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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결 론
이 논문은 ‘전환기’인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에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코민테른 6차대회와 관련지어 살펴보았다. 조선 공산주의운동사를 세계 공산주의운동사 또는 마르크스주의 정치론과 서로 견주어 살피지 않으면 그 의의와 한계를 본질적으로 규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전환기’ 공산주의운동을 주목했던 까닭은 공산주의 노선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에 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짧게는 1930년대, 길게는 해방공간의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사상을 틀지우는 원형이 이때 형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노선 변화에는 1928년 코민테른 6차대회의 영향이 컸다. 그 대회는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 3기론’에 뿌리를 두고 혁명적 정세론을 내놓았다. 이같은 코민테른의 판단은 1929년 공황이 불어닥치자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 3기론’에 포함된 파국론적인 인식은 그릇된 것이었다. 그 무렵에는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혁명적인 분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그에 맞선 자본의 대응도 치밀했고 공격적이었다. 따라서 그때는 노동운동의 성공과 패배가 둘 다 예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빛과 그림자가 엇갈리는 역동적인 상황이었다.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 3기론’이 실천에 적용되면서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났다. 즉 자본주의 모순이 끝에 이르고 노동계급이 급진적으로 진출하는 혁명적 정세에서 사회민주주의자가 파시스트가 되었다는 사회파시즘론과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전술이 그것이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정세인식도 코민테른 6차대회의 ‘3기론’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에 일부 공산주의자는 객관정세가 혁명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노동계급의 조직화와 의식화같은 주체역량이 미약함을 들어 정세가 퇴조기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세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주체역량을 포함시켰던 퇴조기론은 곧 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객관 정세만을 강조하면서 나라 안팎의 정세가 혁명적 상황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원산 총파업과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공황 뒤에 더욱 드세지는 노동자 농민투쟁 등이 자신의 혁명적 정세관이 올바른 것임을 증명하는 사실들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때 대중투쟁이 다른 때에 견주어 고양된 것이기는 했지만, 혁명적인 수준까지 다다른 것은 아니다. 여러 투쟁을 통하여 계급의식이 성장했다 해도, 그것은 불안정한 것이었다. 투쟁경험이 축적되었지만, ‘패배’들도 축적되었으며 운동은 분산적이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사기를 잃고 지역운동이나 부문운동이 사그라들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전환기’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변혁론은 소비에트 형태로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독재’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이 ‘12월테제’에서 제시한 변혁론을 그대로 따랐다. 그 전에는 공산주의자가 ‘인민공화국’ 또는 ‘혁명적 인민공화국’이라는 변혁론을 가지고 있었다. 1926년 7월 ｢조선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인민공화국은 ‘민족 유일당’(‘고려국민당’)이라는 여러 계급의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의 권력형태이다. 1928년 3월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논강｣에서 제시한 혁명적 인민공화국이란, ‘혁명적 계층의 특수한 동맹체’인 ‘민족협동전선당’이 정권을 잡을 때이다. 인민공화국 또는 혁명적 인민공화국이란 여러 계급으로 이루어진 ‘민족통일전선당’이 권력을 잡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혁명적 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민공화국과 차이가 있다. ‘3․4차 조선공산당’의 주역이었던 ‘엠엘파’는 1927년 말에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28년 3월에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논강｣에서 혁명적 인민공화국론을 내세웠던 것이다.
‘전환기’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민족부르주아지가 혁명적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통일전선당(‘고려국민당’)을 만드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제 그들은 노동자 농민으로 구성된 볼세비키당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독재’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에 따라 노동계급 헤게모니를 더욱 강조했으며, 이전에는 ‘좌편향’으로 여겼던 ‘소비에트’를 부르주아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노동자와 농민이 이룩한다는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독재론’은 1905년 레닌이 주장했던 것이었다. 레닌의 이 변혁론은 처음부터 모호하고 혼합적이었다. 더구나 그같은 변혁론에 ‘소비에트’라는 말이 덧붙여져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적지 않은 혼동도 있었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소비에트를 많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소비에트가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나타나며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노농정부를 수립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여러 슬로건에서 ‘소비에트’가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1920년대 중후반과 ‘전환기’ 공산주의자들은 당면 변혁이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데는 뜻을 같이 했다. 다만 ‘전환기’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위기 3기’라는 혁명적 정세를 맞이했기 때문에 노동자와 농민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독재’를 실현하려 했으며 그 수단으로 소비에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소비에트’란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을 실현한 조직을 뜻하는 것이었다.
‘전환기’ 민족통일전선전술은 민족부르주아지를 적으로 여기며 타격하는 ‘식민지형 사회파시즘론’과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전술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것은 1920년대 민족통일전선전술과 사뭇 다른 것이다. 1920년대 중후반 조선 공산주의자의 민족통일전선전술은 코민테른이 중국공산당에 권고했던 변혁론과 ‘4계급 블럭론’에서 영향받은 것이었다. 실제로 코민테른은 중국에 적용했던 민족통일전선전술을 일정한 시간 차이를 두면서 조선에도 적용했다. 코민테른은 1924년 코민테른 5차대회 뒤부터 조선 공산주의자에게 일관되게 ‘민족유일당’이라는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제시했으며, 1927년 ‘4월결정’ 등을 통하여 ‘고려국민당’을 결성하도록 지시했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펼쳤던 민족통일전선전술을 살펴보면 중국국민당 노선과 매우 비슷한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오로지 그 지시에만 충실하여 신간회를 만들었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신간회 정책이 코민테른 정책과 같은 맥락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통일전선전술을 운용하는 데서 중국 공산주의자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조선에는 중국처럼 국민당과 같은 당 조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 그들이 ‘민족통일전선체’인 신간회를 창립할 무렵에는 국민당 우파와 국민당 좌파의 배반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런 가운데 공산주의자들은 투쟁의 조직이 되지도 못하고 당조직도 아닌 신간회의 위상과 성격을 끊임없이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환기’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고려국민당’이라는 옛 계획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날 통일전선을 정당형태로 하려 한 것은 독자적인 전위의 행동을 포기한 것이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새로운 통일전선 개념을 정립하면서 지난날의 오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민족통일전선전술의 방향은 여러 계급이 ‘블럭’을 이룬다는 옛 방침에서 다른 계급과 일시적으로 협동한다는 쪽으로 옮겨갔다. 이처럼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민족통일전선전술 개념이 바뀌는 데에도 코민테른의 새로운 방침이 큰 영향을 미쳤다. 코민테른 6차대회의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운동에 대하여｣에서 조선 공산주의자는 “개인 가맹에 기초한 민족혁명당 설립에 노력하지 말라”고 했다. 코민테른은 지난날 자신이 권고했던 ‘고려국민당’ 계획을 스스로 폐기한 것이다. 그밖에 코민테른은 ‘12월테제’, ‘9월테제’, ‘10월서신’ 등을 통하여 민족부르주아지를 배제한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전술로 조선 공산주의자들을 안내했다. 그러나 이러한 코민테른의 새로운 방침이 신간회 해소를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코민테른은 적어도 ‘12월테제’를 발표할 무렵에는 신간회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를 획득하려는 당의 일상적인 활동과 민족통일전선전술을 구분하지 않은 채, ‘식민지형 사회파시즘론’과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간회 해소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룹마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났고, 한 그룹에서조차 일관된 방침을 세워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일도 있다. ‘12월테제’ 직후의 ‘레닌주의 그룹’이나 ‘계급투쟁 그룹’에서 보듯, 적지 않은 공산주의자들은 신간회를 ‘투쟁의 조직’으로 만들고 계급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츰 신간회 해소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그러나 후기 ‘볼세비키 그룹’처럼 신간회 해소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얼마동안은 신간회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절충적인 의견도 있었다. 또 ‘콤뮤니스트 그룹’처럼 좌익민족주의자를 폭로해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원칙만을 되풀이 할 뿐, 신간회 해소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콤뮤니스트 그룹’은 당재건과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에 집중했으며 신간회에 대해서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구체적인 방침이 없었던 듯하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민족통일전선전술 개념에 따르면 그들이 신간회 해소를 주장했을 법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 활동가들이 신간회 해소에 반대한 사례가 보이며, ‘계급투쟁 그룹’의 양명은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이 신간회 개조를 주장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마다 신간회 해소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었다. 신간회 해소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던 공산주의자 그룹들은 ‘신간회 해소 공동위원회’같은 공동전선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은 민족문제와 투쟁방침 등에서 지난날의 인식 차이를 새로운 틀 위에서 해결하지도 못했다.
일정한 정세관과 변혁론 그리고 민족통일전선론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각자 그룹을 만들어 당재건운동에 나섰다. 그들의 정치의식과 당재건 방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코민테른의 ‘12월테제’였다.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이 ‘12월테제’의 논리에 아무런 오류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12월테제’가 내건 ‘파벌박멸’이라는 깃발 밑에서 조선 공산주의운동은 건강한 정파를 만드는 일조차 가로막힐 수 있었다. 또 ‘12월테제’는 공산주의자들이 노동계급․농민계급과 직접 연루해야 한다는 내용은 담고 있지만, 분산적․지역적 운동을 어떻게 전국적으로 통합해야 할지를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건설의 단계론이나 ‘실력양성론’ 또는 ‘코민테른 의탁론’을 잉태하고 있었다.
공산주의 그룹들은 ‘12월테제’에 따라 지난날의 조선공산당사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새로운 당관(黨觀)을 정립하는 가운데 당재건운동의 방향을 가다듬었다. ‘3․4차 조선공산당’을 이끌었던 ‘계급투쟁 그룹’은 지난날 조선공산당의 활동에서 몇 가지 잘못된 것을 비판하면서도 조선공산당의 의의조차 부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앞날의 새로운 당을 결성하는 데서 ‘유일한 가교’로 조선공산당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그룹들은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낮게 평가했으며 ‘계급투쟁 그룹’의 당사인식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판했다.
‘전환기’ 공산주의들은 1920년대와는 질에서 다른 새로운 볼세비키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의 ‘볼세비키당’이란 ‘스탈린주의당’이었다. ‘스탈린주의 당관(黨觀)’에서 가장 크게 문제삼은 것은 분파문제였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분파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분파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으려 했다. 나아가 도대체 분파를 극복하려는 운동을 계속했는데도 왜 ‘발전된 파벌’이 생기는지 분석하려 했다. 그러나 분파가 발생하는 원인을 주로 기회주의자들이나 노동계급 밖에서 찾으면서 본질적인 원인 규명에는 미치지 못했다.
‘12월테제’ 직후는 당건설론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여러가지 당건설론이 나타났다. ‘볼세비키당’을 건설할 것을 목표로 삼은 수많은 당건설론들 가운데 정작 볼세비키 레닌이 주장했던 ‘전국적 정치신문에 의한 당 건설론’은 없다. 오로지 ‘잡지운동론’이라고 다른 그룹에서 비판했던 안광천의 ‘레닌주의 그룹’만이 전국적 정치신문과 잡지를 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광천은 전국적 정치신문이 어떤 내용을 다루며 조직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각 그룹의 당재건과 노동조합 방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볼세비키 그룹’은 세 국면을 거치면서 당재건과 노동조합 방침이 일정하게 바뀐다. 첫번째 국면은 1929년 3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부터 1930년 6월회의까지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당재건 방침이란 열성자대회를 통하여 ‘4차당대회’를 여는 것이었다. 이때 ‘열성자’란 ‘12월테제’를 받아들이고 지난날의 운동 속에서 단련된 역량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일컫는다. ‘볼세비키 그룹’은 그 열성자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당건설의 방향과 운동방침을 정한 뒤에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아 당을 건설한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열성자대회 방식이 비록 실제 운동 진행과정에서 자기파를 확대하려는 운동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자기파를 늘려 당을 재건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는 이름있는 공산주의자들을 모으려고 했던 것만이 아니라, ‘공장침입대’를 만들고 학생운동에 개입하려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운동과정에서는 열성자대회를 열려는 활동에 집중했으며 그들의 노동조합 방침이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국면은 1930년 6월회의 뒤부터 1931년 3월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건설하기 전까지이다. ‘볼세비키 그룹’은 6월회의에서 그동안의 열성자대회 소집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한 끝에 자신들의 조직적 기초를 공장과 광산․철도․부두에 둘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계획을 좀더 치밀하게 마련했다. 이것은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가 그동안 열성적인 공산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에서 생산현장 중심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결정한 것이었으며, 1929년 8월에 열린 제2회 태평양노동조합 비서부의 결정에서 영향받은 듯하다. 두번째 국면에서는 좌익노동조합을 확대 강화하는 방안으로 의식있는 분자를 노동총동맹과 그 가맹단체에 파견하여 우익분자들을 폭로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생산현장에서 ‘좌익노동조합의 배후조직’을 만들려 했으며 이것은 당재건을 위한 기초 세포를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볼세비키 그룹’은 코민테른이 해산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을 알게되면서 세번째 국면으로 접어든다.
세번째 국면은 1931년 3월에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해산하고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결성하는 때이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걸고 자신들의 임무가 당건설에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내세우면서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라는 이름으로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산별노조건설을 당면한 임무로 내세웠다 할지라도 그러한 방향전환과 실천이 당재건과 전혀 관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간부들은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지만 활동 방침에서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이전에는 ‘12월테제’가 주요 지침이었다면 이제 거기에 덧붙여 ‘9월테제’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둘째, 그전에는 당건설을 목표로 하는 과정적 조직으로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당건설의 또다른 과정적 조직으로서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만들었다. 두 조직 모두 궁극적으로 당건설에 복무할 조직이었지만 산별노조를 직접 목표로 삼는 것이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였다. 셋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는 당건설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주체가 될 것이었지만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경우 자신들은 당건설의 토대를 마련할 뿐이고 당 건설의 책임과 지도권은 ‘중국공산당 조선국내위원회’가 맡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뒷날 프로핀테른이나 ‘콤뮤니스트 그룹’은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산별노조를 조직하려 했던 것은 시기상조이며 그 조직은 분파집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레닌주의 그룹’의 안광천은 전위건설 사업에서 공산주의자의 비합법 출판물인 전국적 정치신문과 잡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전국적 정치신문이 ‘집단적 선전․선동가, 집단적 조직가’ 역할을 한다거나 전국적 정치신문의 배포망을 구축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안광천의 노동조합 방침은 전위조직이 공장세포를 건설하여 공산주의 정치를 현장에 나르고 선진 노동자를 발굴하여 전위조직에 포함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공장에 ‘기계적’으로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안광천은 비록 추상적이기는 했지만 공장위원회를 건설할 것을 1929년 5월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공장위원회 건설’은 혁명적 노동조합 노선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프로핀테른이 조선에서 혁명적 노동조합 노선을 실천할 것을 지시한 1930년 ‘9월테제’ 이전에 안광천이 공장위원회를 주장했던 것은 그가 1929년 초에 프로핀테른이나 태평양노동조합의 노선에 직접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20년대 ‘3․4차 조선공산당’에서 큰 역할을 했던 ‘계급투쟁 그룹’은 지난날의 조선공산당을 앞세워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고 다른 공산주의자를 다시 조직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도 몇몇 지식인이나 이름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당을 재건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투쟁 과정에서 ‘대중적․전투적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공산주의 그룹이 협의하여 반제반봉건 투쟁을 함께 벌이면서 이론과 정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당건설로 나아가자는 제안도 했다. 또 합법적 대중단체 안에서는 여러 그룹이 사안별 ‘공동투쟁위원회’나 각 부문운동 ‘협의회’를 만들어 연대하면서 당건설의 토대를 닦는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과 당재건 방침은 다른 그룹들 사이에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계급투쟁 그룹’이 조선공산당의 계승자라는 인식을 가진 것에 대해 다른 그룹에서 그것은 코민테른 노선에 어긋나며 파벌투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을 따름이다.
‘계급투쟁 그룹’이 1931년 2월에 결성한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은 ‘당적 조직’을 미리 만들고 자신의 세력을 부풀려 ‘위로부터’ 당을 건설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 ‘아래로부터’ 당을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계급투쟁 그룹’의 첫 노동조합 방침은 ‘레닌주의 그룹’의 노동조합 방침과 같았다.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결성할 무렵, 그들은 ‘세포를 중핵으로 하는 광범하고 다양한 투쟁조직’인 ‘복선적(伏線的) 중심조직’을 건설한다는 노동조합 방침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한쪽으로는 ‘복선적 중심조직’을 통하여 공산당을 재건하고 다른 쪽으로는 전국적 산업별 위원회나 전국좌익노동조합을 조직한다는 계획이었다.
‘계급투쟁 그룹’은 ‘아래로부터의’ 당건설을 실현하려 할 때도 어떠한 형태로든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위로부터의’ 당건설일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해산하고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결성하면서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려 했다. 자기 조직의 위상을 ‘동맹’에서 ‘협의회’로 낮춘 것은 현장과 더욱 밀접하게 결합하며 지역운동조직과 지역책임자에게 독자적인 권한을 주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협의회’의 노동조합 방침은 크게 보아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협의회’가 더욱 분산적으로 운동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단야 등이 조직한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콤뮤니스트 그룹’의 전신이었다. 일제 관헌자료를 이용한 그동안의 연구 성과에서는 이 조직도 ‘선(先)당재건 준비조직 건설노선’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결론에 따른다면, 코민테른의 전권위원이었던 김단야가 왜 1920년대 식으로 당을 재건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 수 없다. ‘러시아현대사문서보관연구센타’의 자료를 통해 보면,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여러 곳에서 현장과 밀착한 대중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별 단위를 만들고 그것을 전국적인 협의회로 묶어 당을 재건하려 했다.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그러한 운동 방향을 공산주의자들끼리 확인하고 연락을 맡는 조직이었지 자기 스스로를 확대․재생산하여 당으로 전환하려는 조직은 아니다.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의 활동을 보면 코민테른이 김단야를 통해 당을 재건하려는 의지가 컸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것은 코민테른이 ‘볼세비키 그룹’이나 ‘계급투쟁 그룹’을 분파집단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첫 뼈대를 옛 화요파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공산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하려 했다.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노동총동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동총동맹의 지도자를 자신들의 조직에 끌어들여 노동총동맹에 영향을 미치려 했으며, 그러한 작업이 성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는 일제경찰에 대한 보위문제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그나마 활동기간이 짧아 그들의 노동조합 방침이 무엇이었는지 실천 과정에서 점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가 70%가 넘는 지역별 공산주의자 단위’를 계획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생산현장과 밀착하려 했다는 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일제경찰의 추적을 피해 상해로 갔던 김단야는 코민테른의 재정지원과 지도 밑에서 박헌영과 손을 잡고 콤뮤니스트를 발행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콤뮤니스트는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특수작업대’였다. 콤뮤니스트의 임무는 ‘시기적절하고 빠르게 현재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적 사건들에 대응’할 것으로 설정되었다. 나아가 ‘국내의 정치문제에서 실제적인 지도자와 조직가 역할’을 하려고 했다. ‘콤뮤니스트 그룹’은 혁명적 무장봉기 노선을 내걸었다. 또 이들은 혁명적 무장봉기와 나라 안팎의 빨치산투쟁을 결합하려 했다. ‘콤뮤니스트 그룹’은 빨치산투쟁을 반제국주의투쟁이나 농민들의 반봉건투쟁과 연결시키려 했다. 그들은 이미 1931년에 국내에서 빨치산투쟁의 서곡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앞으로 그러한 빨치산투쟁을 발전시키고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콤뮤니스트 그룹’은 공장 안에 비합법 ‘콤뮤니스트 독서반’과 야체이카(공장핵)를 만들어 ‘공장세포체계’를 구축하려 했으며, 공장신문과 산신문(말로 하는 신문)을 통하여 선전․선동과 조직 사업을 하려했다. 공장 노동자들의 일상 투쟁과 삶을 다루는 공장신문은 혁명적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역할도 맡았다. ‘콤뮤니스트 독서반’은 당 야체이카 역할을 대행하며, ‘공장을 혁명적 포대(砲坮)로 전환하기 위한’ 노동조합 방침을 실천해야 했다. 이때 그들의 노동조합 방침이란 첫째,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산업별로 다시 조직하고 공장위원회나 공장대표회 등을 세운다. 둘째,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는 반드시 노동조합을 만든다. 셋째, ‘국가기업’(연초․철도․전기 가스)처럼 합법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곳에서는 비합법으로 만들며 합법성을 얻으려고 투쟁하는 것 등이었다. 이같은 노동조합 방침은 당건설을 위한 터 닦기 사업이기도 했다.
‘콤뮤니스트 그룹’은 혁명적 노동조합 노선을 그 모습 그대로 실천하려 했다. 그들은 파업위원회와 공장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위원회를 건설하려 했다. 이러한 혁명적 노동조합 방침은 본래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 노선에 따라 노동조합 관료와 사회민주주의자의 영향력을 막으려는 노동조합 방침이었다. 코민테른과 프로핀테른은 서구에서도 실패했던 이같은 방침을 노동조합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에도 적용하려 했으며, ‘콤뮤니스트 그룹’을 비롯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가들도 그것을 충실하게 따르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조합원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시기와 상황에서나 알맞은 노동조합 방침을 환경이 완전히 다른 조선에 적용한 것은 오류였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노동조합 방침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명확한 당재건 방침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비록 추상적으로는 자신들의 활동이 당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라도, 현실에서는 전국적 산별노조를 건설하려는 운동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들이 혁명적 노동조합을 당의 분신(分身)으로 여겼을 확률도 있음을 뜻한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노동운동에 지침이 된 것은 ‘9월테제’와 ‘10월서신’이었다. 그러나 1930년 ‘9월테제’에 앞서 프로핀테른이나 태평양노동조합의 혁명적 노동조합 방침이 어떻게든 조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도 1930년 9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초에 나온 태평양노동조합 비서부의 기관지인 태평양노동자 조선어판 창간호에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쓴 국내 관련 글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프로핀테른이나 태평양노동조합 비서부 활동에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국내 운동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1929년 12월에 원산의 한 공산주의자는 ‘붉은 노동조합’과 파업위원회를 제기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러시아현대사문서보관연구센타’의 자료에 근거해서 오토 쿠시넨과 ‘콤뮤니스트 그룹’의 관계, 그리고 철악․광우 등의 필명을 가진 사람이 한위건이 아니라 양명이라는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볼세비키 그룹’과 ‘계급투쟁 그룹’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다. 특히 그동안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콤뮤니스트 그룹’의 모습을 일부 드러낼 수 있었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운동방침도 그들의 기관지나 신문을 통해서 새롭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공산주의운동사를 재구성하거나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장했다. 첫째, 그동안 연구성과에서 당재건과 노동조합 방침을 ‘선(先)당재건 준비조직 노선’이나 ‘선(先)혁명적 대중조직 노선’으로 유형화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둘째, 조선에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1930년 ‘9월테제’부터가 아니라 적어도 1929년 무렵부터다.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명료하게 실천한 그룹 가운데 하나가 ‘콤뮤니스트 그룹’인데, 혁명적 노동조합 노선은 이론과 실천에서 조선 현실에 알맞지 않았다. 셋째, 코민테른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코민테른 권위주의’에 깊게 빠져들어갔다. 코민테른은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 중심인 ‘콤뮤니스트 그룹’을 정통으로 인정했으며, ‘볼세비키 그룹’과 ‘계급투쟁 그룹’ 등을 분파집단으로 낙인찍었다. 해방뒤 박헌영 등의 당사인식에서도 이런한 역사사실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밖에도 이 논문에서는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변혁론과 민족통일전선전술 그리고 당재건과 노동조합 방침 등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들의 전략과 전술에 몇가지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조선 공산주의자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역사는 주문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부분적 요구를 전체의 요구로 상승시키며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할 수 있었을까. 지역운동과 부문운동들로 흩어진 여러 운동을 전국 차원으로 모아 일제를 물리칠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노동자계급의 당이란 또 무엇이고 엄혹한 식민지 상황에서 그 당을 어떻게 건설해야 했는가.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아직껏 명확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마르크스주의 위기’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지난날의 공산주의운동사를 평가해야 올바른가. ‘마르크스 위기’를 맞이한 오늘날 이것은 또다른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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