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죽이기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길
창구단일화에 입각한 복수노조 시행,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비롯한 노조활동 옥죄기가 지금 한창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화물연대(운수노조)와 건설노조 설립필증을 회수하겠다는 협박도 내년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통합공무원노조는 아예 설립신고 자체를 반려하여 ‘출생신고’조차 막아버렸다. 합법파업 기조를 지키려한 철도파업의 경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불법 낙인이 찍혀버렸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해 촛불시위와 노동자투쟁에 밀려 실행하지 못했던 과제, 총체적인 노동조합 탄압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불도저 기세에 눌려서일까? 이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기세는 한풀 꺾여 있다.
심화되는 공황, 자본가들도 출구가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의 노조 죽이기 작전 뒤에는 격화되는 세계대공황이라는 불편한 현실이 놓여 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노후차량 세제지원’ 형식으로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가며 지탱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올해 연말로 종료된다. 즉, 내년에는 그동안 미뤄졌던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본격화된다.
여기에 이미 조선산업은 뚜렷한 위기에 접어들었다. 수주물량이 대폭 줄어든 데다 세계적인 해운사들의 부도위기로 인해 배를 만들어도 인도해가지 않는다. 이미 한진중공업이 희망퇴직을 출발로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현대중공업도 4도크 폐쇄를 기정사실화하며 고용 공격에 나서고 있으며, 몇몇 조선사들은 사실상 부도상태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 저달러 현상이 만들어낸 고유로와 엔고 현상으로 인해 유럽과 일본경제가 점차 침몰하고 있다. 곳곳에서 공장폐쇄와 해외이전, 정리해고와 노동자투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렇다! 지금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이 드러내고 있는 노조 죽이기 이빨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기 때문에 돋아난 것이다. 노동자투쟁의 예봉을 미리 꺾지 않으면 공황의 본격화가 노동자투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제도 개악이 노리는 핵심 : 패배주의 바이러스 확산
현재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등 법·제도 개악으로 드러나고 있는 노조 죽이기의 실제 목표는, “법이 개악된 상태에서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총파업도 안 되는 현실인데…”라는 패배의식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달 초 한국노총·경총·노동부 합의 형태로 만들어진 복수노조·전임자 관련 야합은, 민주노총 배제는 물론이고 한국노총의 고급 관료 일부만을 포함시켰을 뿐이어서, 이 야합이 현장 깊숙이까지 패배주의를 퍼뜨리는 데에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 추미애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야합에 민주노총 지도부를 끌어들이는 작전이 시작됐다.
문제는 그 덫에 민주노총과 산별 지도부들이 기꺼이 빠져들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시행 1년 유예를 비롯해 임성규 위원장 입에서 위험천만한 수정안·양보안이 거론되고 있다. 만일 민주노총 지도부가 ‘합의’라는 덫에 걸리고 만다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 내줬다”는 패배주의가 현장 깊숙이까지 파고들 것이다. 지금 국회 논의가 바로 그것을 겨냥하고 있다!
어떻게 싸움을 조직할 것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내놓는 수정안·양보안은 사실상 몇 년 전 한국노총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총파업을 조직할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섭에 목을 매고, 추미애라는 보수정치인에게 기대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현장을 투쟁으로 조직할 방법과 매개가 존재하지 않는가?
오히려 현장노동자들은 한국노총의 관료 일부만이 초대된 야합을 패배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만약 투쟁을 조직할 의지만 있다면, 이 상황이 결국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을 무력화시키는데 초점이 있다는 사실을 풍부하게 알려내고 평조합원들을 투쟁으로 묶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전임자 임금지급만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조합원 총회와 회의, 교육시간까지도 무급화하는 등 그동안 누려왔고 보장되었던 권리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상황 앞에서, 평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우리의 전략은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장노동자들을 믿고 투쟁을 조직하는 길이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거대한 투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6개월 내지 1년 후에 시행될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시점 전까지 사활을 걸고 조직한다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패배주의가 아니라 공황기에 맞선 노동자 살리기 투쟁! 바로 이것이 지금 이명박과 자본가들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반격의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