ‘다국적 투기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여기서는 다를 바 없다. 장기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기륭전자 자본가들도 ‘노조가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한다’며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위니아만도 자본가들 역시 생산물량 일부를 중국으로 이전했다. 악기를 제조하는 콜트, 콜텍은 ‘노사갈등’을 핑계 삼아 한국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옮겨갔다.
노동자투쟁에 맞선 자본가들의 저항
공장이전은 자본가들이 노동자투쟁에 맞서기 위해 동원하는 유력한 무기다. 경제 5단체 대표자들은 일찍이 2003년에 ‘노동계 총파업에 대한 경제계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가 [투쟁하지 말라는]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장사를 접고 사업장을 국외로 옮기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런 양상의 뿌리는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추락하는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임금삭감, 인원감축, 비정규직화, 복지축소 등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한다. 하지만 이런 공격에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단결투쟁이 뒤따른다. 이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조 탈퇴공작을 벌이고 단협을 해지하는 등 노동조합을 무너뜨리기 위한 술책을 벌인다.
이 공격의 끝자락에 공장이전이 놓여 있다. 중국, 인도를 포함한 여타 아시아 나라들에는 아주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조합과 투쟁의 전통은 없거나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공장이전을 통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간단하게 폐쇄하고 조직된 노동자운동을 무력화시켜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자본가들의 꿈
그러나 공장이전으로 노동자투쟁을 무너뜨리겠다는 저들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 노동자투쟁은 왜 일어나는가?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목을 조르며 착취하기 때문이다. 노동자투쟁을 없애고 싶다면 자본주의를 없애야 할 것이다!
노동자 투쟁의 전통이 아직 취약한 곳으로 공장을 옮기면, 이제 그곳에서 노동자의 새로운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2008년에 현대차의 인도공장에서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대차 자본에 맞선 노동자투쟁이 전개된 바 있고, 2009년에는 파업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 자본가들이 해외로 공장을 옮겨 그곳에서도 노동자의 권리 유린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공장이전은 보다 넓은 지역으로 노동자투쟁의 불씨를 나른다.
게다가 공장이전은 노동자의 전세계적 단결을 만들어간다. 자본이 공장을 철수해 노동자 생존권을 하루아침에 뭉개버리는 것을 보며, 이제 노동자들은 자본가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이 결코 한 나라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그러나 점차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외국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하기 위한 해외원정투쟁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국제주의의 함성은 이제 관념적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일부가 되고 있다.
자본가들의 국제적 공격에 맞서려면
자본가들의 그럴듯한 약속을 절대 믿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앤트워프 공장폐쇄를 결정한 닉 라일리는 “룰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경영철학이라는 말을 180도 뒤집고 유럽 오펠 노동자위원회와의 협약을 깨며 대량해고를 선포했다. 단지 ‘비용절감’이 그 이유다.
벨기에 앤트워프의 생산라인을 한국으로 옮겨오면 당장에는 일거리가 생겼다며 한국 GM 노동자들이 반가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속지 말자! 자본가들은 더 많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면 또다시 생산라인을 옮기려 할 것이다. 지금 대량해고 위협에 놓인 벨기에 앤트워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방어하지 못한다면, 이후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노동자들이 ‘공장이전’으로 대량해고 위협에 놓일 때 한국 노동자들은 어디에서도 연대와 지지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은 ‘다른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점을 “공장이전”은 상기시켜주고 있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