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전략’, 그러나 출구는 없어 보인다!
2월 4~5일 이틀에 걸쳐 유럽·미국·아시아권 증시에 동시다발 지진이 일어났다. 진앙지는 남부 유럽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의 주가가 각각 5.94%, 4.98%, 3.98%나 급락했다. 미국 다우지수는 1만 선이 무너졌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하루 새 2.89%나 떨어졌고, 코스피 지수도 3.05%나 내려갔다. 한 마디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휘청거렸다.
민간 부실이 정부 부실로 이어지다
이번 금융폭락 사태는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터졌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는 그리스가 126.7%로 가장 높고, 그 뒤로 이탈리아가 120.6%, 벨기에 100.0%, 포르투갈 88.2%로 모두 빨간 불이 깜빡깜빡하는 상태다.
남유럽 국가 재정위기의 출발점은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다. 정부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금융 기관의 부실 자산을 떠안는 등 막대한 돈을 풀어 국가부채가 급증했다. 금융 거품이 터진 것을 무리해서 정부 재정으로 막으려다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 취약했던 남부 유럽 국가들이 먼저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동유럽→남유럽→유럽전체로 '폭탄 돌리기'
동유럽 금융위기는 2009년 2-3월 국제공조로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해결한 것이 아니기에 유럽 안에서 보면 위기가 동유럽에서 남유럽으로까지 옮아갔을 뿐이다. 만약 남유럽이 국가부도 도미노 사태라도 맞으면 유로화를 함께 사용하는 유럽연합 경제 전체가 치명타를 입기에 독일,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들이 남유럽 위기 진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등 유로존 국가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부실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자산에 속하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국채까지 더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이것이 폭탄돌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세계 경제 전체가 화약고
영국은 2009년에 GDP가 4.8%나 감소했는데, 이것은 과거 대공황 시기의 어떤 해보다도 더 큰 하락폭이다. 독일도 2009년에 GDP가 5퍼센트나 감소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이었던 1975년보다 다섯 곱절 더 줄어든 것이다. 일본은 정부 부채가 이미 GDP 두 배를 넘어섰고, ‘더블 딥’ 위기에 몰려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중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을 정도로 거품이 심각한 상태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긴축정책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미국 정부도 금융위기에 대처하면서 재정적자가 이미 GDP 대비 12.46%로 2차 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며, 과도하게 풀린 시중자금이 또다시 자산거품과 인플레로 이어지는 것을 염려해 출구전략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의 출구전략 등은 중국,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를 더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세계 모든 정부가 곧 터질 듯한 거품을 계속 키워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품을 억눌렀다가 경제를 완전히 찌그러뜨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말하는 ‘출구전략’이란 정부파산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긴축재정으로 되돌아서면서도, 긴축재정이 초래할 더블딥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딱한 처지를 위장한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들에게 ‘출구’는 없어 보인다.
고장난 것이 아니라 폐차가 된 자본주의
한줌 자본가들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완전히 실패했다. 자본가들을 위해 돈벌이 조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자본가정부들도 모두 ‘위기 관리’ 측면에서 아주 무능하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맨꼭대기부터 맨아래까지 엉망진창인 자본주의는 대충 수리해서 쓸 수 없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 사회주의로 전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공공부문, 민간부문 노동자들이 임금동결, 보너스 삭감을 강력히 규탄하며 파업을 벌인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노조 관료들이 3년 동안 임금 인상폭을 1~2.5%로 제한하기로 자본가들과 합의했다. 둘 중 무엇이 우리 노동자계급이 채택해야 할 노선인가? 우리는 분명히 답해야 한다.
김형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