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파업은 불법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이 자본가들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보여주는 말이다. 힘없는 노동자들은 재벌 총수들의 비리사건 처리를 보면서 ‘돈있는 놈이라····’하고 자조하곤 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법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고 탄압하기 위한 수천가지의 독소 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자세로 투쟁해야만 했다. 지난 철도노조의 파업투쟁은 그러한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내가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우리는 지난 7월,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바라보면서 헌재가 일말의 법적 양심을 지녔다면 불법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헌재는 "법률심의표결권은 침해됐으나, 미디어법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놨다.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 처벌은 하지 않겠다’라는 논리와 같았다. 법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면죄부를 씌어줬다.
철도노조 파업돌입 직전, 25일 충남지노위에서는 ‘철도노조의 정당한 파업에 공사측이 외부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은 단체협약(제177조) 위반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단체협약을 위반한 측면이 있으나 단협 제177조는 쟁의권 및 공익권 보호 취지에서 직권중재가 폐지되고 필수 유지업무 및 대체인력 투입이 허용돼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외부대체인력을 투입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 노동조합 활동에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을 매번 강조하지만, 그들 자신들은 어떤 법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 노동자가 저지르는 불법은 불륜이지만, 자신들이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기 위한 불법은 로맨스일 뿐이다.
불법파업이라는 주홍글씨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자본가들과 정권은 곧바로 ‘불법’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노동조합은 불법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서 합법적인 쟁의행위절차를 거치지만, 언제나 정권과 보수언론은 망설이지 않고 ‘불법 투쟁’으로 몰아세우며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선다.
이번 철도노조파업도 필수업무를 유지한 채, 법절차를 준수하며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등 법령이 보장하는 노조활동의 합법적 범위를 벗어난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했다.
자본가들과 정권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에 합법성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설령,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법원이 합법판결을 내릴 것이 분명할지라도, 그들은 상관치 않는다. 지금 당장 투쟁의 불씨를 꺼뜨리면 그만일 뿐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은 이미 상황이 정리된 한 참 후의 문제다. 게다가 불법에 대한 처벌은 노동자들에게는 구속, 손배, 가압류와 같은 엄청난 탄압이지만 반대로 그들에겐 약소한 징계와 벌금뿐인 것이다.
합법 투쟁이라는 늪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의 힘을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투쟁의 힘이 있으면 불법마저 합법으로 바꿀 수 있다. 가령 97년 노동법 총파업에서 정부는 총파업의 힘에 떠밀려 체포된 노조지도자들까지 바로 석방해야 했다. 반대로 법에 갇혀 버리면서 노동자의 힘을 전면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회피한다면, 이것은 악법을 통해 정부와 자본가들이 바라는 바대로 끌려다니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지정한 필수업무를 유지하는 파업은 필수유지인원으로 지정된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하는 데서 심각한 장애로 다가선다.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힘을 제한함으로써 더 큰 탄압을 초해할 위험이 있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투쟁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악법의 틀 내에서 진행한 투쟁조차도 조금이라도 위협적이라고 느끼면 곧바로 ‘불법’으로 매도하고 낙인찍는다. 이때 합법성 논란에 빠져드는 순간 노동자들은 늪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해고자 복직 요구”도 접어야 하고, “공공부문 선진화 공격에 맞선 투쟁”도 접어두어야 한다. 그런데 해고자를 복직시키려 투쟁하지 않는 노조, 정부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 공공부문노조라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승리를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합법적 방안을 모색하는데 몰두해서는 안 된다. 불법이라는 낙인에 맞서 과감히 투쟁해야만 한다. ‘제3자 개입금지’조항을 연대투쟁으로 무력화시켰고, ‘직권중재’에 맞서 과감한 파업투쟁으로 노동3권 보장받은 것처럼 투쟁으로 돌파해야만 한다.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원칙은 진정으로 소중한 진리다!
정원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