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해외 이전에 맞서 싸우는 독일 벤츠 노동자들 -“미국으로의 생산 이전은 3천명 고용을 내팽개치는 것”
메르세데스 벤츠. 한국에서도 BMW와 함께 럭셔리한 고급차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벤츠의 독일공장 노동자들이 뿔났다. 전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벤츠의 C-클래스 생산을 독일에서 미국으로 옮기려는, 모기업 다임러의 계획 때문이다.
생산 이전에 맞서 1만여 노동자 사흘 연속 파업과 시위11월 30일,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진델핑겐 공장 앞에 수천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다임러 측이 C-클래스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자, 곧바로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12월 1일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다음날도 3교대로 일하는 진델핑겐 공장 노동자들은 각 교대근무시간마다 집회를 열었다. 이날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모였는데 무려 1만2천명에 달했다. 항의집회와 파업은 다음날까지 지속되었는데, 진델핑겐 공장 노동자 총수는 2만명이며 이중 C-클래스 생산에 연관된 노동자 수만 4,500명이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에 따르면, C-클래스 생산이 미국으로 이전할 경우 3천명의 고용이 위기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12월 1일 저녁,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임러 측은 C-클래스 생산을 미국 앨라배마 주의 밴스(Vance) 공장에서 2014년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다임러 측은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더라도 독일 노동자에 대한 고용은 보장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성난 노동자들의 분노는 관료적인 독일 금속노조 지도부조차 “공장 불빛을 꺼뜨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사회 결정을 철회시킬 것”이라는 선언을 하도록 만들었다.
저달러 고유로가 낳은 제조업의 급작스런 미국행사실 미국으로 생산을 이전한다는 얘기가 벤츠만의 얘기는 아니다. 이미 독일에서도 BMW가 미국 생산을 늘린다고 발표했고, 유럽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도 생산의 미국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아니, 한때는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 부문이 너도나도 “중국으로!”를 외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갑자기 미국행 티켓으로 바꾸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올해 초에 투기자본이 안전자산이라고 판단한 달러화에 투기를 하느라 달러값이 치솟는 ‘달러 거품’이 만들어졌는데, 이제 그 거품이 빠지면서 달러화 가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품의 폭발은 저달러와 함께 상대적으로 유로화나 엔화 등의 가치 상승을 낳았다. 그러다보니 유럽과 일본의 제조업 부문은 급작스런 환율변동으로 인해 수출 경쟁력,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저달러 현상이 단기간에 바뀌지 않고 장기화 될 것임이 분명해지자, 유럽과 일본의 주요 메이커들이 “차라리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은 미국에서 생산하자”는 판단으로 미국행 티켓을 사고 있다. 환율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미국 안에서만 생산하고 판매하면 환율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 얘기를 조금만 더 확장하면,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은 유럽에서 생산하고, 중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은 중국에서 생산하자”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전세계 제조업 자본가들이 유례없는 대공황과 저달러 현상으로 인해 검토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자동차생산과 판매에서 전세계 1위를 달리는 도요타는 실제 SUV 차종인 RAV4의 생산 기지를 작년에 캐나다로 옮겼고, 또다른 SUV 제품인 하이랜더를 10월부터 인디애나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 하이브리드차종인 프리우스를 미시시피주 블루스프링스에 건설 중인 신규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과 고용은 모바일이 아니다!
눈치 빠른 노동자들은 이 얘기가 유럽과 일본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해외 현지생산을 늘리고, GM대우차가 주요 차종의 현지 생산을 늘리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현대기아차는 최근 중국에 세 번째 공장을, 그리고 미국의 2개 공장에 이어 멕시코에 북미 제3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북미에서 판매될 차량은 북미에서 생산하고, 중국에서 판매될 차량은 중국에서 생산한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제 현대기아차 국내공장은 내수용 생산만으로 쫄아들게 될 것이다. 결국 위기탈출이라는 것이 국내 노동자들의 고용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고약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GM이 오펠 매각을 철회하고 유럽에서만 9,000명을 해고할 계획인데, 그중 거의 절반이 독일 노동자들에게 집중될 예정이다. 지금 메르세데스 벤츠를 비롯해 유럽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독일에서부터 터져나오고 있다. 그 이유 또한 간단하다. 공황 직후 망해가는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을 떠받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들이 ‘폐차보조금’ 정책을 도입했는데, 독일에서 가장 빨리 도입되었지만 또 그만큼 가장 빨리 종료되었다.(지난 8월에 종료됨) 폐차보조금 제도가 중단되자 오르막길이던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 대가를 다시 한 번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메우려는 것이다.
자, 이제 한국의 ‘노후차량 세제지원 제도’ 연말 종료, 생산의 해외 이전이라는 조건을 보았을 때 독일 노동자들의 오늘은 한국 노동자들의 내일이다. 다행히 독일 노동자들은 양보가 아니라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 11월30일~12월2일 연속 시위에서는 단지 벤츠 노동자들만 가세한 것이 아니다. 진델핑겐 공장 인근에 위치한 포르쉐 완성차 노동자들이 함께 달려왔다. 완성차만이 아니라 세계 최대 부품사인 보쉬(Bosch)의 인근 공장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벤츠의 C-클래스 생산이 미국으로 이전되면, 그에 따라 독일의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도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지금 독일 노동자들의 투쟁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준비태세를 갖춰나가야 한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